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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67화 (67/174)

67화

엽사대회가 수십 년 만에 개최된다는 소식이 전국을 휩쓸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있다고 알려진 엽사라면 대한엽사회의 이름으로 된 초대장이 주어졌고, 그렇지 않더라도 엽사라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자리.

“대체 무슨 일이길래 엽사대회를 여는 거야?”

“아직 의제가 나온 건 없는데, 아마도…….”

지난 두 번의 대회와는 달리 아무런 징조도 없었기에, 사람들의 의문은 더욱 커져만 갔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여의도에서의 일 때문인가 본데.”

대한엽사회로부터 보내진 초대장을 손에 쥔 이설화는 내용물을 확인하며 며칠 전의 일을 떠올렸다.

‘그건…… 분명히 정상은 아니었지.’

존재도, 기척도 없이 살육과 파괴를 저지를 수 있는 재앙과도 같은 존재.

현존하는 그 어떤 괴수, 심지어 갑 급의 괴수라 할지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인류와 국가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엽사에게는 가장 큰 위협일 수밖에.

“뭐, 그렇다고 대회까지 열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말야. 그냥 조사 팀만 꾸려도 될 걸…… 아바마마도 참 일을 귀찮게 진행한단 말야.”

물론, 그 이면에 숨겨진 이유도 그녀의 눈엔 뚜렷하게 보였다.

이가와 서가가 다시 손을 맞잡았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둘의 세력이 여전히 견고하다는 사실을 보이는 것.

“서가…… 서가라.”

서진혁.

어릴 적 약혼자였던 애송이.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남자가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도 잠시.

“……아냐, 아직은 아냐.”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 버린 설화는 손에 들고 있던 기다란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끼익.

“설화 너는 여전하구나.”

누군가가 기척도 없이 사무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누가 감히…….”

그녀는 이가의 정예, 착호갑사대의 장.

기척도 없이 문을 열고 반말을 내뱉는 꼴을 그냥 두고 볼 설화가 아니었다.

안경 뒤로 날카롭게 치뜬 눈이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오라버니?”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래, 네 오라비다.”

전임 착호 갑사 대장이자 이가의 장남.

21세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상투를 틀고 갓을 쓴 백의의 선비가 씨익 웃었다.

“언제 돌아오신 겁니까.”

“조금 전에. 방금 아바마마께 인사드리고 오는 길이다.”

대답과 함께 이한은 두루마기 소매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여기 참석하라 하시더구나.”

“이건…….”

엽사대회의 초대장.

오라비가 꺼내 든 초대장을 본 설화는 순간 인상을 팍 썼다.

‘하필, 오라버니랑 같이 가게 될 줄은…….’

이한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같이 다니기엔 귀찮은 점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그 곰방대는 대체 언제까지 손에 쥐고 있을 셈이냐? 너도 이제 혼기가 찬 지 오래인데…….”

저, 끝없는 잔소리.

“그 입 다무십시오.”

언제나처럼 잔소리를 퍼붓는 이한을 흘겨보며, 설화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    *    *

백두산.

높이 2774미터의,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화산의 중심에는 천지라 이름 붙은 거대한 호수가 존재한다.

아니, 존재했었다.

그 위를 강철과 콘크리트 그리고 온갖 술법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도시가 덮기 전까지는.

“와, 와, 와아…….”

천둥비룡의 등에서 내린 클레어는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진짜 크다…….”

수많은 봉우리로 둘러싸인 금속의 도시.

바닥도, 건물도 온통 금속의 광택으로 반짝이는 도시란, 그녀가 살면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으니까.

“광복관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어지간한 도시보다 크니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주연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도시가 아니에요?”

“엄밀히 말하면, 그렇죠.”

클레어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갸웃하자, 주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오 대 엽사 가문의 초대 가주들이 처음 결연을 맺은 것을 기념하는 의미도 담겨 있지만, 그보다는 일종의…… 봉인에 가깝거든요.”

“봉인이라고요? 이게?”

“여긴 원래 천 년에 한 번씩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는 화산이에요. 용심(龍心)을 중심으로 구축한 시스템이 천지 아래에 있는 화산이 가진 에너지를 흡수하는 게 이곳의 역할이죠. 그 에너지를 전환해서 이곳과 한국의 전력 상당수를 공급하기도 하고요.”

그 덕분에,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을 꼽으라면 반드시 들어가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회의를 개최해도 되는 거예요? 터지면 안 되잖아요.”

“엽사대회를 백두산에서 여는 건 광복관이 생기기 전부터 있어 왔던 전통이니까요. 용심을 이용한 보안시스템은 일 품의 엽사라도 힘으로는 뚫기 어렵고요. 평소에는 관광지로 개방된 곳이라 사람들이 많이 찾기도 해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해 보여요…….”

눈을 초롱초롱하게 반짝이는 성녀를 향해 주연은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마지막으로 내린 진혁이 입을 열기 전까지는.

“준비가 되었다면, 이만 가지.”

“네, 팀장님. 이쪽으로 오시죠.”

안내를 맡은 주연이 앞장서자, 진혁은 출발하기 전 바닥에 널브러진 천둥비룡을 쳐다봤다.

‘아마 며칠 동안은 부를 일이 없을 거다. 대기하고 있도록.’

―걱정 말아요, 주인. 여기 따뜻한 게 누워 있기 딱 좋으니까.

기분이 좋은지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멜리나를 뒤로한 채, 진혁과 토벌 2팀은 광복관의 중앙에 자리한 본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곧, 그들의 눈앞에 거대한 현수막 하나가 보였다.

[獵士大會]

엽사대회가 열리는 장소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현수막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무기와 보구를 몸에 지닌 채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엽사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모인 엽사들이었다.

“저쪽은 부산에서 금강길드를 이끄는 한지원입니다. 이쪽은 원산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곽천주고, 저쪽은…….”

누군가가 옆을 지나갈 때마다, 주연은 그들의 이름과 활동지역 등의 상세한 정보를 진혁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앞으로 그들과 얼굴을 맞댈지도 모르는 팀장을 위한 배려였다.

진혁은 주연이 알려 준 엽사들을 한 번씩 눈으로 훑었다.

‘굳이 만나야 할 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군.’

그의 기준이 너무 높게 잡힌 탓이었다.

최소한 갑 급의 괴수를 토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진혁의 관심을 끌기 힘들었으니까.

사람들을 살피며 걷다 보니, 그들은 어느새 본관에 도착해 있었다.

“수속은 제가 밟아 두겠습니다. 먼저 별관으로 들어가시죠, 팀장님.”

“그럼, 먼저 가지.”

주연의 말에 진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저 사람은.’

누군가의 모습이 별관으로 향하던 진혁의 눈에 띈 것은.

정령을 부리는 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두꺼운 수정 염주를 양 손목에 팔찌처럼 찬 노인.

진혁은 그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윤이랑.’

오 대 엽사 가문 중에서도 정령을 다루기로 유명한 윤가의 가주.

그의 아들들과 만나고 싸웠던 진혁이, 가주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흠.”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린 윤이랑은 진혁의 얼굴을 보자마자 헛기침을 하고는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는 진혁을 향해 다가왔다.

또각. 또각.

진혁을 향해 다가오는 그의 걸음걸이에서, 일 품 엽사 특유의 패도적인 기세가 흘러나왔다.

진혁의 한 걸음 앞에 멈춘 그가 입을 열었다.

“자네가 서가의 장남인가.”

진혁을 바라보는 상대의 표정은, 좋게 말해도 원수를 마주한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아니, 원수가 맞았다.

이성적으론 아닐지 몰라도, 감정적으론 그랬다.

서진혁은 아들의 죽음에 관계된 자였으니까.

후욱!

지리산의 신선이라는 별명이 무색할 만큼, 강렬한 살기와 후끈한 열기가 진혁을 사방에서 압박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즉시 숨이 턱 막힐 만큼 진한 기운.

하지만.

“예, 서진혁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기운을 정면에서 받아 내는 진혁의 표정엔 조금의 불편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빌어먹을, 가람이 놈이 이 정도로 침착했었다면…….’

최대한의 예의를 갖춰 절도 있게 인사를 건네는 진혁의 모습을 보며, 윤이랑은 왠지 모르게 속이 뒤틀렸다.

스으으으!

분노가 이끌어 낸 순수한 정령력이 주변의 공기를 가열시켰다.

시리고 차가운 백두산의 공기가 순식간에 한여름의 후끈한 공기로 돌변했다.

‘이것이, 최상급 정령을 다루는 정령사의 힘이군.’

하지만 진혁은 조금 놀랐을 뿐, 힘들어하는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파슬란이 신성제국과 전쟁을 벌이며 당했던 온갖 기적들.

그 어처구니없고 비상식적인 공격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디,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나 보자.’

여전히 태연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진혁을 보고 약이 오른 윤이랑이 정령력을 더욱 끌어모으려던 찰나.

“이보게, 윤 가주.”

우웅!

누군가의 부름과 함께, 강렬한 기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던 그의 정령력을 감싸 안았다.

윤이랑의 눈이 진혁의 뒤에 선 자에게로 향했다.

“좋은 자리에서 이게 무슨 짓인가.”

서강진.

서가의 가주이자 세한그룹의 회장이, 딱딱한 표정으로 윤이랑을 노려보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아버지.”

기다렸다는 듯 인사를 건넨 진혁을 무심하게 한 번 쳐다본 강진은, 얼굴을 붉히고 있는 윤이랑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자네 마음이야 짐작은 되지만, 이 자리에선 그러지 말게나. 그만큼 중요한 자리니까.”

“……그러시겠지.”

그 말을 끝으로, 윤이랑은 몸을 홱 돌려 어딘가로 사라졌다.

멀어져 가는 노인의 뒷모습을 보며 강진은 혀를 찼다.

“시작부터 이 꼴이라니. 예상은 했지만, 개판이 따로 없군.”

“아마, 대회가 시작돼도 상황은 비슷할 겁니다.”

“그렇다 해도 윤이상이 대세를 바꾸진 못할 거다. 이 자리에서 중요한 건 한두 명의 원한 따위가 아니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강진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너도 조심해라.”

“당연한 말씀을.”

“괜히 시비 붙지 말란 말이다. 이번 엽사대회엔 이가와 서가의 사이를 과시하는 목적도 있으니, 이가와 마주쳤을 땐 특히 조심하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빙그레 웃는 진혁의 말에 강진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고는 사라졌다.

아버지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그는 병관에 위치한 서가의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그래도, 조심할 필요는 있겠지.’

품속에 넣어 둔 유리병의 단단한 감촉을 느끼며, 진혁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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