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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114화 (114/174)

114화

인천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다.

에피로나와 연결된 게이트의 영향을 가장 가까이서 받는 인천의 던전 발생률은 다른 지역의 두 배 이상.

수많은 인천의 중립길드들이 다섯 엽사 가문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토벌에 애를 먹을 정도였으니, 그 위험도가 얼마나 높은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인천의 분위기는 점차 바뀌고 있었다.

“대피경보가 거의 안 울린 것 같지 않아?”

“그러게? 보통 한 달에 한 번 꼴로 울렸으니까, 이쯤이면 슬슬 울리고도 남았어야 하는데…….”

언제 괴수를 맞닥드릴지 모른다는 공포에서 벗어난 인천의 시민들은 의아해하면서도 오랜만의 평화를 즐겼다.

인천의 수 많은 던전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이유는 오직 하나.

“팀장님, 간석길드에서 온 선물입니다. 벌써 다섯 번째네요.”

“과하군.”

“마석을 이용해 키운 한우라던데요. 요즘 유행하는 선물이라고.”

고급스러운 포장지에 싸인 상자를 바라보던 진혁이 눈살을 찌푸리자, 주연은 뒷말을 덧붙였다.

“팀장님 덕분에, 엽사들의 피로가 많이 줄었다고 하던데요.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받으시죠.”

“일단은 놓고 가도록. 망자들이 치울 테니.”

말을 마친 진혁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엔, 이미 여러 선물 상자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진혁에게 감사를 표한다며 보낸 중립길드들의 선물.

“그래도, 대단한 일이긴 하죠.”

주연이 보기에, 진혁은 충분히 감사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혼자서 인천의 던전 절반을 감당하시다니, 이런 건 일 품의 엽사라도 불가능한 일이라고요.”

정확히는, 진혁이 부리는 수많은 망자들이 쉬지 않고 던전을 토벌한 덕분이었다.

혼자서도 병 급의 던전 정도는 충분히 토벌할 수 있는 망자들이 먹지도, 쉬지도, 자지도 않고 괴수들을 도륙하는데 버틸 수 있는 던전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일 품의 엽사라도 몸이 열 개인 건 아니니, 진혁처럼 혼자서 넓은 지역의 던전을 모두 정리할 수는 없었으리라.

“던전에서 얻은 부산물의 정리는?”

“세한금속과 강철 마탑 쪽에 처분할 예정입니다. 인천에서 열리는 던전의 절반이나 되는 양이니, 세한금속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렵더라고요.”

“알겠다. 그럼, 난 다시 연구실로 가 보지.”

주연의 막힘없는 설명에 진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건물의 지하 계단을 향해 몸을 돌렸다.

본체에서 떨어져 나갔지만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는 외눈박이의 왼팔을 조금 더 연구해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저기, 팀장님? 아직 말씀드릴 게 하나 더 남았는데요.”

걸음을 멈춘 진혁이 다시 몸을 돌렸다. 주연은 진혁에게 가까이 다가가 목소리를 낮췄다.

“……요즘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소문?”

“밤만 되면 괴수가 나타난다는 소문……입니다. 말은 안 되지만.”

말하는 본인도 믿기지 않았는지, 그녀의 표정엔 의구심이 가득했다.

“저희는 전우치를 이용해서 모든 던전들을 관리하는 데다, 지금까지 붕괴가 일어난 던전도 없었잖아요. 그런데, 괴수가 나온다는 소문은 왜 도는 건지…… 아직 감을 못 잡았어요.”

괴수는 던전을 부수고 나온다.

괴수를 사냥하는 엽사라면…… 아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있는 상식.

하지만, 인천에서 떠돌고 있는 소문은 그 상식을 정면에서 배반하고 있었으니까.

그녀가 머리를 긁적이자, 진혁은 짤막한 질문을 던졌다.

“괴수가 아니라 마인일 가능성은?”

“그건…… 불가능까진 아니지만, 가능성이 낮은 건 마찬가지예요. 다른 곳도 아니고 인천이라면 항구나 공항을 통해서 들어왔을 텐데, 그랬다면 진작에 걸렸겠죠. 밀입국이 말처럼 쉬운 것도 아니고.”

마인임을 숨기고 한국에 들어오려는 자들을 잡기 위해 공항과 항구에 배치된 엽사들을 생각하면, 그녀가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 일.

그러나.

“어쨌든, 불가능은 아니란 거군.”

그 작은 가능성이, 진혁은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소문의 근원지는? 목격한 사람이 있다면 대략적인 장소정돈 알고 있을 텐데.”

“중구난방이긴 하지만, 인천항과 동인천역 인근이 조금 많긴 해요. 하지만…….”

“그 부분을 조금 더 자세히 파 보도록. 뭔가 나올지도 모르지.”

다섯 가문 사이에서 중립지대로 취급받던 인천의 주도권을 서서히 쥐어가는 와중에 벌어진 일이다.

가능성이 낮다고 무시했다가, 나중에 곤란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음, 알겠습니다. 정리되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연은 그 말과 함께 고개를 숙이고는 인천지사 건물을 떠났다.

고작 소문에 불과한 정보를 여기까지 파낸 그녀라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으리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지만.’

스으으!

사라지는 주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진혁은 검은 심장 속에 가득 담긴 흑마력을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어느새 품에서 꺼내 든 영혼 구슬이 푸르게 빛났다.

—……!

……!

진혁이 보낸 흑마력의 유도에 따라, 구슬 속에 봉인되어 있던 망령들의 일부가 바깥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의 앞에 양떼처럼 모여 있는 회색 영혼들을 향해, 진혁은 명령을 내렸다.

“가라.”

—……!

수많은 망령들이 인천의 곳곳으로 퍼져 나간 것은, 그 다음의 일이었다.

인천항의 밤은 대낮만큼 바쁘게 움직인다.

밤에도 쉴 새 없이 들어오는 화물선의 컨테이너를 싣고 나르기 위해 하루에도 수백 대의 트레일러가 오가는 곳.

쿵!

대형 크레인에 걸린 붉은색 컨테이너 하나가 길쭉한 트레일러 위에 얹어졌다.

부우웅!

운반한 화물을 받자마자, 트레일러는 뒤에서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급히 출발했다.

주어진 시간에 맞춰 전국으로 화물을 옮기는 것이 운전기사의 일이니 당연한 일이긴 했지만.

트레일러가 향하는 곳은 고속도로가 아니었다.

끼기긱!

공단의 외곽에 위치한 버려진 공장.

공장을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난 탓에 평소에는 굳게 잠겨 있던 정문이, 오늘 밤은 어째서인지 활짝 열려 있었다.

공단에 들어선 트레일러는 자연스럽게 폐공장의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섰다.

끼익!

곧, 공장의 하역장에 멈춰선 트레일러의 운전석에서 한 명의 남자가 내렸다.

남자의 귀와 목, 손가락엔 콩알만 한 마정석이 박힌 장신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거기에, 등에 멘 것은 X자로 교차한 두 자루의 검.

운전기사가 아닌, 엽사의 복장이었다.

“후우, 젠장.”

트레일러에 실린 붉은 컨테이너로 향하는 남자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운 좋게 피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끝장날 뻔했군.”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말투로 중얼거리던 남자는, 굳게 잠긴 컨테이너의 철문에 묶인 굵은 쇠사슬을 잠시 바라봤다.

이윽고.

서걱!

순식간에 뽑힌 두 자루의 검이 쇠사슬을 두부처럼 갈랐다.

쿵!

매달릴 곳을 잃고 바닥에 떨어진 쇠사슬.

그와 함께, 놈이 묶고 있던 컨테이너의 철문이 서서히 입을 벌렸다.

“백묘, 그 년만 아니었어도 여기까지 올 일도 없었을텐데.”

컨테이너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남자는 이를 갈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의 부탁을 가장한 명령을 거절했다면, 돌아오는 건 죽음 뿐이었을 테니까.

“그래도 보상은 제대로 챙겨 주는 년이니까, 그것만 믿어야지.”

강제이긴 했지만, 그의 조직이 한국으로 진출하게 된 것은 사실.

새로운 시장을 처음 개척하는 것이니, 어쩌면 이 기회에 그의 조직을 더 확장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이 놈들만 있으면…… 충분하지.”

컨테이너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새카만 석탄.

그 아래 고이 숨겨져 있을 물건을 떠올린 남자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럼…… 일단 샘플로 한 박스만 풀어 보실까.”

하지만.

사악한 미소와 함께 남자가 석탄 상자 중 하나를 빼내기 위해 컨테이너에 올라탔을 때.

쐐애액!

그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쿠궁!

“뭐, 뭐야?”

거대한 컨테이너가 난데없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남자는 당황해 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어?”

바깥을 내다본 남자는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

분명, 바깥에 보여야 할 것은 공장의 담벼락이건만.

“왜…… 왜 하늘이 보이는 거야?”

추위와 함께 그의 눈앞을 가득 메운 밤하늘의 구름과 그 사이로 반짝이는 별들.

그리고 순식간에 개미집처럼 작아진 공장의 모습.

남자는 단번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함정이다.’

누군가가, 자신이 이 곳에 올 것을 알고 기다렸다가 컨테이너를 낚아챈 것이다.

그 무게만 수십 톤에 이르는 컨테이너를 들고 하늘을 날 수 있는 존재가 그리 많지 않단 게 문제였지만.

‘용들이 어느새 여기까지…….’

분명, 중원을 지키는 아홉 수호룡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정신 나간 놈들 말고는 이런 짓을 할만한 작자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젠장, 어떻게 해야 되지?”

구름과 같은 높이라면 못해도 수천 미터는 올라왔으리라.

일 품의 엽사가 아니라 그 할아버지라도,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죽을 수밖에 없다.

도망갈 방법을 잃어버린 남자의 눈에 서서히 절망이 차올랐다.

‘이대로 끌려가면, 분명히 정보를 캐내려고 하겠지.’

언령을 활용한 용들의 심문은 그들 사이에서도 악독하기로 유명했다.

심문을 버티지 못하고 정보를 토해 낸 배신자들의 말에 따르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던가.

‘이대로 끌려가서 정보를 넘겨주면, 조직 전체가 박살 난다.’

하지만, 탈출할 방법은 이미 물리적으로 막혀 버린 상황.

이제 밤바다로 바뀐 지상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남자의 고민이 깊어졌다.

허나.

사실, 그의 고민은 큰 의미가 없었다.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잠시 공중에 떠올랐다.

‘어……?’

남자는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상황을 깨닫고는 눈을 크게 떴다.

컨테이너가, 추락하고 있었다.

풍덩!

수천 미터 높이에서 떨어진 컨테이너가 산산조각 나 바다 위에 흩어진다.

컨테이너에 들어있던 화물들도 함께.

―어휴, 힘들어. 그나저나 주인, 그냥 이렇게 던져도 되는 거예요?

박살 난 컨테이너의 잔해를 내려다보던 멜리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충분하다.’

그 말에,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까.’

스으으!

그 말과 함께, 진혁은 컨테이너의 잔해를 내려다보며 흑마력을 끌어 올렸다.

이내, 바닷속에서 회색으로 물든 망령 하나가 흑마력에 붙잡혀 끌려 나왔다.

‘어차피, 살아서는 입을 열지 않았겠지.’

그러니, 죽어서 열게 해 주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망령을 바라보며, 진혁은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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