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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95화 (95/174)

95화

날이 밝자마자 진혁은 호텔의 지하층으로 향했다.

본래는 주차장이 있어야 할 장소이지만, 지금은 자동차가 아닌 다른 것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진혁 님.

여기까진 무슨 일로 온 것이오?

“일찍도 나왔네요, 주인.”

“주인께 말버릇이 그게 뭔가?”

“영감은 좀 가만히 있어!”

지하의 콘크리트 바닥에 몸을 누인 채 아웅다웅하는 망자들.

진혁은 말없이 그들을 지나쳤다.

그가 이곳에 내려온 목적은, 그들이 아닌 다른 것이었으니까.

‘여기 있군.’

반대편 벽에 놓여 있는 지붕 뚫린 컨테이너.

그 위로 삐죽 솟아난 팔뚝 굵기의 손가락을 마주한 진혁은 눈에 이채를 띄었다.

갑 급 괴수, 외눈박이의 왼팔.

잘린 지 하루가 지났음에도, 보존마법이 걸린 컨테이너에 넣어 둔 팔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멀쩡하게 남아 있었다.

‘역시, 그 말이 거짓은 아니었나.’

진혁은 어제 성유창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예를 들자면…… 도망친 외눈박이의 위치를 찾는 방법이라던가.’

이제, 그 방법이 사실인지 확인해 볼 시간.

진혁은 컨테이너를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스으으!

심장 속 흑마력이 그에 반응해 검게 물든 심장과 혈관을 타고 오른손에 모여든다.

이내, 뭉쳐진 흑마력은 손을 벗어나 외눈박이의 잘린 팔로 파고든다.

곧, 흡수된 흑마력이 방향을 바꿔 움직이기 시작했다.

왼팔의 주인, 외눈박이가 있는 곳을 향해.

‘일단, 지구는 아니다.’

왼팔의 절단면으로 빠져나간 흑마력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순간, 그는 확신했다.

아마, 에피로나였다면 외눈박이의 위치를 분명히 파악할 수 있었으리라.

갑 급 괴수의 육체는 잘려 나갔다 해도 희미한 연결이 남아 있기에 가능한 일.

‘반대로, 녀석이 내 위치를 알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겠지만.’

오히려 바라는 일이다.

언젠가 찾아가서 처치해야 할 복수의 대상을, 힘들게 찾아갈 필요가 없다는 의미니까.

놈이 다시 모습을 드러낼 때쯤, 진혁의 힘은 놈을 압도할 만큼 충분히 강해져 있으리라.

그것도, 놈의 팔을 이용해서.

“난 이만 가 보지. 쉬고 있도록.”

진혁은 망자들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32층의 숙소로 향했다.

층입니다.

‘아침 식사군.’

도착한 그가 엘리베이터를 나서자마자 맛있는 음식 냄새가 그를 반겼다.

진혁은 자연스러운 발걸음으로 음식이 준비된 식당으로 향했다.

양과 질, 어느 하나 부족함 없이 다양한 음식들로 가득 채워진 드넓은 식탁.

먼저 식사 중이던 이들이 그의 발소리만 듣고 고개를 돌린 것은 그때였다.

“팀장님.”

“콜록, 콜록.”

주연의 말을 듣고 놀란 클레어가 기침을 하며 급히 물을 찾았다.

렌과 주연 역시 진혁의 눈을 묘하게 피하는 듯한 느낌.

‘어제의 일 때문인가.’

분명, 청명의 말을 떠올린 것이리라.

하지만 진혁은 뭐라 대답하는 대신, 자신의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굳이 해명할 필요도, 해명하고 싶지도 않은 일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그렇게, 불편한 침묵 속에서 식기 부딪치는 소리만이 식당을 가득 메우던 그때.

“어이, 서진혁이. 손님이 왔는데?”

이미 식사를 마치고 거실 소파에서 쉬고 있던 유창이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손님?”

“식사 중에 죄송합니다, 진혁 님.”

의아해하는 진혁에게 답해 준 것은 유창이 아니었다.

“허나, 긴히 전해 드릴 말씀이 있어 부득이하게 찾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리 마루이치.

복도 너머에서 등장한 모리 가문의 후계자는 진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지?”

숟가락을 내려놓은 진혁의 눈이 고개를 숙인 남자에게로 향했다.

마루이치가 대답했다.

“관동의…… 조정에서, 손님이 왔습니다. 아무래도, 진혁 님께서도 함께 나와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상대는?”

“총리대신과 방위대신입니다.”

일왕 아래에서 일본을 이끄는 자들.

그중, 정부와 군부를 이끄는 두 사람이 찾아왔다는 의미.

‘만나 볼 가치는 있겠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지.”

고개를 끄덕인 진혁의 눈이 번쩍, 빛을 내뿜었다.

진혁이 도쿄에서 온 자들을 만난 것은 오후 두 시의 늦은 낮이었다.

관서헌터성의 가장 위층에 자리한 야외의 회의실.

창문 대신 마법결계가 돔처럼 씌워진 옥상에 모인 것은 단 세 사람뿐이었다.

“처음 뵙겠어요. 시즈노 마사코입니다.”

탁자의 맞은편에서 먼저 인사를 건넨 것은, 일본의 2인자인 총리대신.

그녀를 처음 마주한 진혁의 감상은 짧았다.

‘젊어, 그리고 강하다.’

한 나라의 2인자에 오를 만한 나이로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외모의 미녀.

그러나 총리의 가녀린 외모 속에 숨겨진 웅혼한 마나는, 그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사토시요, 방위대신이지.”

이 품 수준의 마나를 지닌 그녀조차도 옆에서 심드렁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헝크러진 머리의 사내와 비교할 순 없었다.

‘일 품 수준인가.’

허름한 옷과 달리, 그의 동공에서 느껴지는 빛은 진혁의 아버지, 서강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일본 제일의 검사라더니, 허풍은 아닌 모양이야.’

그의 아버지에 비하면 조금 부족하긴 했지만, 충분히 강자라 불릴 수 있는 자.

“단순히 인사치레로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일이지?”

한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자들이 그렇게 한가할 리 없다.

진혁이 눈을 가늘게 뜨자, 마사코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역시, 듣던 대로 심계가 깊으시군요. 하지만, 오늘은 정말로 인사만 드리러 온 거랍니다.”

“내일은 다를 거란 말이군.”

“물론, 이야기할 게 있긴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하긴 곤란할 것 같거든요. 듣는 귀가 많아서.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그녀는 손가락으로 주변 곳곳을 가리키고는, 그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진혁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관서의 엽사들이 들어서는 안 될 말인가.’

이곳은 관서 엽사들의 심장이니, 이곳에서의 이야기는 모두 도청되고 있을 터.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라면, 그녀의 말대로 하는 것이 옳겠지만.

“그 말이 맞다고 치면, 그렇게 대놓고 도청하고 있다는 말을 해도 되는 건가?”

그걸 듣고 있을 관서의 엽사들에겐, 꽤나 무례한 태도일 것이다.

그러나.

“뭐, 어쩌겠어요?”

그 말에, 마사코는 빙긋 웃으며 찻잔의 차를 찻숟가락으로 살살 휘저었다.

“저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사토시 씨와 있는 저를 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럴 용기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그녀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촤아악!

찻잔 속 뜨거운 찻물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솟아나 주변으로 튀어 나갔다.

촤아악!

이내, 날아가던 찻물들은 몇 덩어리로 나뉘어 결계 곳곳에 뿌려졌다.

이미 주변의 마나를 느끼고 있던 진혁의 눈에 흥미가 깃들었다.

‘감시마법을 무력화시켰군.’

찻물에 담긴 진한 마나가 정확히 결계 안에 새겨진 감시마법의 술식만 골라 정지시킨다.

어지간한 마나감응력으로는 불가능한 일.

“한 나라의 2인자 치고는 고약한 취미군.”

“보여 주지 않으면 가끔씩 자기 분수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어서. 손님 앞에서 그만 무례를 범해 버렸네요.”

하지만 미안해하는 말투와는 달리 그녀의 눈은 장난기로 가득했다.

마사코는 텅 빈 찻잔에 찻숟가락을 내려놓은 다음.

‘사흘 뒤, 도쿄에서 뵙겠습니다.’

진혁을 향해 작게 속삭였다.

그와 거의 동시에, 그녀와 사토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시 한번 일본 정부의 이름으로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말을 마친 여자와 검사는 작별인사와 함께 자리를 떴다.

“……손님 대접이 형편없군.”

홀로 남은 진혁은 아직 식지 않은 차를 들이켜며 두 사람이 사라진 자리를 천천히 살폈다.

정확히는, 총리대신이 앉아 있던 의자를.

‘……마기인가.’

보통이라면 느끼지 못할 만큼 희미한 수준.

허나.

“망령이여.”

진혁이 의심을 품기엔, 그것으로 충분했다.

“가라.”

—……!

진혁의 명령에, 희끄무레한 망령들이 희미한 마기의 자취를 쫓아 움직였다.

신칸센.

시속 600킬로미터로 움직이는 마력부양열차.

그중에서도 황실과 정부의 고위직만이 탈 수 있는 전용 열차가 나고야를 지나 도쿄로 향하고 있었다.

“일을 굉장히 번거롭게 하시는구려, 총리대신.”

마모루 사토시.

일본의 검신은 맞은편에 앉아 찻잔을 기울이는 마사코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서진혁이라고 했던가? 그 조선놈이 강하다곤 해도, 그 자리에서 베어 버리는 건 어렵지 않았을 텐데 말이오. 놈이 일본에 두고두고 해악이 될 거라면, 응당 그렇게 해야지.”

하지만 마사코는 사토시의 퉁명스러운 말에 대답하는 대신 쿠키를 하나 집어 들었다.

“거, 먹지만 말고 대답 좀 해 주면 안 되겠소?”

“천황(天皇)폐하의 지시라고 말씀 드렸을 텐데요.”

“천황폐하께서, 그자를 궁으로 불러오라 했단 말이오? 정말로?”

“잘 다루면 쓰임새가 있다고 여기신 걸지도 모르지요.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니까.”

“하긴, ‘그자’도 마찬가지였지.”

총리의 대답을 들은 사토시는 누군가를 떠올리고는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모든 의문이 풀린 것은 아니었다.

“그럼, 나머지 계획은 어찌 되는 것이오?”

“계획은 그대로 진행됩니다.”

마사코는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고는 미소를 지었다.

“이미 관서에 카게(影)들을 침투시켜 놓은 상태입니다. 모리와 시마즈, 관서의 두 머리만 제거한다면 나머지는 모래알처럼 흩어질 거예요.”

“카게들이라, 천황께서 신경을 많이 쓰고 계시는구려.”

“둘로 쪼개진 일본을 합치고, 고토를 되찾을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요.”

“그때를 대비해, 미리 칼을 벼려 둬야겠소.”

말을 마친 사토시가 마사코를 향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도 미소로 방위대신을 맞이한 것은 마찬가지.

그러나.

‘그래, 머지않았지.’

그녀의 속내는 달랐다.

‘이 땅에, 마인들의 나라가 세워질 날이.’

시즈노 마사코.

아니, 미령은 대주로부터 받은 명령을 기억하고 있었다.

‘일왕을 포섭하고, 서진혁을 제거해라. 그러면, 우리는 새로운 나라를 열게 될 거다.’

“그때가 정말, 기다려지는걸요.”

진짜 정체를 숨긴 채, 마사코의 겉모습을 뒤집어쓴 미령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기울였다.

—……!

망령들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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