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259화 (260/279)

259. 누구냐, 너 - 1.

2022년 새해가 밝았다.

대한민국은 목전에 다가온 대선으로 인해 진즉부터 난리였다.

아니, 난리라기보다는 응당 그래야 할 열풍에 휩싸였다고 하는 게 옳을 터.

억눌렸다 폭발한 민심의 힘으로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 현실이 됐고 뒤이어 선출된 새 대통령의 5년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한국사회의 난맥상에 짓눌린 국민의 요구는 많고도 다양했고, 수십 년에 걸쳐 뿌리내린 기득권의 저항은 컸다.

민주주의는 퇴보하지 않고 나아갔다지만, 앞으로 갈 길이 멀고도 멀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하는 5년이었다.

또한, 한계가 있었던 건 분명하나 정치에 민의가 반영되고 민심이 정치를 외면하지 않고 감시할 때 그 정치라는 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는 5년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이 열풍이 되어 한반도에 몰아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도훈은 공적인 자리에서는 ‘선거 관리’를 제외한 모든 화제와 거리를 뒀다.

도훈이 그런 태도를 보이니 대흥시에서도 최소한 시청만큼은 대통령 선거 열기의 영향권 밖이었다.

임기 마지막 해이니 제대로 신년회를 하자는 제안이 시청 내부에서 있었다.

직원과 시의회 의원 및 관계자들을 모아 다과회 정도 가지며 ‘새해에도 잘해보자’는 결의를 다지는 건 나쁘지 않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도훈은 직원들에게 간략한 새해 인사를 이메일로 보내는 것으로 신년행사를 대체했고, 시의회 의원들과도 함께 차를 마시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한 번이라도 좀 격식 차린 행사라는 걸 해보자니까, 좀!”

불평하는 영배에게 도훈은 이렇게 답했다.

“누구를 위한 격식이고 무엇을 위한 행사인데?”

“......”

“그 간단한 요구조건도 충족 못 시키는 행사를 왜 하자고 하는 거야, 도대체?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

“긴장 늦추지 맙시다, 응?”

“... 쩝.”

임기도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지만, ‘초심을 잊지 않겠다’는 도훈의 각오는 전혀 무뎌지지 않았다.

도훈의 일상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총각에서 유부남이 됐지만, 주말 부부인지라 생활 환경의 변화도 별달리 없었다.

내내 그랬듯 도훈의 생활 중심에는 시정(市政)이 있었다.

2022년의 첫 확대간부회의.

시 행정 전반의 다양한 현안을 확인, 점검하고 그 대처를 논의하는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 겨울이라 전면적으로 공사를 시작하는 건 무리라는 것 압니다. 하지만, 날이 풀리면 균열이 커지거나 무너질 위험이 있죠. 그러니 얼어있을 때 지지대 등을 설치해 해동 전까지 시설물을 보강해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그렇게 하겠습니다, 시장님.”

“아, 바로 하시라는 건 아니고요. 전문가 의견을 구한 뒤에 보고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 그 건과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2년 전에 경남 사천시에서 시와 민원인 간에 우리와 비슷한 사정으로 소송이 벌어졌거든요. 심지어 아직도 진행 중이에요. 2심까지는 시가 승소했고 현재 대법원에 올라간 상태입니다. 조만간 대법원 판결이 나올 거라고 알고 있는데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합니다. 이 사례를 갖고 민원인을 설득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법적으로 다툰다고 해서 우리에게 없는 권한이 생기는 게 아니라고 말입니다.”

“... 좋, 좋은 생각이십니다. 검토해 보겠습니다.”

“네. 그래 주세요. 법원 판결문이나 기타 자료는 제가 이메일로 실장님께 보내겠습니다.”

“... 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좀 기다리는 게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 다른 사정이 있거나 한 거라면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처리하기로 했으면 빨리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게 아니면 먼저 지역 주민에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는 게 맞죠. 주민들도 시청에서 처리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우리가 아무 대처도 하지 않고 있다가는 주민의 괜한 오해와 불만을 살 겁니다.”

“... 아, 알겠습니다, 시장님.”

안건은 빠른 속도로 정리되었고 하나씩 처리될 때마다 간부들이 도훈에게 새삼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 더 하실 말씀 있습니까?”

“......”

“없으면 이걸로 회의 끝냅시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서류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는 도훈은 간부들이 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흘끔거린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모를 수가 없었다.

회의 후반으로 갈수록 그런 눈빛을 보내는 이들이 많아졌으니까.

복도로 나온 도훈이 옆에서 걷는 영배에게 속삭였다.

“간부들이 왜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거죠?”

“......”

“조 비서관도 몰라···. 왜 그렇게 봐요?”

영배도 그 옆의 두진도 간부들과 비슷한 눈빛을 하고 있어 도훈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는데, 답이 아니라 매우 엉뚱한 질문이 돌아왔다.

“... 혹시 저 모르게 총명탕 잔뜩 사서 쟁여놓고 드시기라도 하는 겁니까?”

“총명탕이요?”

“네. 머리 맑아지고 기억력 좋게 한다는 그 총명탕 말입니다.”

“아뇨.”

“이상한데···. 우리 시장님이 좀 똑똑하고 빠릿빠릿한 양반이긴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안 그렇습니까, 실장님?”

“... 동감일세.”

질문한 자신은 제쳐 놓고 자기들끼리 동감이네 뭐네 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도훈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두 분, 무슨 소리 하는 겁니까, 지금?”

“... 시계 좀 보세요, 시장님.”

“시계요? 음, 11시 13분이네요. 그게 왜요?”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는 듯 되묻는 도훈에게 영배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확대간부회의 10시 반에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40분 조금 넘게 걸려서 끝났어요. 원래 이게 1시간 훌쩍 넘게 걸리던 회의 아닙니까?”

“... 그랬죠.”

“더군다나 오늘은 새해 첫 회의라 안건도 다른 때보다 많았습니다.”

“그랬나요?”

“... 시장님이 들고 있는 자료 두께 좀 보십시오.”

영배의 말에 도훈이 가만히 들고 있던 서류철에 시선을 줬다.

평소에도 양이 많았지만, 오늘은 웬만한 책 두 권 분량을 훌쩍 넘는 두께.

많긴 확실히 많았다.

“......”

“그거 보시고서도 사람들 반응이 왜 저러나 감이 안 오세요?”

“......”

도훈이 대꾸를 못 하는데, 두진이 말을 이었다.

“조 비서관 말이 틀린 게 아니라 오늘 시장님 컨디션이 많이 좋으신 건지 아주 일사천리로 회의가 진행됐습니다.”

“... 그랬습니까?”

“네. 그뿐 아니라 어떤 현안이든 시장님께서 말씀하신 대처법에 대한 반론도 전혀 없었고요. 그래서 회의가 일찍 끝난 겁니다.”

“... 제가 제 의견을 몰아붙인 건 아니었죠?”

“전혀요. 간부들도 다 시장님 말씀에 동의하니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답한 겁니다.”

“......”

“전에도 시장님 업무능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은 했지만, 오늘은 그··· 뭐라더라? 아, ‘넘사벽’!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

“시장님?”

“... 가시죠.”

뭔가 생각하던 도훈이 정신을 차린 뒤 허공을 한 번 흘끔 하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고, 영배와 도훈이 뒤따랐다.

그 뒤 허공을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은 조상님이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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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녁, 도훈의 집.

오래간만에 일찍 퇴근한 도훈은 순심이 밥부터 챙긴 다음 곧바로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 하하. 정말요?”

- 네. 사람들이 막 놀린다니까요? 보통 사람은 결혼 전후에 예뻐졌다거나 알뜰해졌다거나 하는 얘기를 듣는데, 어떻게 저는 머리가 좋아진 것 같냐면서요. 부부가 나란히 얼마나 심각한 일벌레이면 서로에게 그런 영향을 미치냐고 말이죠. 정작, 저는 잘 모르겠는데 말이에요.

“... 하하.”

- 정문 오빠까지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것도 아주 얄밉게.

“장난이었겠죠.”

- 장난인 건 아는데, 그렇게까지 얄밉게 굴 필요는 없잖아요. 확 받아버리고 싶었는데 공석이라 그럴 수도 없었고요. 정문 오빠도 그걸 아니까 그런 걸 테죠.

새침하게 대꾸하는 세경에게 도훈이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사석에서 배로 갚아 줘요. 기회가 있겠죠.”

- 안 그래도 그러려고요.

결혼 전에도 여유가 있으면 온라인 화상채팅을, 그렇지 않으면 톡으로 자주 대화하던 도훈과 세경이었다.

오늘은 두 사람 모두 일찍 퇴근해 화상채팅으로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수다 떨고 있었다.

“저녁 꼭 챙겨 먹고 푹 쉬어요.”

- 네. 도훈 씨도요.

채팅을 마치고 노트북의 전원을 끈 도훈이 빙글 의자를 돌렸다가 허공에 뜬 채 바라보는 조상님과 시선을 마주쳤다.

“......”

도훈은 말없이 몸을 일으켰고, 소리 없이 웃고 있던 조상님이 말을 걸었다.

- 이제 내가 전수한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깨달았냐?

“... 좀 실감은 나네요.”

도훈이 저녁을 차리며 심드렁하게 답하자 조상님의 눈썹이 꿈틀했지만, 이내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 더 있어봐라. 실감이 아니라 깨우침의 순간이 올 테니까.

“... 더 있어 보라고요? 뭐가 또 달라집니까?”

- 그래 인마. 아직은 그 힘이 온전히 발휘되는 게 아니야. 점점 더 나아질걸? 너나 세경이나 본판이 나쁘지 않으니 분명 플러스 효과도 있을 테고.

“......”

도훈이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조상님이 인상을 쓰고 물었다.

- 왜 그렇게 봐?

“... 설마 저나 세경 씨가 희대의 천재가 되는 겁니까?”

- 글쎄다. 천재 비슷하게는 될지 몰라도 희대의 천재까지는 아니지 않을까 싶은데? 왜? 너무 좋아? 정말 기대돼?

“... 그게 아니고 그 반대입니다.”

- 반대? 안 좋다고? 아니, 왜?

“... 좋아도 적당히 좋아야지, 너무 튀면 역효과 납니다, 조상님.”

- 아마 그렇게까지는 안 될 거라니까? 너나 세경이가 우수한 건 맞는다만, 나 정도 수준은 아니잖냐.

“......”

아주 자연스러운 ‘자뻑’에 도훈이 더는 말을 잇지 않고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조상님이 가만히 그런 후손을 보고 있다가 은근슬쩍 입을 열었다.

- 커흠. 이번 제사상에 신경 좀 써줄 거지?

“... 그러죠.”

도훈은 순순히 그러겠다고 답했다.

이번뿐 아니라 앞으로 계속 그럴 마음도 있었다.

자신이 조상님에게 유일하게 뭔가 줄 수 있는 게 그 제사상인데, 그리고 앞으로 1년 이내에 제사상을 더는 차릴 필요가 없는 날이 온다는데 뭘 아끼겠는가 싶은 마음이었으니까.

다만···.

- 흐음. 그럼 혹시 주문도 되냐?

“뭐 드시고 싶은 거라도 있으신가요?”

- 있지.

“말씀해 보세요.”

- 오호? 네가 웬일로 이렇게 고분고분한지 모르겠다만,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겠지. 나 샥스핀 먹고 싶다.

“... 뭐라고요?”

- 샥스핀 먹고 싶다고. 그 상어 지느러미로 만든다는 것 있잖아.

“......”

도훈이 말문을 잃은 건 샥스핀이 비싸서가 아니었다.

지느러미 채취를 위해 상어를 잡아 지느러미만 자른 후 아직 살아있는 녀석을 바다에 그대로 던져버리는 비인도적인 행위를 영상으로 본 후, 도훈은 샥스핀을 일절 먹지 않기 때문이었다.

“... 제가 그거 안 먹는다는 것 아시잖아요.”

- 네가 먹는 거 아니잖아. 내가 먹는 거잖아.

“... 제가 그걸 왜 안 먹는지 뻔히 아시면서도 정말로 드시고 싶으신 겁니까?”

- ... 아니, 뭐···. 안 먹어봤으니 맛이 궁금하다는 거지. 꼭 그거였으면 좋겠다는 말은 아니다.

“......”

도훈의 눈치가 심상치 않자 조상님이 한 발짝 물러섰고, 도훈은 한숨을 내쉬고 식사를 이어갔다.

조상님은 그런 도훈을 방해하지 않고 있다가 식사가 끝난 뒤 다시 말을 걸었다.

- 뒤늦게 생각난 건데, 너 부동심도 벌써 발휘되기 시작했나 보다.

“... 왜요?”

- 감히 이 조상님이 먹고 싶다는데, 그걸 꼭 먹어야겠냐며 도끼눈 뜨고 쳐다봤잖아.

“... 그건 조상님이 전수하신 거랑 전혀 상관없이 원래 제가 입에도 안 대던 음식이기 때문일 걸요.”

- ... 그런가?

“... 아마도, 아니 분명히 그럴 겁니다.”

도훈이 심드렁하게 답하고 설거지를 하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 어, 왜?”

- 저기 말이다. 지난주에 지역경제과 기업지원팀에서 보낸 중소기업 협조 요청 건 보고서 너한테 파일로 있지?

“아마도. 그런데 왜?”

- 아, 내일 기업지원팀 회의에 들어가야 하잖아. 그런데 나한테 그 파일이 없네. 출력해서 가지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사무실에 놓고 왔나 봐. 그것 좀···.

순간, 도훈의 뇌리를 스치는 어떤 사진 같은 장면.

“형 노트북 지금 갖고 있지?”

- 응? 내 노트북? 있기야 있지.

“D 드라이브 ‘안 급한 것’ 폴더 찾아봐. 분명 있을 테니까.”

- 뭐? 나 그 파일 노트북에 저장 안 했는데?

“됐으니까 일단 찾아봐.”

- ... 잠깐만.

핸드폰을 통해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영배의 어이없어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 ... 이게 왜···. 야, 그런데 너 이게 여기에 저장된 줄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긴? 지나가듯 형이 저장하는 걸 봤으니까 알지.”

- ... 정작 노트북 주인은 기억도 못 하는 걸 지나가듯 봐서 기억한다고?

“... 응.”

- ......

“됐지? 끊는다.”

- 누구냐, 너?

“... 뭐?”

- 낮의 일도 그렇고 이상하잖아. 내가 아는 김도훈은 똑똑하긴 해도 이 정도가 절대 아니었어. 너 도대체 누구야? 김도훈의 탈을 쓴 외계···.

뚝.

영배의 실없는 얘기를 듣던 도훈이 통화를 종료하고는 뒤통수를 긁었다.

“... 허이고.”

사진 같은 기억 속에서, 영배가 파일을 어느 폴더에 저장하는지가 생생하게 보였던 도훈.

“... 제가 너무 좋아도 역효과라고 말씀드렸죠?”

- ... 그랬지.

“...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비정상 같지 않으세요?”

- ......

“... 휴우. 과유불급이라고 했는데···.”

- ......

한숨을 내쉬며 싱크대로 설거지하러 걸음을 옮기는 도훈.

매우 뻘쭘하고도 머쓱한 표정이 된 조상님이 아무런 대꾸도 못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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