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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119화 (119/174)

119화

홍콩은 혼란에 빠졌다.

도시 곳곳에서 갑자기 등장한 괴수들이 주변을 파괴했고, 수호룡의 거처인 레어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불타올랐다.

팔국의 수호룡 청명의 힘으로 사건은 빠르게 해결되었지만, 이미 누군가를 잃은 시민들의 두려움과 슬픔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당연히, 예정되어 있던 진혁과의 만찬 역시 취소될 수밖에 없었다.

“하필 이럴 때 방문하다니, 동생이나 나나 운이 없군 그래.”

그날 저녁, 호텔의 식당에서 진혁과 마주한 이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계획대로라면 진혁의 도움으로 수호룡을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었지만, 홍콩에 벌어진 테러와 함께 수호룡은 자취를 감춰 버렸다.

어쩌면 빈손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한의 표정엔 수심이 가득했다.

“당분간은 수호룡을 만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음 기회를 노리시죠.”

하지만 마주 앉은 진혁의 표정은 평온했다.

애당초, 그와 이한은 홍콩에 방문한 목적 자체가 달랐으니까.

‘생각보다 과격하긴 했지만, 아직은 예상범위 안이다.’

그리고 청명의 말 대로라면 다른 수호룡들은 오늘과 같은 일이 벌어져도 움직이지 않을 터.

오늘 일어난 테러보다 더한 일이 벌어져도 이상할 일은 없었다.

“아무래도 그래야겠네. 동생 덕분에 다 해결됐다고 생각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리다니.”

그 뒤로도 이한은 한참 동안 술을 마시며 넋두리를 풀었다.

“그럼, 먼저 올라가 보겠네. 동생도 슬슬 들어가야지.”

“안 그래도 나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럼.”

그의 말에, 진혁은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이한을 지나쳐 갔다.

순식간에 자리를 비운 진혁의 뒷모습을 보고 이한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지만, 진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에겐 할 일이 있었으니까.

‘오늘은 조금 돌아다녀야겠어.’

호텔 밖으로 나온 진혁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에서 마기의 흔적이 느껴졌다.

‘여기인가.’

인도 한복판에 남아 있는 검은 핏자국을 빙 둘러싼 노란 테이프.

테이프의 안쪽에는, 폴리스라인을 관리하는 것으로 보이는 경찰 한 명이 서서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다.

진혁은 망설임 없이 중국어로 쓰인 폴리스라인을 넘어 들어갔다.

“누, 누구냐?”

경찰의 광동어가 진혁이 낀 통역기를 타고 한국어로 번역되어 전달되었다.

진혁은 대답 대신 오른손등을 경찰에게 내밀었다.

“이, 이건 수호룡의…… 실례했습니다!”

손등의 푸른 표식을 발견하자마자, 경찰은 진혁을 향해 경례하고는 뒤로 물러났다.

곧, 진혁은 검은 핏자국의 바로 앞까지 다가간 다음 손을 뻗었다.

정확히는, 핏자국 위를 빙빙 맴도는 망령을 향해서였지만.

“망령이여.”

영창과 함께 검은 심장의 흑마력이 꿈틀댔다.

앞으로 뻗은 오른손을 타고 삽시간에 쏟아져 나간 흑마력의 그물이 망령을 옭아맸다.

—……!

“명계의 율법에 따라, 네 기억을 내게 보여라.”

본능적으로 흑마력의 그물을 빠져나가려 몸부림치는 망령을 향해, 진혁은 영혼의 기억을 읽어 내는 사령술을 발동했다.

곧, 망령이 가진 기억이 진혁에게로 흘러들어왔다.

‘하루면 충분하겠군.’

배후를 찾기엔.

망령의 기억을 읽어 낸 진혁은 눈을 번쩍였다.

중원의 수도, 천경.

용들의 도시라는 별칭과 달리, 이 공중도시에 거주하는 용은 오직 하나, 장로 말리아뿐이었다.

구국의 수호룡인 아피루스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흠…….”

아피루스를 마주한 장로의 표정은 어두웠다.

조금 전, 눈앞의 어린 용이 말해 준 이야기가 너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네 말이 사실이냐?”

“그렇다니까요? 분명히, 그 인간이 일족들의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중원은 불타고 있었고요!”

장로의 말에 아피루스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장로님도 아시잖아요. 제 예지는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는 거.”

“그건 알고 있지.”

언제 일어날 것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피루스가 예지한 것들은 모두 현실이 되었다.

말리아가 그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분명히, 그 인간이 뭔갈 꾸미는 게 틀림없어요. 이대로라면, 어쩌면 저희 일족이…….”

예지를 통해 본 광경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탓일까.

아피루스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 그 인간을 막아야 해요. 벨레룩스 누나가 놈이랑 함께하고 있어서 더 위험하다고요.”

끔찍한 미래를 엿본 어린 용의 머릿속에, 진혁은 이미 언젠가 용들을 멸족시킬 존재로 각인되어 있었다.

허나.

“……조금만 기다려 보거라.”

말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장로님!”

“네가 본 게 정말로 그게 전부라면,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까지는 아직 알 수 없지 않느냐. 어쩌면, 그자가 죽어가는 일족을 도우러 온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야.”

원인과 과정 없이 결과만을 보여 주는 것이 예지였으니까.

만약 그렇다면, 자신들을 구원해 줄 사람을 자기 손으로 없애는 꼴이 된다.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예지만을 믿고 함부로 행동할 수는 없었다.

“그치만, 만약에 제 생각이 맞으면요!”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중원이 불타오를 만큼 큰 위기는 전조도 큰 법이니까. 아피루스 네가 준 기회를 허투루 날릴 수는 없지 않느냐.”

“그래도…….”

장로의 조곤조곤한 설명에도, 아피루스는 쉽사리 납득하지 못했다.

“충격이 큰 모양이로구나. 당분간은 레어에서 좀 쉬는 게 좋겠다. 이 일은 내가 관심을 갖고 해결할 테니, 너는 어서 돌아가려무나.”

“……네, 그럼 가 볼게요.”

걱정스러워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말리아의 앞에서, 아피루스는 고개를 떨군 채 언령을 발동했다.

곧, 주변의 풍경이 천경에서 구국에 위치한 아피루스의 레어로 바뀌었다.

한마디 주문도 없이 수천 킬로미터 거리로 순간 이동한 아피루스의 얼굴엔 힘든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면…… 이대로 가면…….”

레어로 돌아온 그의 눈앞엔 여전히 그와 다른 일족들의 시체가 아른거렸다.

그리고 착 가라앉은 눈으로 파괴된 중원과 일족의 시체를 바라보는 인간의 얼굴도.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미래.

어떻게든, 막아야만 했다.

“……장로님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나라도 움직여야 해.”

결정을 내린 아피루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들었다.

이내.

팟!

눈 깜짝할 새 순간이동 마법을 발동한 그의 신형이 어딘가로 사라졌다.

홍콩의 뒷골목엔 수많은 범죄자들이 살고 있다.

하나같이 사형을 면치 못할 대죄를 짓고 숨어 사는 자들이지만, 그들 역시 먹고, 자고, 입는 데 쓸 돈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제공하는 것이 판웨이의 주 업무였다.

“이번엔…… 정말 짭짤한데.”

책상 위에서 빛나는 황금 덩어리들을 내려다보며, 판웨이는 눈을 빛냈다.

그 모든 것이 그의 몫이었으니까.

사람들에게 큰돈을 벌 수 있는 의뢰를 알선해 준 대가로 받은 중개료.

그것도, 이 뒷골목을 완전히 장악한 백묘가 직접 내려준 보상이었으니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들에겐 안됐지만.”

판웨이는 의뢰를 받아간 자들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그는 이 의뢰를 받아간 자들의 최후가 어떻게 되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전날 일어난 괴수들의 공격과 테러.

온 도시를 물들인 공포스러운 사건이, 다름 아닌 그가 빚어낸 작품이었다.

“뭐, 놈들도 만족하겠지. 약속은 지켰으니까.”

의뢰를 받아 간 자들은 모두 괴수가 되거나 죽었지만, 그들의 가족에겐 이미 보수가 전달되었으니 만족하리라.

게다가, 이번 일에 만족한 백묘의 추가 의뢰까지.

“이게 바로 윈-윈이란 거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책상 위의 금덩이들을 금고로 옮긴 그는, 백묘에게 받은 의뢰를 떠올렸다.

“더 크고, 화려한 불구경이 필요하다고 했지.”

홍콩을 공포로 물들이는 것보다 더욱 큰 구경거리.

상대가 수호룡이니만큼 그녀의 의뢰는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지만, 거절하기엔 보수가 너무나 컸다.

그렇기에, 그는 이번에도 일을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팔국을 넘어, 중원 전체를 뒤흔들 만한 일을.

그러려면.

“역시…… 목표는 하나뿐이겠지?”

천경.

중원을 다스리는 황제가 거주하는 하늘도시.

고룡이 직접 설계한 하늘도시에 위해를 끼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성공만 한다면 백묘의 의뢰를 완벽하게 수행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홍콩을 불바다로 만드는 것도, 원래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금덩이로 가득 찬 금고를 걸어잠근 판웨이는 서류를 꺼내 들었다.

공중도시에 대해 분석한 정보들을 기록해 둔 서류.

소지하는 것만으로 목숨이 위험한 자료였지만, 팔국에서 황금으로 구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흐음…….”

서류를 들여다보며 턱을 괸 판웨이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

보이지 않는 회색 영혼이, 그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괴수가 나타난 지점을 돌아다니며 망령들의 기억을 읽어낸 진혁은 공통점 하나를 알아냈다.

‘저자인가.’

망령들에게 무언가를 나눠 주는 남자의 얼굴.

분명, 홍콩에서 벌어진 일에 저 남자가 관련되어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진혁은 자신이 가진 수백의 영혼을 도시에 풀어 남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진혁의 눈에 보이는 광경이었다.

‘천경이라.’

영혼과 시야를 공유한 진혁은 남자가 들고 있는 공중도시의 사진을 보며 눈을 빛냈다.

아마도, 저것이 남자의 다음 목표이리라.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용.

그것도 수천 년 동안 마법을 연마해 온 고룡이 직접 만들어 낸 공중도시에 무슨 수로 공격을 가한단 말인가.

시도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유의미한 피해를 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놈을 잡으면, 그 뒤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있겠지.’

진혁이 영혼들을 풀어 놈을 찾아다닌 이유.

위치를 알아냈으니, 이제 놈을 잡아 배후를 캐낼 때가 왔다.

‘추적해라.’

판웨이를 지켜보던 망령에게 명령을 내린 진혁은 호텔을 나서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가 호텔의 입구로 나왔을 때.

“뭐지?”

진혁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제 중학생이나 되어 보일까 싶은 남자아이가 그의 앞을 막고 있었다.

하지만, 진혁은 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용이군. 무슨 일이지?”

어째서 자신의 앞길을 막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난번 청명과 이야기를 나눴던 용이 분명했다.

진혁이 의아한 표정으로 어린 용을 내려다보던 그때.

아이가 입을 열었다.

“죽어.”

동시에.

진혁의 심장이,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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