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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23화 (23/174)

23화

인천은 한국의 최전방 중 하나다.

한국에서 에피로나로 통하는 유일한 게이트가 위치했기 때문.

그렇기에, 오 대 엽사 가문과 대한엽사회에서는 인천을 중립지대로 지정했다.

‘허상일 뿐이지만.’

겉으로만 중립일 뿐, 실상은 각 가문의 사주를 받은 중소길드들이 대리전을 벌이는 전장일 뿐이다.

괴수와 게이트가 삶의 일부로 자리를 잡은 현대에, 게이트 너머에서 괴수를 잡을 수 있는 ‘특권’은 그만큼 귀중한 것이니까.

“그럼, 중립을 깨는 겁니까?”

진혁의 의문은 여기에 있었다.

“다른 가문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텐데요.”

서가의 세력이 다른 가문이나 길드보다 강하다곤 하지만, 한국의 모든 엽사를 발아래 둘 정도는 아니다.

잘못하면 모든 엽사의 공적이 되어 가문 자체가 지워질지도 모른다.

“그건 아니야. 인천이 중요하긴 하지만, 세한을 걸 정도는 아니지.”

그 말에 세한의 회장, 서강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순간, 강진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우리에게 칼을 들이미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

말을 마친 강진이 무언가를 내밀었다.

몇 장의 서류였다.

“받거라.”

진혁은 아버지가 내민 서류를 받아 들었다. 서류의 맨 앞장을 대강 훑은 그는 아버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청 길드들에 문제가 있군요.”

그가 받아 든 서류의 맨 앞장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세한보안 산하 길드의 불온 동향]

그 아래로 적힌 것은, 세한보안이 투자한 군소 길드의 현황에 대한 요약들.

“세한이 인천에 투자한 것도 벌써 삼십 년이 넘었다. 그걸 두 눈 뜨고 빼앗길 수는 없는 일이지.”

“그럼, 지키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지키기만 하는 것으론 부족하지. 그 이상이 필요하다.”

“그럼.”

곧, 진혁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똑같이 돌려주면 되겠군요.”

인천은 수많은 세력이 길드라는 이름의 체스 말을 움직이는 곳.

그들이 세한의 말을 빼앗으려 했으니, 이번엔 우리가 빼앗아 올 차례였다.

“그래, 할 수 있겠느냐?”

그 답이 퍽 만족스러웠는지, 강진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아들을 지긋이 바라봤다.

진혁의 답은 짧았다.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강진의 미소가 한층 더 진해졌다.

*    *    *

어느덧 봄을 지나 초여름이 되었지만, 인공호수 한가운데 위치한 칠성원의 밤 날씨는 아직 서늘했다.

‘아니, 기분 탓인가?’

날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오싹함에 신주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 나무인가? 아니면, 식귀나 천둥비룡?’

그녀가 위치한 곳은 서진혁이 머무는 칠성원 내의 유일한 한옥.

마당에 심어진 불길한 색의 나무나 은빛 투구를 뒤집어쓴 식귀, 그리고 몸을 돌돌 만 채 눈을 감은 천둥비룡.

그 모든 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싸늘함이 느껴졌다.

“신 팀장,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닙니다.”

진혁의 물음에 주연은 고개를 젓고는, 자신의 최중요 호위 대상을 바라봤다.

‘서진혁.’

세한그룹의 장남이자 사 품의 엽사.

그리고.

‘서가의 차기 가주 후보.’

십 년 전에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연거푸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온 지금에 와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비록, 세한의 이념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말이지.’

그녀가 이 한밤중에 진혁의 부름을 받고 찾아온 이유 역시, 그와 무관하지 않았다.

“무슨 일로 찾으신 겁니까?”

주연의 물음에, 진혁은 대답 대신 손에 들린 사원증을 내보였다.

[토벌 3팀]

[서진혁 팀장]

북두칠성을 형상화한 회사 로고 옆에 새겨진 그의 사진과 직책.

“팀장이 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그녀는 곧장 진혁에게 축하를 보냈다.

‘회장님께서, 가주 후보로 마음을 정하신 게 분명해.’

서가의 다른 아들들도 진혁과 마찬가지로 시험했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단지.

‘날 부른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호위 3팀의 팀장인 그녀가 왜 이곳까지 불려 왔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을 뿐.

“혹시, 축하가 필요하셨던 겁니까? 그렇다면 다른 팀원들도 불러 오겠습니다.”

“그럴 리가.”

왠지 불만스러워 보이는 주연의 말에 진혁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께서 토벌 3팀을 맡기시면서, 팀 구성에 대한 전권을 주셨다.”

“그렇다면, 팀원으로 적합한 인물을 찾으시는 거군요.”

그제야, 그녀는 진혁이 자신을 찾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런 거라면, 명단을 추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세한의 엽사 중, 괴수와 직접 맞서 싸우고 성장할 수 있는 토벌 팀에 들어가는 것을 거절할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

기존 토벌 팀의 엽사들에 비하면 부족한 실력이겠지만, 팀의 머릿수를 채우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으리라.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머릿수를 채우는 게 아니었으니까.

“신 팀장.”

“네.”

“토벌 3팀으로 와라.”

“……네?”

당황한 그녀가 저도 모르게 눈을 끔뻑였지만, 진혁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이게 가장 좋은 선택이다.’

신주연.

그녀야말로, 진혁이 알고 있는 사람 중 가장 쓸 만한 자였으니까.

‘삼 품의 엽사인 데다 사람도 다룰 줄 알고, 머리도 제법 돌아가는 편이지.’

그를 도와 토벌 팀을 이끌기에 넘치면 넘쳤지, 부족하지는 않은 자였다.

“직책은 부팀장이겠지만, 호위 팀의 팀장보다는 토벌 팀의 부팀장이 낫겠지. 당분간은 어렵겠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에피로나로 원정도 갈 수 있을 것이고.”

“제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물론.”

그녀의 물음에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십 년 만에 깨어나긴 했지만, 엽사들이 뭘 원하는지 정돈 잘 알고 있다.”

말을 이어 나가는 진혁의 표정엔 강한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괴수를 죽이는 것.”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는 하지만, 그 사실마저 변하지는 않았을 터.

“그게 아니라면 애초에 이 길에 들어설 리 없지, 안 그런가?”

복수를 원하건, 힘을 원하건, 부를 원하건.

저마다의 이유로 엽사를 택한 이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결국 괴수와 맞서 싸워야 한다.

“내가 그 기회를 주지.”

말을 마친 진혁의 시선이 주연과 맞닿았다. 오만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그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정말,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주연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주연은 게이트 너머에서 활동할 수 있는 삼 품의 엽사.

그렇기에, 그녀가 원한다면, 토벌 팀에 들어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토벌 팀에 들어가 괴수를 토벌하지 않은 것은, 오로지 그녀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

‘이건, 거절할 수밖에 없겠어.’

이미, 받아들일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

그렇게 생각한 주연은 진혁의 제안을 거절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주연아.’

순간.

오랫동안 마음 깊숙이 묻어 두었던 누군가의 얼굴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어째서?’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한 사람.

“함께하겠나?”

그녀의 앞에서 손을 내미는 진혁의 얼굴에, 그 얼굴이 겹쳐 보인다.

‘말도…… 안 돼.’

기억 속의 누군가와 너무나도 닮은 그 모습에, 주연은 놀라 잠시 주저했다.

“싫은 건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그녀를, 진혁의 손이 재촉한다.

결국.

“……알겠습니다.”

그녀는, 홀린 듯 진혁의 손을 맞잡았다.

*    *    *

주연이 제안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진혁은 토벌 3팀이 해야 할 일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우선은, 세한 산하의 길드들이 이탈하는 것을 막아야겠군요.”

“정확하다.”

“그렇다면.”

진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연은 자기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길드들이 동요하기 시작한 이상, 다른 가문에서 들어오는 공작을 막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면?”

“차라리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은 어떨지요.”

진혁이 눈짓하자, 그녀의 설명이 이어졌다.

“분명 처음부터 다른 가문과 결탁해서 일을 주도한 길드가 있을 겁니다. 각 길드의 대표들을 불러 모은 다음, 이 사태의 주모자를 찾아내 어떤 방식으로든 처리한다면 다른 길드의 동요를 막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그들을 칠성원으로 불러오란 건가?”

“아닙니다.”

주연은 고개를 저었다.

“저희가 인천으로 가야 합니다.”

“흠.”

주연의 말이 이어질수록, 진혁의 눈은 차차 아래로 가라앉았다.

“엽사들을 모아 인천으로 간다면, 주모자들은 어떻게든 반응을 보일 겁니다. 운이 좋다면, 조급하게 일을 벌일 가능성도 있겠죠.”

말하자면, 일종의 무력시위였다.

세한의 품을 벗어나려 하는 자들에게, 세한의 힘을 직접 보여 주는 것.

딴마음을 품고 있다면, 어떤 식으로건 반응을 보이게 되리라.

“그러려면 팀원을 충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가 위협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요.”

현재, 토벌 3팀의 인원은 팀장인 진혁과 그녀가 전부.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제대로 된 팀으로 굴러가기 위해선 더 많은 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니.”

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의 팀원은 뽑지 않을 생각이다.”

“……팀장님, 두 명만으로는 토벌 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주연은 한숨이 나오려던 것을 간신히 참아 냈다.

“두 명만으로는 제대로 던전을 토벌할 수 없다는 건, 팀장님도 이미 알고 계시잖습니까.”

초상 능력을 사용하는 엽사는 개인의 힘도 강력하지만, 집단의 힘은 더욱 강력하다.

서로가 가진 다양한 종류의 능력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면서 발생하는 시너지는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니까.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주연은 진혁의 의견을 따를 수 없었다.

하지만.

“왜, 둘뿐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네?”

진혁의 말에, 그녀는 무심코 의문을 표했다. 진혁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내 팀에는 당연히 저 녀석들도 들어가게 되겠지.”

그 말과 함께, 진혁은 손가락으로 마당에 자리를 잡은 천둥비룡과 식귀를 가리켰다.

망령군주의 힘을 얻은 그가 지구에서 새롭게 얻은 망자들.

저들이 가진 힘이라면, 어지간한 엽사들과 비교하더라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숫자가 부족한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정급과 병급의 괴수가 강력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토벌 팀이라 칭하는 것은 무리다.

토벌에선 개개인의 강함도 중요하지만, 숫자의 위력이 더 중요한 때도 있는 법이니까.

“물론, 숫자를 늘리긴 할 것이다.”

그녀의 말에, 진혁은 항상 품속에 간직하고 있는 수정 구슬을 꺼내 들었다.

낙성당에서 계약했던, 괴수의 피에 굶주린 수많은 엽사의 망령이 잠들어 있는 구슬.

‘굳이, 그게 산 사람일 필요는 없지만.’

진혁의 시선이 구슬 속을 유영하는 망령들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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