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이 새끼, 진짜로 하는 소린가?”
내 대답이 믿기지 않았던 것인지.
남학생들은 실없이 웃음을 흘리더니 내 뺨을 툭툭 친다.
“눈이 맛탱이가 간 걸 보면 분명 저주에 걸린 것 같긴 한데…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우리 전부 이 새끼보다 못생겼다는 것 아냐? 어이없네. 그냥 죽일까?”
“선배들이 뭐라고 했어? 콘스 교수한테 찍히면 아카데미 생활 피곤해진다고 했잖아. 죽이는 건 안 돼.”
남학생들이 저들끼리 언성을 높이던 중.
레나가 그들을 보며 말한다.
“쓸데없는 짓 다 시켰으면 너희 남학생들 방 청소나 좀 시켜. 그게 방인지 가축우리인지 모르겠더라.”
그녀의 일침에 남학생들의 표정이 머쓱해진다.
“가, 가축우리? 그렇게 더럽진 않은 것 같은데…….”
“우리가 더럽게 쓴 게 아니고 임프들이 청소하는 게 형편없어서 그래.”
“그래? 근데 왜 우리 방은 깨끗한지 모르겠네.”
레나의 비꼼에 남학생들은 저들끼리 수군거리다가.
한 남학생이 나를 보며 명령한다.
“야, 저기 왼쪽 방 있지? 저기만 들어가서 깔끔하게 청소해.”
“알겠… 습니다…….”
나는 저주에 걸린 척 흐느적거리며.
남학생이 가리킨 방으로 향했다.
“왜 우리 방만 시켜? 하는 김에 다른 애들 방도…….”
“이 모습을 보면 왜 기숙사에 하인을 들였냐고 지랄할걸? 그냥 그놈들 밥 다 먹기 전에 우리 방만 청소시키면 되지.”
“선배들도 없는데 걱정은. 그리고 내보내기 전에 저주 푸는 것도 잊지 마.”
남학생들의 목소리가 작아질 때쯤.
난 그들의 방으로 들어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흠… 진짜 더럽긴 하네.’
두 개의 이층 침대 주변으로 양피지 조각과 말라붙은 잉크 자국이 어지러이 찍혀 있었고.
음식인지 뭔지 모를 찌꺼기가 방 군데군데 보였다.
‘분명 매일 임프들이 청소를 해 줄 텐데 이렇게 더러울 수가 있을까.’
나는 더러운 방을 보며 한숨을 내쉬곤.
청소 도구를 잡고 방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냥 적당히 깔끔하게 보일 정도로만 치워 주면 되겠지.’
5년가량을 하인으로 산 덕에 청소에는 이골이 났다.
이 정도 더러움은 금방 치울 수 있을 터다.
십여 분 뒤.
‘거의 다 끝났나. 이제 저 어질러진 짐만 대충 정리하면 끝이다.’
내가 빠른 속도로 청소를 마무리해 가던 그때.
반짝-
‘이건…….’
정리하던 가죽 가방의 틈 사이로 손가락의 마디만 한 물체가 바닥에 떨어진다.
‘뭐지? 생긴 걸 봐서는 보석 같은데.’
난 작고 푸른 보석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가문에서 갖고 나온 건가? 혹시나 돈이 부족하면 팔아서 쓰라고 준 걸지도 모르지.’
이곳의 학생들은 적어도 한 가문의 수장 혹은 그에 준하는 계급을 가진 이들의 자식들이다.
당연히 가진 돈도 많을 터.
‘이런 걸 가방에 처박아 두고 다니다니. 어지간히 배가 불렀네. 흠… 조금만 갖고 나가 볼까?’
어차피 저놈들은 내가 마인드 브레이커 저주에 걸려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보석을 훔쳐도 난 용의선상에서 제외된다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하지만 내가 보석을 갖고 나간들 쓸 곳이… 가만…….’
문뜩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누가 훔쳐 오래? 그냥 적당한 게 있으면 쓱싹하라는 거지.]
[그럼 그걸 우리가 바꿔 주겠다는 거고.]
‘분명 도굴꾼들이 적당한 물건을 갖고 오면 자기네가 갖고 있는 거랑 바꿔 주겠다고 했었지.’
난 아직 가방 안의 보석을 보며 계속 생각했다.
‘만약 여기에 있는 걸 좀 갖고 가면, 이번에는 경전 같은 쓰레기가 아니라 제법 괜찮은 물건과 교환할 수도 있는 것 아냐?’
어쩌면 아직 내 몸에 걸려 있는 저주를 풀 수 있는 촉매제를 구해 오라고 시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콘스 교수가 교수를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저주를 풀어 줬다고 해도, 아직 남은 저주들이 있으니까.’
지금 내게 남아 있는 저주는 총 3가지다.
학생을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저주, 프로텍트 차일드.
자살을 하지 못하게 하는 저주, 세이프 마이 라이프.
‘프로텍트 차일드랑 세이프 마이 라이프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안 돼. 진짜 문제는 마리오네트야.’
하인이 일정 시간 이상 아카데미의 영역을 벗어나면 발동되는 저주, 마리오네트.
이 저주가 아직 날 아카데미에 묶어 두고 있는 원인이었다.
‘만약 내가 몰래 아카데미를 나간다고 하더라도, 마리오네트 때문에 결국 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아카데미로 돌아오게 될 테니까.’
실제로 아카데미를 탈출한 하인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심장 적출의 저주가 걸린 걸 감안하고도 탈출을 시도했던 하인들이 있었다고 전대가 그랬었지.’
다만 그걸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고.
전대 하인들의 입을 통해 들은 것이었다.
‘겨우 탈출했더니 며칠 만에 스스로 아카데미로 돌아와 놀랐다고 그랬었으니까.’
결국 마리오네트 저주를 해결하지 않으면.
아카데미를 나가는 건 무리라는 소리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 저주를 해주 하려면 촉매제가 있어야 한다는 건데… 그걸 도굴꾼들이 구해 올 수 있을까?’
물론 저주를 푸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시전자가 저주를 풀어 주는 것이었으나.
아르프 교수가 뭐가 아쉬워 저주를 풀어 주겠는가?
‘결국 저주를 해주 하려면 촉매제가 있어야 하는데… 어지간한 건 창고에서 몰래 좀 빼돌린다고 해도 운디네의 눈물은 밖에서 구해야 돼.’
난 학생의 가방 안에 있는 보석을 만지작거리며 고심을 이어 갔다.
‘그래. 일단 보석을 보여 주고 촉매제를 가져오라고 해 보자. 되면 좋겠지만 안 되면 다른 수를 강구해야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난 남학생의 가방 안에서 몰래 보석을 꺼내어 바지 안의 속주머니에 보석을 쑤셔 넣었다.
‘많이는 못 가져가. 눈에 띄지 않을 만큼만 가져가야 돼.’
난 눈대중으로 바지 주변을 살피곤.
“청소를… 다… 끝냈습… 니다.”
멍한 표정을 지으며 방 밖으로 나갔다.
“그래? 벌써? 대충한 건 아니겠지?”
“오! 확실히 깨끗해졌는데? 이야, 이 저주 완전 편한 것 아냐? 종종 하인이 보이면 잡아다가 쓰는 것도 괜찮겠어.”
“마인드 브레이커를 썼다가 교수한테 걸리면 큰일 난다니까? 심장의 방에 들어간 그놈들이 어떻게 됐는데? 콘스 교수한테 평가 점수 엄청 깎였잖아. 걔네는 이제 흑탑에는 죽어도 못 들어간다고!”
“그러니까 안 걸리게 적당히 써야지.”
한 남학생이 낄낄거리더니 날 보며 손짓한다.
“됐어. 이제 꺼져.”
“알겠… 습…….”
“아차, 저주를 풀어야지.”
남학생이 다시 지팡이를 휘두르고서야.
난 1학년들의 기숙사에서 나갈 수 있었다.
‘등신 같은 놈들.’
불과 몇십 분 전과는 다른.
조금은 두둑한 내 바지춤을 본 나는 조소를 흘리며 기숙사에서 등을 돌렸다.
‘어디 볼까.’
난 곧장 개인 숙소로 돌아가 보석들을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음… 영롱한 것 좀 봐.’
보석들 위로 쌓인 먼지를 닦아 내니.
저마다 감추고 있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이제 이것들을 도굴꾼들에게 적당히 털어 내면 깔끔하게 해결되는 거지. 그 전에는 사람 눈에 안 띄는 곳에 잘 숨겨 놔야 할 텐데. 흠… 어디가 좋을까.’
난 잠시 고민하다가 곧 침대 밑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보석 크기가 그렇게 큰 것도 아니니까 많이 팔 필요는 없겠지.’
구멍 안에 보석들을 넣곤 다시 흙으로 잘 덮으니.
누구도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감쪽같아 보였다.
‘이건 도굴꾼들이 오는 날에 다시 꺼내는 걸로 하고, 이제 이걸 살펴볼까.’
난 레나에게서 받았던 책들을 꺼내.
천천히 책들을 훑어봤다.
‘음… 다른 책들은 모르겠는데 이건 진짜 괜찮네.’
[성마법의 종류와 운용법]
난 책의 내용을 훑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사제들이 다루는 기초적인 성마법들부터 신관들이 다루는 성마법까지 있다니…….’
레바논 왕국의 핵심 레시피가 어떻게 흑탑의 부탑주의 손에 들어온 걸까?
‘이런 책들은 레바논에서도 귀하게 다룰 것 같은데 대체 부탑주는 이런 책을 어디서 구한 거지?’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곧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있다면 본격적으로 성마법에 대해 연구를 해 볼 수 있겠어.’
그렇잖아도 몸 안에 자리 잡은 신성력을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그런 내 고민을 완벽히 해결해 줬다.
[레바논의 종자들이 신성력을 모으는 법]
‘이 책은 신성력을 모으는 방법에 대해 적혀 있는데…….’
그 방법은 내가 아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신성력을 타고나는 것. 그리고 후천적으로 강한 믿음을 기반으로 해서 신성력을 얻는 것.’
물론 난 경전을 통해 신성력을 얻었으니 예외라고 쳐도.
이 책을 보고 있자니 조금 고민이 들었다.
‘흑마력이 많은 것도 좋긴 하지만 신성력도 많으면 좋지 않을까?’
어차피 신성력은 내 몸의 일부가 되어 이제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됐다.
그렇다면 신성력도 성장시키는 게 맞지 않겠는가?
‘성마법을 사용하려면 신성력도 많은 편이 좋을 테니까. 그러면…….’
난 고개를 돌려 구석에 처박아 뒀던 레바논 신상을 바라봤다.
‘그 늙다리 신관장이 거의 강제로 떠넘긴 거긴 해도, 혹시 기도를 하면 정말 신성력이 늘어날까?’
난 게슴츠레한 눈으로 조각상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두 손을 모았다.
‘그래. 어차피 돈도 안 드는 거, 한번 해 보기라도 하자. 신성력이 늘어나면 좋은 거니까.’
난 레바논의 조각상을 바라보며 속으로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제발 이 빌어먹을 곳을 탈출하기 전까지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게 해 주시고, 아무쪼록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게 해 주십쇼. 그리고 명예는 바라지도 않으니까 부자나 되게 해 주시고요.’
온전히 사심만이 담긴 기도였으나.
어쨌건 기도는 기도 아닌가?
‘음… 뭔가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은데. 더 간절하게 기도를 해야 하나. 에이씨, 귀찮은데. 그냥 생각날 때 한 번씩 하는 걸로…….’
하지만 성과가 시원치 않아 내가 포갰던 두 손을 풀려고 하던 그때.
웅웅웅-
미약하긴 해도 분명 내 심장에 자리하고 있던 신성력이 작게 꿈틀거리는 것 아닌가?
‘뭐야… 진짜 효과가 있는 거야?’
설마 이런 개떡 같은 기도도 효과가 있을 줄이야.
‘아크 신관장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기도는커녕 레바논의 ‘레’ 자도 꺼내기가 거북했었는데, 이러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지지.’
기도?
내 신성력을 늘릴 수 있다면 까짓것 얼마든지 해 줄 생각이 있었다.
‘레바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저녁마다 은혜로운 밤을 보내 볼까…….’
* * *
3일 후.
“오, 얼빠진 하인장 아냐? 아직 살아 있는 걸 봐선 그래도 일솜씨가 나쁘지 않은 모양이야?”
“아니면 여자 교수를 유혹한 걸지도 모르지. 일솜씨는 구려도 밤솜씨가 끝내줄 수도 있잖아?”
“푸하하하하하하하!”
2인조 도굴꾼들이 다가오는 날 보며 배를 잡는다.
‘밤솜씨? 아카데미에서 반년도 못 버틸 놈들이 말은 잘하네.’
“기다리셨습니다.”
“이번에도 엄청 기다렸어.”
“그래. 이번에는 진짜 돈 좀 더 받아야 되겠는데?”
“양피지 주시죠.”
난 평소와 마찬가지로 수레 안의 고급 해골들을 보며.
수량과 흑탑의 검증서를 확인했다.
“어때? 이상 없지? 우리가 흙 묻히고 살아서 그렇지 일은 잘한다니까?”
“그러니까 흑탑이 우리한테 일을 맡기는 것 아니겠어? 푸하하하하!”
‘정확히는 너희 뒤에 있는 도굴꾼 연맹을 보고 맡기는 거겠지.’
물론 저들의 도굴 실력을 부정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으나.
난 구태여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확인했습니다.”
“그럼 의례적인 건 다 끝났고, 뭐 건진 건 없어?”
“전에 조언까지 해 줬는데도 아무것도 못 건졌으면 그게 사람 새끼냐? 호구지.”
도굴꾼들이 바삐 입을 터는 사이.
난 호주머니에서 손마디만 한 푸른 보석 하나를 꺼내 들었다.
“오! 에파이어 아냐?! 진짜로 가져왔어? 이 자식… 생긴 건 시원찮은데 말귀는 잘 알아먹네.”
“혹시 전업이 도둑이었냐? 그보다 에파이어면… 금액을 맞출 수 있을는지 모르겠네.”
도굴꾼들은 잠시 봇짐을 뒤적이더니.
날 보며 묻는다.
“뭐 필요한 건 없냐?”
“독약은 어때? 솔직히 하인 생활 개같잖아? 죽지 못해 살고 있잖아. 맞지? 이걸 마셔 봐. 장담하는데 한 모금 먹으면 바로 편해질 수 있다고? 푸하하하하하!”
“필요한 게 있습니다.”
내 말에 도굴꾼들이 반색하며 재촉한다.
“그래! 필요한 게 있겠지! 뭔데? 빨리 말해 봐!”
“운디네의 눈물이 필요합니다.”
“운디네의… 눈물?”
도굴꾼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더니.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다.
“너… 그게 뭔지는 알고 하는 소리냐?”
“물의 정령이 흘린 눈물이죠. 신성력에 버금가는 강한 치유의 힘이 있는 촉매제기도 하고요.”
“그걸 어떻게 구하는지는 알고?”
도굴꾼의 물음에 난 픽 미소를 흘리며 반문했다.
“그것까지 제가 알아야 할 필요 있습니까? 전 그게 필요할 뿐입니다. 구해 줄 수 있습니까?”
“운디네의 눈물이라……. 흠… 야, 우리 최근에 정령사의 무덤을 턴 적이 있던가?”
“있긴 했었지. 별다른 소득은 없었지만.”
‘그래서 구할 수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난 최대한 무심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물었다.
“구할 수 있습니까?”
“발품을 팔면 구할 수야 있겠지? 다른 도굴꾼이 갖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에파이어 정도로는 단가가 안 맞아. 특히나 정령사의 무덤은 희귀하다고. 무슨 말인지 알지?”
‘값을 더 쳐 달라?’
그들의 반응은 내 예상 안이었기에.
난 보석 몇 개를 더 꺼내어 그들에게 보였다.
“오오, 페리나에, 저건… 에슬론 아냐?”
“이야, 확실히 아카데미가 노다지야? 저 영롱한 것 좀 봐…….”
그들은 보석을 보며 침을 흘리다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정도면 가격은 얼추 맞는 것 같네.”
“좋아, 그럼 일단 보석을 줘. 그럼 운디네의 눈물을 구해다 주지.”
‘먼저 보석을 달라고?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무슨 소립니까? 일단 운디네의 눈물을 구해 오시죠. 그럼 그때 가격을 지불하죠.”
“얀마! 우리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인 줄 알아? 우리도 아무런 대가 없이…….”
“그럼 이것까지 전부 드리죠.”
내가 보석 몇 개를 더 꺼내어 보이자.
“사실 우리가 꽤나 한가한 편이긴 했지. 운디네의 눈물이라고? 그것만 구해 오면 되는 게 확실하지?”
“뭘 더 구해 달라고 해도 안 된다? 딱 운디네의 눈물만이야?”
도굴꾼들은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날 바라본다.
‘하여간 이 돈에 미친 새끼들…….’
그러나 뭐 어떤가?
저들이 내가 원하는 걸 가지고 올 수만 있다면.
땅속에 몰래 묻어 놓은 남은 보석도 더 꺼내 올 수 있었다.
“그럼요. 그것만 가져온다면 바로 대금을 치르죠.”
“좋아. 구해 올 테니까 죽지 말고 딱 기다리고 있어라.”
“혹시 죽게 될 것 같으면 다음 하인장한테 보석을 숨긴 곳 정도는 말해 놓고 가고.”
도굴꾼들이 덕담 아닌 덕담을 남기고 떠나자.
난 수레를 끌고 아카데미로 돌아가며 생각에 잠겼다.
‘이제 저놈들이 운디네의 눈물을 갖고 돌아온다면, 그땐 정말 아카데미를 나갈 수 있겠지.’
마리오네트 저주만 해주 한다면.
더 이상 내 탈출에 걸림돌은 없을 것이었다.
‘밖은 어떨까? 저 마법진 너머에는 뭐가 있으려나? 분명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겠지?’
탈출을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는지.
수레조차 솜털처럼 가볍게 느껴진다.
‘근데 그 얼간이 놈들은 제 보석이 없어진 줄도 모르는 건가? 3일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잠잠한 게 말이 되나? 아니면 그냥 보석 정도는 그놈들에게 몇 푼 안 하는 광물 정도라 그런 건지……. 뭐, 조용하면 나야 좋지.’
퍽, 퍽-
난 보석을 다시 땅속에 잘 숨겨 놓곤.
수레를 끌고 아카데미 안으로 들어갔다.
‘이것만 운반하고 밥을 먹을까……. 음…….’
그러나 내가 아카데미로 들어서려던 그때.
“하인장님, 지금 아카데미의 하인들은 전부 집합하라고 하셨습니다.”
한 하인이 헐떡이며 날 붙잡는다.
‘모든 하인들을 집합시킨다고?’
“누구 명령인데?”
“아크 교수가 그랬습니다.”
‘그 늙다리 신관장이? 왜지? 또 시답잖은 예배를 드리려고?’
하지만 예배라면 이미 새벽에 드리지 않았던가?
‘설마 이제 새벽에 이어서 점심시간에도 예배를 드리겠다, 그런 개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래서 집합지가 어딘데?”
“그… 아카데미 뒤의 공터로 모이랍니다.”
하인의 말에 난 이맛살을 찌푸렸다.
‘공터로 모이라고? 거긴 아무것도 없는 벌판인데… 왜 거기로 모이라는 거지?’
하지만 아무리 이유를 생각한들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기에.
난 하인을 따라 아카데미 뒤의 공터로 향했다.
‘아크 교수…….’
그곳에는 이미 와 있는 하인들과 아크 교수.
그리고 많은 수의 스켈레톤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야 그렇다 쳐도 스켈레톤들은 왜 배치해 놓은 거지?’
내가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던 그때.
“허허, 이만하면 얼추 숫자가 맞을 것 같군.”
아크 교수가 하인들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교수님, 대체 어쩐 일로 저희를 부르신 건지요.”
“오, 랄프. 자네는 안 와도 됐는데. 상관없겠지. 온 김에 아카데미에서 생활한 지 1년 이상 된 하인들을 무리에서 빼 주겠나?”
“…예?”
‘그러니까 고참급들을 골라내라는 건데… 왜지?’
난 의문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일단 아크 교수의 말을 따랐다.
“고참급 하인들은 전부 뺐습니다.”
“허허, 잘했네.”
“대체 무엇을…….”
하지만 내 의문과 상관없이 아크 교수는 하인들을 향해.
거룩하면서도 상냥한 미소를 보이며 말한다.
“자, 이제 다 같이 순교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