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271화 (272/279)

271. 악재 - 2.

여당 3선 현역의원, 그것도 국민적 지명도가 높은 오정민이 직권 남용으로 공수처 수사를 받는다는 사실은 즉각 민심에 영향을 끼쳤다.

- 임기 말 대통령 국정 지지도 38.3% 기록. 집권 이래 최초로 지지율 30%대로 추락.

- 지방선거 두 달여 앞둔 민의당, 사흘 만에 지지도 7% 빠져. 직권 남용 사건으로 대선 때 지지자들도 등 돌렸다.

- 민의당 홈페이지 네티즌 항의방문으로 일시 마비.

정권 출범 이후로, 여권 인사가 부정이나 비리 사건에 연루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던 인물이 공직을 사퇴한 뒤 영어의 몸이 된 적도 있고, 현직 도지사가 구속된 적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현역 국회의원이 그것도 민의당의 유력 대권 후보라고 일컬어지던 사람 중 하나가 선거를 앞두고 포토라인에 선 것은 생각보다도 영향이 컸다.

- ... 예비후보들이 하소연하기를, 요즘 어디를 가든 비판하는 시민을 만나서 꾸지람을 듣는다고 하네요. 그럴 때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철저히 반성해서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라고 답해도 분위기가 시큰둥하다고 해요. 예비후보들이 고생이 많더라고요.

“... 네.”

- 휴우. 남 일 같지 않습니다.

업무 관계로 통화하다가 도훈의 ‘요즘 어떠냐?’라는 질문에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답하는 안준식.

그 자신은 아직 시의원직을 유지하고 본격 선거운동에 나서지 않고 있었지만, 민의당 예비후보들의 사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야당들이 기회는 이때다 싶은지 총공세를 펴고 있고, 언론도 아주 공격적인 보도를 퍼붓고 있으니 더 그런 거겠죠.”

- 그러게 말입니다. 전 요즘 뉴스 보기가 두렵습니다. 인터넷 창 띄우기 전에 심호흡부터 하는 걸요.

‘1인 미디어 시대’라는 말이 널리 알려진 지 이미 오래.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한 다양한 정치, 시사 콘텐츠에 방송과 신문의 영향력이 많이 떨어진 건 사실이었지만, 아직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온라인에서도 여당에 대한 비판이 ‘폭격’ 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여당을 향한 공격은 그야말로 온, 오프라인을 넘은 전방위적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터.

그런 형편이니 민심의 악화는 당분간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 작심하고 나선 것 같은데···. 제 생각에 당분간 국면 전환은 어려울 겁니다.”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무리 여당이라지만, 이 엄청난 화력 앞에서는···. 참, 한숨만 나옵니다.

민의당 당 대표, 원내 대표, 최고위원 등 중앙당 간부와 현역 국회의원 전원이 이미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철저히 반성하겠다며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런 보도는 잠깐일 뿐이고 ‘어디서는 여당 소속 누가 이런 잘못을 했다더라.’, ‘저기서는 여당 소속 아무개가 이런 짓을 했다더라.’ 하는 보도가 줄을 잇고 있었다.

심지어 이미 시시비비가 가려져 잘못이 없다고 밝혀진 것까지 결과를 의심하며 다시 언급되는 판국.

거기에 온갖 ‘가짜 뉴스’까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이걸 보수 정치인이 발언하며 폭발적으로 온라인으로 퍼지고 있었다.

지난 몇 년간 선거에서 계속 패배한 보수 세력이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마저 또 패배할 수는 없다는 각오로 전면전을 하고 있다는 게 한눈에 보인다고나 할까.

안준식은 물론, 지방선거에 나서는 민의당 후보자라면 그 누구라도 화력을 운운하며 한숨을 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딱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힘내세요, 의원님.”

- 하하, 네. 힘내야죠. 수고하십시오, 시장님.

시장실에서 안준식과 통화를 마친 도훈이 비서실로 나왔다.

“통화하셨어요?”

“네. 퇴근 전에 확인하고 서류 보내주신답니다.”

“아, 다행이네요.”

“네.”

“휴우. 이번 시의회는 그래도 일을 우선시하는 분이 많아서 다행이에요. 전화도 안 받아 얄미워 죽겠는 분도 있지만요.”

“아직도랍니까?”

“네.”

“... 하하.”

지연이 언급한 ‘얄미워 죽겠는’ 사람들은 장민호와 차혜진을 말하는 것이었다.

급하게 시의원들이 ‘확인’했다는 서명이 필요한 서류가 있는데, 심남진, 송지은, 안준식, 신길영은 통화가 되어 오늘 내로 협조하기로 했는데 장민호와 차혜진은 아직도 통화가 되지 않고 있었다.

시의원직을 아직 사퇴하지 않고 있었으나 업무보다는 은밀한 자기 선거운동에 더 골몰하고 있는 두 사람이라, 급기야 영배가 한 손에 핸드폰과 다른 손에 서류를 들고 홍영진과 함께 찾으러 나간 상황이었다.

“시장님.”

“네?”

소파에 앉았던 두진이 불러 그를 향해 몸을 돌린 도훈.

하지만, 두진의 시선은 도훈이 아닌 구석의 TV를 향해 있었다.

도훈도 자연스레 바라본 TV에는 ‘속보’라는 자막과 함께 보수 야당 지도부가 악수를 교환하는 뉴스화면이 나오고 있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싶었는데, 드디어 발표하네요.”

“그러게요. 타이밍을 잘 맞췄다는 느낌이 듭니다, 실장님.”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당에 대한 융단폭격이 진행 중인데 야권은 뭉친다, 꽤 좋은 그림이 아닙니까.”

보수 야당들의 전격적인 지방선거연대 발표.

구체적인 일정 같은 것들은 신속히 결정해 유권자의 혼란이 없도록 일사불란하게 선거에 나서겠다는 보수 야당 대표들의 당찬 포부.

이번 지방선거가 대선을 위해 자당 의원의 비리마저 감춘 부도덕한 정권과 여당에 대한 심판의 성격임을 다시 강조하는 그런 인터뷰가 이어졌다.

“... 참 한결같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정권심판’은 지난 지방선거 이후 각종 보궐선거, 국회의원 선거 때 야당이 치켜세웠던 메시지였다.

‘독재’ 운운했던 때도 있었지만, 그걸 내밀었다가 결과적으로 중도층이 등을 돌리는 역풍을 맞았었다.

하지만, 지난 총선과 얼마 전 대선에서 보수 세력이 패배한 결과를 볼 때, 국민은 난맥상에 빠졌던 대한민국 정치에 대한 책임을 야권에 강하게 물었다는 걸 알 수 있을 터.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정부와 여당이 대선 승리를 위해 자당 의원의 비리를 감췄다는 ‘의혹’이 크고도 광범위했으니까.

‘과연 이번에는 어떨까?’

두 달 정도 남은 선거날까지 정권심판론이 먹힐지 도훈이 의심하는데, 개인 핸드폰이 울렸다.

“... 이 양반은 또 왜···.”

“... 왜 그러십니까?”

“휴우. 저녁에 세경 씨 올 때 불청객이 한 명 같이 온다고 해서요.”

“불청객이요?”

“네. 불청객이요. 휴우.”

미간을 찌푸린 채 투덜거리는 도훈이 한숨을 연신 내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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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어서 오세요, 도지사님.”

“반갑게 맞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장님.”

“새삼스럽게 무슨 말씀이세요? 당연히 반갑게 맞이해야죠.”

“하하하. 감사합니다.”

맨 먼저 중국관에 들어선 강정문이 사장과 인사하며 웃었다.

뒤이어 들어선 도훈과 세경.

세경은 중국관 사장을 향해 방긋 웃어 보였지만, 도훈은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중국관 사장은 도훈과 세경, 강정문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왜 도훈이 그런 표정인지를 짐작하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사장님. 뒷방으로 가면 되나요?”

“어, 그래. 아, 김 시장.”

“네.”

“사진 좀 찍어주고 가. 지사님, 또 오셨으니 기념으로 또 사진 한 장 찍어주세요.”

“하하! 그럼요. 얼마든지요.”

도훈은 중국관 사장의 핸드폰을 받아들고 어깨동무한 채로 웃는 두 사람의 사진을 찍었다.

그런 뒤 강정문과 도훈, 세경은 음식과 술을 주문하고 뒷방에 가 앉았다.

“... 아무리 민의당 열혈 지지자시라지만, 사장님이 원래 저렇게 무던하기만 하신 분이 아닌데, 도대체 왜 지사님 예약은 단 한 번을 거절을 안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감사하게도 말이죠.”

도훈이 투덜거리자 강정문은 웃으며 능청을 떨었다.

대개 중국집은 8시면 문을 닫는데, 아무리 도훈이 미리 전화로 부탁했다지만 문 닫을 시간 다 되어서야 와서 좀 늦게까지 있다가 가는 강정문은 단 한 번도 거절을 당한 적이 없었다.

직접 전화해 예약했건만, 통화하면서 ‘제발 오늘은 좀 거절해라’고 간절히 바랐던 도훈의 기원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그래서 오늘 용건은 뭡니까, 지사님?”

“허허. 왜 그래요? 나 오늘은 정말로 편하게 중국관 음식에 소주가 땡겨서 온 거라니까요.”

“... 제가 그 말씀을 믿을 만큼 지사님을 잘 모르지를 않아서 말씀이죠.”

부드러운 눈빛을 한 강정문을 심드렁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도훈.

“......”

“......”

정말 강정문이 중국관 요리와 소주가 곁들어진 편한 술자리가 간절히 생각났다면 신혼부부, 그것도 주말 부부로 지내는 두 사람을 방해하지 말고 혼자 오거나 다른 지인과 와도 된다.

아마 그래도 중국관 사장은 예약을 거절하지 않았을 터.

그런데도 강정문이 ‘세경이랑 함께 저녁에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한 데에는, 만남을 거절하지 못하게 하려는 꼼수가 숨어 있다고 도훈은 판단했다.

그리고 분명 뭔가 도훈이 수용하기 어려운 얘기가 나올 거라는 것도.

“......”

“......”

두 사람의 눈싸움은 한동안 이어졌고, 보다 못한 세경이 헛기침한 뒤 끼어들었다.

“크흠. 두 분 다 그만두세요. 애들도 아니고 괜한 감정싸움 하실 필요 없잖아요. 어차피 마주 앉았는데.”

“... 쩝. 네.”

세경의 차분한 타이름에 도훈이 즉각 고분고분 답하자, 강정문이 헛웃음을 흘렸다.

“허허허. 나한테 한 마디를 안 지려는 사람이 와이프에게는 꼼짝도 못 하네요.”

“... 그게 왜요?”

“아니, 그냥 손위 처남으로서 아주 흡족한 모습이라는 겁니다.”

“......”

도훈이 고개를 모로 돌리고 소리 없이 입을 비죽였고, 세경이 강정문을 향해 일순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크흠.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 오빠. 저 그냥 확 도훈 씨랑 집에 가는 수가 있어요. 계속 그렇게 뻗대시면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고 해도 더는 협조 안 해요.”

“... 알았다, 알았어.”

강정문이 뻘쭘한 표정으로 세경에게 답하고는 도훈을 바라보고 말을 이었다.

“나 용건 있어서 온 것 맞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용건이라 김 시장이 도망 못 가게 하려고 세경이 좀 팔았어요.”

“... 짐작했다니까요.”

“허허. 짐작까지 했으면 좀 차분히 응해 주면 안 되겠습니까?”

“... 끄응.”

도훈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신음을 흘렸고 강정문이 쓰게 웃고는 자세를 바로 했다.

“김 시장, 오늘 낮에 보수 야당들 선거 연대하겠다고 발표한 것 봤습니까?”

“네.”

“우리 당이 난처한 상황인 것은 잘 알고 있을 테고···. 어떻게든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에요.”

“그럴 테죠. 하지만, 지금 저쪽에서는 또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전력을 기울이는 상황인데, 웬만해서는 힘들 거라고 판단되는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도훈의 말에 강정문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사실, 내가 알기로는 이번 오정민 의원 직권 남용 수사는 여당도 청와대도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어요.”

“... 글쎄요. 실제로는 어땠는지 몰라도 공수처가 선거 때문에 수사를 뭉개고 있었다는 의혹은 너무도 깊고 광범위합니다.”

“맞아요. 그래서 걱정이죠.”

야당과 언론의 공격이 거세고 민심도 호응하는 듯하자 공수처 대변인이 직접 나서서 기자회견을 했다.

공수처는 청와대나 여당 등 외부로부터의 압력에 수사를 방해받거나 일정을 늦춘 적이 없다고.

공수처가 생긴 이래 지금까지 항상 자체 계획과 의지대로 사건 수사를 해왔다고.

그러나 그 기자회견이 의혹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다.

“국면전환이 필요해요. 여론조사를 보니 지지도가 떨어지긴 했지만, 대다수 국민은 좀 더 지켜보자는 생각인 것 같아요. 아직 기회가 있는 거죠.”

“그렇다고 여러 번의 기회가 있는 것도 아닐 겁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유권자의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을 테니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앙당이 지방선거 대응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해명은 ‘그런 짓 안 했다’고 거듭 말하는 수세적 방법뿐이지만, 선거대응은 다르니까요.”

“......”

“그 대응에 관한 얘긴데, 당 대표실에서 내게 제안을 하나 해왔어요.”

“그게 저와 관계가 있는 겁니까?”

“맞아요.”

강정문이 선선히 인정했고 도훈은 한숨을 내쉰 뒤 자세를 바로 했다.

세경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눈을 빛내는 가운데, 강정문이 말을 이었다.

“내용이 뭐냐면···.”

강정문의 설명이 이어지면 질수록 도훈과 세경의 눈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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