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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124화 (124/174)

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 (124)

불타는 홍콩 섬의 중심을, 한 거인이 가로질렀다.

홍콩을 상징하는 마천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크기의 거대한 괴수.

크기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는 인간과 비슷한 형태였지만, 놈이 움직이는 방식은 조금 이상했다.

스으으!

어떠한 움직임도 없이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가는 괴수의 발아래에 꿈틀거리는 것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 있었던 또 다른 괴수들.

놈들이 하는 일은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키이이이이!”

거인의 다리에서 뻗어 나온 수많은 팔들.

놈들에게 붙잡힌 괴수가 놀라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비명도 잠시.

콰득! 콰드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놈은 거인의 일부가 되었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괴수의 물결을 거슬러 나아갈 때마다, 수많은 괴수들이 거인의 육체에 붙들려 하나가 되었다.

그때마다 거인의 몸은 점점 커져 갔다.

“놈……!”

자신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괴수들을 눈 뜬 채 빼앗기고있는 주시자는 분노했다.

에피로나에는 이미 무한에 가까운 괴수들이 그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다지만, 접근하는 괴수를 모조리 자신의 육체로 바꿔버리는 거인을 막을 방법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설마, 권능도 먹히지 않을 줄이야.

그 순간, 주시자는 놈을 막을 방법을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스으으!

이 순간에도 거인은 그를 향해 미끄러지듯 다가오고 있었다.

‘일단은, 저놈을 막을 방법을 찾아야겠어.’

그러기 위해선, 우선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했다.

존재만으로도 자신의 수족을 흡수해 버리는 저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더 이상 아까운 괴수들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막아라.”

주시자가 권능을 발동함과 동시에, 그의 의지가 주변의 수많은 괴수들에게 소리 없이 전달되었다.

그러자.

“키이이이!”

“크아아아아!”

도로를 달리던 괴수의 물결이 한층 더 격렬하게 내달렸다.

놈에게 별다른 위해를 끼치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시간벌이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조금 더 지나면, 놈에게도 권능이 스며들겠지. 그 때 다시 돌아오면 되겠어.

부상을 입고 달아난 용을 떠올리며, 주시자는 에피로나로 돌아갈 게이트를 열기 위해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가 채 게이트를 열기도 전.

우우웅!

미끄러지듯 다가오던 거인의 오른팔이 그를 향해 내뻗어지는 게 주시자의 눈에 들어왔다.

‘뭐지?’

알 수 없는 거인의 행동에 그가 의아해하는 사이.

거인은 수많은 괴수들의 시체로 이루어진 오른팔을 허공에 휘둘렀다.

그와 함께.

쐐애액!

거인의 팔에서 떨어져 나간 오른팔이 그대로 주시자의 거대한 눈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고작 그 정도로!”

거대한 팔이 로켓처럼 날아들었지만, 물러나던 주시자는 코웃음 쳤다.

거대하고 빠르기만 할 뿐, 거인이 날린 공격에는 제대로 된 힘이 실려 있지 않았으니까.

“막아라.”

주시자는 곧장 권능을 발동했다.

그와 함께 대로 위에서 물결을 이루던 괴수들이 수직으로 벽을 세웠다.

콰아앙!

괴수의 사체로 이루어진 주먹과 괴수로 이루어진 벽이 한 곳에서 부딪혔다.

“역시나, 허세였군.”

벽과 부딪치자마자 맥없이 부서져 떨어지는 괴수들의 시체들.

주시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거인에게서 관심을 끄고 게이트를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붉은 검 한 자루가 괴수로 이루어진 벽의 틈을 비집고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쐐애애액!

벽을 관통한 붉은 검이 순식간에 속도를 높여 날아갔다.

놈, 아스칼론의 목표는 거대한 눈의 모습을 한 강력한 괴수, 주시자.

이건.

갑작스레 나타난 강력한 기운에 주시자가 미처 대비하기도 전.

콰드드득!

아스칼론의 붉은 날이, 놈의 몸을 단숨에 꿰뚫었다.

‘끝이다.’

아스칼론에 꿰뚫린 거대한 눈이 지면에 추락한 순간, 진혁은 승리를 직감했다.

“키……이이?”

“크아아아!”

수많은 괴수들을 앞세워 홍콩을 불태우던 주시자가 쓰러진 순간, 지배의 권능에서 벗어난 괴수들이 혼란에 빠졌기 때문.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앞다투어 달려나가던 괴수들이, 일제히 자신들이 튀어나왔던 지하로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진혁 님, 괴수들이 이상합니다!

―애들…… 미친 건가? 아까랑은 완전히 분위기가 다른데요?

―겁에 질렸소. 대체 이게…….

괴수들을 막아내기 위해 도시 사방에 배치해뒀던 망자들이 의아하다는 듯 목소리를 냈다.

‘놈들의 우두머리를 처리했으니, 조금 더 상대하기 쉬워졌을 거다. 빠르게 정리하도록.’

진혁은 그 말과 함께 한쪽 팔이 뜯겨져 나간 거인을 바라봤다.

검게 물든 심장의 두근거림이 그의 기분을 고양시켰다.

‘용심과 악령의 조합이라…이건 파슬란도 해 보지 못한 건데.’

용심이야 사령술의 정점에 오른 파슬란이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겠지만, 자신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악령을 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으니까.

극히 특수한 경우이긴 하지만, 무의식중에 기대고 있던 파슬란이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다는 생각에 진혁은 미소를 지었다.

‘아직 좋아하기엔 이르지만.’

갑 급 괴수를 처리하기는 했지만, 홍콩엔 아직 놈이 남기고 간 괴수들이 너무 많이 살아남아 있었다.

놈들을 정리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질 수 있으리라.

콰아아!

하늘에서 들려온 굉음이 진혁의 상념을 깼다.

시선을 하늘로 옮긴 그의 눈에 보인 것은, 등 뒤에서 불꽃을 뿜으며 날아오는 두 강철 거인.

이가의 엽사들이 사용하는 두정갑이었다.

쿵!

진혁의 앞에 착륙한 두정갑의 가슴이 위로 열리자, 두정갑의 주인이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한과 이설화.

“무슨 일이십니까.”

이미 떠났을 거라 생각한 사람들이 돌아오자, 진혁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한은 그 말에 넉살 좋은 웃음을 지었다.

“잠시 신세 좀 지러 왔네, 동생.”

“여기만큼 안전한 데도 없을 거 같아서.”

이어진 설화의 대답에, 진혁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잘 됐군요.”

“잘 되다니?”

이한이 모르는 척 고개를 갸웃했지만, 진혁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냥할 사람이 필요했으니까요.”

천경.

공중도시의 주인이자 중원의 황제인 광천, 말리아는 그답지 않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벨레룩스가…….”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 팔국의 수호룡, 청명.

일족이 부상 당한 모습을 근 백 년 만에 마주한 말리아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피루스, 이게 무슨 일이냐?”

그의 시선이 벨레룩스를 부축해 온 꼬마, 아피루스에게로 향했다.

“마인들의 짓인 것 같아요. 진혁 님을 만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 상태로 공간이동을…….”

그녀를 업고 공간이동을 시전하느라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아피루스였지만, 그는 조금도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고 말했다.

“우선은 치료부터 하자꾸나.”

당황한 탓인지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피루스를 잠시 바라본 말리아의 손이 쓰러진 벨레룩스에게로 향했다.

“회복하라.”

우우웅!

그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의 언령이 천경을 감싼 마나를 재배열했다.

파아앗!

곧, 치료를 위해 재배열된 마나가 쓰러진 용을 환한 빛으로 감싸 안았다.

“벨레룩스는 곧 회복될 게다.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들어도 되겠지.”

말리아와 아피루스는 쓰러진 벨레룩스를 감싼 빛무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이 사그라들고 그녀의 몸에 새겨진 상처들이 지워졌을 때.

“장……로님.’

힘겹게 눈을 뜬 벨레룩스는 자신의 앞에 선 말리아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그래, 대체 무슨 일인가? 이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다니…….”

깨어난 그녀의 몸 상태를 확인한 말리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창조주에게서 수많은 권능과 강력한 육체를 받은 용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에피로나와 지구의 역사를 통틀어도, 용을 실제로 죽이는 데 성공한 용살자의 숫자는 다섯을 채 넘지 못한다.

당장 죽음을 맞이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벨레룩스의 부상이 심각했으니, 말리아가 그런 표정을 짓는 것도 당연한 일.

“함정에…… 당했습니다.”

“함정?”

“마인을 쫓던 중, 놈들이 파 놓은 함정에…….”

벨레룩스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지만, 말리아는 손을 저었다.

“어찌 되었건, 살아 돌아왔으니 되었네. 얼마 남지 않은 일족이 죽는다는 건 재앙이니 말일세.”

부끄러워하는 그녀에게 격려라도 해 주려는 듯, 말리아는 아직도 헐떡대고 있는 벨레룩스를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올린 벨레룩스와 그의 눈이 마주친 순간.

“……자네.”

께름칙한 기운을 느낀 말리아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장로님?”

“물러서거라.”

의아해하는 아피루스에게 물러나라 손짓한 장로의 눈은, 벨레룩스에게 고정되어있었다.

정확히는, 벨레룩스의 눈을 물들인 검은 기운을.

“……용이 마기를 받아들이다니. 자네, 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말리아가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마기에 오염된 동족이 더 큰 잘못을 저지르기 전에.

그의 손으로 해결하는 것.

“떠나라.”

“장로님!”

팟!

한마디 언령으로 놀란 아피루스를 천경에서 내쫓은 말리아는 표정을 굳히고는 힘을 끌어올렸다.

구구구궁!

수 천년을 살아온 고룡의 의지에, 천경을 가득 채운 마나가 울부짖었다.

“너, 벨레룩스가 아니구나.”

“아아…… 그래. 마침 운이 좋았지.”

말리아의 말에 그녀는 부정하는 대신 씨익 웃었다.

“목숨을 건 도박이긴 했지만, 결과가 너무 달콤해. 외눈박이 그 녀석은 이런 육체를 써 왔던 건가?”

“……외눈박이라. 그렇다면, 넌……!”

그녀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에, 말리아는 쉽게 정체를 눈치챌 수 있었다.

“굳이, 우리 사이에 더 말은 필요 없을 것 같은데?”

하지만 그녀는 용의 말을 끊고는 힘을 끌어올렸다.

스으으으!

용의 몸을 검게 물들인 불길한 기운.

마기.

“다음엔, 네 놈을 먹어치워 주마.”

타앗!

벨레룩스.

아니, 벨레룩스의 육체를 먹어치운 주시자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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