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서가의 본가, 칠성원은 평소 조용한 편이다.
현 가주인 서강진 회장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갈고닦는 것을 중요시하는 서가의 가풍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의 칠성원은 다른 때보다 조금 소란스러웠다.
부르르릉!
소란의 원인은, 다름 아닌 한 대의 트레일러.
그리고, 그 위에 실린 식귀였다.
“뭐야, 식귀잖아?”
“웬일로 괴수 시체가 여기까지 온 거야? 잘못 온 건가?”
괴수의 부산물을 처리하는 시설은 서울 외곽의 공단에 세워져 있었으니, 괴수의 사체가 본가까지 들어오는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든 일.
괴수 운반용 트레일러 위에 실린 목 없는 식귀의 시체를 본 서가 사람들은 호기심을 보였다.
“연구용으로 보낸 모양이지.”
“정급 따위를? 식귀에 대한 정보는 이미 나올 만큼 다 나왔잖아?”
“연구소 놈들이 원래 좀 이상하잖아, 그러려니 해야지.”
물론 호기심은 잠시일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트레일러가 사라지자마자 일상으로 돌아갔다.
허나,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트레일러가 향하는 방향은 연구소가 아니었다.
끼이익!
얼마 전 수리를 끝낸, 서가의 장남이 머물게 될 숙소 앞.
거대한 한옥의 입구에 멈춰 선 트레일러에서 내린 것은, 얼굴이 파리하게 질린 운전자와 두 명의 남녀였다.
“그렇게 겁먹을 필요는 없다. 식귀는 이미 죽은 상태니까.”
“아, 알겠습니다.”
진혁의 말에 운전석에서 내린 선빈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태도는 말처럼 쉽게 변하지 않았다.
목 없는 식귀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광경을 보고도 침착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게 더 신기한 일일 것이다.
“그럼, 밧줄을 풀겠습니다.”
선빈은 떨리는 손으로 식귀를 결박한 마법 밧줄을 하나씩 풀어 내기 시작했다.
혹여나 트레일러에 실린 식귀가 자신의 머리통을 깨부수지는 않을까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흠.’
선빈이 밧줄을 푸는 작업을 천천히 지켜보던 진혁은, 곧 멀리서 들려오는 엔진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방탄 기능은 물론, 대 괴수용 방어 장비까지 장착된 고급 세단.
세한그룹의 회장만이 탈 수 있는 전용 차량이었다.
그 안에 누가 타고 있을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직접 오실 줄이야. 어지간히도 궁금하셨던 모양이지.’
진혁은 자신의 앞에 멈춰선 세단의 뒷좌석을 바라보며 팔짱을 꼈다.
곧, 뒷좌석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한그룹의 회장, 서강진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회, 회장님?”
주연의 인사 소리를 들은 운전수가 트레일러에 묶인 밧줄을 풀다 말고 놀라 허리를 숙였다.
“뭣하나? 하던 일 마저 하지 않고.”
하지만 강진은 둘의 인사에 손을 한 번 휘젓고는, 장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의 표정은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슨 장난질을 한 게냐.”
“장난질이라니,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미 영상으로 모두 확인했다. 탐욕고가 어떤 곳인데, 내가 정말로 모를 거라 생각하는 게냐?”
진혁이 너스레를 떨자 강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왼손으로 트레일러 위에 누운 식귀를 가리켰다.
“저 식귀, 어떻게 움직이는 건지 말해 봐라. 아무리 봐도 살아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들은 것뿐만 아니라, 영상을 통해 직접 눈으로 확인한 사실이었다.
목 없는 식귀가 그 거대한 몸을 일으켜 걷는 모습과 스스로 트레일러 위에 몸을 눕히는 모습, 그리고 그걸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진혁의 모습까지.
그 모든 것을 보고 온 강진은, 이미 이 모든 것이 진혁의 소행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굳이 말씀드려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서가의 가주와 세한그룹의 회장으로서, 마나홀도 없는 아들놈이 어떻게 괴수 시체를 부릴 수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니까.”
살아 있는 괴수를 부리는 능력도 희귀하지만, 죽은 괴수를 부리는 능력은 들어 본 적도 없다.
서가의 근본이 무(武)이긴 하지만, 희귀한 능력을 방치할 만큼 머리가 굳어 있지는 않다.
‘괴수를 부릴 수 있다면, 서가에 도움이 되겠지.’
자그마한 기대를 쥔 채, 강진은 자신의 아들을 향해 눈을 빛냈다.
하지만.
“탐욕고에서 얻은 보상입니다.”
진혁의 답을 들은 순간, 강진은 잠시 동안 입을 열 수 없었다.
“……보상이라고? 저 식귀가?”
“네.”
식귀를 탐욕고에서 얻은 것은 사실이니, 탐욕고의 보상이라는 진혁의 말이 딱히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강진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분명, 삼 층을 넘어섰다면 그 안에 수많은 보구들이 놓여 있었을 터.”
“네.”
“그런데, 그중에서 고른 게 고작 정급의 식귀 따위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이런 미련한 놈.”
식귀는 분명 강력한 괴수다.
그 덩치와 힘 때문에 정급의 괴수 중에서도 윗줄에 속하는 강력한 존재.
그건 다시 말해, 병(丙)급 이상의 괴수를 상대할 수는 없다는 말과 같았다.
“마나홀도 없는 제겐, 써먹지도 못할 보구보단 절 지켜 줄 수 있는 식귀가 더 중요합니다.”
강진의 질책에, 진혁은 담담하게 이유를 설명할 뿐이었다.
사실이 아니긴 했지만, 누구라도 믿을 법한 구실을 붙여서.
물론, 그 변명이 아버지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시간 낭비했군. 네놈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구나.”
괴수 뒤에 숨는 겁쟁이 같으니.
차가운 독설을 내뱉은 강진은 몸을 홱 돌려 차로 돌아갔다. 곧, 회장을 태운 차가 빠르게 멀어졌다.
“어, 어…….”
갑작스레 나타났다 사라지는 회장을 보며, 운전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굳어 버렸다.
죽은 듯한 정적을 깬 것은 진혁이었다.
“아직 밧줄이 덜 풀린 것 같은데.”
“아, 알겠습니다. 이제 거의 끝났습니다.”
진혁의 말에 돌처럼 굳어 있던 선빈의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귀를 칭칭 감고 있던 밧줄이 완전히 풀려 나갔다.
‘일어나라.’
진혁은 누워 있는 식귀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크으으으.”
진혁의 의지를 전해 받은 식귀가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히이익!”
쿵! 쿵!
운전수가 놀라거나 말거나, 식귀는 그 거대한 몸을 진혁의 숙소 안으로 옮겼다.
어지간한 빌라만 한 덩치를 지닌 식귀가 저택을 빙 둘러싼 담장을 줄넘기하듯 넘어가는 장면은, 혼자 보기 아까울 만큼 장관이었다.
―진혁 님, 진혁 님의 힘은 고작 식귀 하나를 부릴 수 있는 정도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의 옆에서 둥둥 떠 있던 성준이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진혁 님이 가진 능력을 공개한다면, 분명 회장님과 가문에서도 진혁 님의 능력을 인정할 겁니다.
‘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말에 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네?
‘다 자라기 전에 이빨을 드러내면, 이빨이 뽑히는 법이다.’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앞마당에 철푸덕 주저앉은 거대한 식귀를 잠시 바라보던 그는, 주연과 선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늘 일정은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진혁 님. 필요한 건 더 없으십니까?”
“밖으로 나갈 일은 없으니, 호위는 필요 없을 거다.”
“알겠습니다.”
“그쪽도 이만 돌아가 보도록.”
“예, 옙.”
곧, 두 사람과 트레일러가 진혁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진혁의 숙소에 남은 것은 진혁과 세 망령, 그리고 머리가 날아간 식귀뿐.
하지만, 진혁은 집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진혁 님,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진혁이 집이 아닌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기자, 궁금증을 느낀 성준이 물었다.
진혁의 답은 짧았다.
“만날 자들이 있다.”
발걸음을 옮기는 진혁의 눈이 번쩍, 빛났다.
* * *
인공섬, 칠성원의 가장 깊은 곳.
그곳에는 괴수와 싸우다 죽어 간 서가의 엽사와 엽사 후보생들을 위해 마련된 묘지, 낙성당(落聖堂)이 세워져 있다.
제한된 면적을 가진 섬의 특성 때문에 묘지가 아닌 빌딩 형태의 납골당으로 지어졌지만, 서가와 인류를 위해 죽어 간 엽사들을 추모하기엔 부족함이 없는 곳.
“카르마가 가득하군.”
어두운 밤이 되어서야 낙성당에 도착한 진혁은 피부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에 눈썹을 살짝 떨었다.
“후읍.”
물론, 망자들과 함께 백 년을 살아온 그가 이런 분위기를 싫어할 리는 없었다.
건물에서 흘러나오는 약간의 카르마를 들이마신 진혁은, 망설임 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제 유골도 여기 어딘가에 있겠군요.
‘보고 싶나? 원한다면 그곳으로 데려다주지.’
―아닙니다. 예전 몸에 미련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쪽으로 가지.’
성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진혁은, 낙성당의 지하로 이어진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지하에 도착한 진혁은 문 앞에 쓰여 있는 팻말을 읽었다.
“‘무명엽사묘역’…… 제대로 왔군.”
백 년 전, 독립전쟁 당시부터 현재까지 목숨을 바친 서가의 엽사들 중 신원을 알 수 없거나, 밝힐 수 없는 자들이 잠들어 있는 구역.
그렇기에, 이곳에 봉안되어 있는 유골엔 이름이 쓰여 있지 않은 것은 물론, 전투나 토벌에서 유해를 수습하지 못해 텅 빈 유골함도 존재한다.
하지만.
‘정말로 텅 빈 건 아니지.’
진혁의 영안은, 이곳의 실체를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복수…….
―날…… 이렇게…… 만든…… 괴수에게…….
―복수를…….
아파트 우편함처럼 빼곡하게 놓인 유골함 위를 맴도는 수많은 망령들.
그 망령들의 상당수는 괴수에게 처참한 최후를 맞은 자들이다.
‘그러니, 이 곳이 가장 적합해.’
계획을 다시 떠올린 진혁은, 품속에서 수정 구슬을 꺼내 들었다.
탐욕고의 삼 층.
그곳의 수많은 보구들 중, 진혁이 선택한 유일한 물건.
진혁은 그 용도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영혼 구슬.’
수많은 망령들을 안에 담아 낼 수 있는, 일종의 영혼 저장고.
아스칸에서도 귀한 취급을 받았던 물건이 어떻게 사령술의 존재조차 찾아볼 수 없는 지구에 나타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망령이여.”
망령군주가 가진 사령술을 그대로 받아들인 진혁에겐, 이만큼 유용한 보구는 찾기 어려웠다.
―산…… 자?
―우릴…… 부른 거야?
흑마력을 끌어 올린 진혁이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지하를 떠돌던 망령들이 진혁을 향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수백, 수천의 도깨비불이 마치 불꽃놀이라도 하듯 퍼지는 것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지만, 진혁은 감탄하는 대신 다음 말을 이어 나갔다.
“복수하고 싶지 않나?”
―복……수……?
―복……수라고?
“이름 모를 괴수에게 당해 시체도 남기지 못하고 죽었으니, 다들 이곳에 있는 것이겠지.”
그러니, 이곳에 모인 망령들이 복수를 중얼거리며 돌아다니는 것도 당연한 일.
“너희에게, 괴수와 맞서 싸울 기회를 주마.”
―괴……수……?
―거……짓말…….
―그래……도…….
―정말……일까……?
진혁의 말에, 모여 있던 망령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춤추던 도깨비불의 파도가 세차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원한다면, 그러니.”
망령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 걸 예상이라도 한 듯, 진혁은 입가에 미소를 짓고는.
“나와 계약을 하지.”
흑마력을 머금어 시퍼렇게 귀기 어린 눈을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