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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144화 (144/174)

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 (144)

잠자는 개.

뉴욕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헌터단체, 국제헌터연맹의 별명.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본부에서 잠만 자고있다는 뜻의 멸칭이었지만, 그 멸칭을 부정하는 연맹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 세계의 헌터를 이끌겠다는 거창한 이념만 내걸었을 뿐, 하는 일이라고는 가만히 앉아 월급만 까먹는 것뿐이었으니까.

“쿨…….”

그것은 연맹을 이끄는 사무총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책상에 엎어진 채 침을 흘리며 자고 있는 중년의 남자에게서, 전 지구의 헌터를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으음…….”

잠꼬대라도 하는 듯 남자가 책상에 엎어진 채 뒤척였다. 곧, 남자의 얼굴은 침으로 범벅이 되었다.

누군가가 사무총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금테 안경을 코에 걸친 청색 정장 차림의 남자.

“……사무총장님.”

딱!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사무총장의 추잡한 모습에, 남자는 한숨을 내쉬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순간.

쩌저적!

책상과 사무총장의 얼굴에 묻은 침이 하얀 김과 함께 얼어붙었다.

“앗 차거!”

참을 수 없는 냉기에 사무총장은 놀라 몸을 번쩍 일으켰다.

그 한심한 모습 앞에서 남자는 이마를 짚었다.

“아무리 사무총장이라지만, 근무시간에 대놓고 자는 건 좀.”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무슨 상관이야? 자네 아니면 여기 들어올 사람도 없는데.”

“자다가 퇴근도 못 할까 봐 보러 온 겁니다. 그리고.”

말을 멈춘 남자는 들고 온 서류를 내밀었다.

“총회가 오늘입니다.”

서류에 적힌 것은, 오늘 열릴 임시총회의 장소와 일시, 그리고 내용.

하지만 종이들을 받아 든 사무총장은 읽어보지도 않고 하얗게 서리가 내린 책상에 내려놨다.

“어차피 가지도 않을 건데 무슨 상관이야? 이번 총회도 성녀의 요청으로 개최한 거잖아. 우린 그냥 장소랑 이름만 제공하는 거라고.”

지루함과 피곤에 찌든 중년의 얼굴.

사무총장은 귀찮음이 듬뿍 묻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보시죠.”

남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손가락으로 서류들을 가리켰다.

“에잉…….”

곧, 남자의 날카로운 눈빛을 견디다 못한 사무총장은 귀찮은 표정으로 서류를 들어 올리고는 빠르게 넘겼다.

하지만, 그가 서류를 몇 장 넘기기도 전,

“……으음?”

서류를 넘기던 중년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동태처럼 힘없이 풀려있던 눈에 빛이 돌아왔다.

서류를 건넨 남자의 표정에 미소가 깃들었다.

“아직도 관심이 없으십니까?”

“음…….”

조금 전과는 달리 신중한 표정을 지은 채, 사무총장은 생각에 잠겼다.

곧.

“아무래도, 추가 근무를 해야겠구만.”

자리에서 일어난 중년은 의자에 걸어 둔 외투를 급히 걸쳤다.

그가 책상에 내려놓은 서류엔, 검은 머리 남자가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이 올라가 있었다.

티후아나.

멕시코와 미국 사이에 위치한 국경도시이자, 하루에도 수십만의 미국인과 멕시코인들이 검문소를 넘나드는 관문.

온몸에 문신을 새긴 근육질의 사내조차도 다양을 넘어 특이한 생김새의 사람들로 넘쳐나는 국경도시에선 평범해 보일 뿐이었다.

그의 몸을 가득 채운 마기를 눈치챌 수 있었다면, 상황은 조금 달랐겠지만.

“형님, 곧 움직이셔야 합니다.”

노점에 앉아 타코를 씹던 사내.

그에게 접근한 남자가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그 말을 들은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 노점상에게 능숙한 스페인어로 말했다.

“이거 받고 오늘 장사는 쉬쇼.”

“아, 아니 이렇게 큰돈은 필요 없는데? 손님!”

사내가 내려놓은 달러 뭉치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노점 주인이 외쳤지만,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형님, 어차피 살아남기 힘들 텐데 괜한 돈 낭비 아닙니까?”

“살아남는다면 의미가 있겠지.”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긴 남자가 눈살을 찌푸렸지만, 사내는 듣는 척도 하지 않고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티후아나의 대로를 가로질러 어두운 골목으로 향했다.

밀수, 마약, 매춘.

온갖 범죄를 저지르거나, 저지를 예정일 자들로 시끄러워야 할 골목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곧, 둘은 골목의 막다른길 아래에 파진 비밀통로의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강렬한 피비린내가 둘의 코를 찔렀지만, 둘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벽에 덧칠된 피와 살점을 만든 주인공은, 다름 아닌 그들이었으니까.

죽어 나자빠진 범죄자들의 시체들을 무심하게 지나친 사내의 앞에, 모래로 지어진 거대한 방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안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문신 투성이의 남자들도.

“오셨습니까, 형님!”

인기척을 느낀 남자들이 사내를 향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그들 대다수가 문신과 피로 범벅되어 얼굴조차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사내는 그 사실을 따지는 대신 씨익 웃었다.

“곧, 시작이다.”

그 말과 함께, 피를 뒤집어쓴 남자들의 눈이 변했다.

붉게 달아오른 흰자와 피라도 묻은 듯 번들거리는 살기 어린 눈빛.

살육에 굶주린 괴수와도 같은 남자들의 기세 앞에서, 사내가 머금은 웃음은 더욱 진해졌다.

“너희도 알겠지만, 이번 일은 마왕께서 직접 맡기신 일이다. 실패는 용납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명령만 내려 주십쇼!”

누가 먼저랄 거 없이 터져 나온 대답.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사내는 웃음기 어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시작해라.”

말과 함께 사내, 버서커가 들어 올린 손을 내린 순간.

문신과 피로 범벅된 남자들이 괴성과 함께 지하 통로를 빠져나갔다.

곧, 지하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의 귀가 도시의 비명 소리로 가득 찼다.

“자, 나머지는 너희 몫이다.”

나이트, 그리고 트리커.

지금쯤 텅 빈 국경선을 넘고 있을 두 동료를 떠올리며 비릿한 웃음을 흘린 그의 머릿속에, 조금 전 노점 주인의 모습은 지워진 지 오래였다.

맨해튼.

뉴욕의 중심부에 위치한 섬이자, 마천루의 숲으로 뒤덮인 뉴욕의 심장과도 같은 곳.

전 세계의 모든 엽사들을 관할하는 국제엽사연맹의 본부가 자리하기에 부족함 없는 곳이었다.

“분위기가 썩 좋지 않구나.”

연맹의 본부에 들어서자마자 청명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게요, 인간들이 흉폭한 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대놓고 드러내다니.”

평화와 단합을 상징하는 순백의 건물과 대조되는 진한 적의.

너, 나 할 것 없이 뿜어내는 적대적인 기운에 용들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여긴 치외법권지대니까요.”

그들의 의문에 대답해 준 것은 주연이었다.

“절도, 폭행, 심지어 살인을 하더라도 이곳에선 처벌받지 않습니다. 참석자들에게 무장이 허용된 이유도 그때문이고요.”

“어쩐지, 나랑 누나를 보는 눈빛이 이상하더라니.”

그 말에 아피루스는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누가 목숨을 노릴지 모르는 곳에서 무장은커녕 보호구 하나 입지 않은 용들은 충분히 특이해 보일 만했으니까.

“어차피 저들은 우릴 공격하지 못할 테니, 신경 쓸 필요 없다.”

“에이, 전 오히려 해 줬으면 좋겠는데요? 본보기를 한 번 보여 줘야…….”

“굳이 먼저 움직이지 않아도, 다른 자들이 먼저 움직일 거다.”

진혁은 허공에 주먹질을 해대는 아피루스의 말을 끊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총회장으로 통하는 복도를 쉴 새 없이 오가는 각국의 엽사들.

‘아마, 이 중에 그자도 있겠지.’

제이슨.

미국엽사협회의 센티넬 중 하나이자, 총회 자체를 박살 낼 목적으로 찾아온 자.

제니퍼는 그에게 경고했지만, 진혁은 오히려 제이슨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놈을 저지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으니.’

각국의 대표 엽사들이 모이는 자리.

그 자리에서 총회를 박살 내려는 자를 저지하는 것만으로, 진혁의 인지도는 더욱 커지리라.

‘그리고, 그게 곧 내 힘이 되겠지.’

전 지구의 엽사들을 이세계, 에피로나로 이끌 힘이.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진혁의 눈이 번쩍, 하고 빛났다.

“진혁 님, 이쪽입니다.”

주연이 일행을 총회장으로 안내한 것은 그때였다.

많은 사람이 모일 것을 고려한 것인지, 본래 있어야 할 테이블과 의자 따위는 치워놓은 텅 빈 공간.

전 세계의 엽사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라기엔 허름해 보였지만, 이 자리에 모인 엽사들 중 그 사실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수상한 낌새는 아직 없군.’

진혁은 주변을 한 번 살피고는 팔짱을 낀 채 맞은편의 단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이 총회를 주관한 사람이 올라오고 있었다.

‘클레어.’

무명교의 성녀이자, 지금은 임시로 대주교직을 맡은 무명교의 일인자.

수많은 성기사들의 삼엄한 호위 아래 단상에 올라선 그녀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이곳까지 찾아와 주신 각국의 헌터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곧, 단상의 마이크로부터 그녀의 아름다운 소리가 퍼져 나왔다.

조용해진 총회장의 헌터들을 향해, 클레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리 말씀드렸으니 모두 알고 계시겠지만, 세계는 지금 위험에 빠져 있습니다.”

시큰둥한 사람, 믿을 수 없다는 사람, 눈을 빛내는 사람.

“얼마 전 쾰른에서 벌어진 참사로부터, 저희 교단은 두 번째 대전쟁을 일으킨 마왕이 다시 부활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헌터들의 반응은 다양했지만, 무어라 입을 열지는 않았다.

“잠깐.”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또각. 또각.

경쾌한 구두 굽 소리가 침묵에 빠진 사람들 사이로 퍼졌다.

그와 함께, 흑청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단상으로 올라왔다.

“잠깐……!”

성녀의 경호를 맡은 성기사들이 남자를 제지하려 했지만, 그들은 그럴 수 없었다.

“비켜라.”

그 상대는 다름 아닌 서진혁.

쾰른의 영웅이자 성녀로부터 인정받은 교단의 수호자를, 어찌 가로막을 수 있단 말인가.

“방금 발언에서 정정할 부분이 있다.”

천천히 길을 비켜 주는 성기사들 사이의 계단으로 올라선 진혁은 날카롭게 노려보는 클레어의 눈빛을 무시한 채 입을 열었다.

이내.

“마왕은, 이미 부활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이야기에, 총회의 모두는 두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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