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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147화 (147/174)

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 (147)

쥐벨 드로겐.

성녀만이 존재했던 무명교에서, 유일하게 남자의 몸으로 이름 없는 신의 선택을 받은 성자.

‘어째서.’

교단에서 파문당한 이후 한동안 모습을 감췄던 그가, 어째서 지금 이곳에 있단 말인가.

신성력이 가득 담긴 비구름 아래 선 성자를 진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봤다.

분명한 것은 단 하나였다.

성자가, 자신들을 돕기 위해 나타났다는 것.

—…….

소리 없는 비명과 함께 검은 괴수들이 비에 짓눌려 목숨을 잃었다.

마법과 오러를 튕겨내는 강력한 방어력의 장갑을 온몸에 둘렀지만, 장갑의 틈 사이로 스며드는 신성력까지 막아 낼 수는 없었다.

곧, 고요해진 허드슨강 위엔 검은 괴수들의 사체가 둥둥 떠다녔다.

잠시 떼죽음당한 괴수들을 바라보던 성자의 몸이 강변의 진혁을 향해 다가왔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진혁이었다.

“성자, 당신이 여기 왜 있는 거지? 곧 성녀와 교단의 성기사들이 올 거다.”

눈앞의 남자는 이미 교단으로부터 파문당한 자.

교단의 검인 성기사들이 파문자를 가만히 내버려 둘 리 없다.

그럼에도 굳이 뉴욕에 나타난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진혁의 물음에 성자, 쥐벨은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이름 없는 신의 명을 받았을 뿐이야.”

“이름 없는 신은 파문당한 자에게까지 신경을 써 주나 보지?”

“파문은 인간의 일이지, 신의 일이 아니야. 신께서 원하지 않으셨다면, 내가 신성력을 다룰 수 있을 리 없지 않겠어?”

스스럼없이 반말을 내뱉는 쥐벨.

하지만 그의 말엔 지적할만한 부분이 딱히 없었다.

쥐벨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신께서 당신 이야기도 하던데.”

“이름 없는 신이?”

“당신의 일을 도우라 명하셨지. 무슨 일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꿍꿍이지.’

성자의 대답에 진혁은 미간을 좁혔다.

이름 없는 신은 아직 진혁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아무 조건도 없이 일을 도와 달라 했다니.

진혁은 코웃음 치며 물었다.

“내가 이름 없는 신을 죽인다 해도, 그 말을 따를 생각인가?”

“그건 좀 생각해 봐야겠지만, 그럴 거라면 애초에 신께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거야.”

‘흠.’

진혁은 속으로 고민했다.

홀로 수백의 괴수를 상대할 수 있는 성자의 힘은 분명 에피로나에서 도움이 될 터.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무명교.’

무명교의 파문자와 협력하는 걸 교단이 안다면 썩 좋아하지는 않을 테니까.

이제 와서 무명교에 휘둘릴 일은 없겠지만, 장기적으로 좋은 일은 아니리라.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확인해야 할 게 남아 있었지만.

“그래, 당신이 날 도와준다고 치지. 그러면 그 대가는 뭐지?”

성자는 공짜로 남을 돕지 않는다.

도와준다 하더라도, 그 후에 어떻게든 원하는 대가를 상대로부터 받아 내는 것이 성자의 일.

성자가 교단으로부터 파문당한 이유 역시, 다름아닌 그것 때문이었으니까.

허나, 그 말에 쥐벨은 고개를 저었다.

“대가라면 이미 신께 받았어. 네게 받을 필요는 없지.”

“신과 거래를 한다니, 대단한 믿음이군.”

진혁이 입술을 비틀며 비꼬던 그때.

그의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린 진혁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저, 저자는!”

“파문자가 어째서!”

무명교의 성기사들과 성녀.

그들 역시 성자가 이곳에 나타날 줄은 몰랐는지, 쥐벨의 모습을 보곤 놀라 검을 뽑아 들었다.

그 뒤로, 연맹에서 봤던 엽사들이 소식을 듣고 하나둘 강변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수호자님, 어째서 파문자와!”

“위험합니다! 어서 이쪽으로!”

성기사들은 당장이라도 성자를 향해 달려들 기세였지만, 옆에 있는 진혁 때문에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

‘곤란한데.’

진혁이 난처한 표정으로 턱을 긁고 있던 그때.

콰아아앙!

강 너머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긴장감에 휩싸여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강 너머로 향했다.

그리고, 폭발음의 정체를 눈치챈 자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자, 자유의 여신상이!”

“이런 미친!”

높이 46.1미터, 무게 225톤의 거대한 동상이 미사일처럼 강물을 가로지르고 있었으니까.

“아직 남아 있는 놈이 있는 건가?”

“일단 피해!”

고층빌딩 크기의 동상에 직격당하고도 살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나로 육체를 강화시키는 초인들 역시 마찬가지.

강변에 모여 있던 엽사들은 날아오는 여신상을 피하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서진혁을 제외하고는.

‘막아라.’

진혁의 명령이 고렘의 육체를 뒤집어쓴 악령에게 전해졌다.

쿠웅!

곧, 금속으로 이루어진 거인이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목표는 이미 강의 절반을 건너는 데 성공한 자유의 여신상.

위이이잉!

고렘의 내부에 장비된 마력엔진이 터질 듯 비명을 지른다.

그와 함께 거인의 오른팔을 감싸는 검은 기운.

한달음에 강 위로 뛰어오른 거인은, 그대로 검게 물든 주먹을 앞으로 내질렀다.

콰아아앙!

폭탄이라도 터진 것 같은 굉음이 지축을 울렸다.

충돌지점으로부터 퍼져 나간 충격파가 허드슨강의 강물을 헤집었다.

당연히, 충격을 정면으로 받아 낸 여신상이 멀쩡할 리 없었다.

촤아아악!

머리가 사라진 채 허공에 멈춘 여신상이 그대로 강바닥에 추락하며 거대한 물기둥을 만들어 냈다.

곧, 솟구친 물기둥이 다시 가라앉았을 때.

진혁과 엽사들의 눈에, 적의 정체가 들어왔다.

“……흑기사라.”

상대를 마주한 진혁은 순간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의 괴수들처럼, 검은 갑주로 전신을 가린 기사.

하지만, 문제는 기사의 등 뒤에 후광처럼 서려 있는 거대한 기운이었다.

스으으으!

보는 것만으로도 찌릿찌릿한 감각이 올라올 만큼 진한 마기.

‘마인이…… 이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다라.’

용과도 충분히 맞상대를…… 아니, 압살할 만큼 강력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진혁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여기까지 넘어오는 순간, 진다.’

순식간에 강물을 마기로 오염시키고 있는 놈의 마기.

상륙을 허용한다면, 이겨도 이긴 게 아니게 되리라.

생각은 빨랐고, 결정은 분명했다.

‘가라.’

타앗!

진혁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기하던 망자들이 일제히 강을 넘어 달려들었다.

쩌저저적!

전갈사자의 냉기마법이 강물을 얼리고, 그 위로 스켈레톤과 다른 망자들이 뛰어들었다.

진혁은 고개를 돌려 흩어진 성기사들과 엽사들을 바라봤다.

“뭣들 하고 있지?”

“네, 네?”

“놈이 넘어오면, 이 싸움은 끝이다.”

당황한 사람들을 진혁이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서야, 그들은 진혁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공격!”

“지금 놈을 막아야 해!”

뒤늦게 얼어붙은 강물 위로 뛰어드는 엽사와 성기사들.

흑기사의 약점을 찾기 위해, 영안을 발동시킨 진혁의 시퍼런 눈이 놈을 구석구석 훑었다.

그때였다.

―주인.

전갈사자, 민호가 그를 부른 것은.

―놈이 입은 갑주와 저 장갑들,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알 것 같습니다.

뒤이어, 민호는 흑기사가 입은 갑주의 구성성분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을 모두 들은 진혁은 곧 파훼법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진혁의 시선이, 붉은 검을 쥔 채 앞으로 달려나가는 식귀에게로 향했다.

‘성준.’

―예, 진혁 님.

‘네가 할 일이 있다.’

망자에게 명령을 전달하는 그의 눈이, 시퍼렇게 빛났다.

나이트.

마인들의 기사, 폴른들을 이끌던 수장인 그의 심정은 참담했다.

‘이렇게…… 허망하게 보낼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아다만티움을 변형시켜 만든 특수장갑을 걸친 부하들.

괴수화를 통해 그 힘을 더욱 증폭시켰으니, 뉴욕을 박살 내지는 못하더라도 이렇게 허망하게 당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못했다.

‘너희의 복수…… 내가 대신해 주마.’

스으으!

나이트의 분노와 함께, 그의 등 뒤에 일렁이고 있던 검은 기운의 덩어리가 덩치를 불려 나갔다.

이미 죽은 부하들로부터 빨아들인 순수한 마기의 집합.

수백의 마인들로부터 끌어모은 마기는 그 자체로 막강한 위력을 지니고 있다.

그 대가로 육체의 수명 대부분을 바쳐야 했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너희는, 이 자리에서 모두 죽는다. 마왕님을 위해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괴수와 해골들, 그리고 인간들을 향해.

휘익!

그는 검을 가로로 내리그었다.

하지만, 그는 검을 휘두른 게 아니었다.

검을 감싸고 있던 순도 높은 마기의 칼날이 검을 따라 강을 훑었으니까.

서걱!

섬뜩한 소리와 함께 달려들던 해골들이 반으로 갈라져 쓰러졌다.

그 뒤의 괴수들에겐 닿지 않았지만, 아쉬울 것은 없었다.

휘익!

그저, 검을 한 번 더 휘두르면 될 뿐.

검의 움직임을 따라 마기가 얼어붙은 강물을 부숴 버린다.

풍덩!

얼음을 밟고 달려오던 망자들 대부분이 그대로 강물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타앗!

그 사이에서, 자신을 향해 빠르게 달려드는 붉은 빛줄기가 있었다.

‘오우거인가.’

붉은 검을 든 채, 머리에 은색 투구를 쓴 오우거.

놈이 빠른 속도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것을 확인한 그는 속으로 비웃었다.

‘무장은 제법 그럴듯하다만, 그래 봐야 오우거일 뿐이지.’

지금의 자신은 용조차도 쓰러트릴 수 있는 상태.

고작해야 C급에 불과한 오우거에게 질 리가 없지 않은가.

‘단숨에 끝내 주마.’

어느새 자신의 앞에 다가온 오우거를 베기 위해, 나이트는 검을 휘두르려 했다.

허나.

오우거는 손에 쥔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오른발로 진각을 밟는 오우거가 앞으로 내지른 것은, 검은 금속으로 도금된 거대한 주먹.

‘설마…….’

아다만티움?

오우거의 검은 주먹을 마주한 나이트의 마음속에 일말의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칠성무(七星武)

파산권(破山拳)

콰아아앙!

산을 부수는 주먹이, 공간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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