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150화 (150/200)

◈ 150화

출전식을 끝으로 군단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고.

나와 레논 부탑주는 며칠을 이동하여 마침내 크라켄 왕국의 최북단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후우, 장관이네.’

평원에는 이미 먼저 보내 뒀던 언데드 군단이 평원 가득히 쌓여 있었고.

저 멀리 페이트 왕국 성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내가 한참 전장을 관찰하던 중.

“몸은 좀 어떠십니까?”

이번 전쟁에서 페른 남부 정벌 부사령관을 맡은 레논이 슬며시 내 옆에 다가와 묻는다.

“저야 괜찮습니다만, 병단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단원들이야 훈련을 받았으니 괜찮습니다. 다만 학생들이 조금 의외더군요.”

“학생들이요?”

내 물음에 레논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지쳐서 몸도 못 가눌 거라 생각했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잘 따라와 놀랐습니다. 흑남께서 시행하신 체력 훈련이 확실히 효과가 있었나 봅니다. 나중에 저희 병단에도 가르침을 내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하, 물론입니다.”

잠시간 레논과 잡다한 대화를 나누던 중.

레논이 웃음기를 지운 채 말한다.

“이제 머지않아 노드성을 공략해야 되는데 무언가 좋은 계책이 있으십니까?”

“힘 차이가 나는 것 같으니 굳이 계략을 짤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일단은 정석대로 공략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정석대로 공성을 해 보도록 하지요. 한데 공격 시간은 언제입니까?”

레논의 물음에 나는 저 멀리 자리한 성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내일 해가 밝거든 침공을 시작하려 합니다.”

* * *

다음 날, 아침.

둥-둥-둥-

규칙적으로 울리는 북소리를 따라 무장한 스켈레톤들이 규칙적으로 걷자.

천둥 같은 발소리에 성 위에 있던 병사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미친… 저게 도대체 몇 마리야?”

“우리가 막을 수 있긴 한 걸까…….”

병사들이 평원을 가득 채운 언데드 군단을 보며 질겁하던 그때.

스켈레톤들 사이로 누군가가 말을 타고 나오자 전장을 울리던 북소리가 멎었다.

“노드성의 성주 그리고 병사들은 들어라! 위대하신 레논 부탑주께서 너희를 가엽게 여기신 바, 친히 항복할 것을 요구하셨다! 항복해라! 만약 너희가 백기를 들고 성문을 연다면 너희의 목숨과 재산을 보장해 주겠다!”

전령의 목소리가 전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리자.

“저 미친 새끼가 뭐라는 거야?! 개소리 집어치워! 흑마법사 나부랭이들이랑 타협할 것 같아?!”

“노드성을 지나가려거든 우리의 시체를 밟고 지나가야 할 거다!”

성 위에서 거친 욕설과 야유가 터져 나왔다.

“멍청한 놈들! 오늘 노드성은 불길에 휩싸일 거다!”

전령이 말을 돌려 스켈레톤 사이로 사라지자.

그어어어어어어-

중무장한 수백 기의 누더기 골렘들이 전면으로 나왔다.

“뭐, 뭘 하려는 거지?”

그에 병사들이 당황해하는 가운데.

끼기기기기기긱, 철컥-

누더기 골렘들이 거대한 바위를 들어 공성 병기에 싣기 시작했다.

“레바논이시여…….”

한 병사의 탄식이 사그라질 무렵.

발사!

촤라라라라락-

거대한 돌들이 드높이 허공을 표류하다 성벽을 향해 쇄도한다.

콰아아앙-

“으아아아아아악!”

돌에 직격타를 맞은 일부 페이크의 병사들은 그대로 성벽에서 떨어져 내리며.

마침내 전쟁은 시작됐다.

“서둘러 돌을 올려라! 성벽이 허물어질 때까지 계속 쏘아 올려!”

촤르르르륵-

공성 병기에서 무자비하다 여길 정도로 돌을 쏟아 내자.

굳건해 보였던 성벽 곳곳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불화살을 쏴라! 놈들의 공성 병기를 파괴하라고!”

“하, 하지만 남작님! 화살이 닿질 않습니다!”

성 위의 병사들이 큰 혼란에 빠져 있던 그때.

우르르르르르르-

“으아아아악!”

지반이 약했던 것인지 성벽 한쪽이 완전히 허물어졌다.

“드디어 때가 됐나.”

무너져 내리는 성을 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흑남.

“무너진 곳으로 누더기 골렘들을 투입해라!”

그의 지엄한 명령이 떨어지자.

그어어어어어-

성벽처럼 두터운 중갑옷을 입은 누더기 골렘 수십 기가 무너진 성벽을 향해 돌진했다.

“괴, 괴물들이 몰려온다! 화살을 쏴! 어떻게든 막으라고!”

그에 성 위에서 쏟아진 화살 세례가 누더기 골렘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으나.

미스릴 갑옷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이쪽으로 온다. 충격에 대비…….”

콰아아아아아아앙-

누더기 골렘 수십 기가 무너진 성벽을 들이받자 무너진 성벽 주변으로 엄청난 충격파가 일었고.

성문보다 넓적한 입구가 성벽 사이에 생겨났다.

“총공세를 펼쳐라!”

다시금 흑남의 명령이 군단 내의 지휘관들에게 퍼져 나가자.

“드디어 우리 차롄가! 스켈레톤들을 전진시켜라!”

학생들을 비롯하여 흑마법사들이 수십만의 스켈레톤들을 앞으로 돌격시켜 나간다.

“적들이 몰려온다! 화살을 쏴! 마법사들은 마력이 바닥날 때까지 마법을 써라!”

성 위에서 화살과 불덩이들이 쏟아지자.

콰과과과과과곽-

돌진하던 스켈레톤들이 우루루 무너져 내린다.

“흠… 스켈레톤이 저렇게 쉽게 박살 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성수를 묻힌 화살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봐야 가진 성수가 그리 많진 않을 겁니다. 계속 밀어붙이죠.”

“하지만 저대로 두면 피해가 클 터이니 악마 병단을 투입하겠습니다.”

레논이 손을 까딱거리자.

[파멸! 파멸! 파멸!]

[계약을… 이행하겠다…….]

악마 병단 소속의 흑마법사들이 소환한 악마들이 스켈레톤 사이를 지나.

삽시간에 성안으로 진입한다.

“아, 악마들이 성안으로 들어왔다! 성에 들어온 놈들부터 처리해!”

“하지만 그러기엔 바깥의 상황도… 아아아악!”

악마들이 시선을 분산시키는 사이 스켈레톤들은 뻥 뚫린 성벽을 지나 성내로 진입했고.

성 도처에서 칼부림 소리가 들려왔다.

스켈레톤이 성내로 들어선 지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화르륵-

곧 성안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는 가운데.

한 암살자가 흑남과 레논에게 다가와 무언가를 내밀었다.

“성주, 노드의 목입니다.”

* * *

성주의 목을 보며 난 생각했다.

‘저항이 심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금방 뚫렸네.’

설마 우리가 크라켄 왕국을 지나 공격해 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그저 평화에 찌들어 무방비했던 것일까.

‘어느 쪽이 됐건 이대로만 가면 전쟁도 금방 마무리되겠어.’

“생각보다 쉽게 노드성을 점령한 것 같습니다.”

레논의 말에 나는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것 같군요. 우리의 예상보다 페이트 왕국의 저력이 약한 모양입니다.”

“암살자들이 성내를 정리 중이니 곧 보고가 올라올 겁니다.”

나와 레논이 대화를 나누던 중.

한 흑마법사가 들어와 우리에게 보고한다.

“성의 정리가 끝났다고 합니다. 셰이드 가주가 잡은 포로들의 처분 여부를 물어 왔는데 어쩔까요?”

그에 레논이 내게 묻는다.

“흑남께선 어떻게 하는 게 좋다고 보십니까?”

‘어쩌긴? 데리고 다닐 수도 없잖아? 당연히 짬을 때려야지.’

데리고 다니면 불편할 것이오, 그렇다고 죽이면 페이트 왕국이 학살을 계기로 결사 항전을 벌일지도 모른다.

“일단 잡은 포로들은 임시로 크라켄 왕국에 인계하도록 하죠. 전쟁이 끝나고 대가를 지불한다고 하면, 분명 크라켄도 수락할 겁니다.”

“참으로 좋은 생각입니다.”

“그보다 일단 상황이 마무리됐다고 하니 성으로 들어가 보죠.”

나는 레논과 함께 군세를 이끌고 함락한 노드성으로 들어섰다.

“집 안을 샅샅이 수색해라! 한 놈도 빠짐없이 모두 찾아내서 밖으로 끄집어내!”

암살자들을 비롯하여 스켈레톤들이 바삐 집 안을 수색하는 가운데.

“…….”

생포된 포로들이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우리를 응시했다.

‘그러게 항복하라 할 때 순순히 항복하면 좀 좋아?’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곤 포로들을 보며 입을 뗐다.

“두려워할 것 없다. 너희가 순순히 우리의 통제를 따르면 죽는 일은 없을 거다.”

“저, 저희를 살려 주시는 건가요?”

“일단은.”

내가 포로들을 살피고 성안을 둘러보던 그때.

“죽어!”

갑자기 집 안에서 병사들 몇이 뛰쳐나와 나와 레논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나.

서걱-

그들의 손이 채 우리에게 닿기도 전에.

어둠 이면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있던 암살자들에게 목이 잘려 나갔다.

‘쯧… 고분고분 말 들었으면 살았을 것을…….’

물론 이 전쟁은 저들에게 있어 왕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전쟁이겠으나.

내게는 그보다 중요한 명분이 있었다.

‘멸망을 막기 위해선… 정복을 해야 돼, 정복.’

나는 다시금 속으로 다짐하곤 내성으로 이동했다.

* * *

그날 밤.

노드성주가 사용하던 별실.

스스슥-

나는 바알의 힘을 사용하여 신들의 이목을 차단한 뒤.

함께 데리고 왔던 옐리치와 안나 그리고 제이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왜 너희를 이곳에 데리고 왔다고 생각해?”

“그야… 주신의 교리를 전파하기 위함이 아닌가요?”

제이나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기에 너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내 말에 세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해야 할 일이요?”

“그래. 아마도 힘든 일이 되겠지. 안나야, 할 수 있겠니?”

“주신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요!”

안나가 가슴을 내밀고 당당히 말하자.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 갔다.

“내일 포로들이 크라켄으로 이송될 거야. 너희는 그 사이에 끼어들어서 포로들에게 교리를 전파해야 돼. 가능하겠어?”

“물론입니다! 그 어떤 곳이든 갈 수 있습니다!”

난 당당히 대답하는 옐리치에게 미소를 보인 뒤.

세 사람에게 각각 양피지 한 장씩을 건넸다.

“아무래도 포로의 신분이 되는 거니 분명 위험할 수도 있을 거다. 그러니 여차하면 그걸 그곳의 귀족한테 보여 줘. 도움이 될 거다.”

“예!”

* * *

다음 날.

“서둘러 움직여라!”

“늦장 부리지 마! 죽고 싶어!?”

붙잡힌 포로들이 밧줄에 줄줄이 엮인 채로 남쪽으로 이송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끼어든 옐리치와 안나 그리고 제이나 또한 포로들에 은밀히 섞여 이동했고.

나는 그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며 생각했다.

‘앞으로 포로들은 잡히는 족족 같은 곳으로 보내질 거고, 그러면 제이나 일행이 포로들한테 계속 교리를 전파하겠지?’

일이 순리대로 잘 풀린다면 신도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터.

‘아무쪼록 별 탈 없이 잘해 줘야 할 텐데.’

* * *

한편, 같은 시각.

어디론가 시체를 운반하는 스켈레톤들을 내려다보던 레바논이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일방적이네요.]

[내 하수인들은 오늘을 위해 몇 년을 준비했다. 당연히 일방적인 결과가 나올 수밖에.]

[그건 그렇죠. 그보다 아가멤논의 힘은 좀 느껴졌나요?]

그녀의 물음에 베논은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무래도 저 성안에는 없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힘을 안 쓴 걸지도 모르죠. 근데…….]

게슴츠레한 눈으로 베논을 쏘아보며 말을 이어 가는 레바논.

[흑마법사들이 포로들은 왜 살려 둔 거죠? 생존자들은 전부 죽이라고 명령하지 않았나요?]

[아직 안 했다.]

[…뭐라고요?!]

베논의 대답에 레바논은 눈을 부라린 채 언성을 높였다.

[아니, 모조리 죽여야 멸망이 성립하는 거지, 살리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진정해라. 만약 지금 여기서 포로들을 싹 다 죽이면 어떻게 될까? 어차피 죽임을 당할 거라 생각한 페이트 왕국은 사력을 다해 항전할 거고, 그로 인해 우리의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요?]

[그러니 일단 페이트 왕국을 멸망시키고 나서, 그 뒤에 잡은 포로들을 싹 다 죽이라고 하면 된다.]

베논의 설명이 꽤나 그럴듯하게 들린 건지.

레바논은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렇다고 치죠. 대신 페이트를 멸망시키거든 확실하게 생존자들을 죽이라고 명령해야 할 거예요.]

[물론이다.]

* * *

3주 뒤.

페이트 왕국을 향한 침공이 시작된 지 어느덧 3주가 흘렀다.

그사이 나와 레논은 노드성을 시작으로 3개의 성을 더 함락했고.

어느덧 다음 성을 목전에 둔 상태였다.

‘음… 저건 생각보다 뚫기가 쉽지 않겠는데.’

바든성.

이제껏 함락했던 성들과 달리.

성벽도 두터워 보이는 데다가, 무엇보다 산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는 탓에 공략이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확실히 바든성은 함락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군요.”

“그럴 수밖에요. 몇십 년 전까진 바든성이 페이트 왕국의 최전선이지 않았습니까?”

레논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두들기다 보면 언제고 함락은 하겠지만 그래선 서부군과의 약속에 차질이 생기겠죠.”

침공하고 세 달 뒤에는 페이트 왕국의 수도 앞에서 전 병력이 집결하는 게 당초의 계획이었으나.

눈앞의 바든성을 보고 나니 일정이 더 늦어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일단 어떻게 성을 공략할지 고민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죠.”

나와 레논이 바든성을 보며 고민에 잠겨 있던 그때.

다그닥, 다그닥-

바든성에서 일단의 무리가 하얀 깃발을 든 채 말을 타고 우리 진영을 향해 내달려 왔다.

‘뭐야. 사신인가?’

무슨 말을 하려고 사신을 보낸 걸까.

나는 곧장 사신을 대면했다.

“성주 바든 백작님의 의사를 대신 전하고자 온 노르 자작입니다.”

“흑남이다.”

“위대하신 흑남님을 뵙…….”

“그래서, 바든 백작의 의사가 뭐지?”

나의 물음에 노르 자작이 얼른 대답한다.

“바든 백작은 흑남께서 요구 조건을 수락하실 경우, 전면 항복을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전면 항복? 저 천혜의 성을 그냥 넘기겠다고?’

나는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덤덤히 물었다.

“요구 조건?”

“그렇습니다. 일단 바든 백작은 가신들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해 주시길 원합니다.”

자작의 말에 나와 레논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보장해 주지. 베논의 이름으로 약속하마.”

“그리고 두 번째로는 백성의 안전 또한 보장해 주시길 원합니다.”

“그 또한 보장하지.”

내가 흔쾌히 대답하자.

자작은 조금 긴장이 풀렸는지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마지막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 줄 것을 원하셨습니다.”

“…종교의 자유?”

“그렇습니다. 흑마법사들은 모두 베논을 섬긴다고 들었습니다. 하나, 저희 백작께서는 주신, 랄프를 섬기고 계십니다. 하여 종교의 자유 또한 보장해 주신다면 바든성은 기꺼이 성문을 열 것입니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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