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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14화 (14/174)

14화

흙먼지가 사방을 가렸다.

식귀의 주먹에 담겨 있던 거력이 단숨에 폭발한 순간, 공터 한구석에 쌓여 있던 모래 더미가 사방으로 흩뿌려진 탓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어온 바람에 흙먼지가 씻겨 나갔을 무렵.

“형님.”

서상혁의 입가엔 진한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

“이게 전부입니까?”

한쪽 입꼬리를 올린 그의 시선 끝에 조금 전 자신에게 칠성무의 절기 중 하나, 파산권을 날린 식귀가 있었다.

식귀의 상태는 처참했다.

상혁을 향해 힘껏 휘둘렀던 오른 주먹은 물론, 팔꿈치 아래로 쭉 뻗어 있어야 할 오른팔이 통째로 으깨져 있었다.

다시 휘두르기는커녕, 회복이나 할 수 있을까 싶을 끔찍한 부상.

칠성무의 고급기술, 반탄벽의 묘용이 식귀의 팔에 고스란히 전해진 결과였다.

“그래, 아직 왼팔이 남아 있으니 어디 더 해 보시죠. 그 왼팔이 멀쩡할지는 모르겠지만.”

상혁은 승리를 확신했다.

‘식귀가 파산권을 날릴 줄은 몰랐지만…….’

결국, 압도적인 힘의 격차 앞에선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

‘세한은 가장 앞서야 하는 법.’

못난 형이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앞세운 순간, 그의 승리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흠.”

자신의 식귀가 전투 불능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음에도, 진혁은 동요하지 않았다.

‘충격이라도 받은 건가?’

마치 동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 진혁을 보며, 상혁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콜록, 콜록. 승패가 결정 났군.”

결투의 증인, 글리펜이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손을 휘저으며 허공을 부유하는 흙먼지를 쓸어 낸 난쟁이의 입에서, 대결의 결과가 짧게 흘러나왔다.

“승자는 서진혁이다.”

그 결과가, 상혁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네? 뭐라고요?”

난쟁이의 말에, 상혁의 생각이 뚝 하고 멈췄다.

가만히 굳어 있던 그가 글리펜을 향해 고성을 터트린 것은 몇 초 뒤의 일이었다.

“어, 어르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이고, 시끄러워. 기차 화통이라도 삶아 먹었냐?”

“잘 보십쇼, 어르신.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게는 아무런 상처도 없단 말입니다! 저 식귀는 팔이 뭉개졌고요!”

얼굴이 벌게진 채, 상혁은 검은 식귀를 향해 마구 삿대질했다.

아무리 글리펜이 회장인 아버지조차 쉽게 대할 수 없는 가문의 어르신이라곤 하지만, 그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거, 참.”

하지만 이어지는 글리펜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발밑이나 보고 말하지 그래?”

“발밑……?”

그 말과 함께 난쟁이가 상혁의 발밑을 가리키자, 상혁의 시선이 저절로 아래를 향했다.

이윽고.

“이건……!”

자신이 딛고 서 있던 바닥을 확인한 상혁의 두 눈이 커졌다.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식귀의 기세에 눌려 뒷걸음질을 친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삼품에 이른 자신이 몰랐을 리 없다.

상혁이 바닥에서 발견한 것은, 그와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밀려……났어?”

자신의 앞으로, 한 발짝 만큼 길게 이어져 있는 발자국.

그 두 뼘 남짓한 크기의 자국이,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말해 주고 있었다.

식귀가 펼친 파산권의 압도적인 힘이, 상혁의 몸을 바닥째로 밀어낸 것이다.

“이, 인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상황을 파악했음에도 상혁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건 그냥 바닥이 밀린 거지, 제가 물러난 게 아니란 말입니다!”

이대로 그냥 물러서기엔, 너무나 많은 것을 걸었다.

아다만티움은 게이트 너머에서도 드물게 발견되는 금속.

언제 다시 얻을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 판국이었으니, 이렇게 허무하게 내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서상혁.”

그를 바라보는 진혁의 눈은 싸늘했다.

“방금 네 말, 아버지께 그대로 전해도 되겠나?”

“그건…….”

“서가에 속한 자라면, 서가의 규율을 지켜야 하는 법. 아니면, 가문의 일원임을 포기할 셈이냐?”

순간.

상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 서강진이 가장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 그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가져가십쇼.”

상혁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입술을 깨무는 것뿐이었다.

*    *    *

“에잉, 녀석. 차나 한잔하고 가라니깐, 애처럼 삐져 가지고는.”

이 층의 창문 너머로 검은 세단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던 글리펜은 혀를 끌끌 찼다.

‘흠.’

책상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 난쟁이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진혁은 생각에 잠겼다.

‘나쁘지 않았다.’

좋은 결과였다, 라고는 할 수 없었다.

동생이 자신을 얕본 덕에 결투의 규칙이 진혁 자신에게 극도로 유리했을 뿐, 결투의 전반적인 과정은 처참하기 그지없었으니까.

‘실전이었다면, 아마도 내가 졌겠지.’

식귀가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그의 목은 이미 하늘을 날고 있었으리라.

‘파슬란처럼.’

십 년 동안 꿔 왔던 꿈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린 진혁은 슬며시 눈살을 찌푸렸다.

―죄송합니다, 진혁 님.

그의 머릿속으로 지금쯤 트레일러 위에 얌전히 누워 있을 식귀…… 아니, 성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식귀의 힘을 다루는 데 서툴러 상처를 입었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오른팔이 날아간 충격이 제법 컸던 것일까.

진혁의 머릿속에 들려오는 그의 말엔 힘이 없었다.

‘아니,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삼품의 엽사를 상대로 뭔가를 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니까.’

어찌 되었건, 결과적으론 원하는 것을 얻어 내지 않았던가.

그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나머진…….’

저 녀석이 채워 줄 것이다.

사장실 책상 위에 얌전히 놓인 검은 상자를 바라보며, 진혁은 앞으로의 계획을 정리했다.

“그래, 이제 우리 차례지?”

진혁의 상념을 깨트린 것은, 글리펜의 걸걸한 목소리였다.

“자, 우선…… 우리 귀염둥이부터 만나 볼까?”

글리펜의 목소리에서 숨길 수 없는 기대감이 흘러나왔다. 그의 무쇠처럼 단단한 손이 작은 상자로 향했다.

딸깍!

경쾌한 소리와 함께 검은 상자가 입을 벌렸다. 진혁의 눈이 순간 빛났다.

‘이게…….’

아다만티움.

상자 안에 든 것은, 어린아이 주먹만 한 크기의 새까만 쇠구슬이었다.

왁스라도 칠한 듯 광택으로 번들거리는 것이 마치 흑진주와도 같은 모습.

“아다만티움이라, 오 년 만이군.”

면장갑을 낀 손으로 조심스럽게 구슬을 들어 올리는 글리펜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난쟁이는 연신 침을 꿀꺽 삼키며 스마트폰을 들이댔다.

찰칵!

“에잉, 사진으로는 이 광택이 제대로 안 나온단 말이지.”

글리펜은 스마트폰에 찍힌 아다만티움의 사진을 살펴보며 입맛을 다시고는, 재차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진혁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어르신.”

“아이고! 미안, 미안. 나도 모르게 그만, 허허.”

나지막한 진혁의 목소리에 난쟁이는 멋쩍은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는, 진혁을 향해 아다만티움이 담긴 상자를 밀어냈다.

“그래, 이제 이건 진혁이 네 것이지. 욕심나니까 빨리 내 눈 앞에서 치워 버려.”

그러면서도, 난쟁이의 눈은 상자 속 검은 구슬에서 도무지 떨어지지 않았다.

“가져갈 생각은 없습니다.”

허나, 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그, 그래?”

“다룰 줄도 모르는 제가 가져가 봐야 비싼 쓰레기일 뿐입니다. 차라리 어르신께 맡기는 게 낫습니다.”

아다만티움은 그 강도와 특성만큼이나 가공이 어려운 금속.

수십 년 동안 경력을 쌓아 온 장인이 온갖 기계와 술법을 사용해야 겨우 쇳물로 녹여 낼 수 있다.

진혁이 아는 사람 중, 수백 년 동안 금속과 싸워 온 눈앞의 난쟁이만큼 아다만티움을 잘 다룰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커흠.”

진혁의 말에 글리펜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헛기침을 내뱉고는, 애써 평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뭐, 보면 알겠지만 양이 적으니 상혁이 네가 원하는 크기의 장비는 만들기 힘들어. 기껏해야 겉에 살짝 도금하는 정도. 그것도 두 개에서 세 개 정도가 한계지만.”

“생각보단 많군요.”

“인간들이 하는 것보다는 훨씬 얇게 씌울 수 있으니까. 이것도 기술이지.”

“마침 잘됐군요.”

의기양양해진 글리펜의 말에,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비를 만드는 게 아니라, 다른 걸 할 생각이거든요.”

“다른 거라고? 식귀가 아니라, 네 몸에 쓸 장비가 필요한 게야?”

“그건 아닙니다.”

뒤이어, 진혁의 말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지?”

“물론입니다.”

반쯤 미친놈처럼 자신을 바라보는 난쟁이를 향해, 진혁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    *    *

진혁과 글리펜이 아다만티움의 용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

―전무님, 이런 식이면 곤란합니다.

도로를 달리는 검은 승용차 안에선 비밀스러운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번 원정에 걸고 있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 전무님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스마트폰 너머로 들려오는 한숨 섞인 목소리.

짜증이 반쯤 섞인 사내의 잔소리에, 서상혁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잘 압니다. 그래서 저도 열심히 준비하는 중이지 않습니까?”

―잘 아는 분께서 아다만티움을 그렇게…….

하지만 사내의 잔소리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이번 원정에서 아다만티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무님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 결투인지 뭔지만 하지 않았더라도…….

“그만.”

순간, 상혁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스마트폰 너머에서 들려오던 잔소리가 뚝 하고 멎었다.

“그건 우리 가문의 일입니다. 제가 실수한 건 인정하겠습니다만, 그걸 빌미로 서가의 일에 참견할 생각은 마십쇼.”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상혁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사내는 더 이상 잔소리를 이어 나갈 수 없었다.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원정 전까지, 반드시.”

―부디, 해결할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젠장, 내가 그럴 줄 알았냐고.”

퍽!

통화가 끊어짐과 동시에, 상혁은 표정을 구기며 스마트폰을 집어던졌다.

조수석에 맞고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는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상혁은 이를 갈았다.

“좀 있으면 무혁 형님도 돌아오실 텐데…….”

서무혁.

둘째 형이자 자신의 가장 유력한 경쟁자.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해외로 파견 나갔던 그가 돌아온다는 건, 상혁에게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이번 원정을 급히 계획한 이유 역시, 둘째 형이 귀환하기 전에 실적을 쌓기 위함이지 않았던가.

원정의 핵심인 아다만티움을 잃어버린 이상, 무언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어쩔 수 없지.”

잠시 고민하던 상혁은 스마트폰을 주워 들었다. 그의 손이 화면 위를 바쁘게 움직였다.

“어, 나다. 해 줘야 할 일이 하나 있어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상혁의 눈빛이 스산하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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