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4화 (4/174)

4화

미미한 카르마를 지닌 망령이 흑마력의 도움 없이 낼 수 없는 물리력이란 하찮기 그지없다.

힘을 조절해 쏘아 낸 만년필을 막는 데만 족히 셋의 망령을 소모해야 하지 않았던가.

거기에, 생명체에게 직접 피해를 입히는 것은 더욱 어렵다.

육체가 없는 망령이 생명체가 지닌 영혼의 장벽, 영막(靈幕)을 뚫기 위해선 흑마력의 도움이 필수적이었으니까.

그렇기에.

―……?

진혁이 노리는 것은,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었다.

―……?

진혁의 명에 따라, 두 망령이 가지고 있던 카르마가 망령의 바깥으로 새어 나온다.

카르마에 담긴 원한이 담고 있는 것은, 순수하게 정제된 증오와 공포.

그 기운이 진혁의 동생, 상혁의 주변에 뿌려진 순간.

‘뭐, 뭐지?’

상혁은 갑자기 찾아온 오한에 몸을 벌벌 떨었다.

딱딱딱딱!

이빨이 세차게 부딪치고,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든다. 피부를 스치는 서늘함에 온몸의 솜털이 바짝 일어선다.

어지간한 독감 따위는 범접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삼 품의 엽사였지만, 지금의 오한은 그가 가진 웅혼한 마나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전무님, 괜찮으십니까?”

상혁을 호위하던 경호원들이 이상을 눈치채곤 물었지만, 그는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진혁이 카르마를 사용해 만들어 낸 일종의 원시적인 저주.

허나 이 자리에서 저주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독감이라도 걸렸나 보군.”

이 기이한 상황을 보며 웃는 것은, 오로지 진혁뿐.

“엽사씩이나 되어서 독감이라니. 좀 더 열심히 수련하려무나, 상혁아.”

“이, 이…….”

“그럼, 먼저 가 보마.”

당황과 식은땀으로 범벅된 동생의 얼굴을 뒤로한 채, 진혁은 빌딩의 출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래 가진 않겠지.’

길어야 오 분.

그 대가로 남은 두 망령을 명계로 보낸 것은 아쉬운 일이었지만, 소득은 확실했다.

“진혁 님.”

“뭐지?”

“이번에는 조금 지나치셨습니다.”

하지만 주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서상혁 전무는 본인도 삼 품의 엽사이지만, 세한보안의 토벌 부문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차후 세한그룹에서 세력을 만들 생각이시라면, 서상혁 전무와는 가능한 한 불화를 만들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저희 그룹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괴수의 토벌 및 그 부산물의 가공이니까요.”

엽사가 성장하기 위해선 괴수를 토벌해야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

괴수토벌에서 소외당하거나 배제당할 수 있다는 사실은, 세력을 만들어 나가는 데 큰 문제로 작용하리라.

주연의 지적은 제법 합당했다.

하지만.

“그래서?”

“네?”

상사의 대답에 주연은 순간 당황했다. 세단의 뒷자리에 앉은 진혁이 코웃음 쳤다.

“조언은 고맙지만, 내가 들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주제넘었다. 는 말의 우회적인 표현이었다.

“아직 내 사람도 아닌데, 굳이 조언해 줄 필요는 없다. 나는 내 판단대로 움직일 거니까.”

“……알겠습니다.”

진혁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은 주연은 곧장 고개를 숙였다.

진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푹신한 시트에 몸을 기댄 채 손을 휘저었다.

“그럼, 본가로 가지.”

“네, 출발하겠습니다.”

곧, 검은색 세단이 부드럽게 달려나갔다.

*    *    *

대한민국의 오대 엽사 가문 중 하나, 서가의 본가는 세한빌딩의 바로 인근에 위치해 있다.

강남개발 당시, 잠실과 그 주변의 개발권을 얻은 세한그룹이 잠실 한복판에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만들어 낸 인공호수와 그 안의 인공섬.

서가의 본가는 그 인공섬, 칠성원의 내부에 위치해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햇수로 십 년, 다른 세계의 시간으로는 백 년.

이제는 그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만큼 긴 세월이 지나서야 재회한 본가의 모습은, 과거와 조금 달라져 있었다.

“빌딩이 많이 늘었군.”

십 년 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십 층에서 이십 층 규모의 빌딩 혹은 아파트들과 그 사이로 바쁘게 지나다니는 세한보안 소속의 경비 차량들.

고즈넉한 한옥 분위기였던 십 년 전과는 너무나 달라진 풍경에 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몇 년 전부터 회장님께서 칠성원을 새로 개발하라 지시하셨습니다. 지금 보고 계시는 빌딩들은 전부 거주공간이나 훈련공간, 연구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이건 완전히 다른 세상이지 않은가.

진혁은 주연의 설명에 혀를 내두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진혁 님이 거주하시던 곳은 따로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예전 모습 그대로겠군.”

주연의 말에 진혁은 십 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장남의 의무에 얽매여 사느라 힘든 와중에도, 언제나 자신을 반갑게 맞이했던 휴식처.

과연,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진혁은 기억을 더듬어 가며 과거 자신이 홀로 살았던 집으로 향했다.

곧, 진혁이 자신의 옛 보금자리와 마주한 순간.

“……정말 대단하군.”

진혁은 할 말을 잃었다.

오래간만의 재회가 너무나 감동적이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단지.

“팀장.”

“네.”

“이곳, 언제부터 이렇게 방치된 거지?”

추억이 담긴 옛 보금자리의 관리상태가 너무나 엉망이었을 뿐.

대문 앞에는 허리만 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고, 집을 둘러싼 벽의 실금은 초록색 담쟁이와 환상의 콜라보를 이루고 있었다.

예전에 사람이 살았긴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말 그대로 다 쓰러져 가는 폐가였다.

‘아무리 후계자에서 밀려났다곤 하지만, 이럴 거면 차라리 철거해 버리는 것이 나았을 것을.’

누군가가 십 년 동안 압력이라도 넣지 않고서야, 이런 꼴일 리가 없다.

진혁은 새삼 십 년 전의 자신이 얼마나 무시당하고 살았는지 자각할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당장 정비해 두라고 전하겠습니다.”

주연 역시 폐가를 보고 경악한 것은 진혁과 마찬가지.

재빨리 스마트폰을 꺼낸 그녀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음?’

무너진 보금자리를 살피던 진혁이 무언가를 발견한 것은 그때였다.

“잠깐.”

“네?”

“이런 분위기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군.”

순간, 주연은 손에 쥔 스마트폰을 떨어트릴 뻔했다.

“진심……이십니까?”

“그래. 나는 여기서 머물 생각이니, 침구류와 식사를 부탁하지.”

순간 주연은 진혁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지만, 진혁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오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잃어버린 물건들도 찾아봐야 할 테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미 십 년이나 지난 집에 남아 있는 물건이 얼마나 될 것이며, 그 물건이 멀쩡하다는 보장은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진혁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주연은 더 이상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더 말리기엔 진혁의 눈빛이 영 심상치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경호 인력을 조금 더 강화하도록 하겠습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부디 몸조심하시길.”

그 말과 함께, 주연은 허리를 숙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은 진혁은 그녀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고는 자신의 보금자리였던 폐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있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는 몰골의 기와집.

허나.

“운이 좋군.”

폐가를 바라보는 진혁의 눈엔, 실망의 빛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그의 눈이 기대로 반짝거렸다.

부시럭!

허리춤에 닿는 잡초들을 헤치며, 진혁은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 역시 바깥에서 본 것과 별다를 바는 없었다.

한때 마당이었던 공터는 잡초밭이 된 지 오래였고, 진혁이 생활하던 집은 온통 곰팡이와 담쟁이 투성이.

진혁이 굳이 이 집에 머물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흑마력을 이렇게 쉽게 모을 수 있을 줄이야.’

망령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을 좋아한다.

버려진 집은 망령들의 안식처가 되고, 망령들이 가지고 있던 카르마는 마치 그을음이 묻어나듯이 폐가에 차곡차곡 쌓인다.

카르마가 마나와 섞여 새로운 형태로 변모한 것.

사령술사들은 이를 흑마력이라 부른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구나.”

십 년 동안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폐가다.

쌓인 흑마력의 양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사령술의 기초를 개화하기에는 충분한 양.

“공동묘지라도 돌아야 하나 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겠어.”

진혁은 다 썩어 문드러진 대청마루 위에 주저앉았다. 마룻바닥이 끼익거리는 소리가 불안하게 울려 퍼졌지만, 진혁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공동묘지 한가운데서 자던 때에 비하면 이 정돈 별것도 아니지.’

아직 망령군주가 되기 전, 초보 사령술사 때의 일을 떠올린 진혁은 문득 쓴웃음을 짓고는.

“흐읍.”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스으으으―!

폐가에 잠들어 있던 망자의 힘.

흑마력이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    *    *

‘아무래도 식사는 직접 가져다드리는 게 낫겠지.’

신주연.

서가의 장남, 서진혁의 호위로 배정된 그녀가 도시락을 들고 찾아온 것은 그날 저녁 무렵이 되어서였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십 년 전의 서진혁은 유약한 사내였다.

능력에 비해 과한 것을 물려받은, 그리고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 평범한 사람.

‘하지만, 실제로는 달랐어.’

깨어나자마자 세한의 실세인 서상혁 전무와 대립하질 않나, 굳이 다 쓰러져 가는 폐가에서 자겠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나.

그녀가 조사했던 서진혁의 성격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무래도……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그녀가 지금 도시락을 들고 진혁을 만나러 가는 것 역시 정보수집의 일환.

서가의 식사를 책임지는 특급 숙수들이 만들어 낸 따뜻한 도시락을 든 채, 주연은 폐가로 향했다.

그리고.

“아니……?”

폐가의 정문에 도달했을 때.

놀란 그녀의 고양이 같은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폐가를 잔뜩 뒤덮고 있던 잡초와 담쟁이들이.

‘다…… 죽었어?’

마치 누군가가 제초제라도 쳐 놓은 것처럼, 하나같이 검은색으로 쭈글쭈글하게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독?’

순간, 그녀는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곤 숨을 멈췄다.

‘누군가가, 진혁 님을 노리고 독을 뿌린 거라면…….’

더 늦기 전에, 진혁 님을 구해야 한다.

빠르게 상황을 판단한 주연은 손에 들고 있던 도시락을 그대로 내팽개치려 했다.

“직접 올 줄은 몰랐는데.”

폐가의 안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진.

“그건, 도시락인가?”

태평한 표정으로 죽은 잡초들을 밟으며 밖으로 나온 것은, 다름 아닌 서진혁.

그의 입가엔, 어딘가 모르게 만족스러워 보이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