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8화 (8/200)

8.

‘가만… 오히려 좋은 건가? 레바논교의 교리가 담긴 경전이니까 오히려 날 좋게 볼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러나 난 곧 고개를 저었다.

‘아냐, 반드시 그러리란 보장이 없어.’

상대는 흑마법사와 다를 바가 없는 신관장이다.

‘거기다가 설령 아크 교수가 날 좋게 본다고 해도, 그건 그것대로 문제야.’

자의든 타의든 콘스 교수에 의해 난 하인장이 됐다.

‘아무리 아니라고 소리쳐도 다른 사람들은 내가 콘스 교수의 라인을 탔다고 생각하겠지.’

그리고 지금 그 콘스 교수는 아크 교수를 심장의 방 ‘침입자’로 의심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

‘콘스 교수와 아크 교수 사이에 끼이는 건 절대 있어선 안 돼.’

내가 할 일은 그저 아크 교수의 동태를 콘스 교수에게 보고하는 것이지.

그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게 아니었다.

‘물론 아크 교수와 친해지면 이점도 생기겠지. 하지만 아직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이상, 친해지는 건 사절이야. 어쨌건 만약 경전이 내 거라는 사실이 들통난다면…….’

어쩌면 나 또한 전대 하인들과 마찬가지로 스켈레톤이 되어.

아카데미를 위해 영원히 봉사해야 할 것이다.

‘학생도 아니고 한낱 하인이 레바논의 경전을 갖고 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경전이라니요?”

“수레에 레바논의 교리가 적힌 책이 있어서 혹시 자네 건가 싶어 물었네. 자네 건가?”

‘잘 대답해야 한다. 잘 대답해…….’

“…예? 그런 게 있었습니까?”

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되묻자.

아크 교수의 표정이 스산해진다.

“설마 수레에 뭐가 있는지 몰랐던 건가?”

“저는 그저 도굴꾼들에게서 실습용 재료를 받아 왔을 뿐인데… 아!”

난 깨달음을 얻은 노인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 갔다.

“아무래도 도굴꾼들이 절 물 먹이려고 그런 장난을 한 모양입니다.”

“…도굴꾼들의 장난?”

‘그래. 이건 내 게 아냐. 도굴꾼들이 날 엿 먹이려고 몰래 넣은 경전이야.’

“예, 전대 하인장도 간간이 도굴꾼들의 장난에 휘말려 고생했다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이게 그 ‘장난’인 모양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

“내게 감사할 일이 있나?”

그의 물음에 난 깊숙이 숙였던 허리를 다시 펴곤 아크 교수를 바라봤다.

“교수님이 아니었다면 전 경전이 재료들 사이에 섞여 있는 줄도 몰랐을 것이고, 분명 큰 곤욕을 치렀을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커흠…….”

내 반응이 그가 원하던 게 아니었던 걸까.

아크 교수는 멋쩍게 헛기침을 한다.

“경전은 바로 가져가서 불태우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네. 그 책은 내가 잠시 맡아 두도록 하겠네.”

‘휴…….’

다행히도 내 변명이 통한 모양이다.

‘그래, 그냥 네가 가져가면 깔끔하게 해결되겠네.’

본래 일과가 끝나거든 몰래 경전을 살펴볼 생각이었으나 상관없다.

‘그냥 안 봐도 그만이야. 근데… 맡아 둔다고?’

가져가는 게 아니라 맡아 둔다니?

‘설마 나보고 찾아가라는 헛소리를 하는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도 명색이 신관장인데 레바논 님의 교리가 담긴 책을 불태우게 둘 수는 없잖은가? 내가 갖고 있으면 뭐라고 할 사람도 없겠지. 허허…….”

그의 대답에 난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명색이 신관장인 새끼가 흑마법사 육성 기관의 교수로 왔냐?’

“…알겠습니다.”

“그리고 말이네. 방금 전에 뭔가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었는데, 혹시 짐작 가는 건 없나?”

‘이런 니미… 책에서 나온 기운을 감지했다고?’

역시 명색이 신관장이라 그런 걸까.

‘하지만 내게 물어봤다는 건 지레짐작만 하고 있다는 거야. 내가 신성력을 가졌다는 건 생각조차 못 했겠지.’

하기야 어느 누가 한낱 하인에게 신성력이 있을 거라 생각할까.

“기운이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이해를 못했습니다.”

“그런가……. 아니네. 그만 가 보게.”

내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아크 교수는 날 지그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알겠습…….”

“아 참, 앞으로 종종 내 집무실로 찾아오게나.”

“…예?”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묻자.

아크 교수가 웃으며 답한다.

“자네 물건을 잠시 맡아 둔다고 하지 않았나? 가끔 내 집무실로 와서 경전을 읽도록 하게. 내 작은 배려네.”

‘뭐? 아냐… 시발! 그딴 배려 하지 마!’

대체 뭐가 배려란 말인가?

‘경전을 읽은 사실을 걸리기만 해도, 무조건 스켈레톤행인데…….’

난 혹시 내가 아크 교수에게 잘못한 게 있는지 생각해 봤다.

‘설마 이 새끼가… 돈트가 지한테 지랄한 것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이 늙은이가 내 약점을 잡으려고 일부러 저러는 건가?’

내가 그의 집무실에서 경전을 읽는 순간.

난 아크 교수에게 약점을 잡히는 꼴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것도 아니면 설마 저 늙다리가 뭔가 눈치챈 건 아니겠지?’

“하하… 배려는 감사합니다만… 저… 그게… 아카데미에서 경전을 읽었다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아, 물론 교수님께서는 괜찮으시겠지만요.”

‘이 늙은아, 너랑 나랑 처한 위치가 다르다고!’

난 제발 아크 교수가 조금 전의 발언을 철회하길 속으로 간곡히 빌며.

그를 바라봤다.

“허허, 누가 그 사실을 알겠나? 그러니 걱정 말고 찾아오게.”

“…….”

‘이건 권하는 게 아니라 그냥… 명령하는 거네.’

아마도 아크 교수는 내가 승낙할 때까지 계속 권유를 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체 왜? 나한테 경전을 읽게 해서 그에게 득이 될 게 있나?’

보통 사람이 행동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고.

대개는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 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크 교수에게 득이 될 게 없는데…….’

저 늙은이의 속내를 알아내고 싶어도.

도무지 짐작 가는 게 없다.

‘어쨌건… 더 이상은 거절할 수도 없어.’

한낱 하인이 교수의 명령을 몇 번이나 거절한다?

그 역시 스켈레톤이 되거나 학생들의 실험체가 되기 딱 좋은 행동이다.

‘빌어먹을…….’

입맛이 쓰다.

‘아냐… 차라리 잘된 걸 수도 있어.’

어찌 됐건 아크 교수의 집무실에 방문할 명분이 생겼으니.

콘스 교수가 말한 대로 아크 교수의 동태를 파악하긴 좋지 않겠는가?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마냥 나쁘다고만은 볼 수 없겠네.’

상과 벌을 확실히 하는 콘스 교수에게 이 사실을 언급한다면.

분명 그녀는 날 보기보다 쓸모 있는 하인장으로 볼 터.

‘그래. 콘스 교수의 신임을 얻는 대가라고 생각하면… 아주 나쁘지만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만약 아크 교수에게 내가 신성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들통난다면…….’

아마도 난 분명 곱게 죽지는 못할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런 경우만큼은 피해야 돼.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허허, 잘 생각했네.”

곧 수업이 있다며 아카데미 안으로 들어가는 아크 교수의 등을 보며.

‘아오… 하인장이 된 첫날부터 아주 그냥 지랄이네, 지랄이야…….’

난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마저 일이나 하자.’

난 곧장 재료를 모아 두는 창고로 가.

창고지기 악마에게 재료를 모두 떠넘겼다.

‘일단 하나는 끝냈고…….’

전임 하인장에게서 어떤 정보도 인계받지 못했기에.

‘오늘 학생들의 실습이 있었나? 만약 그렇다면 미리 실습 준비를 해 둬야 할 텐데.’

‘설마 실습에 필요한 마수도 하인장이 조달해 왔었나?’

난 맹렬히 머리를 굴려 하인장이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교수들이 필요로 하는 재료들도 미리 준비를 해야 하는데… 할 게 왜 이렇게 많아?!’

* * *

그날 밤.

‘후… 오늘은 어떻게든 넘겼나…….’

정신이 없는 가운데 하인장으로서의 첫날을 어떻게든 넘겼다.

‘사람 말을 개무시하는 학생들이랑 악마 새끼들도 상대해야 되지, 교수들 똥도 닦아야지, 하인들 관리도 해야 되지… 매일 이렇게 보낼 생각을 하니까 정신이 어질하네.’

차라리 다른 누구에게 이 자리를 위임하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하인장만이 누릴 수 있는 이점도 존재했다.

난 3층에 있는 도서관을 바라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내가 흑마법만 완벽하게 익히고 나면, 반드시 이 빌어먹을 생활을 끝내고 만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신성력부터 먼저 제거해야 할 터.

‘도서관에 분명 신성력을 없애는 법도 있지 않을까? 그 오랜 시간을 레바논 왕국과 싸워 왔던 놈들인데 설마 없겠어?’

덜그럭-

“그래, 나다. 수고들 해라.”

난 여유롭게 경계를 서고 있는 스켈레톤들에게 인사를 하곤.

도서관 안으로 들어섰다.

‘워우…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인데… 굉장하네.’

5년이나 아카데미에서 일했으면서 이제야 도서관에 들어와 본 탓일까.

난 생각보다 방대한 양의 서적이 꽂혀 있는 도서관 내부를 둘러보며 혀를 내둘렀다.

‘어디… 내가 알고 있는 거랑 책이랑 같은지 확인을 해 볼까.’

5년 동안 교수들의 수업을 귀동냥하며 나름의 지식을 쌓았다곤 해도.

그 지식들이 확실하리란 보장이 없었다.

‘교수에게 직접 물어볼 수는 없으니, 내가 알고 있는 거랑 책을 확인해 보는 게 제일 확실하겠지.’

나는 여유로이 책장을 둘러보며 책들을 훑어봤다.

‘너무 많은데?’

하나 생각보다 책들이 많아 내가 읽고 싶은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분명 도서관에 사서가 있을 텐데… 어디 간 거야?’

사서가 있어야 할 자리는 텅 비어 있었기에.

내가 사서의 탁자를 툭툭 건드리던 그때.

덜그럭-

탁자 밑에서 뼈 비틀리는 소리가 울리더니.

낡은 거적때기를 어깨에 두른 스켈레톤이 일어난다.

[이게 누구야? 코찔찔이 랄프 아냐? 아직도 살아 있었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군. 그보다 하인은 도서관에 출입할 수 없는 것 몰라? 죽기 싫으면 얼른 나가!]

‘영혼이 붙어 있는 스켈레톤이라… 직접 보니 신기하긴 하네.’

데스나이트처럼 자신의 주관을 갖고 있는 스켈레톤.

그것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스켈레톤이자, 도서관 사서였다.

‘뭐… 교수들도 도프를 두고 백 년에 한 번꼴로 일어날 법한 일이라고 했으니…….’

그렇기에 초창기엔 도프를 갖고 교수들이 집중적으로 연구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고 그랬었나.’

그렇기에 도프는 지금까지 도서관 사서로 임명되어.

아카데미를 위해 계속 봉사하는 중이었다.

‘저렇게 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겠지만.’

죽어서까지 지성을 가진 채로 아카데미를 위해 일을 한다?

그보다 더한 지옥은 없으리라.

“도프, 제가 그런 판단도 못할 정도로 멍청해 보여요?”

[네가 신입 때 저지른 똥을 치우느라 내가 고생한 건 잊었고? 네가 창문을 닦다가 박살 냈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등골이 오싹하다, 오싹해.]

‘씁… 스켈레톤이 되면 기억력까지 좋아지나. 왜 아직까지 그런 걸 기억하고 있어?’

“뭐… 그땐 일이 아직 손에 안 익었을 때니까요.”

내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이자.

덜그럭, 덜그럭-

도프의 몸이 위아래로 들썩거린다.

[그보다 교수들이 오기 전에 얼른 돌아가. 걸리면 너도 스켈레톤이 될 거다.]

“설마 제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여길 왔겠어요? 도프, 이제 제가 하인장이에요.”

[…뭐라고? 네가?]

비록 표정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난 도프가 놀라워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 꽤 많이 갈려 나가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허… 시간이 참 빠르긴 하네. 네가 벌써 하인장이 됐다니……. 네가 여기 온 지…….]

“5년 정도 됐죠.”

난 도프와 추억거리를 풀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슬며시 본론을 꺼내었다.

“그보다 도프, 신성력과 관련된 책들을 좀 찾고 싶은데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신성력과 관련된 책? 알기야 한다만 그걸 네가 어디에 쓰려고?]

‘어디에다 쓰긴? 당연히 빌어먹을 신성력을 없애야 할 것 아냐!’

“이번에 새로 들어온 아크 교수 알죠? 그 양반 때문에라도 신성력에 대해서 좀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우리 같은 놈들에겐 정보가 곧 생명이라는 건 도프도 잘 알잖아요?”

[그렇긴 하지. 근데 신관장이 뭐가 아쉬워서 널 죽이려 들겠어? 너무 걱정이 많은 것 아냐?]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그래서 도와줄 거예요, 말 거예요?”

나의 물음에 도프는 고개를 젓곤.

따라오라는 듯 앞장서 나를 한 책장 앞으로 안내했다.

[저기 두 번째 줄을 보면 신성력과 관련된 책들이 있을 거다.]

“고마워요, 도프.”

[고마우면 간간이 찾아와. 이젠 사람이 그립다, 그리워…….]

도프의 말에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학생들이랑 교수들도 여기 들르지 않아요?”

[그 새끼들이 사람이냐?]

도프의 말에 난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개새끼들이긴 하죠. 하여튼 고마워요. 필요한 게 있으면 또 부를게요.”

[그래.]

도프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자.

‘신성력을 없애는 법… 신성력을 없애는 법…….’

난 도프가 말한 자리에서 책들을 꺼내어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건 역사밖에 없고… 하 씨… 신관을 피해 살아남는 법? 뭐 이딴 게 있어?’

그러나 아무리 책들을 살펴봐도.

몸에서 신성력을 없애는 법을 찾을 수는 없었다.

‘아오… 미치겠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만약 신성력을 가진 채로 아크 교수의 집무실에 가게 된다면… 무조건 걸린다. 걸릴 수밖에 없어.’

상대는 신관장이다.

내 몸 안에 있는 신성력 정도는 당연히 파악할 수 있을 터.

‘그렇게 되기 전에 어떻게든 신성력을 없애야 하는데…….’

내가 미친 듯이 책들을 살피던 그때.

‘이건 또 뭐야. 신성력을 흑마력으로 바꾸는 법?’

웬 책 한 권이 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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