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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100화 (100/174)

100화

검은 기운이 도쿄를 뒤덮었다.

어디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허공에서 솟아나듯 나타난 검은 안개가 주변을 뒤덮었다.

‘마기다.’

그것은, 진혁이 선 황거와 호텔 사이의 도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스으으!

칼로 내려친 듯 세로로 갈라진 차원의 틈에서, 검은 기운과 함께 생명체 하나가 나타났다.

그 형태는 분명 인간의 것이었지만, 겉모습과 달리 검은 남자가 뿜어내는 기운은 마나가 아니었다.

마기.

그것도 아주 진한 마기가, 남자의 손발을 마치 장갑과 신발처럼 감쌌다.

마인.

마기를 몸에 받아들여 타락한 자의 검은 눈이 진혁에게로 향했다.

“죽어라.”

스으으!

그 말과 함께, 마인의 손을 감싼 장갑이 날카롭고 뾰족한 형태로 변했다.

타앗!

장갑 대신 한 쌍의 칼날을 손에 낀 마인은, 주저 없이 진혁을 향해 몸을 날렸다.

목표는, 그들의 계획을 방해하는 서진혁의 생명.

마나라고는 한 톨도 느껴지지 않는 적이 상대였지만, 마인은 조금도 방심하지 않은 채 진혁의 급소를 찔러 들어갔다.

그러나.

서걱!

“……커헉.”

마인은 목표를 이룰 수 없었다.

털썩!

쓰러진 마인의 몸통 한가운데에 뚫린 구멍으로부터, 푸른색의 화염이 피어올랐다.

화륵!

고작 수 초 만에, 푸른 화염은 쓰러진 남자의 몸을 집어삼켰다.

곧.

쿵! 쿵!

남자의 뒤에서, 활활 타오르는 거검을 쥔 식귀가 모습을 드러냈다.

진혁 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이제부턴 제가 지키겠습니다.

“괴수는?”

갑 급 괴수도 이전보다 약해졌으니, 둘만으로도 충분할 겁니다.

말을 마친 식귀는 타오르는 검을 들어 올린 채 진혁의 옆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진혁의 표정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마인이…… 너무 많아.’

짙은 마기의 흔적이 온 도시에서 느껴졌다.

성전기사단의 지원이 함께한다고는 하지만, 상대의 숫자 역시 만만치 않은 상황.

하나하나는 상대하기 어렵지 않았지만, 너무 많은 숫자가 넓게 퍼져 있는 것이 문제였다.

‘아무래도, 사람이 더 필요하겠는데.’

진혁과 그가 부리는 망자들은 이미 할 일이 정해져 있었으니, 다른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

형님.

그의 동생, 상혁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그때였다.

무혁 형님께 연락했습니다. 아마, 10분 내로 도착할 겁니다.

‘좋아.’

머릿속으로 들려온 동생의 기진맥진한 목소리에, 진혁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잘 됐어.’

마인사냥꾼의 칭호를 가진 서무혁과 특수부의 대원들만큼 이 상황에 적합한 사람도 없을 터.

그들이 도착한다면, 도시 곳곳에 퍼져 있는 마인 정도는 쉽게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버텨 주길 바라야겠지만.’

진혁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콰아아아아!

갑 급 괴수와 황거 안의 마인.

둘의 발을 묶어 두는 것.

‘얼마 남지 않았다.’

또다시 쓰러지는 전갈사자를 바라보던 진혁은 눈을 빛냈다.

허나.

안심하기엔 아직 일렀다.

‘……연결이 끊겼다.’

적의 정예, 카게의 시체를 일으켜 만들어 낸 망자.

궁궐의 마인을 상대하고 있던 그들 중 하나의 연결이 끊어진 순간, 진혁은 표정을 굳혔다.

망자와 연결이 끊어지는 경우는, 오직 하나뿐.

‘소멸한 건가.’

망자에 깃든 망령의 완전한 소멸.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지만, 쉬운 일도 아니었다.

‘확인한다.’

진혁은 정신을 집중했다.

곧, 그의 머릿속에 연결된 카게 중 하나의 시야가 또렷하게 나타났다.

‘새로운 마인이군.’

채찍을 든 여자 옆에서 검은 그림자를 부리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

퍽! 퍼퍽!

남자가 손을 휘두를 때마다 수많은 그림자들이 카게의 투명한 몸뚱이를 집어삼키듯 감싼 다음 으깨 버렸다.

망자와 시야를 공유한 진혁의 시선이, 검은 옷의 남자에게로 향했다.

순간.

‘……여기서 만날 줄이야.’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진혁은 입꼬리를 뒤틀었다.

‘평생 못 볼 줄 알았는데.’

으드득.

이를 악문 그의 눈이, 서서히 분노로 타올랐다.

세기의 여명과 함께 등장한 마법은, 지구의 인류가 가진 과학기술의 수준을 몇 차원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했다.

쐐애애액!

세한그룹을 상징하는 북두칠성이 날개에 찍혀 있는 유선형의 검은 비행정 또한. 그중 하나, 검독수리.

세한중공업과 강철마탑, 이가의 이화그룹이 합작하여 개발한 극초음속 수직 이착륙 비행정.

마하 20을 넘는 경이적인 속도와 순간적으로 대기권 돌파까지 가능한 내구성을 지닌 괴물에 탑승할 수 있는 것은 세한에서도 오직 한 부류의 사람들뿐이다.

세한보안 특수부의 인간 사냥꾼들.

“도쿄 도착까지 앞으로 5분. 장비 다시 체크해!”

특수부장이자 서가의 차남인 서무혁의 서슬 퍼런 명령에, 비행정에 탄 스무 명의 사람들은 몸 곳곳에 매달아 둔 보구와 무기 등을 확인했다.

성별도, 나이도, 종족도 제각기 달랐지만 하나같이 마인을 추적하고 사냥하는 데 도가 튼 자들.

실전을 앞두고 묵묵히 장비를 확인하는 직원들 앞에서, 서무혁은 선글라스를 낀 채 오른쪽에 붙은 화면을 바라봤다.

화면에는, 비행정의 아래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쳐진 지상의 모습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무혁의 생각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진혁 형님이 왜 나를 도쿄까지 불러낸 거지?’

피만 섞인 형제일 뿐, 실제로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

지난번 형인 진혁을 몰아내려던 일이 실패한 뒤로는 더욱 그랬다.

‘굳이 형님이 나와 특수부를 불러낼 이유라면, 하나뿐이겠지만.’

마인.

마인을 추적하고 사냥하는 일이 그와 특수부의 일이었으니, 그것 말고는 떠올릴 만한 이유가 없었다.

도착까지 앞으로 3분, 3분 소요 예정.

스피커에서 조종사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장비를 점검하던 직원들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부르르!

그때였다.

무혁의 오른 손목에 매달아 둔 특수형 통신 구슬이 부드럽게 진동했다.

대상의 얼굴 대신 구슬 위로 떠오른 것은, 알 수 없는 문자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암호.

순식간에 암호를 해석한 무혁은, 통신을 요청한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진혁 형님.’

상대를 확인하자마자, 그는 통신 구슬에 마나를 흘려 넣었다.

―들어라.

곧, 맏형의 목소리가 귀에 꽂은 수신기로 전해졌다.

‘화가 났어.’

지난번과는 달리, 진혁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무슨 일이지?’

십 년 전에도, 최근에도 본 적 없는 형의 모습에 무혁은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웠다.

그러나.

―놈이 나타났다.

진혁이 씹어뱉듯 말을 이어 나갔을 때.

“……알겠습니다, 곧 보죠.”

무혁은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얼음처럼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그는 비행정의 측면에 위치한 수십 개의 금속 원통 중 하나로 향했다.

긴급출격 혹은 탈출 시에만 사용되는 비상용 낙하 포드.

“부장님?”

“1호 상황을 발령한다. 긴급출격 개시.”

직원들의 당황한 시선 앞에서 빠르게 상황을 설명한 무혁의 오른손이 벽면의 붉은 버튼을 거세게 내리쳤다.

순간.

콰아아아!

무혁을 태운 채, 비행기에서 분리된 포드에 장착된 마력 엔진이 불꽃을 내뿜었다.

이내, 원통형으로 생긴 포드는 미리 입력된 목적지를 향해 음속을 넘어선 속도로 날아갔다.

‘그래, 드디어 찾았다.’

십 년을 넘게 찾아 헤맸던, 세한의 대적(大敵).

총탄보다 빠르게 지상으로 쏘아진 금속 원통 속에서, 무혁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도쿄 한복판에 나타난 갑 급 괴수, 전갈사자.

놈의 최후는 그리 오래지 않아 찾아왔다.

대마법진의 가동이 정지했습니다.

통신 구슬로부터 부팀장, 주연의 보고가 들어온 순간.

“끝내라.”

진혁은 망자들을 향해 손짓했다.

갑니다!

흐아아압!

식귀와 킹 스켈레톤이 붉고 푸른 검을 쥔 채 달려 나간다.

몇 번이고 괴수의 가죽과 뼈를 갈라냈지만, 정령력으로 만들어진 오러는 여전히 날카롭게 벼려진 상태.

푸우욱!

수십 번을 그랬던 것처럼, 사자의 공격을 손쉽게 피해 낸 둘의 검은 괴수의 뱃가죽에 깊숙이 꽂혔다.

“크아아아아아!”

끔찍한 고통 속에서 전갈사자가 포효했다.

수십 번을 죽었다 살아났지만, 뱃가죽이 뚫리는 고통에 익숙해질 수는 없었던 모양.

하지만, 포효도 잠시.

이제, 좀, 죽어!

콰르르릉!

적룡이 불러낸 수십 줄기의 번개가 사자의 머리 위를 강타한 순간.

“크……아…….”

갑 급의 괴수는 짧은 신음과 함께 쓰러졌다.

그것으로 끝.

대마법진이 공급해 주는 마나 없이, 놈이 자력으로 죽음에서 되돌아올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쉬운 편이었군.’

원래 인간이었기에 괴수의 육체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것일까.

아스칼론을 사용하고 나서야 이길 수 있었던 외눈박이에 비하면, 어린아이를 상대하는 것과 같았다.

스으으!

죽은 괴수의 몸에서, 마기로 검게 물든 영혼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악령이 되었군.’

이미 명계의 순환시스템으로 정화시킬 수 없을 만큼 변질되어 버린 영혼.

진혁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스으으!

진혁은 빠르게 차오르는 흑마력을 오른손에 한껏 끌어 올리고는, 허공에 멍하니 떠 있는 악령을 향해 쏘아 냈다.

크아아아……!

짧은 비명과 함께, 악령은 검은 연기 사이로 흩어져 소멸했다.

‘오스틴 젠킨스…… 어리석은 자.’

순간의 실수로 영혼까지 소멸당할 줄이야 몰랐겠지만, 어쩔 수 없는 결과다.

악령이 된 영혼을 명계의 순환시스템에 합류시켰다간, 시스템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었으니까.

악령을 소멸시킨 진혁이 일왕의 궁궐, 황거를 향해 시선을 돌린 그때.

쐐애애액!

하늘 높은 곳으로부터, 공기를 찢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주인, 피해요! 하늘에서 뭐가…….”

“진혁 님!”

“주인!”

당황한 멜리나의 목소리와 함께 성준과 자이츠가 진혁을 보호하기 위해 움직였지만.

콰아아앙!

하늘을 찢는 굉음이 지상에 도달하기도 전, 거대한 무언가가 지면 위에 내리꽂혔다.

사람 하나가 들어갈 만한 크기의 금속 원통.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충돌한 지면이 깊게 패였지만, 원통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멀쩡했다.

곧.

푸슈!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원통의 한쪽이 열렸다.

그와 함께 밖으로 나온 것은, 선글라스를 쓴 한 명의 남자.

“……형님.”

세한보안 특수부장, 서무혁.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원통에서 빠져나온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하지만 진혁의 시선은 일왕의 궁궐, 황거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황거의 정문에서 나타난 한 남자와 여자에게서.

진혁의 눈이 검은 옷을 입은 남자에게로 향한 순간.

빠드득.

그의 어금니에서, 부서질 듯 소름 끼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를 악문 진혁은 천천히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서무진.”

세한의 대적.

동시에.

진혁의 큰아버지.

“그 이름은 버린 지 오래란다, 진혁아.”

스으으!

진혁을 향해 미소 짓는 무진의 등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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