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강철마탑에 전한다.
시작은 짧은 한마디였다.
“뭐지?”
“저런 사람이…… 마탑에 있었나?”
이 세상 사람의 것이 아닌 듯 싸늘한 그 목소리에, 마탑에 모여 있던 마법사들의 청각이 집중되었다.
하지만 이내, 흥미로워하던 그들의 표정은 경악으로 바뀌었다.
―내 이름은 도민호. 상급 마법을 구현할 수 있는 마도사이자 한국의 마도학계를 이끄는 강철마탑의 부탑주 그리고 오행회의 회장이 바로 나다.
“도, 도민호 부탑주?”
“그 사람, 죽었잖아?”
“어떤 미친 놈이 죽은 사람으로 장난을…….”
살인 사건이 일어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은 상황.
게다가, 장난의 대상이 죽은 부탑주였으니, 스피커의 음성을 듣고 있던 마법사들은 경악을 넘어 분노를 토해 냈다.
―……마탑의 모든 마법사들이 알다시피, 나는 죽었다. 생물학적, 마도학적으로 완벽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럼에도, 스피커 속 소름 끼치는 목소리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부탑주, 장무선의 손에 의해.
스피커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온 순간.
“장민호 부탑주가, 도민호 부탑주를 죽였다고?”
사람들은 분노를 넘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말이 돼?”
“주소영 부탑주가 한 짓이잖아. 증거가 뻔히 있는데,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니, 장난이 너무 심하잖아!”
죽은 자는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없다.
그것은, 지구와 에피로나가 공유하고 있는 대전제.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올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마법사들에게, 스피커 속 누군가의 소름 끼치는 목소리는 고약한 장난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오행회의 마법사들이여, 부디 내 유지를 이어받아 연구를 완성시켜 주시오. 그리고 놈에게 피의 복수를 해 주시오.
“대체 어디서 나오는 방송이야?”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데, 이딴 장난을…….”
“저 자식이 살인자랑 다를 게 뭐야?”
강철마탑의 마법사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불쾌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죽은 도민호 부탑주가 한 증언은 모두 진실입니다.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아닌, 도도한 여인의 차가운 미성이 스피커를 통해 퍼져 나갔을 때.
“……탑주님?”
분노하던 마법사들의 머릿속이, 일순간 정지했다.
“이게…… 탑주님의 지시하에 벌어진 일이라고?”
“아무리 주소영 부탑주가 잡혀 있다지만, 이게 대체……."
“설마, 탑주가 우릴 바보로 아는 건가?”
고약한 장난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 사실은 탑주의 소행이라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마법사들은 황당해했다.
아무리 강철마탑의 정점에 오른 최상급 마법사라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마법사.
세상의 법칙과 진리를 추구하는 마법사가 어린애도 믿지 않을 수작을 부리고 있다니.
―……분명,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대부분은 지금까지의 일을 믿지 못하겠지요. 그것은 세계의 법칙과 진리를 추구하는 마법사로서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러니.
그 뻔히 보이는 탑주의 속내에 마법사들은 헛웃음을 지었다.
―나, 주미선은 강철마탑의 탑주이자 세계의 법칙을 부리는 마도사로서, 지금까지 이야기한 모든 일이 사실임을 마나에 맹세하겠습니다.
그녀의 다음 말이 이어지기 전까지는.
“마나의…… 맹세?”
“그럼,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가…….”
그녀의 마지막 말을 들은 마법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와 동시에.
우웅!
마탑의 높은 곳으로부터, 강력한 마나의 파장이 주변을 진동시켰다.
마법사의 마나홀에 담긴 마나가 세계의 법칙과 이어졌음을 알리는 증표.
탑주의 말이 거짓이라고 판단된다면, 법칙은 그녀가 지닌 마나와 마법의 근원을 모두 회수하게 되리라.
그렇지 않다면.
“……사실이란 말야?”
“죽은 사람을, 정말로 되살려 냈다고?”
에피로나에서도, 지구에서도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일.
불로불사와 영생의 꿈을 꾸었던 수많은 마법사들이 생명과 재산을 태워 가며 연구했음에도 이뤄 내지 못한 일이, 지금 이 순간 이뤄져 있었다.
마법사들의 생각이 거기에까지 도달한 순간.
그들이 취할 행동은 정해져 있었다.
“탑주…… 탑주를 만나러 가야 되겠어.”
“나, 나도!”
“부활 마법을 완성시켰다니, 내 눈으로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어!”
수십 개 층에 나눠져 있던 마법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공간이동 마법진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 중 가장 앞에 선 자.
‘말도…… 말도 안 돼. 도민호가 부활했다고?’
파직! 파지직!
당황한 부탑주, 장무선의 몸에서 알 수 없는 적색의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강철마탑의 탑주 연구실.
“……애도 아니고, 이 나이에 마나의 맹세를 할 줄이야. 덕분에 별 경험을 다 해 보는군요.”
방송을 끈 주미선의 표정은 십 년은 늙은 듯 수척해 있었다.
잃을 게 많은 고위마법사나 마도사일수록 마나를 걸고 맹세하는 건 꺼려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것이,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마도사인 그녀라면 더더욱.
자신이 수십 년 동안 쌓아 올린 마나와 마법을 판돈으로 건 그녀의 심장은 터질 듯 두근거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건,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진혁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그건 그렇죠. 마나의 맹세라도 하지 않는다면, 마탑의 마법사들이 당신의 말을 믿을 리 없으니까.”
당연히 할 일을 한 게 아니냐는 눈빛을 보내는 진혁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쉰 미선은, 그의 옆에 선 금색의 인간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 한 번만 더 묻죠. 정말, 도민호 부탑주가 맞나요?”
전신이 황금빛 금속으로 뒤덮인 인간.
살아 있다기보단 동상에 가까운 모습이었으니, 그에게서 대답을 바라기는 어려워 보였지만.
―이미…… 끝난 이야기지…… 않습니까…… 탑주…….
놀랍게도, 동상은 금속으로 이루어진 입을 움직여 목소리를 냈다.
인간의 목소리라기보단 공포영화 속 귀신의 목소리에 가까운 차갑고 소름 끼치는 음색.
그러나, 그 속에 숨겨진 어투에서 미선은 쉽게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었다.
‘분명…… 도민호 부탑주의 말투와 비슷해.’
물론, 단순히 말투 하나로 죽은 부탑주가 되살아났다 단정 지은 것은 아니었다.
―탑주와 저만이…… 알고 있는 탑의 비밀들…… 그것 말고 더 여쭤볼 것이라도…… 있으신 건지요.
고렘이 그리고 서진혁이 알 리도 없고 알아서도 안 되는 강철마탑의 비밀들.
그 비밀들과 도민호의 개인적인 정보들이 동상의 입에서 쏟아지고 있는데,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닙니다.”
미선은 고렘을 향해 고개를 저은 다음, 다시 진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대체, 어떻게 한 거죠?”
거대한 의문을 담아서.
“죽은 사람을 고렘으로 되살려 냈다니, 마법에 평생을 바쳐 왔지만 이런 일은 들어 본 적도 없어요.”
그것을 해낸 사람이 마법사도 아닌 무가, 서가의 장남이라면 더더욱 믿을 수 없는 일.
“당신…… 대체, 서가의 핏줄이 맞긴 한 건가요?”
“그건, 모욕입니까?”
“아니, 그런 의미는 아니었지만…… 저로서는 그것 말곤 당신의 힘을 이해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진혁에게 용이나 요정의 피가 섞이기라도 한 거라면, 조금이나마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전 세한의 회장, 서강진의 아들입니다.”
허나 진혁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젓고는 눈을 마주쳤다.
이윽고.
“단지, 명계로부터 권한을 내려받았을 뿐.”
그의 입에서, 지금껏 숨겨 왔던 사령술에 대한 정보가 흘러나왔다.
‘언젠가는, 밝혀야 할 일이다.’
결국, 사령술은 영혼을 다루는 술법.
고렘이니, 괴수니 하는 식으로 눈속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사령술에 대한 정보를 밝히는 것은, 곧 진혁이 사령술을 쓰는 데 필요한 제약을 없애는 일.
힘을 길러야 했던 이전이라면 모를까, 영지를 완성시킨 지금이라면 사령술의 정체를 밝히는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며, 명계? 그게 뭐죠?”
진혁의 입에서 처음 듣는 단어가 나오자,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명계라면, 신화나 전설에서 의미하는 사후세계를 말하는 건가요? 하지만, 사후세계는 존재여부 자체가 밝혀진 게 없을텐데…….”
“존재합니다.”
믿을 수 없어 하는 미선을 향해, 진혁은 단호히 답했다.
“그리고 제가 명계로부터 받은 권한은 현계를 떠도는 망령을 부리는 것.”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일개 인간에게 영혼을 다룰 수 있는 권한이 쥐어진다는 것 자체가, 지금까지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일.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저 고렘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어.’
자신이 도민호 부탑주라 주장하는 황금빛 고렘.
아무리 증명을 중시하는 마법사라고는 하지만, 살아 움직이는 증거를 앞에 두고도 계속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알아내야 해.’
명계, 망령, 망자.
지금까지는 알려져 있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정보들.
그 비밀을 손에 쥔 자, 서진혁을 바라보는 미선의 눈빛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연구실의 입구를 막은 강철 문이 소리 없이 열린 것은 그때였다.
옆으로 열린 입구 뒤에서 나타난 것은, 한 명의 남자.
마탑의 2인자인 장무선 부탑주가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탑주님, 방금 방송은 대체…….”
그는 탑주의 얼굴을 보자마자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옆에 있던 진혁과 고렘에게로 향했을 때.
“아니, 당신들은 여기 왜…… 저건?”
고렘의 얼굴을 확인한 무선의 눈이 크게 떠졌다.
분명, 너무나 익숙한 모습.
하지만 동시에.
“도민호......?”
이곳에 있어선 안 될 얼굴이었으니까.
‘설마, 아까 그 목소리가, 정말로…….’
사람이 아닌 금색의 동상이었지만, 살아 있는 듯 움직이는 고렘을 마주한 그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직, 복수할 생각은 남아 있나?’
놀란 부탑주를 바라보며, 진혁은 옆에 선 용아병에게 물었다.
―당연한…… 질문이군요. 날 이 꼴로 만든…… 저놈을…….
돌아온 것은, 살기로 범벅된 망자의 의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그의 원한은, 영혼 속에 조금도 녹슬지 않은 모습으로 박혀 있었다.
‘그렇다면.’
그 말에.
‘마음대로 해도 좋다.’
진혁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뜻대로.
스으으으!
마법사를 본떠 만들어진 용아병의 금색 눈동자가, 불길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