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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74화 (74/174)

74화

만주.

한때 중국을 지배했던 자들의 터전은, 이제 괴수의 차지가 되었다.

수많은 괴수들이 옛 유목민족들처럼 먹이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평야 위에서.

‘이런…….’

그녀, 미령은 압록강 너머의 드높은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 만주의 괴수들을 모으라고 말씀하셨나 했더니…… 대주님께선, 여기까지 계산하신 건가?’

백두산 그리고 그 내부에 자리 잡은 광복관에서 느껴지는 진한 마기의 냄새.

그와 함께 이 먼 만주 땅에서도 느껴질 만큼 크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와 땅의 진동.

분명, 이 모든 것이 그녀의 대주, 여명이 말한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 손에 채찍을 감아쥔 미령의 미소가 진해졌다.

그녀의 시선이, 옆을 지키고 있던 거대한 괴수에게로 향했다.

마치 전설에서나 나오는 해태를 닮은, 털 대신 붉은 화염을 몸에 뒤집어쓴 네 발 달린 괴물.

을 급의 괴수, 홍염사자가 그곳에 있었다.

“어때? 이 정도면, 해볼 만하지 않겠어?”

―……약속은 잊지 않았겠지.

“물론. 성공만 한다면, 승격에 대한 단서는 얼마든지 줄 수 있다고.”

―그렇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쿵.

고개를 끄덕인 사자가 화염으로 이루어진 다리로 바닥을 박찼다.

콰앙!

을 급 괴수의 발을 감싼 화염이 폭발하면서, 그의 육체가 불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것을 신호로.

“키이이이!”

“크아아!”

홍염사자의 뒤에 모여 있던 수많은 괴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백, 수천, 어쩌면 수만.

셀 수 없이 많은 숫자의 괴수들이, 강 건너로 보이는 백두산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이제…… 한국도 우리 손에 들어오겠는걸?”

스으으―!

뒤에서 그 모습을 기쁜 표정으로 바라보던 미령의 형체가, 발밑에서 나타난 암흑 아래로 사라졌다.

경고합니다. 현재 압록강 북쪽에서 추산 삼천마리의 을 급을 포함한 괴수 관측. 을종 경보를 발령합니다.

을종 경보.

광복관 전역에 설치된 스피커로부터 경고 방송과 함께 사이렌이 울려 퍼진 순간.

“을종 경보라고?”

“아니, 을 급의 괴수가 나타났단 말야?”

강화도에서 나타난 지 몇 달 지나지도 않아 나타난 새로운 을 급의 괴수.

그 소식을 들은 엽사들의 반응은 당연하지만 좋지 않았다.

“비상사태인데 왜 결계가 작동을 안 하는 거야?”

“아까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더니, 설마 방어 시스템 전체가 죽은 거야?”

“빌어먹을, 그럼 맨몸으로 저 괴수들을 다 상대해야 한단 거잖아!”

아무리 엽사대회에 모인 엽사들이 많다곤 하지만, 대부분이 사 품 이하의 자들.

게다가, 태반은 괴수를 상대할 장비도 제대로 챙겨 오지 않은 상태였으니 제대로 된 전투를 할 능력이 될 리 없다.

“이건, 개죽음이야.”

“난 여기서 나가야겠어!”

“빨리, 빨리! 괴수들이 오기 전에 나가야 한다고!”

그들 중 일부가 광복관을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정지, 정지!”

“아직 엽사대회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통제에 따라 주십시오!”

엽사대회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던 대한엽사회 소속의 엽사들이 그들을 막아서려 했지만, 수많은 엽사들의 탈주를 막아서기엔 그 숫자가 턱없이 부족했다.

“저리 비켜!”

“너희도 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

실력은 몰라도, 숫자에선 엽사들이 압도적인 상황.

이대로라면, 엽사회의 엽사들이 세운 벽을 뚫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쐐애액!

그들의 앞을, 백색의 무언가가 가로막기 전까지는.

“뭐, 뭐야?”

거대한 방벽과도 같은 여럿이 빠르게 달려들자, 가장 앞 열에서 돌진하던 엽사들이 당황해 무기를 뽑아 들고는 자신을 가로막은 벽을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텅!

오러를 뿜어낼 수는 없지만, 제법 강한 마나를 담은 그들의 무기는 백색의 장벽을 뚫어 내지 못했다.

“무, 무슨 벽이……!”

자신들의 공격이 어이없을 만큼 쉽게 막혀 버리자 무기를 휘두른 엽사들이 당황했지만.

콰앙!

그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 백색의 장벽과 엽사들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크아아악!”

돌진한 장벽에 담긴 거대한 물리력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힘을 지닌 엽사들을 단숨에 날려 버렸다.

전열의 사람들이 하늘 위로 날아가는 걸 본 무리가 놀라 멈춰 섰을 때.

스으으―!

장벽을 이루고 있던 흰색의 방패들이 미끄러지듯 양옆으로 갈라졌다.

이내, 갈라진 틈으로 흑청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사태가 해결되기 전까지, 그 누구도 광복관에서 나갈 수 없다.”

서진혁.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순백의 창 수십 자루를 엽사들에게 겨눈 그의 시선이, 차갑게 빛났다.

진혁을 비롯한 오대 가문의 후계자들과 대한엽사회의 엽사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방어시스템이 기능을 못 하고 있으니, 우선은 저희 가문의 마법사들이 결계를 구축하겠어요.”

그 말과 함께 광복관을 둘러싼 금속 성벽 위로 올라간 주소영과 주가의 마법사들.

그들은 순식간에 거대한 마법진을 금속 바닥에 그려 낸 다음, 마나를 한데 모았다.

우우웅―!

곧, 급조한 방어 마법진을 중심으로 광복관을 완전히 둘러싼 결계가 만들어졌다.

“마나 공급의 한계 때문에 오랫동안 유지는 못 하겠지만, 한동안은 버텨 줄 거예요.”

상관없어. 그 전에 나랑 착호갑사대가 놈들을 쓸어버릴 거니까.

소영의 말을 받은 것은, 두정갑에 탑승한 설화의 기계음이었다.

그녀의 두정갑 양옆으로, 양어깨에 거대한 마력포 두 정을 짊어진 강철 거인들이 성벽 위에 줄지어 늘어섰다.

우리는 을 급 괴수를 최우선으로 노릴 거야. 잔챙이들 정돈 처리할 수 있겠지?

“누가 이가 아니랄까 봐 콧대는 더럽게 높아선.”

설화의 오만한 말을 들은 유재준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철컥.

“자네, 그거 나 들으라고 한 말인가?”

“그, 그럴 리가 있습니까, 형님. 하하하.”

주먹만 한 탄환이 장전된 권총을 겨눈 채 웃는 이한의 앞에선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장난할 때가 아닐 텐데.”

옆에서 나타난 진혁이 이한의 권총을 아래로 내리누른 것은 그때였다.

“쏘고 싶다면 저기다 쏘는 게 좋을 거다.”

진혁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 위치한 것은, 천지와 광복관을 둘러싼 백두산의 봉우리들.

그 정상으로부터, 무언가가 꾸물거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마나로 시력을 강화할 수 있는 능력을 기본으로 지닌 엽사들은, 곧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괴수다!”

“괴수가 왔다!”

괴수의 파도가, 봉우리의 절반을 시커멓게 물들인 채 다가오고 있었다.

“전투 준비해!”

“기왕 이렇게 된 거, 전리품이나 왕창 챙겨 가자고!”

도망갈 곳이 없어진 엽사들의 전의는 오히려 치솟았다.

그것은, 가문 소속의 엽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천자총통, 발사 준비.

파지직―!

대장인 설화의 선창과 동시에, 수십 기의 강철 거인이 짊어진 마력포가 푸른색 스파크를 튀겼다.

“자, 다들 알고 있지? 한 번 휩쓸어 놓은 다음, 쓸 만한 놈은 산 채로 챙기라고!”

“예!”

“그럼, 간다!”

각기 자신의 괴수에 올라탄 윤가의 엽사들과 함께, 유재준은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발사.

콰르르릉―!

“키에에에!”

강철 거인들이 천둥을 쏘아내고, 날개 달린 괴수들이 하늘로 솟아오른다.

그 모습을 보며, 진혁 역시 명령을 내렸다.

‘가라, 망자들이여.’

그의 주변을 맴돌던 창과 방패들. 리빙 웨폰을 향해.

쐐애애액―!

진혁의 명령을 받은 병장기들이, 저 멀리 보이는 괴수의 파도에게로 쏘아져 나갔다.

‘질 이유는, 없다.’

괴수의 파도 사이에서 폭발하는 번개들을 바라보며, 진혁은 눈을 빛냈다.

광복관의 지하에 위치한 제어시스템.

광복관과 지하의 분화구 사이를 막고 있는 거대한 금속 천장 한구석으로, 한 줄기 빛이 새어 나왔다.

아니.

빛이 아니었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지하로 내려온 다섯 줄기의 거대한 기운.

가문과 한국을 대표하는 일 품의 엽사들이, 그곳에 있었다.

“주 가주, 이거 괜찮은 거 맞나? 봉인을 뜯어 버린 셈인데.”

“저건 나중에 고치면 되지만, 여기가 터지면 모든 게 끝장이에요.”

“뭐…… 그건 그렇지.”

자신의 물음에 주가의 가주, 주미선이 날카롭게 답하자 유시현은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은 잡담할 때가 아니야. 빨리 움직이세.”

강진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둘을 쏘아보며 손짓했다. 이한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가게나. 과인은 뒤에서 천천히 가도록 하겠네.”

“되도 않는 왕 흉내 낼 때가 아닐 텐데?”

“근접전을 치르는 자네가 앞에 서고, 과인과 주 가주가 뒤에서 지원해 주는 것이 이치에 합당한 일이 아니겠나.”

파지지직!

말을 마친 이한의 손에서 푸른색 스파크가 튀었다.

그와 함께 나타난 것은, 성인의 팔 길이 정도 되는 크기의 기다란 라이플.

파직! 파지직!

탄창 대신 마정석을 하부에 박아 넣은 소총의 끝에서, 자잘한 스파크가 간혈적으로 터져 나왔다.

딱히 반박할 말이 없어진 강진은 구겨진 표정으로 옆에 있던 최현을 바라봤다.

“회장, 같이 가지.”

“알겠소.”

우우웅―!

강대한 기운을 뿜어내는 두 일 품 엽사를 앞세운 채, 다섯 엽사들은 용심이 있을 광복관의 통제실로 향했다.

“윤이랑 그놈, 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인 거지?”

“그걸 알았다면, 우리가 지금 이 지하에 내려와 있진 않겠죠.”

“대체 가문의 가주씩이나 되는 놈이, 뭐가 아쉬워서…….”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 해서 방심할 수도 없었다.

숫자에선 자신들이 우위였지만, 기습에 당하기라도 한다면 상황은 순식간에 뒤바뀔 테니까.

허나, 그들에게는 다행히도.

“드디어 왔군, 그래.”

윤이랑은 숨지 않고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어딘지 모르게 젊어진 듯한 그의 모습과 그의 몸에서 끓어오르는 정체불명의 기운이 묘한 불쾌감을 자아냈다.

“이쯤에서 그만두게.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혼자서 우리 다섯을 상대할 수는 없다는 걸.”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은 서가의 가주, 서강진이었다.

항복을 권유하는 그의 말 속엔, 과거 한 가문의 가주였던 윤이랑을 향한 마지막 자비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네, 서 가주.”

윤이랑은 그 말에 의미 모를 미소를 띠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나는 이미, 선을 넘어 버렸거든.”

스으으―!

그의 몸에서, 정령력과는 다른 검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결국, 마인이 되는 것을 택했군.”

“……당신같은 자를 죽여야 한다니, 안타깝군요.”

안타까워하는 말과는 달리, 다섯 엽사들은 몸속에 지니고 있던 힘을 한껏 끌어모았다.

패배할 거란 생각은 조금도 지니지 않은, 담담한 표정.

그럼에도, 윤이랑의 웃음은 지워지지 않았다.

“이 보게들, 이곳은 화산이라네.”

화르르륵!

윤이랑의 몸 전체를, 마기에 오염된 검붉은 불꽃이 감싸 안는다.

“불의 정령력을 다루는 나에겐…… 성역(聖域)과도 같은 곳이지.”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콰아아아!

윤이랑의 등 뒤에 검붉은 불꽃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게이트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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