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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111화 (111/174)

111화

죽음의 신은 명계를 관장한다.

현계에서 돌아온 영혼을 정화시켜 다시 지상으로 내려보내는 것이 그의 임무.

하지만, 진혁이 확인한 명계의 상태는 심각했다.

‘죽음의 신이 사라졌다.’

곧, 그가 관리해야 할 명계의 순환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

명계로 올라가야 할 영혼이 지상에 머물고, 현계로 내려가야 할 영혼이 내려가지 못한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생사의 균형이 깨질 터.’

죽은 이들은 되살아나 망자가 되고,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들은 점점 줄어든다.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현계에 남는 것은 망자들뿐일 것이다.

그 전조가, 다름 아닌 바깥의 늑대인간이었다.

사령술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생겨난 망자라는 건 정상적인 상태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쿵! 쿵!

이 순간에도, 놈들이 세계수를 부수려 드는 소리가 안쪽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잠시 다녀오겠다.”

“놈들을 상대할 수 있는 건가?”

“상대? 아니.”

에플리오네의 말에, 진혁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복속시킬 거다.”

쾅! 쾅!

거대한 늑대인간의 발톱이 세계수, 위그드라실의 외피를 두들긴다.

물론, 고대의 마법으로 단단히 보호받고 있는 세계수의 외피가 고작 괴수의 발톱 따위에 찢어질 리 없다.

허나 상처는커녕 흠집조차 내지 못하고 있음에도, 늑대인간은 멈추지 않았다.

놈이 요정의 화살과 마법에 수십, 수백 번씩 심장이 찢겨나가면서도 되살아나 앞발을 휘두르는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부숴라, 부숴라, 부숴라…….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울려 퍼지는, 누군가의 거역할 수 없는 목소리.

그 목소리가, 괴수 중에서도 흉포하기로 이름난 늑대인간들을 세계수로 달려들게 만들고 있었다.

“망자인가.”

혹한의 대지 위에서, 한 인간 남자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때였다.

“크르르르.”

“크으으…….”

인간의 기척을 느낀 늑대인간들의 시선이 세계수에게서 인간에게로 옮겨 갔다.

핏줄이 터져 붉게 물든 괴수의 눈엔, 인간에 대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타타타탓!

영혼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늑대인간들은 주저 없이 따랐다.

“크르르르르!”

늑대인간들의 앞발에 달린 기다란 발톱은 일격에 인간을 반토막 내기에 충분한 위력.

달려드는 놈들의 발톱이 북극의 태양 아래 번쩍였다.

“망자여.”

남자, 서진혁이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거짓된 주인에게서 벗어나, 오롯이 내게 속하라.”

그가 내뱉은 주문과 함께, 검은 심장에서 끓어오르는 흑마력이 양손을 타고 안개처럼 밖으로 뿜어져 나갔다.

이내, 흑마력의 안개가 진혁을 토막 내기 위해 달려오는 늑대인간들을 덮쳤을 때.

“크으으…….”

늑대인간들의 걸음이 멈췄다.

마치 고장 난 인형처럼, 놈들은 가만히 선 채 초점 잃은 동공으로 먼 곳의 인간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동안에도, 진혁이 내뿜은 흑마력의 안개는 늑대인간들의 몸속으로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죽여라, 죽…… 여…….

영혼 깊은 곳에서 그들을 움직이던 목소리가 서서히 흐릿해졌다.

그와 함께, 새롭게 받아들인 진한 흑마력이 그들의 영혼을 새롭게 물들였다.

마침내.

‘내가, 너희의 주인이다.’

그들의 영혼 깊숙한 곳에서,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캥! 캐캥!”

“끼잉! 끼잉!”

복종의 울음소리와 함께, 놈들은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갈가리 찢어 버리려던 인간을 향해 드러누웠다.

“……형편없군.”

강아지처럼 누워서 배를 까 보인 늑대인간들을 내려다보며, 진혁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이렇게 보니, 평범한 개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구나.”

세계수 밖에서 드러누운 채 혀를 내민 늑대인간들을 바라보며, 에플리오네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요정들의 활과 마법으로도 어쩌지 못한 괴수를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복종시켰다는 사실이, 그녀의 머릿속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정작 놈들을 부리고 있던 진혁의 표정은 심각했다.

‘분명히…… 사령술로 만들어진 녀석들은 아니다.’

그렇다기엔 놈들을 움직이는 술법의 형태가 너무나 조악했다.

탐욕고에서 얻은 식귀의 육체만도 못했으니, 사령술이라고 말하기도 조금 애매한 수준.

‘그런 것 치고는, 흑마력의 농도가 진하긴 하지만.’

못해도 을 급 괴수라고 봐야 할 늑대인간을 망자로 만들 정도의 흑마력은 쉽게 모이지 않는다.

망령군주의 지식과 기억을 전수받은 진혁조차도 영지를 세우기 전까지는 흑마력을 모으는 데 어려움을 겪었으니, 더욱 이상한 일이었다.

‘명계 때문인가.’

명계의 순환시스템이 지금처럼 작동하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더욱 빈번이 일어날 터.

‘죽음의 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확인해 봐야겠어.’

확인해 볼 만한 방법은 몇 가지가 있었으니, 그리 어렵지는 않으리라.

그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지만.

“에플리오네.”

진혁의 부름에, 늑대인간을 바라보던 요정족의 대장로가 고개를 돌렸다.

“그래,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었지.”

말을 마친 그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명계와의 계약이 실패로 돌아갔으니, 에플리오네가 흑마력을 다루기 위해선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렇지 못한다면, 그녀도 언젠가 요정왕처럼 수정에 봉인당해야 할 테니까.

“차선책이 있다.”

불안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에플리오네를 향해, 진혁은 해결책을 말했다.

“그게, 뭐지?”

“나를 통해 계약을 맺어라.”

“……뭐라고?”

“사령술사는 다른 이와 종속의 계약을 맺을 수 있다. 이 계약을 받아들인다면, 너 역시 내가 가진 명계의 권한을 빌려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내 제자가 되어라, 에플리오네.”

요정족의 대장로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지구에서 가장 높이 솟아오른 지점이 에베레스트라면, 지구에서 가장 깊숙이 파묻힌 지점은 마리아나해구다.

그 깊이만 1만 미터가 넘어 빛조차 들지 않는 해구의 밑바닥.

극소수의 생물들만이 어마어마한 수압을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는 해구의 한구석엔, 돔 형태로 지어진 작은 건물이 하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저 건물 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엄청난 수압에 짓눌려 온몸이 갈가리 찢겨 나갈 테니까.

그렇기에, 건물 안에 모인 다섯 명의 남녀는 모두 평범한 자들이 아니었다.

하나같이 눈에서 검은 마기를 내뿜는 자들, 마인.

“한 명이 빠졌네?”

그중 흰색 치파오를 차려입은 여자가 몽롱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흑룡대가 당했다. 대주의 행방도 확인되지 않고 있어.”

그 말에 답한 것은 온몸에 문신을 새긴 남자였다.

울퉁불퉁한 근육 투성이의 몸에 새겨진 검은 문신들이, 마치 살아 있는 듯 몸을 뒤틀고 있었다.

“작은 나라에서 설치고 다니더니, 그럴 줄 알았지.”

“하지만, 흑룡대는 우리들 중에서도 강한 편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남자의 옆에 서 있던 꼬마 아이가 빈정대자, 철 가면을 쓴 사내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문신 사내를 바라봤다.

“한국에, 새로운 걸림돌이 하나 나타난 모양이다. 그놈에게 전부 당한 모양이던데.”

“한국…… 하여튼, 조그마한 나라에서 별 이상한 게 다 튀어나온다니깐…….”

사내의 말에 치파오 차림의 여자는 풀린 눈으로 손에 쥔 곰방대를 빨아들였다.

“가볍게 볼 일이 아니야. 흑룡대가 당할 정도라면, 우리에게도 위협이 될 거다.”

“그냥…… 처리하면 되는 거잖아? 결국은…… 한 사람일 뿐이야.”

철 가면을 쓴 남자가 우려를 표했지만, 여자는 헤죽 미소를 지었다.

“말은 쉽게 하는군, 백묘. 그렇게까지 말했으니, 당연히 직접 움직이겠지?”

빈정이 상한 듯, 철 가면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그녀, 백묘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물론이지…… 순식간에 처리해 줄게.”

말을 마친 그녀의 미소는, 어딘가 모르게 뒤틀려 있었다.

“놀랍구나.”

진혁과 종속의 계약을 맺은 에플리오네의 감상은 짧았다.

“마나와는 완전히 다른 에너지란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사용할 수 있었다니.”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녀는 약간의 흑마력을 뭉친 손을 슬쩍 움직였다.

그러자.

“끼잉! 끼잉!”

“캐캥!”

그녀의 앞에 서 있던 늑대인간들이 강아지처럼 배를 까고 드러누웠다.

“이미 한 번 다뤄 봐서 그런지, 습득이 빠르군.”

그 모습을 보며, 옆에 선 진혁은 나쁘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죽은 자들이니 흑마력만 제때 공급해 주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다.”

그 과정에서, 에플리오네의 제어능력도 점점 강해질 터.

진혁이 굳이 제자가 된 에플리오네에게 늑대인간들을 넘겨준 이유였다.

“그러면, 언젠간 아버지의 흑마력도 다룰 수 있게 되는 건가?”

“백 년 정도. 요정에겐 짧은 시간이겠지만.”

천 년을 살아가는 요정의 수명과 비교하면 아주 짧은 시간.

“그래, 그렇겠구나.”

그 말에, 에플리오네의 눈엔 한 줄기의 희망이 깃들었다.

죽음 직전에 봉인된 아버지를 다시 구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곧, 그녀는 진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요정족의 대장로로서, 그대에게 감사를 표한다.”

어지간한 일에는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는 것이 요정들이란 점을 생각하면, 대장로가 직접 인간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

하지만 그녀가 받은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 가능한 일이었다.

그 말에, 진혁은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그렇게 고맙다면, 하나 받아 갈 게 있다.”

“받아 갈 것이라…… 그대는 나와 요정족의 은인이니, 필요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요구해도 좋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에플리오네.

그녀를 향해, 진혁은 필요한 것을 짧게 말했다.

“그러면, 뿌리도서관의 자료들을 좀 가져가지.”

요정들이 역사 이전부터 모아 놓은 고대의 자료들이 봉인되어 있는 장소.

‘외눈박이의 팔을 써먹을 만한 술법이 있겠지.’

어쩌면, 사령술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도.

요정족의 대장로를 바라보는 진혁의 눈이 번쩍,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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