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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117화 (117/174)

117화

홍콩.

근 팔십 년간 중원과 해외를 잇는 유일한 창구였던 도시.

그런 만큼, 홍콩의 유일한 국제공항인 홍콩 국제공항은 언제나 중원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과 중원에서 나오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허나, 이날의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평소보다 늘어난 공항 경찰들의 표정은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총이나 검, 지팡이 따위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주변을 날카로운 눈으로 살폈다.

“오늘 무슨 일 있나?”

“아, 그거 못 들었어?”

무겁게 가라앉은 공항의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이 웅성대는 가운데.

한 대의 여객기가 공항의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꼬리날개에 북두칠성의 로고가 푸른색으로 새겨져 있는 세한그룹의 전용 여객기.

한동안 여객기가 주기장에 멈춰 섰을 때, 그 앞엔 제복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수호룡을 대신해 팔국을 수호하는 수호대원들.

그들 중에서도 가려 뽑은 최정예로 구성된 의장대였다.

이들이 주기장에 모인 이유는 단 하나.

비행기에서 내릴 귀빈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기이잉!

여객기의 머리쪽 문이 열리고 계단이 내려왔다.

이내, 한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가 문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팔국의 수호룡인 청명.

그리고 서진혁과 신주연.

‘도착했군.’

척!

수호룡과 그 손님을 향해 경계를 붙이는 의장대를 내려다보며, 진혁은 눈을 빛냈다.

홍콩에 도착한 진혁 일행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팔국의 수호룡인 청명의 둥지였다.

높이만 80층에 달하는 고층빌딩을 ‘둥지’라고 칭할 수 있다면 말이지만.

“홍콩 땅값이 비싸다더니, 수호룡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군.”

용의 둥지라면 흔히 떠올리는 거대한 동굴과는 정반대의 모습.

진혁이 깔끔하게 지어진 빌딩을 올려다보며 의아해하자, 청명은 뭘 당연한 걸 말하냐는 표정을 지었다.

“섬 하나를 레어로 삼는 건 너무나 큰 공간의 낭비지 않느냐, 바다 위에 띄우는 것은 내 취향에 안 맞기도 하고.”

인간을 제법 아끼는 청명의 성격을 생각하면, 오히려 당연한 일이리라.

어서 오십시오, 벨레룩스 님.

청명와 진혁이 빌딩에 들어서자, 둥지의 가디언 역할을 맡은 석상 모습의 고렘 둘이 인사했다.

‘못해도 을 급은 되겠어.’

고렘이 가진 마나의 농도를 느낀 진혁은 제법이란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빌딩에서 느껴지는 수십 개의 강렬한 기운.

앞의 두 고렘보다는 못했지만, 병 급의 괴수와는 충분히 비교할 수 있을 수준이다.

‘과연, 용의 둥지인가. 함부로 침입하긴 힘들겠어.’

이곳에 들어온 침입자가 용의 얼굴을 보고 싶다면, 어지간한 괴수보다 강력한 수십의 고렘을 먼저 상대해야 할 것이다.

“이쪽이다.”

진혁은 청명의 안내를 따라 마법진에 몸을 실었다.

곧.

파앗!

마법진은 푸른색 빛을 뿜어내면서 둘을 빌딩의 가장 위쪽으로 이동시켜 주었다.

푹신한 양탄자가 층 전체를 덮은 것을 제외하면, 기둥 하나 없이 텅 빈 공간.

“내 침실이다. 여기라면 누구도 엿듣지 못할 것이다.”

청명의 말에, 진혁은 그녀가 자신을 이곳까지 데려온 이유를 깨달았다.

“그렇겠지, 감히 용의 침실을 도청하려는 사람은 없을 테니.”

목숨이 아깝지 않고서야, 그런 짓을 할 사람은 없으리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지만.

“그래서,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지?”

중원은 세계의 수호자, 용들이 직접 영역으로 삼고 있는 땅.

일본에서처럼 마음대로 움직인다면, 용들의 분노를 사게 될지도 몰랐으니까.

그 말에, 청명은 진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타나라.”

파앗!

그녀의 입에서 조립된 언령이 빛을 발했다.

곧, 푸른 빛이 진혁의 오른 손등으로 스며들듯 빨려들어 갔다.

그와 함께 손등 위로 나타난 것은, 푸른색이 감도는 독특한 형태의 문양.

“나를 상징하는 징표다. 이 징표를 보여 준다면, 팔국 내에서는 그 누구도 널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 설사 다른 수호룡이라 할지라도.”

“밖에서는?”

“내 표식을 알고 있으니 함부로 건들지는 않겠지만, 너 역시 행동을 조심해야 할 거다.”

“그러면, 팔국 밖으로 나가는 건 어렵겠군.”

다시 말해, 팔국 내에서는 무슨 짓을 벌인다 해도 그녀의 비호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나머진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

“부디, 팔국의 인간들을 지켜다오. 보상이라면 충분히 제공해 주마. 직접 나설 수 있었다면, 이런 번거로운 짓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 터인데…….”

세계의 수호자란 의무를 졌기에,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되는 존재.

자신의 모순된 처지에 청명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만 가 보겠다. 다음 일정 때 보면 되겠군. 만찬이었나?”

대외적으로 진혁의 방문목적은 세한그룹과 팔국의 경제협력.

덕분에 귀찮은 행사들이 몇 껴 있긴 했지만, 진짜 목적을 들키지 않기 위해선 겉으로나마 그에 맞는 행보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그 전에, 잠시만 기다리거라.”

우웅!

하지만, 청명은 대답 대신 진혁을 멈춰 세우고는 가볍게 용심 속의 마나를 끌어 올렸다.

파앗!

이내, 조금 전 진혁이 타고 온 순간이동 마법진이 빛을 발했다.

그와 함께 마법진 위로 나타난 것은 두 명의 남녀.

익숙한 실루엣을 마주한 진혁의 눈썹이 슬쩍 들어 올려졌다.

‘이가라.’

이한과 이설화.

이가의 두 후계자가, 어째서 홍콩까지 왔단 말인가.

“서, 서진혁?”

“이런.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네, 동생.”

“오랜만이군요, 뜻밖이긴 합니다만.”

자신을 발견하자마자 빙긋 웃는 이한과 당황한 이설화를 바라보며, 진혁은 입술을 비틀었다.

“동생이 팔국의 수호룡과도 친분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이거, 나도 모르는 새에 어마어마한 인물이 되어 버렸군.”

청명이 둥지로 삼는 빌딩을 나서자마자, 이한은 진혁을 감탄한 눈으로 바라봤다.

“일이 있어 몇 번 얽혔을 뿐입니다.”

“일이라니, 수호룡과? 점점 궁금해지는데.”

자세한 사정을 말해 줄 생각이 없었던 진혁은 대강 답했지만, 그 말에 이한은 오히려 눈을 빛냈다.

“실은, 나와 누이도 마침 수호룡과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온 거라네.”

“일이라면?”

“어쩌다 보니 서가에서 선수를 친 것 같네만, 우리도 팔국에 투자를 계획 중이거든. 누가 뭐라 해도 팔국 그리고 홍콩은 중원 안으로 진입하기 위한 관문이니까.”

무역을 가로막는 대상이 황제에서 용으로 바뀌었을 뿐. 수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군요.”

“이거, 내 생각보단 반응이 별로구만. 자네들과 경쟁상대라는 말일세.”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굳이 막을 생각은 없습니다.”

이한의 짓궂은 말에도 진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가의 투자는 진혁이 홍콩에 방문하기 위한 구실이었을 뿐이니, 그 결과야 어떻게 되건 상관없는 일이었다.

“아주 자신감이 대단하군, 동생. 수호룡과 그만큼 친밀하단 말이겠지?”

허나 이한은 진혁의 대답을 다르게 받아들이고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진심으로 막을 생각이 없다면, 부탁 하나만 들어주게.”

“부탁이라면.”

“오늘 수호룡이 만찬을 열 거라 들었는데, 그 자리에 우리도 함께할 수 있겠나? 만찬의 주인공이라면 그 정도는 가능할 테지.”

“독대라도 원하시는 겁니까?”

“보아하니 자네는 수호룡의 초청을 받아서 온 것 같지만, 우린 아니니 말이야. 그래서 조금 전에도 별 이야기는 못 나눴거든.”

아무리 한국에서는 오대 엽사 가문에 꼽히는 이가라지만, 중원의 수호룡과 비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동생의 이름을 빌린다면 풀릴지도 모르지.’

언뜻 보기에도 수호룡과 제법 친분이 있어 보였으니, 시도쯤은 해 볼 만했다.

“그러시죠. 청…… 아니, 수호룡에게 말해 두겠습니다.”

그의 생각대로, 진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동생뿐일세.”

“물론, 제게도 떨어지는 게 있어야 하겠지만.”

“서가와 이가의 관계가 이어져 내려온 게 얼만데, 그 정도도 못 해 주겠나?”

진혁이 덧붙인 말을 들은 이한은 씨익 웃어 보였다.

“나중에 필요할 때 찾아오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라면 한 번은 도와주지.”

이한은 진혁의 말을 순순히 들어주었다.

언젠간 적으로 마주쳐야 할지도 몰랐지만, 당장은 아니었으니 가능한 일.

아니, 어쩌면 가장 가까운 관계가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 그러면 저녁에 보도록 함세. 난 도시 구경이나 좀 하고 올 테니, 둘이 얘기나 나누고 있게나.”

“오라버니.”

“어험, 그럼 난 이만.”

그 말을 끝으로 이한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곧, 빌딩의 입구에 남겨진 것은 진혁과 설화 둘뿐.

“후우…….”

대책없이 사라져 버린 이한의 빈 자리를 노려보며, 설화는 어느새 곰방대를 꺼내 물었다.

“신경 쓰지 마. 원래 나사 하나 빠진 사람이니까.”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설화와의 약혼을 다시 성사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리라.

물론, 그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이렇게 만난 거,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싶은데.”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가와 주가에 맡겨 놓은 연구의 진행 상황을 파악하는 것.

진혁의 무심한 눈빛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홍콩의 구도심, 홍콩섬의 뒷골목은 어둡고 복잡하다.

무계획적으로 세워진 건물들 사이로 미로처럼 구불구불하게 나 있는 골목길을 장악한 것은 밀수를 주업으로 하는 범죄조직들.

평소라면 배에서 몰래 빼 온 마약이나 귀금속 따위의 밀수품을 옮기는 데 사용되는 루트였지만.

“……알겠습니다.”

굳은 표정으로 전화를 끊은 남자의 손에 들린 것은 둘 중 어느 것도 아니었다.

불규칙적으로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하는 푸른색의 돌.

그것이, 오늘 남자가 목적지까지 배달해야 할 물건이었다.

남자는 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 마지막 남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인 담배를 빨아들이는 남자의 표정은 복잡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일이었으니까.

‘동생 명의로 입금했다. 세탁 끝난 돈이니까 문제는 없을 거야.’

“후우.”

조금 전 전화 내용을 떠올리며, 남자는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의 담배 연기를 내뱉고는 남은 꽁초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그래, 한 번이면 돼.’

그 생각과 함께, 남자는 저 멀리 남색으로 빛나는 고층빌딩을 바라봤다.

수호룡의 둥지.

‘한 번.’

그가, 마지막으로 물건을 배달해야 할 장소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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