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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63화 (63/174)

63화

영혼은 명계와 현계를 연결하는 순환 시스템의 근원이다.

현계의 업을 명계에서 씻어 내고, 깨끗해진 영혼이 다시 현계로 돌아가는 일련의 과정은 이 세상이 유지되는 기본 원리 중의 하나.

그러나.

겉보기에 완벽해 보이는 이 시스템에도 미약한 오류는 존재한다.

‘아귀.’

어떠한 이유로 인해 변질된 영혼.

단순히 변질되었을 뿐이라면 명계로 보내면 될 뿐이겠지만, 아귀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다른 영혼을 잡아먹는 영혼이니까.’

명계와 현계 간의 순환 시스템을 근원에서부터 무너트리는 암세포 같은 존재.

그렇기에, 명계의 지상 대리자인 사령술사의 임무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아귀의 사냥이었다.

‘지구에선 한 번도 본 적 없었는데 말야.’

한강 변이 보이던 신전의 창문을 완전히 가린 거대한 어둠.

아귀의 형체를 바라보며, 진혁은 인상을 찌푸렸다.

‘저 정도 크기라면, 얼마나 많은 영혼을 먹었는지 짐작도 할 수 없겠어.’

사령술사가 제법 활동했었던 아스칸이라면, 저런 아귀들은 제대로 성장하기도 전에 제거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령술이라곤 흔적밖에 보이지 않는 지구에선 불가능한 이야기.

누구의 의심도 받지 않고, 자유로이 돌아다니며 떠도는 망령들을 수없이 잡아먹으며 그 몸집을 불려 왔으리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저 정도 크기라면, 파슬란이 직접 와야 할 정도다.’

엽사의 등급으로 친다면 못해도 일 품.

수천 년을 사는 용종을 기준으로 해도 성룡의 힘을 지닌 존재.

아직 영지를 완성시키지 못한 진혁의 수준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적수였다.

‘놈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문제고.’

영을 느낄 수 있는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저놈의 기척조차 느끼지 못하리라.

그러나.

콰아아앙!

아귀가 만들어 내는 파괴는 분명 현실이었다.

“공격이다!”

“감지, 감지 장비는 어딨어?”

“감지 장비가 탐지를 못 합니다!”

“고장 난 거 아냐?”

기척도 없이 파괴되는 신전의 외벽.

볼 수도,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존재를 마주한 엽사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감각으로 느낄 수 없는 적이라니.”

“정말 골치 아픈 놈이군.”

최현이나 서강진을 비롯한 강력한 엽사들은 아직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마땅히 상대할 만한 방법이 없는 것은 그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박진호, 그놈은 어딨나 그놈 감지 능력자잖아!”

“현재 병 급 던전 토벌 중입니다!”

“젠장, 하필 이럴 때…….”

우웅!

직원의 말에 최현은 인상을 찌푸리고는 체내에 가득 담긴 마나를 끌어모았다.

이내, 그가 오른손을 위로 들어 올린 순간.

만무결(萬武結)

태극벽(太極壁)

최현이 들어 올린 손으로부터 회색의 오러가 분수처럼 공중으로 쏘아졌다가 내려왔다.

곧, 그를 중심으로 흑백으로 나뉜 반구형의 회오리가 신전의 절반을 집어삼켰다.

적의 공격을 흘려내는 것만큼은 최상급의 능력을 지닌 방어 기술.

“우선은, 삼 품 이하의 엽사들과 민간인을 대피시켜!”

“네!”

무지막지한 양의 오러를 뿜어내는 엽사 회장의 명령을 받은 엽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방어 준비해!”

“민간인들의 보호가 먼저다!”

우웅!

서가를 비롯한 다른 가문의 엽사들 역시 자신들만의 방어 기술을 사용해 정체불명의 공격을 막아 내려 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던 단상 앞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콰드득!

“꺄아아악!”

무언가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핏물이 튀어 오르자 클레어가 비명을 질렀다.

핏물의 주인공은, 조금 전까지 그녀의 옆에 서 있던 성전기사단의 서울지부장 슈헤르트 마이어.

이 품의 엽사인 그조차도, 예측할 수 없는 적의 공격을 피해 낼 수는 없었다.

‘이렇게, 죽는 거야?’

소리 없이 다가오는 파괴를 목도한 그녀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이름 없는 신이시여…….”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은 채 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이, 지금의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

그러나.

텅!

단단한 무언가가 그녀의 등을 거세게 떠민 순간.

‘뭐, 뭐지?’

클레어는 감았던 눈을 번쩍 뜨고는 엉겁결에 올라탄 무언가를 내려다봤다.

‘뼈?’

정확히는, 뼈로 만들어진 방패.

사람 하나 정도는 충분히 타고도 남을 크기의 방패가 그녀를 어딘가로 데려가고 있었다.

‘이건…….’

그 방패가 누구의 것인지 잘 알고 있는 그녀의 시선이, 어느 틈에 앞에 나타난 남자에게로 향했다.

“정신 차려라.”

“네, 네?”

하늘을 나는 방패 위에 선 진혁의 말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방패 위에 주저앉은 클레어는 더듬거리며 그를 올려다봤다.

진혁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 자리에서, 아귀를 없앨 수 있는 건 너뿐이다.”

“아귀라면, 저 이상한 걸 말하는 거예요? 그것보다, 제가 어떻게…….”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말.

진혁의 말에 놀란 성녀가 되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짧았다.

“강신.”

“……뭐라고요?”

순간.

클레어는 할 말을 잃고 진혁을 멍하니 바라봤다.

*    *    *

무명교의 고아원에서 지내던 클레어가 성녀가 된 이유는 간단했다.

파아아앗!

고아원의 예배시간에 갑작스럽게 내려온 계시.

이름 없는 신이 지상에 내려보낸 한 줄기 의지에 의해, 평범한 고아였던 그녀의 삶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 년을 훌쩍 넘긴 지금.

‘강신……이라니.“

의외의 사람으로부터 의외의 대답을 들은 클레어는 혼란스러웠다.

강신(降神).

단어 그대로 신을 자신의 몸에 내려받는 것.

무명교의 역대 성녀들이라면 한 번씩은 세상에 선보였던 기적 중 하나였지만.

‘그런 거,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고요.’

제대로 된 성녀로 거듭나기에, 일 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짧다.

대대로 이름 없는 신의 말씀을 전해 온 성직 가문에서 자랐다면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의 대부분을 고아원에서 살아온 그녀에겐 눈으로 본 적도 없는 것이 강신의 기적.

허나.

‘강신의 요체는 신의 의지를 네 영혼에 온전히 담아내는 거다. 네가 영혼의 장벽을 얼마나 열어 낼 수 있느냐에 따라 성공이 좌우되지.’

그에 대한 진혁의 설명은 놀랍도록 자세했다.

“대체,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 들은 거야…….”

자신을 남기고 가 버린 진혁이 해 준 조언을, 그녀는 당연히 믿을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 마인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던 진혁이 아니던가.

당연히, 그 신뢰도는 한없이 낮을 수밖에.

“하지만…….”

그녀의 시선이, 무너져 가는 신전으로 향했다.

콰아아앙!

아무런 전조도 없이 일어나는 파괴 앞에서, 평범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놈에게 엽사 회장과 오 대 가문의 엽사들이 펼쳐 낸 방어를 뚫어 낼 힘은 없었지만, 그것이 전부.

‘이 자리에서, 아귀를 없앨 수 있는 건 너뿐이니까.“

“……그 말이 사실이라면.”

해내야만 했다.

진혁이 자신에게 남긴 말을 떠올린 클레어는 앙다문 입술로 주먹을 불끈 쥐고는,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다.

“이름 없는 신이야, 나 당신께 바라나이다.”

알고 있는 기도문 중 하나를 끊임없이 외우면서, 그녀는 이름 없는 신의 응답을 기다렸다.

부디, 당신께서 나타나 신전을 부수는 적에 대항할 힘을 내어주길 바라며.

“이름 없는 신이여…….”

끊임없이 기도문을 암송하던 클레어의 정신이 무의식의 영역에 들어선 그 순간.

파아아앗!

무릎을 꿇은 그녀의 몸에서, 태양과도 같은 백색의 광휘가 터져 나왔다.

*    *    *

무명교의 신전으로부터 제법 떨어진 여의도공원.

“언제 봐도 기분 나쁜 힘이야.”

주변을 태양보다 환히 비추는 신성한 빛의 강림을 바라보며, 진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누군가에게는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신의 권능이겠지만, 명계의 흑마력을 다루는 그에게는 소름 끼치는 에너지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귀를 약화시킬 수 있는 건 저 방법뿐이지.’

강신의 기적에 여러 번 손해를 봤었던 파슬란이 모아들였던 지식 중 하나.

망령군주가 강신을 파훼하기 위해 연구했던 지식이, 아이러니하게도 성녀가 강신의 기적을 펼치는 데 도움을 준 셈이다.

‘우선은 강제로 업을 줄여야 한다.’

수많은 영혼을 잡아먹으며 어마어마한 업을 영혼에 쌓은 아귀의 힘을 줄이기 위해선, 신성력을 활용해 그 업을 씻어 내는 것이 먼저였다.

‘어차피 제대로 된 강신은 되지 않을 테니, 오래 머물지는 않겠지.’

강신이 끝나고, 아귀의 업이 약화되는 순간.

진혁은 자신이 가진 흑마력으로 약해진 아귀를 강제로 소멸시킬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성녀의 자질은 확실하군. 대강 불러 준 것만으로 강신을 해낼 줄이야.”

새하얀 빛의 기둥을 바라보며 진혁은 혀를 내둘렀다.

어느 정도 기대하고 있던 건 사실이지만, 클레어는 그의 기대 이상으로 강신을 성공적으로 해냈으니까.

“저런 재능을 가졌는데도 차별 대우라니, 신성제국만도 못하군.”

스스로의 영혼에 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만한 대우를 받아야만 한다.

최소한, 파슬란이 상대했던 아스칸의 신성제국은 그 원칙을 잘 지켰다.

그것이, 파슬란이 결국 대전쟁에서 패배한 이유 중 하나였으니까.

‘물론, 나는 파슬란과 다르지.’

그리고, 여긴 아스칸이 아니다.

대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넘게 흐른 지구에서, 괴수나 마인이 아닌 인간과 정면으로 맞서 싸울 일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폭력이 제한된 현대의 한국에서, 서가의 권력과 금력으로 보호받는 그를 해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있더라도, 이번 일처럼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터.

‘영지가 자리를 잡는다면, 누구도 날 건들 수 없을 것이다.’

처음과 달리 점점 사그라드는 빛의 기둥을 바라보며, 진혁은 눈을 빛냈다.

―여기에 있구나.

그때였다.

진혁의 영혼을 통해, 누군가의 강력한 의지가 젼해져 온 것은.

‘이건…….’

한 줄기의 의지에서 느껴지는 강한 신성력의 악취에, 진혁은 표정을 굳혔다.

지금 이곳에서, 이토록 강한 의지를 그에게 전달할 수 있는 존재는 단 하나.

이름 없는 신.

―파멸의 동반자여.

자신을 지칭하는 듯한 신의 목소리를 향해, 진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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