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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10화 (10/174)

10화

탐욕고의 이 층에 들어설 때부터, 진혁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어째서, 요정의 보구에 망자가 존재하는 거지?’

요정이 사용하는 마법의 원천은 마나.

망자들이 가진 카르마와 흑마력이 그 근원인 사령술과는 애초에 그 출발점이 다르다.

‘그렇다면.’

이 녀석들은 뭐지?

“크으으으.”

진혁은 자신의 뒤에 선 식귀와 두 망령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요정과 망자.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둘이 어째서 함께 있는 것인지 알고 싶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따라가야겠어.’

흑마력의 냄새가 진동하는 방향을 향해, 진혁은 발을 내디뎠다.

값을 매길 수 없는 보구 수십 개가 그를 스쳐 지나갔지만 진혁의 마음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진혁 님,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크으으으…….”

진혁이 말도 없이 앞으로 나서자 성준과 식귀가 당황하며 따라나섰다.

진혁은 대답하는 대신, 자신의 눈에 흑마력을 듬뿍 주입했다.

스으으!

그의 동공 한가운데에서 시퍼런 귀기가 흘러나온다. 그와 함께 눈에 자리한 영안의 힘이 극대화된다.

진혁은 강화된 영안을 이용해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곧, 진혁은 흑마력의 근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중앙인가.’

위치를 파악한 이상,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또각. 또각.

그의 발걸음이 목적지를 향해 가까워져 갔다.

그렇게 십 분쯤을 더 걸었을까.

‘이건…….’

진혁은 진하게 피어오르는 흑마력의 근원을 마주할 수 있었다.

―사과나무……입니까?

뒤따라온 성준이 의아한 투로 물었다.

―이상한 기운이 가득한 게, 평범한 사과나무는 아니군요. 이런 게 왜 탐욕고 안에 있는 건지…….

그의 말대로, 사과나무의 생김새는 특이했다.

숯처럼 시꺼먼 줄기와 나뭇가지, 그 바깥으로 매달린 새까만 나뭇잎과 석탄 덩어리 같은 사과 열매.

마치 검은색 유광 페인트를 쏟아붓기라도 한 것 같은 모양새가, 언뜻 보면 나무가 아니라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형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나무를 바라보는 진혁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자신의 앞에 굳게 뿌리박혀 있는 묵빛 나무의 정체를 진혁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사령수.’

망자가 된 나무.

수명이 다해 죽은 나무에 망령과 흑마력을 불어넣어, 나무가 스스로 흑마력을 생산할 수 있도록 고안된 존재.

‘여기가 영지(靈地)라는 낌새는 못 느꼈는데.’

사령술이 초급을 넘어 더 높은 경지로 향하기 위해서 필요한, 사령술사의 영역.

사령수는 이를 구축하는 데 필수적인 존재다.

꿈속의 사령군주, 파슬란 드 노미크롬 역시 이를 위해 수만 그루의 사령수를 자신의 영지에 심지 않았던가.

‘요정왕이 남긴 탐욕고에, 어째서 사령수가 있는 걸까.’

도통 가늠할 수 없는 일.

허나, 그보다 진혁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서가의 물건에 사령수가 박혀 있다라.’

요정왕의 선물이라지만, 탐욕고는 오롯이 서가의 것이다.

서가의 것이라면 당연히 진혁의 것이 될지도 모르는 것.

자신의 물건에 정체도 알 수 없는 사령술사가 영역 표시를 했다는 사실이.

“식귀여.”

“크으으으.”

불쾌했다.

“부숴라.”

“크으으!”

진혁의 명령과 식귀가 몽둥이를 들어 올린 것은 거의 동시였다.

콰드득!

흑마력을 머금었다고는 하지만 그 근본은 평범한 사과나무.

식귀가 휘두르는 거대한 몽둥이를 버틸 만큼 강력하지는 않았다.

쿵!

아름드리나무가 부러진 숯처럼 박살 나는 데에는, 단 일격으로 충분했다.

“크으으으! 크으으!”

쾅! 쾅!

주인의 심기를 읽기라도 한 듯, 식귀는 손에 쥔 몽둥이와 발을 마구 휘둘러대며 흉물스럽게 남아 있던 나무둥치까지 완전히 으깨 버렸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이라곤 한 때 사령수였던 나무의 산산이 부서진 잔해뿐.

“크아아아!”

사령수를 완전히 박살 내 놓은 다음에야, 식귀는 몽둥이질을 멈추고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이제야 볼만해 졌군.”

산산조각 난 사령수의 잔해를 보며, 진혁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그것도 잠시.

‘흠.’

사령수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던 진혁의 눈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 사령수의 뿌리가 깊이 박혀 있던 곳.

그곳에 다가간 진혁은 바닥을 뒤덮은 시커먼 나뭇조각들을 발로 헤집었다.

곧, 진혁은 반짝이는 물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건…….”

점집에서나 쓸 법한, 주먹만 한 크기의 수정 구슬.

어두운 기운으로 가득 찬 구슬이 부러진 나무 뿌리 아래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 순간.

“정했다.”

진혁은 망설임 없이 바닥에 박혀 있던 구슬을 집어 들었다.

*    *    *

김포의 한 농기구 창고 안.

신주연은 손목시계로 자신의 호위 대상, 진혁이 탐욕고 안으로 들어간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두 시간 반.’

보통의 엽사들이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탐욕고 밖으로 뱉어진다는 걸 생각하면, 진혁은 제법 오래 버티고 있었다.

이미 탐욕고의 시험을 통과했던 주연은 그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삼 층에 도달했다.’

탐욕고에서 머무는 시간은 그 층수에 비례하니, 분명 삼 층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못해도, 삼 품 엽사가 될 자질이 있다는 거겠지.’

삼 층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진혁이 십 년 전에 도전했을 당시의 결과와 비교하면 깜짝 놀랄 만한 성과.

하지만, 그녀는 아직 한 가지 가능성을 남겨 두고 있었다.

‘만약, 세 번째 시험을 통과한다면…….’

가주.

무거운 두 글자가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규율로 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탐욕고의 삼 층을 넘어선 자가 서가의 가주가 되는 것은 가문의 불문율과도 같았으므로.

‘가능성은 낮긴 해.’

마나홀이 파괴되고도 가주의 자리에 올라선 자는 서가의 역사를 통틀어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마나홀이 파괴된 자가 탐욕고의 세 번째 시험을 통과하는 것은, 말이 되는 일인가?

‘어쩌면…….’

그녀는, 세한의 새로운 역사가 탄생하는 순간을 마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거기까지 떠올린 주연이 긴장한 얼굴로 탐욕고와 연결된 지하 계단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쿵! 쿵!

지하 깊숙한 곳으로 이어진 계단 아래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온다.’

분명, 저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는 것은 서가의 장남, 서진혁이리라.

‘과연…….’

주연은 주먹을 꼭 쥔 채, 발소리가 들려오는 계단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하지만.

“크으으으.”

계단 위로 머리를 내민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식귀?”

사람 몸통만 한 크기의 험상궂은 머리통.

그것은, 분명 식귀였다.

‘어째서…….’

정급에서도 윗줄에 해당하는 강력한 괴수가, 탐욕고에서 올라온단 말인가.

녀석을 마주한 주연의 눈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타앗!

그녀의 몸은 머리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쿵!

순식간에 왼발로 진각을 밟은 그녀의 오른 주먹이, 자신의 몸뚱이만 한 식귀의 얼굴 한복판으로 향했다.

근접전에서 최고라 평가받는 서가의 무술.

칠성무(七星武)의 제 일성(一星).

파산권(破山拳).

콰아앙!

삼 품의 엽사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공력이 그녀의 주먹을 타고 폭발한다.

펑!

당연하게도, 계단 위로 삐쭉 내민 식귀의 머리는 그대로 터져 나갔다.

본능적으로 내뻗었다곤 하지만, 을급의 괴수에게도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그녀의 일격이 병급의 괴수에게 통하지 않을 리 없었다.

스릉!

하지만 노련한 엽사인 그녀는 방심하지 않았다.

뒤로 날듯이 물러선 주연은 곧장 롱부츠 안에 숨긴 단검 두 개를 뽑아 든 다음 역수로 거머쥐었다.

‘단숨에 끝낸다.’

언제라도 앞으로 달려들 수 있도록 주연의 자세가 한껏 낮춰진다. 용수철처럼 구부린 그녀의 다리가 터질 듯 부풀어 오른다.

그러나.

“그만.”

그녀가 앞으로 나설 일은 없었다.

“그만.”

그녀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주연은 살기를 누그러뜨렸다.

“……진혁 님?”

“머리를 완전히 부숴 놨군. 이러면 곤란한데.”

또각. 또각.

머리가 날아가 버린 식귀의 뒤편.

그곳에서 태연하게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 진혁을 마주한 주연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뭘 놀라는 거지?”

그러거나 말거나, 진혁은 목만 남은 식귀를 향해 아쉬운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    *    *

세한그룹의 돈줄은 괴수 토벌이다.

괴수 토벌의 주 소득원은 괴수의 사체에서 나오는 각종 부산물들.

때문에, 괴수 토벌을 담당하는 세한보안에서는 괴수의 사체를 운송하기 위해 다양한 크기의 장비를 보유하고 있었다.

김포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거대한 트레일러 역시 그중 하나였다.

“갑자기 탐욕고로 오라니, 대체 무슨 일이야?”

사 품 엽사 권선빈.

세한보안 수송부에서 괴수 운송을 담당하고 있는 그는, 갑자기 떨어진 명령을 받고 탐욕고로 향하고 있었다.

“김포에 괴수가 나타났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거 참.”

그중에서도 세한그룹의 사유지나 다름없는 탐욕고의 주변이라면, 괴수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을 리 없다.

그렇기에, 운전대를 붙잡은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다른 가능성이었다.

“서진혁이 거기 있다던데, 괜히 더러운 일에 엮인 거 아냐?”

십 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지내다 얼마 전 깨어난 세한그룹의 장남.

마나홀도 박살 난 주제에 성인식에 참여하겠다는 헛소리를 하더니, 기어코 오늘 탐욕고 안으로 발을 디뎠다고 들었다.

혹시나 거기에 재벌가의 더러운 암투라도 섞여 있다면…….

“에이, 설마. 마나홀도 없는데 그렇게까지 하겠어?”

선빈은 고개를 휘휘 저으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떨쳐 버리곤, 목적지를 향해 운전대를 틀었다.

곧, 목적지에 도착한 그는 자신이 옮겨야 할 괴수를 마주할 수 있었다.

“뭐, 뭐…….”

머리가 날아가 버리고, 피부가 새까맣기는 했지만 분명 그것은 정급의 괴수인 식귀다.

머리가 날아갔으니, 당연히 살아 있을 가능성은 없을 터.

하지만.

쿵! 쿵!

“뭐, 뭐야 저게!”

어째서 머리 없는 식귀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단 말인가.

“어, 어, 어…….”

고작 사 품에 불과한 그가 내릴 수 있는 판단은 뻔했다.

*    *    *

“……왜 트레일러가 후진하는 거지?”

“……연락해 보겠습니다.”

거대한 트레일러가 전력으로 후진하는 모습을 보며, 진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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