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197화 (197/200)

◈ 197화 외전 (17)

‘이건 고문 기구야! 고문 기구!’

촤라라라라락-

철로를 따라 미친 듯이 내달리는 수레 위에선 생각하는 것조차 사치였다.

“으어어어억!”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는 것뿐.

몇 분 뒤.

“호오… 무사히 용을 격퇴하고 돌아왔군. 보상을 달라고? 보상은 너희의 목숨이다. 썩 꺼져.”

드래곤 캐슬을 관리하던 남자의 목소리가 허공을 울리는 가운데.

“…….”

머리가 산발이 된 안톤은 멍한 표정을 한 채 수레에서 내렸다.

‘이게… 도대체 뭐야?!’

저건 고문 기구가 분명하다.

사람의 영혼을 이토록 어지럽히는 게 고문 기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나…….

‘왜지? 왜 한 번 더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지?’

안톤은 자신도 모르게 자꾸 드래곤 캐슬의 대기 줄에 합류하려는 자신을 발견하곤 몸을 흠칫거렸다.

‘정신 차려. 저건 흑마법사들이 만들어 낸 마도구라고!’

애써 마음을 다잡은 안톤.

‘일단 다른 곳을 좀 더 살펴보자. 그래, 이건 어디까지나 흑마법사들을 파악하는 일이니까.’

결국 빙글빙글 엔트와 오싹오싹 스켈레톤의 집에 이어, 누더기 골렘의 회전 그네 등.

안톤은 온갖 기구들에 탑승했고 마침내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재미… 있네.’

인정하기 싫은 일이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 흑마랜드는 그의 상상 이상으로 재밌는 곳이다.

‘후… 오싹오싹 스켈레톤의 집에선 정말 큰일 날 뻔했지만…….’

흉가 속 엄폐물 뒤에 숨어 있던 스켈레톤이 튀어나올 땐.

정말이지 기겁하며 성마법을 발현할 뻔했다.

‘내가 오해를 했던 건가.’

“엄마, 저기로 가자! 응? 엔트들 또 보고 싶단 말이야!”

“그래, 그래.”

더욱이 흑마랜드를 누비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던 만큼.

안톤은 자신의 생각을 정정할 수밖에 없었다.

‘뭐, 그래. 이곳이 고문 기구를 실험하는 곳이 아니라는 건 알겠어. 하지만… 그것뿐이야.’

아무리 놈들이 이런 희한한 곳을 만들어 냈다고 하더라도.

놈들의 본질이 흑마법에 있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으니까.

‘큼… 어쨌건… 재미는 있었어, 재미는…….’

아직 드래곤 캐슬에 미련이 남아 있던 걸까.

안톤은 출구로 이동하면서도 연신 등 뒤를 힐끔거렸다.

* * *

2일 뒤.

“후… 이번에는 꼭 통과해야 할 텐데…….”

“난 이번에 떨어지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농사는 이제 질렸어! 어떻게든 통과할 거야!”

커다란 연무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득실거리고 있다.

‘이 사람들이 전부 하인 선발 시험을 보러 온 시험자들인 건가. 어마어마하네.’

안톤이 저마다 합격을 다짐하는 시험자들을 힐끔 살피던 그때.

“정렬해라! 정렬해! 시끄럽게 구는 놈은 시험 자격을 박탈해 버리겠다!”

눈 부근에 기다란 상흔을 가진 남자가 그들을 향해 버럭 소리친다.

‘저게 하인이라고? 하인보단 용병처럼 생긴 것 같은데.’

안톤이 남자의 외관을 뜯어보던 중.

남자가 좌중을 응시하며 계속 말을 이어 간다.

“소개 같은 거추장스러운 의례는 생략하고, 지금부터 너희는… 낙오자들이 나올 때까지 달려야 된다.”

“…예?”

“하인에게 있어 체력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청소와 빨래 그리고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려면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니 지금부터 달려라! 출발!”

남자가 가슴이 터질 정도로 크게 외치자.

타다다다닥-

갑자기 일단의 무리가 연병장을 달리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뭐야. 이게 시험이라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안이 벙벙하긴 했으나.

‘일단 저들을 따라가자. 갑자기 저 사람들이 달린 덴 이유가 있을 테니까.’

안톤은 달리는 사람들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몇 바퀴나 돌았을까.

슬슬 시험자들의 입에서 짙은 헐떡임이 흘러나왔으나.

안톤의 표정은 평안해 보였다.

‘첫 번째 시험은 크게 어렵지 않네.’

이런 체력 훈련 정도는 성기사를 준비하던 시절 늘상 하던 일이었기에.

안톤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달렸다.

‘음… 계속 같은 곳을 돌기만 하는 거라면, 슬슬 앞으로 치고 나가 볼까? 1등에게는 뭔가 추가 점수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르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가볍게 달리던 안톤은 점차 속도를 높여 나갔다.

“허억, 허억… 미친…….”

“괴물…….”

등 뒤에서 시험자들의 아련한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안톤은 개의치 않았다.

타다다다닥-

그저 달리고 달려 어느새 꼬리 부근에 있던 사람들을 따라잡은 안톤.

‘이들을 추월하면 한 바퀴 차이가 나는데. 뭐, 상관없겠지.’

안톤이 꼬리 부근의 사람들을 제치자.

“방금 저 애송이에게 따라잡힌 놈들은 탈락이다! 집으로 썩 꺼져!”

남자의 목소리가 연병장을 울렸다.

‘…뭐?’

그에 당황한 안톤.

‘따라잡히면 탈락하는 거였어? 어쩐지 꼬리 부근에 있던 사람들이 이를 악물고 달리더라니. 조금… 미안하네.’

하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가 하인이 되기 위해선 누군가가 탈락을 해야 했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전력으로 달리는 수밖에.’

마음을 다잡은 안톤이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탈락! 너도 탈락이다! 그만 달리고 썩 나오지 못해?!”

남자의 입에서 탈락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10분 뒤.

“흠… 50명 정도 남았나……. 거기까지! 너희는 합격이다!”

마침내 생존자들에게 합격 통보가 떨어지자.

“…우웨에엑!”

“으으으으으…….”

일부 생존자들은 구토를 하거나 침을 흘리면서도 합격의 기쁨을 만끽했다.

“허억, 허억… 후… 정말이지, 떨어지는 줄 알았네.”

“그러니까 말이야. 저놈은 지치지도 않는 모양이야.”

“아마 계속했으면 나도 떨어졌을걸? 망할…….”

안톤의 전력 질주로 인해 본의 아니게 생사를 건 질주를 했던 합격자들은.

안톤을 쳐다보며 숙덕거리기 바빴다.

“조용히 해라! 10분 휴식 뒤, 두 번째 시험을 진행하겠다.”

‘두 번째 시험이라면, 인내력 시험이었나?’

안톤은 자리에 주저앉은 채 생각을 이어 갔다.

‘인내력 시험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려나.’

어떤 식으로 시험을 칠지는 몰라도, 안톤은 꽤나 자신이 있었다.

‘인내력 시험이라 봐야 결국 체력 시험의 연장선일 테니까.’

밧줄에 오래 매달리거나 고문을 참는 건.

성카데미 시절 나름대로 경험을 했었다.

‘결국 하인 선발 시험일 뿐이라는 거지.’

안톤이 나름의 자신감을 보이던 그때.

덜그럭-

커다란 상자들을 든 스켈레톤들이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뭐지?’

안톤이 의아해하던 중.

덜그럭-

스켈레톤들은 상자 안에서 작은 포션병 같은 것을 꺼내어.

생존자들에게 하나씩 건네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전원 포션을 복용한다. 열외는 없다!”

‘으음…….’

게슴츠레한 눈으로 포션병을 바라보는 안톤.

‘설마… 흑마력 포션은 아니겠지?’

안톤은 슬쩍 마개를 열어 내용물의 냄새를 맡아 봤다.

‘흑마력 포션은 아닌 것 같은데… 이게 도대체 뭐지?’

어딘가 쿰쿰한 냄새가 나긴 했지만 독은 아닌 듯했다.

“꼭 마셔야 하는 겁니까?”

“마시지 않으면 탈락이다.”

‘끙…….’

결국 다른 참가자들을 따라 포션병에 담긴 내용물을 복용한 안톤.

그 외에도 모든 참가자들이 내용물을 삼키자.

남자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린다.

“인내력 시험을 시작한다!”

“…예?”

“시험은 이미 시작됐다.”

‘시험이 이미 시작됐다고? 그게 무슨……?’

꾸르륵-

‘으윽… 이건……!’

갑자기 배가 살살 아파 오기 시작하는 가운데.

남자의 목소리가 계속 울려온다.

“급한 용무가 생긴 와중에도 학생들의 수발을 들 수 있어야 하는 게 하인 될 자의 기본 소양이지.”

‘이런 미친…….’

그러니까 이번 인내력 시험이라는 건.

가장 오랫동안 바지에 지리지 않는 자를 뽑는다는 것 아닌가?

‘도대체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이딴 시험을……!’

하나 안톤은 더 이상 생각을 이어 가지 못했다.

[더 힘껏 두드려라! 문을 개방해라!]

[이야아아아!]

쿠르르릉-

‘허읍… 아, 안 돼. 막아야 돼.’

그의 온 신경은 항문 부근에서 벌어진 공성전을 막는 데 쏠렸다.

“크윽…….”

“어윽… 억… 으으으…….”

다른 참가자들 또한 상황은 마찬가지였던 건지.

저마다 배를 부여잡거나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기괴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아, 안 돼……. 이 나이 먹고… 바지에… 바지에…….”

쿠르륵-

‘아…….’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엎어진 탈락자의 모습에 안톤은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참아야 돼. 무슨 일이 있어도!’

바지에 지린 성기사?

오명도 이런 오명이 없었다.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안 돼!’

쿠르르르릉-

[문에 금이 갔다! 더 세차게 몰아쳐!]

[오오오오오!]

하나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공성전은 초 단위로 진행이 되고 있었다.

“…….”

상황이 이 지경까지 처하자.

안톤은 주변 참가자들을 노려보며 속으로 소리쳤다.

‘빨리 지려! 지리라고!’

아니.

이대로 남들이 지리기를 가다릴 수만은 없다.

‘내가 한계에 처하기 전에 움직여야겠어.

안톤이 힘겹게 걸어 옆의 참가자에게 다가가자.

“으으으…….”

배를 부여잡고 힘겨워하던 참가자가 그를 힐끔 바라본다.

“무슨…….”

“미안하다.”

퍽-

안톤의 주먹이 참가자의 배를 가격하자.

“아…….”

눈을 까뒤집은 참가자의 몸이 힘없이 넘어간다.

“아, 안 돼… 제발…….”

“돼.”

안톤이 주변 참가자들의 배를 하나씩 하나씩 가격하자.

“흠… 제법이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시험관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린다.

“그러게 말입니다. 시험관님의 취지를 이해한 참가자는 저 애송이가 처음 아닙니까?”

“뭐, 그렇지.”

일단은 인내력 시험이라는 이름을 붙이긴 했으나.

이 시험에는 또 다른 취지가 숨어 있었다.

“하인이라면 저 정도 비열함은 갖고 있어야지. 일만 잘해선 그저 평범한 하인밖에 될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조금… 기괴하군요.”

시험관을 보조하던 남자는 눈길을 돌려 참혹한 광경을 살핀다.

“커흑…….”

“제, 제발… 난 가, 가족이…….”

“닥쳐.”

애원하던 사람들이 엉덩이를 붙잡고 혼절하는 광경은 정말이지.

살면서 쉽게 보기 어려운 광경이었으니 말이다.

“저 애송이는 3차 시험에서 열외시켜.”

“…예? 지혜는 하인에게 있어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잖습니까?”

“놈은 이미 충분히 교활해. 체력 시험도 압도적인 1등이었고. 더 볼것도 없다.”

“아… 알겠습니다.”

* * *

3일 뒤.

스무 명 남짓의 남자들이 연병장에 모인 채.

눈앞에 있는 시험관을 바라본다.

“축하한다. 이제 너희는 자랑스러운 흑카데미의 일원이 되었다.”

“드, 드디어!”

그토록 원했던 합격이라는 두 글자가 시험관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합격자들의 얼굴에는 감동의 물결이 넘실거렸다.

“하나 아직 너희가 정식 하인이 된 건 아니다. 한 달간의 수습 기간을 거친 뒤, 너희는 정식 하인으로 거듭날 거다. 이해했나?”

“예!”

힘껏 소리치는 합격자들과 달리.

어째선지 안톤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떨어진 줄 알았는데, 다행이야.’

세 번째 시험을 치르지 못해 떨어졌다고 생각했건만.

‘근데 왜 난 열외시킨 거지?’

안톤이 속으로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던 중.

시험관이 그를 보며 고개를 까딱인다.

“아. 그리고 애송이, 넌 나를 따라와라.”

“예?”

“넌 수습 기간 없이 바로 현장에 투입할 거다.”

시험관의 말에 안톤은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나만 수습 기간이 없다고?’

사뭇 시험관이 그를 편애하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으나.

일단 고개를 끄덕이는 안톤.

“알겠습니다.”

“그럼 이동하지. 남은 인원들은 여기 있는 제임스에게 수습 기간 동안 할 일을 배울 수 있도록. 이상이다. 그리고 안톤이라고 했던가? 넌 날 따라오도록.”

그 말을 끝으로 시험관이 이동하자.

안톤은 그를 따라 흑카데미 옆에 위치한 벽돌집으로 이동했다.

‘이곳이 하인들이 쓰는 침실인가?’

안톤이 집 안을 이리저리 살피던 그때.

나무 의자에 앉은 시험관이 그에게 손을 까딱인다.

“앉아라.”

“예.”

시험관의 맞은편에 앉은 안톤.

“…….”

묘한 정적만이 그들 주변을 휘감던 중.

시험관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를 보며 입을 뗀다.

“넌 뭐 하는 놈이지?”

“…예?”

“인내력 시험 때 네가 먹었던 약은 정신력이 강하다는 기사들조차 함락시킨 물건이다. 그런데 그걸 한낱 애송이가 버텨 냈다. 이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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