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만약 내가 아크 교수와 콘스 교수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면.
난 분명 그를 꽤나 신실한 신관장으로 평가했을 것이었다.
‘전도 목적이 순교를 시키기 위함이라니… 어지간하면 마주치기 싫었는데…….’
내가 속으로 혀를 차던 중.
“음… 허허, 자네는 여기 무슨 일인가?”
날 본 아크 교수가 섬뜩한 미소를 지어 온다.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그래, 어차피 난 아카데미의 일을 할 뿐인 거니까.’
“새로운 하인들을 선별하려고 왔습니다.”
“새로운 하인을? 그런 막중한 임무를 자네가 하는 건가?”
‘막중한 임무는 무슨… 일 잘하는 놈을 뽑아야 하니 뭐, 틀린 말도 아니긴 하네.’
“보통 이런 일은 하인장이 처리해 왔습니다.”
“허허, 그런가…….”
아크 교수는 턱을 쓸어내리다가 나지막이 말한다.
“그럼 자네가 선별하는 걸 좀 지켜보도록 하겠네.”
“예?”
‘아니, 이 늙은이가 그렇게 할 일이 없어? 수업 안 가?!’
분명 점심시간 뒤에 수업이 있을 것인데.
저 늙은이는 무슨 자신감으로 내 작업을 지켜보겠다는 걸까?
“문제가 되나?”
“아니요, 문제될 건 없습니다만… 곧 수업이 있지 않으십니까?”
“어차피 4학년들은 내 수업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자습을 하라고 했네.”
‘이야… 대단하네, 대단해.’
전도를 위해 수업을 내팽개치고 자습을 시킨다?
정말 엄청난 늙은이다.
“알겠습니다.”
난 아크 교수의 눈총을 받으며 선별 작업을 시작했고.
‘일단 이 정도로 할까…….’
대략 50명가량을 뽑고서야 아크 교수를 바라봤다.
“끝났습니다.”
“이걸로 끝인 건가? 아직 감옥 안에 실험체들이 꽤 많은 것 같은데.”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내일 이어서 작업을 해야겠죠.”
내 대답이 끝나자.
아크 교수가 다시 묻는다.
“그럼 저들은 내일부터 작업에 투입되는 건가?”
“뭐… 약간의 교육을 한 뒤에는 그럴 겁니다.”
“알았네.”
아크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곤.
갑자기 허리춤의 주머니에서 양피지 몇 장을 꺼내어 내게 내민다.
“이건…….”
“레바논의 교리를 필사해 봤네. 나중에 자네가 저들에게 나눠 주게.”
‘교리가 적힌 양피지를 나눠 주라고?’
물론 저걸 읽는다고 없던 신앙심이 갑자기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걸 읽었다간…….’
죽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 읽으면 뒈지는 전단지라니.’
아니, 전단지는 안 받을 수라도 있지.
이건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절하면 교수의 명령을 거절하는 꼴이 되니…….’
“교수님, 저희가 레바논 님을 믿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잘 아시지요?”
“물론 잘 알고 있네. 그래서 이렇게 건네는 것 아닌가? 허허…….”
‘아…….’
잠시 깜박하고 있었다.
이 미친 신관장은 전도가 목적이 아니라, 전도하여 우리를 순교시키는 게 목적이라는 걸 말이다.
“콘스 교수가 그러더군. 아직 자네도 레바논 님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이지. 그걸 읽어 보게, 분명 도움이 될 거네.”
“하하…….”
‘시발…….’
‘이걸 어떻게 처리한다…….’
교수의 명령을 거절할 수는 없다.
‘그냥 나눠 주고 읽지 말라고 하는 수밖에 없나. 어쨌건 나눠 주라고 하기만 한 거지 반드시 읽으라고 하지는 않았잖아?’
솔직히 다른 하인들이 이걸 읽다가 죽건 말건 그건 나의 관심 밖이었으나.
문제는 아크 교수다.
‘이제는 눈치도 안 보고 이딴 지라시를 뿌리고 다닐 줄이야. 조금만 더 지나면 이제 하인들을 모아 놓고 예배까지 드리겠네.’
“다른 하인들은 몰라도 자네만큼은 꼭 읽어 봤으면 좋겠네. 분명 그 구절들이 자네의 병든 영혼을 치유해 주겠지.”
‘…병든 영혼의 치유? 순교가 목적이겠지, 이 미친놈아!’
“하하, 그러지요.”
결국 난 양피지를 받고서야.
아크 교수를 보낼 수 있었다.
‘…이대로는 안 돼.’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됐다간.
분명 언제고 아카데미에선 하인들을 물갈이하려고 할 터였다.
‘레바논을 믿는 놈들을 솎아 내는 것보단 그냥 싹 다 죽이고 새로 뽑는 편이 편할 테니까. 하아…….’
그렇다고 작금의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크 교수가 저 지랄을 못 하도록 막는 게 최선이긴 한데.’
한낱 하인장에 불과한 내가 무슨 수로 아크 교수를 저지할 수 있겠는가?
‘제일 좋은 방법은 아크 교수를 해임할 정도의 큰 약점을 찾아서 콘스 교수에게 알리는 것 정돈가?’
그리한다면 아크 교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콘스 교수가.
곧바로 학장에게 달려가 보고할 터.
‘다만 문제는 마땅한 약점이나 흠을 잡을 게 안 보인단 말이야.’
이제 겨우 부임한 지 채 한 달도 안 된 교수의 약점을 파악하겠는가?
‘진짜 인생 개같네. 하필 저딴 교수 새끼가 새로 들어와서……. 아니지, 가만…….’
내가 처량한 나의 신세를 한탄하던 중.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갔다.
‘굳이 아크 교수가 약점을 노출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나? 내가 그 약점을 만들면 되는 것 아냐?!’
하지만 교수가 강제로 해임될 정도의 큰 사건을 만든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정말 어지간한 대형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교수를 해임하는 일은 잘 없었지.’
실제로 나의 5년 하인 생활 중.
해임당한 교수는 세 명에 불과했다.
더 고위급 악마를 소환한답시고 학생을 제물로 바쳤던 전 악마학 교수, 벨제브.
‘뭐… 그건 비교적 양호한 건이었지.’
새로운 부패 저주의 물약을 만들고는.
그걸 시험하겠답시고 몰래 식사에 집어넣었던 전 부패학 교수, 랑트.
‘그 일 때문에 대다수의 학생들 피부가 썩어 문드러졌었지.’
그 뒤로 조리실은 하인이 아닌.
임프들과 케르베로스가 관리하게 된 것 아닌가?
‘마지막으로 교수의 심장을 빼내 강제로 리치로 만들었던 후틴 교수까지 있었나…….’
여하튼 그 정도로 큰 사건이 아닌 이상.
아크 교수를 이 아카데미에서 내쫓을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젠장… 대체 어떻게 해야 그 미친 늙은이를 내쫓을 수 있을까.’
물론 아크 교수를 내쫓는다고 해서.
내 하인 생활에서 꽃이 피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눈에 핏발을 세우고 순교를 외치는 놈을 놔둔다면, 언젠가 나도 원치 않는 순교를 당할 수 있으니까.’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한 죽음이야 막기 어렵다고 해도.
다가오는 죽음은 어떻게든 막아야 할 것 아닌가?
‘아크 교수를 쫓아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사고… 흠… 그래…….’
교수들이 쫓겨났던 과거의 사례들.
그 사례들을 토대로 계획을 설계하면 될 터.
‘내가 신성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좋아, 그래. 그게 좋겠어. 밤이 되면 도서관에 가 봐야겠다. 분명 짧긴 해도 성수에 대한 내용을 봤던 것 같은데…….’
나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새로운 하인들을 인솔했다.
* * *
며칠 뒤.
“억제기를 푼다! 조심해!”
아카데미 옆의 커다란 원형 경기장 안에서.
난 하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어… 얼른 나가!”
그러자 하인들은 냅다 출구로 내달리기 시작했고.
경기장 안에 있던 실험체들의 손목에 걸려 있던 팔찌가 바닥에 떨어진다.
“마력이 돌아왔어…….”
“이 개같은 악마의 자식들아! 뒈져!”
그러자 일부 실험체들의 손에 마력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팡-
경기장 안에 굉음이 몰아친다.
‘날뛰기 전에 다 나온 모양이네.’
“인원 확인해!”
“전원 무사합니다.”
“좋아.”
다행히 마법에 휩쓸려 죽은 놈은 없는 모양이다.
‘빌어먹을 실기 시험…….’
내일은 4학년들의 실기 시험이 있는 날이자.
그간 갈고닦은 흑마법을 교수들에게 증명하는 중요한 날이기도 했다.
‘이런 건 교수 새끼들이 좀 할 것이지, 왜 이런 것까지 우리가 해야 하는 거야?’
그러나 그걸 준비하는 건 오롯이 우리 하인들의 몫이었다.
내가 속으로 욕을 내뱉던 중.
콘스 교수가 내게 다가와 묻는다.
“경기장 상태는?”
“역장도, 대기소도 완벽합니다.”
“실험체들의 상태는?”
‘눈이 없냐? 저게 안 보여? 밥 잘 처먹고, 감옥에서 푹 쉬어서 때깔 좋은 게 안 보이냐고!’
저들은 오늘 있을 시험을 위해.
비교적 잘 관리받은 실험체들이다.
당연히 상태가 좋을 수밖에 없잖은가?
“양호합니다. 당장 학생들과의 전투에 임할 수 있을 정도로 악에 받쳐 있는 상태죠.”
“그 외에는?”
“전투에서 승리하면 풀어 주겠다고 말해 놔서, 전력으로 임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도 해 줬습니다.”
나의 일 처리에 흠잡을 곳이 없었던 건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교수님, 원래 이 일은 베크 교수의 일인 걸로 알고 있었는데요.”
“그는 이번 3학년들 중간고사에 쓸 마수를 잡으러 갔어. 아마 이번 주 내로 돌아올 테니까, 미리 전달해 둬.”
‘아니, 그 양반은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마수를 잡으러 가?’
당장 며칠 전만 해도 베크 교수가 잡아 온 타란튤라들을 운반하다가.
갑자기 포박이 풀린 탓에 하인 몇이 죽지 않았던가?
‘그것도 교수들이 좀 나서서, 하… 그럴 리가 있나.’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아크 교수는 어떡합니까?”
“…아크 교수?”
“요즘 자꾸 하인들에게 레바논을 전파하려고 해서…….”
이제는 그냥 대놓고 하인들에게 레바논의 교리가 적힌 전단지를 나눠 주는데.
아카데미에선 아직도 그걸 방관하고 있었다.
“그가 무슨 소리를 하건 너희가 안 보면 되는 거잖아?”
“그렇기야 합니다만 그래도…….”
“당장은 나도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읽지 말라고 엄포만 놔.”
‘매일 그러고 있는데?’
하지만 내가 아무리 엄포를 놔도.
읽을 놈은 결국 읽기 마련이다.
“그게… 알겠습니다.”
‘그래. 죽기 싫으면 안 읽겠지.’
나는 멀어지는 콘스 교수의 뒤통수에 꾸벅 인사하곤.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누가 가서 물 좀 갖고 와!”
“예!”
내 명령에 하인 둘이 후다닥 달려가더니.
곧 커다란 나무통을 들고 온다.
“잠시 쉬었다가 하자고. 뒷정리야 금방 하는 거고, 곧 저녁 시간인데 굳이 일찍 일 마무리할 필요는 없잖아?”
“어휴, 좋지요!”
“역시 융통성은 하인장님을 뛰어넘을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내 명령에 신이 난 하인들은 적당히 바닥에 앉아.
가져온 물을 들이켜기 시작했고.
‘음…….’
난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곤 그들을 주시했다.
“어째 물맛이 평소랑은 좀 다른 것 같은데?”
“그러게?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가? 평소보다 좀 더 단 것 같기도 하고?”
“달다고? 그러고 보니 뭔가 조금 기운이 나는 것도 같은데…….”
“뭐, 기분 탓이겠지.”
하인들이 물을 마시다가 저들끼리 갸웃거리자.
‘호오… 확실히 효과가 있긴 한 모양이네.’
나는 조용히 미소를 흘렸다.
‘그래도 명색이 신관장이라 그런지 수업은 진짜배기였던 모양이야.’
이 며칠 사이, 난 성수 제조법을 찾기 위해 도서관들의 책을 살폈었으나.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거였지. 흑마법사 아카데미에 성수 제조법이 왜 있겠어?’
그렇기에 난 계획을 포기하려 했었다.
‘하지만 설마 아크 교수가 성수를 제조하는 법을 수업 시간에 말할 줄 누가 알았겠어?’
우연히 아크 교수의 교실을 지나다가 제조법을 듣지 않았다면.
분명 계획을 포기했거나 수정했을 것이었다.
‘내 적은 신성력으로는 고작 나무통 두세 개의 분량을 채우는 게 전부였지만.’
더욱이 성수라고도 하기 부끄러울 정도의 물이었으나.
하인들의 반응을 보니 어쨌건 걱정을 덜어도 될 것 같다.
‘확실히 효과는 있는 것 같으니까. 조리실에 케르베로스만 없었다면 식사에 성수를 풀었을 텐데, 그게 조금 아쉽긴 하네.’
나는 씨익 웃으며 하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남은 나무통은 경기장 안쪽에 잘 놔둬. 내일 4학년들이 쓸 거니까.”
“예!”
‘내일 이 경기장에서 4학년들이 성수를 마신 뒤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되네. 아크 교수… 날 순교시킨다고? 그렇게 좋아하는 순교, 내가 시켜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