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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52화 (52/174)

52화

게이트가 열리고 괴수가 등장했을 때.

인류는 생존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엔, 육지와 연결되지 않고 고립된 섬들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육지의 지원이 닿지 않는 섬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괴수의 영역으로 굳어졌다.

그것은 인류가 승리를 쟁취한 1945년 이후에도 마찬가지.

몇몇 섬을 제외하면, 육지의 괴수를 토벌하기에도 바쁜 상황에서 섬 한두 개를 차지하기 위해 엽사들을 보낼 만한 가치는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서진혁은 대체 왜 강화도를 탐내는 거지?’

이설화는 멀찍이 떨어져 있는 진혁을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화도가 섬치고는 크긴 하지만, 괴수들을 밀어내고 차지할 만큼 매력적인 땅은 아닌데.’

중요한 지하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작은 섬들을 간척해 이어 붙였을 뿐인 땅.

백 년도 지난 옛날에야 인삼 따위의 특산물들이 나는 곳이었지만, 사람이 살지 않게 된 지 백 년이 흐른 지금에 와선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이야기다.

이런저런 이유로 던전에 들어가지 못하는 몇몇 엽사들이 밀렵을 위해 들어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버려진 곳.

얻는 것에 비해선, 그 위험성이 너무 크지 않은가.

‘아니.’

어쩌면, 그게 아닐지도.

설화의 시선이 주변의 해골들에게로 향했다.

딱딱! 딱딱딱!

어느새 백 단위로 불어난 해골들이 하는 일은 단순했다.

괴수를 죽이고, 옮기고, 다시 괴수를 죽이는 일의 반복.

‘무슨 괴수 도축장도 아니고. 이러니까 시도라도 할 수 있는 거겠지만…….’

그래도, 고작 훈련장을 만들기 위해 이런 짓을 한다고?

24시간 쉬지 않고 이루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며, 그녀는 진혁의 의도를 헤아려 보려 애썼다.

하지만 정작 진혁의 생각은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역시, 그랬나.’

저 멀리, 서해 바다 어딘가에 위치한 두 마인을 확인한 진혁은 피식 웃었다.

처음부터 이상했다.

아무리 밀렵꾼이라고는 하지만, 사품의 엽사 단둘이서 섬에 들어서는 건 자살행위였으니까.

그리고.

‘그 얼굴.’

분명, 남자의 얼굴은 윤가람에게 마기가 담긴 환약을 넘겨준 장본인이었다.

윤가에 알려 놈을 찾으려 했지만 이미 자취를 감춘 상태였는데, 여기서 만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잘된 일이지만.’

자신을 노리는 저 둘을 잡을 수 있다면,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놈들을 생포한다 해도 쉽게 정보를 얻지는 못하겠지만, 상관없었다.

‘살려서 얻지 못한다면, 죽여서 얻으면 될 뿐.’

그는 망령군주, 파슬란 드 노미크롬의 사령술을 이어받은 자.

살아 있는 사람의 입을 여는 것보단, 죽은 망령의 기억을 뽑아내는 게 더 편하다.

“뭐야, 표정이 왜 그래? 뭔 일이라도 있어?”

진혁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자, 다가온 설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진혁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뭐야, 싱겁게.”

그녀는 김 샌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진혁은 곰방대를 든 채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본 다음.

‘일어나라.’

교향악단의 지휘자처럼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그와 동시에.

스으으!

검은 심장이 품고 있던 진한 흑마력이, 진혁의 의지를 따라 먼 곳으로 뻗어 나갔다.

천둥비룡 멜리나가 배 아래에 매달고 있던 거대한 금속 바구니를 향해.

*    *    *

바다 위에서 기회를 엿보던 두 마인이 움직인 것은 다음 날 새벽이었다.

새벽녘의 어둠과 서해의 짙은 안개에 몸을 숨긴 둘의 몸은 서서히 석모도를 향해 가까워져 갔다.

“그래도 저놈들, 제법 숫자가 많아 보이는데 괜찮을까?”

바다 위를 날던 여자가 옆의 남자를 향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삼 품 엽사가 셋인 데다가, 괴수들도 있잖아. 다른 애들도 좀 더 데려와야 하는 거 아냐? 혹시나 실패해서 대주가 화내기라도 하면…….”

의기양양했던 낮과는 달리, 그녀의 얼굴엔 약간의 두려움이 내려앉아 있었다.

“걱정하지 마, 나도 바보는 아니니까.”

하지만 남자는 그 말에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서진혁, 그놈 하나만 처리하면 돼. 나머지는 섬의 괴수들이 알아서 해결해 줄 테니까.”

그들이 사흘 동안 관찰한 결과, 서진혁이 부리는 괴수 군단은 분명 위협적인 존재.

하지만, 서진혁 본인은 그렇지 않았다.

마나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오 품의 엽사만도 못한 연약한 육체.

놈의 빈틈을 노릴 수만 있다면, 손쉽게 끝장낼 수 있으리라.

“그러니까, 우리가 할 일은 하나야. 놈을 죽이고 섬을 떠나는 거. 쉽지 않아?”

“그, 그런가?“

남자의 말에 그녀는 조금 용기가 난 듯 표정을 풀었다.

하지만.

“그러니까, 놈이나 빨리 처리하고 대주한테 가서…….”

남자는 말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쐐애애액!

저 멀리, 섬이 있는 방향으로부터 들려오는 파공성.

스으으으!

남자는 본능적으로 마기를 움직여 자신의 시력을 강화했다.

이윽고.

“저, 저게 뭐야?”

소리의 정체를 확인한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뼈로 만들어진 듯 하얗게 빛나는 창과 방패들.

수십 개의 병기가 안개를 가르며 빠른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누구의 것인지는,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서진혁, 분명 그놈이야.”

저 섬에서, 날아다니는 창과 방패 따위를 보낼 수 있는 건 놈밖에 없으니까.

단지, 이해할 수 없는 건 하나뿐이었다.

“젠장, 어떻게 우리 위치를…….”

서진혁이 처음부터 감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짐작조차 못 한 채, 남자는 인상을 썼다.

“계획은 이미 실패했어, 빨리 돌아가야 돼!”

놀란 그녀가 남자를 재촉했다. 그 와중에도 거대한 창과 방패들이 자신들을 향해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젠장, 별수 없지. 돌아가자!”

이번 일로 대주에게 야단을 좀 맞긴 하겠지만, 계획이 들킨 이상 다른 방법은 없었다.

스으으!

두 남녀는 마기를 가득 끌어 올렸다.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검은색의 기운이 둘의 전신을 감쌌다.

마인들의 고유한 능력 중 하나, 위상 변화.

능력이 발동되는 순간, 그들의 육체는 이 차원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게 되리라.

허나.

“젠장, 너무 빨라!”

그들의 능력이 발현하는 것보다, 병기들이 날아오는 것이 더 빠르단 게 문제였다.

이러다간 다른 차원으로 날아가기 전에 그들의 몸이 먼저 벌집이 될 판.

“일단 다 부수고 빠져나가자!”

시간이 부족하단 사실을 직감한 여인은 끌어올린 마기의 배열을 바꿔 나갔다.

곧, 그녀가 끌어 올린 마기가 거품처럼 불어나면서 그녀의 전신을 감싸 안았다. 피부와 한 몸이 된 기운이 이내 금속처럼 단단해졌다.

“간다! 엄호해 줘!”

검은 갑옷을 걸친 그녀의 눈은, 조금 전과는 달리 살의로 빛나고 있었다.

쾅!

폭발음과 함께 검은 갑옷을 입은 여자가 창과 방패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별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귀찮게 하기는!”

창과 방패에선 별다른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사실을 확인한 그녀는 코웃음 치며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스으으으!

갑옷에서부터 자라난 마기의 칼날이 마치 사마귀처럼 그녀의 양팔을 감쌌다.

“자, 어디 와 봐!”

쾅! 쾅!

허공을 걷어차는 그녀의 눈빛이 살기로 번들거린다, 발 뒤에서 연달아 이어지는 폭음과 함께 몸에 가속이 붙는다.

그러나.

그녀와 놈들 사이의 거리가 충분히 좁혀졌을 때.

‘……뭐야.’

그녀는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금 전과 달리, 수십 개의 창과 방패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으니까.

불쾌할 만큼 깨끗하면서도 차가운, 푸른빛을 띄고 있는 기운.

“물의 정령……이라고?”

그것도, 평범한 수준이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파도와도 같은,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느껴지지 않았던 강대한 정령의 기운.

“어, 어째서?”

살기로 가득했던 그녀의 눈빛이 조금씩 떨려 왔다. 양팔에 돋아난 마기의 칼날이 어느새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마, 막을 수 없어.’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폭풍처럼 거대한 정령력 앞에서, 자신은 한낱 나룻배에 불과한 존재란 사실을.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휩쓸려 박살 날 뿐이다.

“진우! 도, 도와줘! 나 혼자선…….”

그녀가 간절한 표정으로 뒤를 향해 외쳤다.

하지만.

“……없어?”

자신을 엄호해 주기로 했던 남자는,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

“마, 말도 안 돼……!”

당황한 그녀가 채 몸을 돌려 적을 막아 내기도 전.

쐐애애액!

냉기를 한껏 머금은 병기들이, 그녀를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었다.

*    *    *

“후우.”

석모도의 남쪽에 마련된 전진기지.

그곳의 수많은 텐트 중 하나에서 눈을 감고 있던 진혁은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쿵!

진혁의 옆에 서 있던 스켈레톤 킹, 자이츠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팀장님, 괜찮으십니까?”

지축을 울리는 진동을 느끼고 설화와 주연이 텐트 안으로 달려왔다.

각기 총과 검을 쥔 둘의 표정은 당황으로 가득 차 있었다.

둘의 반응에 슬쩍 눈을 뜬 진혁은 손을 휘저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돌아가라.”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거 맞아? 낯빛이 영 아닌데. 저 해골은 또 왜 저래?”

“팀장님, 아무래도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여태 한숨도 못 주무셨잖습니까.”

하지만 진혁과 자이츠의 모습을 본 둘은 걱정을 지우지 못했다.

“아니, 정말 아무 일도 아니다. 나도 곧 쉴 테니, 들어가 봐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고.”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팀장님. 바로 달려오겠습니다.”

진혁이 재차 손을 휘젓고 나서야, 둘은 텐트 밖으로 사라졌다.

―끄으응. 주군, 거 힘을 너무 빨아 갔소. 말 그대로 일어설 힘도 없구려.

두 여자가 사라지자, 진혁의 머릿속에 자이츠의 앓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이 지나면 곧 회복될 거다. 덕분에 위험 요소는 확실히 제거했으니, 충분히 쉴 시간을 주마.”

하지만 말을 내뱉은 진혁의 얼굴도 하얗게 질린 것은 마찬가지.

심장의 흑마력을 지나치게 뽑아 쓴 탓이었다.

‘그래도, 마인 하나를 처리하긴 했군.’

이제, 마인의 영혼을 데려오기만 하면 정보를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혁은 그럴 수 없었다.

‘이건…….’

허공에서 튀어나온 검은 무언가가, 마인의 영혼을 순식간에 삼켜 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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