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서진혁은 꿈을 꾸었다.
지구가 아닌, 다른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꿈을.
개꿈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너무나 생생한 꿈이었다.
‘망령의 주인이시여…….’
꿈속에서 진혁은 시체와 망령을 다루는 사령술사, 파슬란 드 노미크롬이었다.
수십 만의 언데드 군단을 손짓 하나로 부리는 그에게, 꿈속 사람들은 망령군주라는 칭호를 붙여 주었다.
그가 꿈속에서 보낸 시간은 백 년.
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 진혁은 꿈속에서 수많은 일들을 경험했다.
‘신께서 원하신다! 죽은 자를 모독하는 저 악마를 찢어 죽여라!’
‘북부에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확인해 볼까요?’
‘군주시여, 신에게 망자의 군세를 내려 주소서. 저 간악한 제국의 침략자를 막아 보이겠나이다.’
제국의 침공을 막아 내고, 북부를 개척해 고대의 유물을 획득하였으며, 죽음의 군단을 이끄는 수많은 언데드 부하들과 우정을 나누었다.
비록 꿈이긴 했지만, 충분히 흥미진진한 내용의 꿈이었다.
하지만.
모든 꿈에는 끝이 있다.
‘악마를 죽여라!’
‘신의 이름으로!’
‘와아아아!’
대륙은 힘을 모았고, 성전의 칼날은 파슬란에게로 향했다.
파슬란과 죽음의 군단은 오랫동안 싸워 나갔지만, 대륙 전체와 싸워 이길 수는 없었다.
결국.
‘죽어라, 악마여.’
성검의 주인 카를의 칼날 앞에서, 그의 목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 * *
세한 의료원.
게이트 너머의 괴수로부터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다섯 가문 중 하나, 서가가 소유한 한국 제일의 종합병원.
그곳의 새하얀 병실 안 병원 침대 위에, 한 남자가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하루 입실에 몇백만 원은 지불해야 할 VIP용 병실이었지만, 누워 있는 남자의 상태는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버짐이라도 핀 것처럼 하얗게 일어난 피부와 말라비틀어진 사지의 근육은, 남자가 수년 동안 병상을 떠나지 못한 식물인간이란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호흡조차도 스스로 하지 못해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하는, 살아 있는 시체나 마찬가지인 존재.
앞으로 수십 년을 더 침대 위에서 보낸다 할지라도, 남자가 깨어날 가능성은 0에 수렴했다.
허나, 그 미약한 가능성을 비웃기라도 하듯.
“허억!”
침대 위의 남자, 서진혁은 병상 위에서 눈을 번쩍 떴다.
‘이건, 뭐지?’
그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이 병원의 천장이란 사실을 깨달은 진혁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일으킬 수 없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몸의 근육과 신경은 제 역할을 잃은 지 오래.
몸을 움직이려 애써 봤지만, 손가락을 간신히 움직이는 것이 그의 한계였다.
거기에, 자신의 코와 입을 막고 있는 산소호흡기의 이물감까지.
그제야, 진혁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서진혁.’
서가의 장남이자 세한그룹의 일원.
거기까지 떠올리는 데 성공하자, 자연스럽게 과거의 일들이 하나둘씩 기억나기 시작했다.
‘그래, 분명…….’
자신이 입원하게 된 이유 역시.
‘……초렵식(初獵式)이었지.’
여느 엽사 가문처럼, 서가 역시 엽사로 인정받기 위해선 그만한 공을 세워야 한다.
진혁이 받은 과제는 고정형 게이트, 통칭 던전 중에서도 최하급인 무(戊)급의 것을 클리어하는 것.
딱히 두각을 드러낼 만한 실력은 아니었지만, 그 정도는 진혁의 힘으로도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놈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외눈박이.’
던전 내에서 나타난 또 다른 게이트.
그 게이트 너머에서 나타난, 갑(甲)급의 강력한 괴수.
괴수를 나누는 다섯 등급 중 가장 높은 등급에 올라 있는 놈의 공격을, 이제 갓 던전에 들어선 진혁이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말 그대로 사고였다.
‘그럼, 초렵식은 실패한 건가.’
자신이 이 침대 위에 누워 있다는 사실이 그 증거였다.
좋지 않은 일이었다.
‘쫓겨나기 전에 방도를 찾아야겠어. 몸은 재활만 하면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을 거고.’
대강 상황을 파악한 진혁은 앞으로의 일을 예상하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망령군주, 파슬란 드 노미크롬으로서 살아온 백 년의 시간은 진혁이 침대에 누워 가만히 놀고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럼, 그게 전부 꿈……이란 말인가?’
지구와는 다른 세상에서, 죽음의 군단을 부리는 강력한 사령술사가 되어 백 년을 살았다.
한 사람의 일생을 통째로 살아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게, 정말 꿈이었다고?’
믿을 수 없었다.
파슬란 드 노미크롬으로 살아온 백 년.
그 기나긴 시간을 단순히 꿈이라 치부하기엔, 백 년의 하루하루가 진혁의 머릿속에 너무나 세세하게 남아 있었다.
망령군주였던 그가 어떤 일을 해 왔는지, 어떤 힘을 다뤘는지, 어떤 사람을 살리고 어떤 사람을 죽였는지.
그 모든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이 꿈이라니.
‘나는…… 서가의 장남이다.’
그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망령군주 파슬란 드 노미크롬이기도 했다.
‘대체…….’
꿈과 현실이 뒤섞이자, 그의 생각도 함께 뒤섞였다.
온갖 생각들이 진혁의 머릿속을 휘감던 그때.
드르륵!
병실의 미닫이문이 활짝 열렸다.
“어……?”
언제나처럼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VIP 병실로 들어온 간호사의 눈이, 문 열리는 소리를 들은 진혁의 눈과 마주쳤다.
“교, 교수님! 서진혁 환자가!”
놀란 간호사는 곧장 병실 밖으로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그로부터 채 5분이 지나기도 전.
세한의료원은 전례 없는 소란에 휩싸였다.
* * *
진혁이 깨어난 지 하루 동안, 그는 수많은 의사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세한의료원의 원장부터, 각 과의 과장들과 전공의, 인턴까지.
마치 왕국의 군주를 돌보는 어의들의 행렬 같았지만, 진혁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서가의 장남이 받아야 할 당연한 대우니까.’
세한의료원은 서가, 세한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종합병원.
서가의 차기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그가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예전의 나라면 이런 대우가 불편했겠지.’
서가의 장남이었으나, 그만한 능력을 가지지는 못했다.
능력에 맞지 않는 기대와 질시의 범람은 진혁의 정신을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꿈속에서의 백 년은 진혁의 정신을 다시 세상에 우뚝 서게 만들었다.
‘어차피 꿈일 뿐이지만.’
꿈속의 백 년을 떠올린 진혁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옆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던 의료원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쓰러진 지 벌써 십 년이라.”
꿈속의 백 년 동안 써 왔던 파슬란의 고풍스러운 말투는 열아홉…… 아니, 이제 스물아홉이 된 진혁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진혁의 말에, 중년과 노년 사이쯤으로 보이는 의료원장이 고개를 숙였다. 의료원장의 텅 빈 정수리가 반짝였다.
“예, 맞습니다. 십 년 전, 진혁 님의 성인식 도중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고 때문에…….”
“사고라…… 그렇지. 던전에 게이트가 열릴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테니까.”
게이트가 처음 열렸던 백 년 전부터 지금까지, 진혁의 사례 말고는 보고된 적이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럼, 내 몸 상태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썩 정상은 아닌 것 같다만.”
“구조대가 적절하게 투입된 덕분에 진혁 님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진혁이 묻자 원장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조심스럽게 답했다.
“지금 몸을 움직이지 못하시는 건 십 년 동안 병원에 누워 계신 것 때문에 사지의 근육과 신경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을 뿐입니다. 잠시 동안 재활을 거치고 나면 곧 일상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다만…….”
말을 잠시 멈춘 원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진혁의 시선이 원장의 다문 입으로 향했다.
“당시에 나타났던 괴수의 공격에 의해…… 진혁 님의 마나홀이 손상되었습니다.”
“역시, 그랬군.”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어쩐지, 몸에서 마나가 느껴지지 않더라니.’
엽사 혹은 헌터들의 하복부에 위치한 마나의 저장소, 마나홀.
마나를 저장하고 있는 마나홀이 없으면, 엽사들이 괴수를 퇴치하는 데 사용하는 수많은 초상능력 역시 사용할 수 없다.
“치료는?”
“죄송합니다. 현재의 기술로는…….”
원장은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알았다.”
진혁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 * *
사흘이 지났다.
곧 걸을 수 있을 거라던 원장의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깨어난 진혁의 몸 상태는 점차 좋아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들었던 것이, 사흘이 지난 지금에 와선 보행보조기를 짚고 복도를 걸을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서가의 혈통에 담긴 회복력 덕분이기도 했지만, 재활을 위한 진혁의 필사적인 노력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빠르게 좋아지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재활실에서 봉을 짚고 걷는 연습을 하던 진혁의 표정은 어두웠다.
‘마나가 돌아오지 않아.’
지난 사흘간, 진혁은 마나를 되찾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했다.
엽사, 헌터에게 마나와 초상능력이란 제2의 손발과도 같은 것.
하지만, 마나를 몸속에 모으고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 마나홀이 파괴된 이상, 진혁은 더 이상 마나를 움직일 수 없었다.
‘파괴된 마나홀을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어.’
마나를 잃어버린 진혁의 마음은 마치 사지가 하나 잘려 나간 것처럼 허전했다.
‘성자’의 힘이라면 마나홀을 복구하는 것도 가능할지 몰랐지만…….
‘성자에게 기적을 바랄 바엔, 차라리 죽고 말지.’
기적을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가 얼마나 커다란지 알고 있는 진혁이 선택할 수는 없는 카드였다.
‘가문에서 쫓겨날지도 모르겠군.’
병상에서 허송세월을 보낸 것이 무려 십 년.
마나홀이 멀쩡했다 할지라도 십 년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선 피나는 노력이 필요했을 텐데, 마나를 다룰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선 가문에 남을 수 있는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러니, 사흘 동안 가문에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것이겠지.’
십 년 전의 그 역시 변변찮았던 것은 마찬가지일진대, 마나홀까지 잃어버린 그에게 관심을 가질 리 없지 않은가.
‘그나마 십 년 동안 쫓겨나지 않고 병원에 있을 수 있었던 걸 다행으로 여겨야겠지.’
하지만 그도 잠시뿐이다.
아마, 병원에서 재활이 끝나고 나면 성인식도 치르지 못한 진혁은 가문에서 내쫓긴 다음 최소한의 지원만 받으며 평범한 사람으로 살게 되리라.
‘평범……이라.’
투쟁의 백 년.
망령군주로서 지냈던 꿈속의 시간 동안, 그는 수많은 투쟁을 거쳐야 했다.
이미 꿈속에서 가져 볼 것은 모두 가져 봤으니, 서가의 주인이라는 자리에 큰 미련은 없었다.
‘외눈박이.’
자신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갑(甲)급의 괴수.
‘십 년 전의 나라면 포기했겠지만.’
지금의 진혁은 다르다.
망령군주로서 완성된 그의 인격은, 놈에게 복수해야 한다 말하고 있었다.
‘설사 방법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외눈박이의 흉측한 얼굴을 떠올린 진혁은 이를 악문 채 스테인리스 봉을 다시 붙잡았다.
허나.
‘……이건.’
눈앞에 나타난 무언가를 발견한 진혁은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불꽃.
시퍼런 불꽃이 허공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마치 이야기 속 도깨비불처럼 진혁의 앞에서 허공을 마구 휘젓는 모습은 천진난만한 아이와도 같았지만.
‘어째서…….’
진혁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눈앞에서 춤추는 불꽃은 분명.
‘꿈이…… 아니었던 건가?’
꿈속에서 수없이 마주치고, 부려 왔던 존재.
망령의 모습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