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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106화 (106/174)

106화

에피로나에 거주하는 괴수가 지구까지 도달하기 위해선 던전이라 불리는 차원 게이트를 이용해야 한다.

그렇기에, 지구의 괴수를 아무리 토벌한다 해도 괴수들의 숫자를 줄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구의 무작위 위치에 생성되는 던전게이트를 모두 틀어막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해양형 괴수를 제외하고는.’

백여년 전, 에피로나와 지구가 처음 이어졌을 때.

가장 먼저 지구로 쏟아져 나온 것은 해양형 괴수였다.

파괴된 에피로나의 바다에서 탈출한 수많은 괴수들은 바다로 이어진 무역로를 반쯤 봉쇄해 버렸고, 수십 년 동안 인류의 가장 큰 골칫거리 중 하나로 자리해 왔다.

이십여 년 전, 지구에 남은 놈들을 전부 멸절시키기 전까지는.

‘하지만, 이젠 달라.’

이십 년 넘게 모습을 감춘 해양형 괴수가 다시 나타났다.

놈들의 씨를 말리지 않는다면, 지구의 대양은 다시 괴수의 손에 들어가게 되리라.

서해 바다 아래의 괴수를 토벌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한 이유였다.

‘꽤 어렵기는 하지만.’

강화도의 해변에서 누런 바다를 바라보며, 진혁은 턱을 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다라는 자연환경 그 자체.

육지에서 활동하도록 수백만 년간 진화해 온 인간에게, 바다란 불편하고 위험한 곳이다.

그것이, 백 미터 아래의 바다 깊은 곳이라면 더더욱.

‘일 품의 엽사라도 숨은 쉬어야 하니까.’

마나홀의 마나를 이용한다면 삼십 분 정도는 버틸 수 있지만, 그게 한계다.

호흡도, 움직임도, 시야도 자유롭지 않은 바닷속에 들어가 싸우는 것은 자살 행위.

이미 죽어 숨을 쉬지 않는 망자들이라면 조금 낫기야 하겠지만, 전투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놈을 물 밖으로 끌어내야겠지.’

그제야, 비로소 토벌다운 토벌이 가능해질 터.

‘놈을 유인할 만한 미끼가 필요하다.’

기왕이면, 괴수의 화를 돋우기에 적합한 능력을 지닌 자.

진혁은 그가 알고 있는 엽사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곧, 미끼 임무를 맡기기에 적당한 사람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렸다.

‘백 퍼센트 승낙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시도해 볼 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

그의 앞에 떠오른 회색의 망령.

녀석을 바라보던 진혁의 눈빛이, 번쩍 빛났다.

제니퍼 메이슨.

여섯 살 때 빙결 능력자 판정을 받고, 미국 최고의 헌터 양성 기관인 미국 헌터 아카데미 최연소 수석을 시작으로 수많은 기록을 세운 전설적인 S급 헌터.

능력과 달리 부드럽고 따뜻한 성격으로 미국에서도 인기 있는 헌터 중 하나였지만.

“무슨 일이죠?”

진혁의 앞에 나타난 그녀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다.

쩌저적!

자신의 능력을 갈무리할 생각이 없는 것인지, 다가오는 제니퍼의 걸음걸음마다 하얀 서리가 발자국처럼 피어올랐다.

곧, 탁자에 마주앉은 그녀의 눈빛이 진혁의 심장을 난도질할 것처럼 날카롭게 빛났다.

“아직 사흘밖에 되지 않았는데, 자수할 마음이라도 생겼나 보죠?”

제니퍼는 이미 진혁을 범인으로 단정짓고 있었다.

‘해양형 괴수?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파괴된 에피로나의 바다에서 넘어온 것도 아니고, 멸종한 괴수들이 어떻게 살아 돌아온단 말인가.

설사, 일말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 할지라도.

‘애덤…….’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슬픔과 복수심 사이에, 또다른 가능성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그러나.

“아니, 자수할 생각은 없다.”

진혁은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는, 손가락으로 제니퍼를 가리켰다.

“놈을 잡을 미끼가 필요한데, 도와줬으면 좋겠다만.”

“……미끼요?”

그녀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지만, 진혁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빙결 능력이 해양형 괴수를 가장 자극하기 좋다는 건 이미 대토벌시대에 증명된 사실이지. S급 헌터라면 더욱 그렇고.”

오러나 마법, 정령과는 달리 발현능력은 선천적인 영역이다.

각성한 순간부터 정해진 속성이나 원소를 손발처럼 다룰 수 있는 자들.

위력만 조절한다면 심해 깊은 곳의 물까지 얼려 버릴 수 있는 S급 빙결 능력자라면, 백 미터 남짓한 바다 밑에 몸을 숨긴 괴수쯤은 쉽게 끌어낼 수 있으리라.

“설마, 내가 당신 말을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 능력의 주인, 제니퍼가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게 문제일 뿐.

“해양형 괴수를 빌미로 바다 한복판까지 끌어낸다라. 그다음엔, 해양형 괴수에게 안타까운 죽임을 당하겠군요. 그게 괴수에게 당한 건지 어쩐 건지는 아무도 알 수 없겠지만.”

웃고 있는 입과는 달리, 그녀의 눈은 일그러져있었다.

“물론, 저도 쉽게 당하지는 않을 거지만요. S급 헌터 라이센스를 포커로 딴 건 아니니까.”

말을 마친 제니퍼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더 이상, 말도 안 되는 소리만 해대는 저 남자와 말을 섞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

고개도 까딱하지 않고 그녀가 곧장 몸을 돌려 사라지던 그때.

“2월이 머지않았는데, 그냥 가도 괜찮은 건가?”

순간.

제니퍼는 나가던 걸음을 멈추고 진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 뒤를 캘 시간도 있었나 보네요.”

진혁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엔 분노를 넘어 경멸의 빛까지 내려다보였다.

진혁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 생일도 챙기지 못해서 아쉬워하던데. 놀이공원에 가기로 하지 않았나? 공주님들이랑 사진도 찍기로 했다더니.”

“……당신, 뭐야.”

제니퍼의 눈빛이 변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에 숨겨 둔 아이의 존재와 생일까지야 어떻게 찾아볼 수 있겠지만, 언제 했는지도 모를 아이와의 약속까지 캐내는 게 가능할 리 없지 않은가.

가능하다면, 생각해 볼 만한 방법은 단 하나.

“…당신, 애덤을 어디다 숨겨 둔 거지?”

실종된 남편이 아직 살아 있을 가능성.

그러나, 진혁은 그 가능성을 단숨에 꺾어 버렸다.

“죽었다.”

“역시, 당신이……!”

쩌저적!

제니퍼의 주변 공기가 하얗게 얼어붙었다.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지는 순백의 눈송이 사이로, 그녀의 차가운 분노가 거침없이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진혁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지금 내 옆에 있기도 하다. 보이지는 않겠지만.”

“뭐?”

“제니퍼 메이슨, 당신을 하루만 빌리도록 하지.”

대가는, 한 시간.

쏟아지는 살기와 마주한 진혁의 눈이 차가운 빛을 내뿜었다.

서해 어딘가.

가장 깊은 곳이라 해 봐야 백 미터 안팎의 얕은 바닷속엔, 한 마리의 문어가 바닥에 죽은 듯이 붙어 있었다.

평범한 문어는 아니었다.

독이라도 가진 것처럼 요란한 색깔의 무늬도 독특했지만, 어지간한 암초나 섬과 비교할 수 있을 법한 거대한 크기는 정상적인 생물이 가질 만한 것이 아니었다.

괴수.

그중에서도, 을 급에 해당하는 흑창문어가 놈의 이름.

이름답게 창처럼 뾰족한 촉수들을 무기로 사용하는 녀석의 몸 크기는 얼마 전보다 조금 커져 있었다.

‘이대로면, 승격도 가능할지 모르겠어.’

그 계기는, 오랜 기간 숨어 다니며 어렵게 성체로 자라난 놈의 앞에 인간들이 나타나면서부터.

인간들이 가진 힘은 강력했지만, 바닷속을 제집처럼 헤엄칠 수 있는 을 급의 괴수 앞에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얕은 바다에서 질 좋은 먹이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다른 동족들은 모두 죽었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본능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먹고, 성장하고, 번식하라.

이대로 한 단계 격을 더 올릴 수 있게 된다면, 그를 낳은 어미와 마찬가지로 이 드넓은 바다에 수많은 괴수의 씨앗을 뿌릴 수 있으리라.

‘일단은, 지난번 먹어치운 인간들의 힘을 흡수한다.’

그러기 위해, 흑창문어는 쥐 죽은 듯이 바다 밑바닥에 숨어 있었다.

그러기를 며칠.

‘인간인가.’

주변을 감시하던 괴수의 눈에, 한 명의 인간이 들어왔다.

그것도, 지난번 그가 먹어치운 상대만큼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

‘먹어치울 수만 있다면, 어쩌면.’

격을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스으으!

서서히, 바닥에 넓게 퍼져 있던 흑창문어의 거대한 다리가 몸을 움직였다.

승격에 대한 욕망을 억누르기에, 을 급 괴수가 가진 지성은 너무나 미약했다.

‘먹어치운다.’

서서히, 놈의 촉수들이 먹잇감을 사냥하기 위해 움직였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투창처럼 쏘아져 나간 그의 촉수들은 단숨에 인간의 연약한 육체를 꿰뚫어 버리리라.

‘조금만, 조금만 더.’

인간이 조금씩 가까이 다가올수록, 괴수가 가진 욕망은 더욱 강해졌다.

허나.

인간이 채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기도 전.

쩌저저적!

‘뭐……지?’

바다가 갑자기 차가워지는 불쾌한 감각이 을 급의 괴수를 자극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쩌적! 쩌저적!

‘추, 추워. 추워……!’

순식간에 영하로 떨어진 바닷물은 얼음이 되어 문어의 촉수를 구속했다.

북극의 유빙보다 차가운 얼음덩어리들이 놈의 예민한 촉각을 자극했다.

자신을 괴롭히는 놈의 정체가 무엇인지, 괴수는 곧장 깨달을 수 있었다.

‘인간……놈……!’

자신의 위에서 하얀 무언가를 계속 주변에 뿜어내는 인간.

놈을 막아야 했다.

‘이노옴……!’

콰드드득!

물보라와 함께, 반쯤 얼어붙은 거대한 촉수들이 얼음을 깨고 위로 튀어 올랐다.

촉수의 창처럼 뾰족한 끝이 인간의 몸뚱이를 꿰뚫어 버리기 위해 쏘아져 나갔다.

하지만.

휙!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인간은 자신의 촉수를 유유히 피한 다음 서서히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놓칠 수 없었다.

‘잡을……거야……!’

쿵!

거대한 문어가 촉수로 땅을 힘껏 밀어냈다. 그 반발력에 의해, 작은 섬 만한 크기의 괴수가 빠른 속도로 깊은 바닷속을 벗어나 수면으로 향했다.

‘잡는다……!’

제대로 성숙하지 않은 놈의 지성으로는, 자신에게 고통을 준 인간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었다.

푸확!

순식간에, 백 미터 아래 가라앉아 있던 괴수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 어디 있지, 인간은?’

환한 태양빛 아래로, 괴수는 어딘가에 있을 인간을 찾아 거대한 눈을 굴렸다.

하지만.

쐐애애액!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조금 전 자신에게 고통을 가한 인간이 아니었다.

빠른 속도로 하늘을 가르는, 어깻죽지 부분부터 깨끗하게 절단된 거인의 팔.

그리고.

괴상한 각도로 꺾인 거인의 손에 쥐어진, 한 자루의 붉은 검.

‘뭐지?’

욕망에게 밀려났던 흑창문어의 지성이 다시 제 자리를 찾기 전.

콰아아앙!

아스칼론의 붉은 칼날이, 놈의 가죽을 찢고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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