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 (149)
“내가 하지.”
“……뭐?”
서진혁의 입이 열린 순간, 제이슨은 순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진혁의 말이 이어졌다.
“엽사들이 모이는 데 필요한 오 일, 내가 벌어 주겠다.”
“미친 소리.”
그제야 무슨 의미인지 이해한 제이슨은 코웃음을 쳤다.
“혼자서 마왕을 상대로 오 일을 버티겠다고?”
모든 마인의 지배자, 마왕.
개인이 가진 힘도 분명 강력하지만, 마왕이 가진 진짜 힘은 그가 부리는 수많은 마인과 괴수들에게서 나온다.
마기에 침식되어 괴수들이 움직이기에 최적화된 대지 위에서라면, 괴수들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은 평소의 곱절 이상.
일 품, S급의 자리를 차지한 엽사들도 마왕과 그 군대 앞에서 홀로 오 일을 버틴다는 말은 농담으로라도 하기 힘들었으니까.
“진혁 님, 굳이 무리하실 필요는 없어요.”
클레어 역시 걱정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미국 대표의 말 대로 어느 정도 시간 여유를 갖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예요. 혼자서는 너무 위험한 일이기도 하고…….”
그녀 역시, 혼자서 마왕에 맞서 시간을 끈다는 진혁의 생각을 탐탁지 않아 하는 것은 마찬가지.
클레어나 제이슨이 아닌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니, 해야만 한다.”
진혁은 고개를 젓고는 둘을, 모여있는 엽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마왕의 힘은, 마기에 침식된 대지에 비례해 커지니까.”
엽사들이 공부하는 역사에서도 나오는, 엽사들 사이에선 상식과도 같은 이야기.
“두 번째 대전쟁 당시, 마왕이 그토록 강한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유라시아의 절반을 마기로 뒤덮었기 때문이다. 결사대의 기습이 성공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못했다면 지금쯤 지구는 마왕의 손에 들어갔을 터.”
이미 결과를 알면서도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다.
“분명, 마왕은 지난 전쟁의 교훈을 깨닫고 기습에 대비했을 것이다. 놈의 힘이 더 커지기 전에 끝내야 해.”
지금 마왕의 힘에 침식당한 영역은 그리 크지 않다.
분명, 대전쟁 당시의 마왕에 비하면 어렵지만 상대할 만은 할 터.
“……그래서, 아직 약한 마왕이라면 혼자서 상대할 수 있냐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
“그렇다.”
제이슨의 말에 진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와 눈을 마주쳤다.
“약간의 지원만 있다면.”
“지원?”
반문하는 제이슨을 향해, 진혁의 눈이 빛났다.
* * *
라스베이거스.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처럼 있는 향락의 도시.
원래라면 24시간 환한 네온사인으로 사막을 빛내야 할 도시였지만, 이미 대피령이 내려진 도시의 카지노와 호텔은 모두 문을 닫은 상태.
부우웅!
적막한 어둠이 깔린 도시 위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은, 수 대의 트레일러였다.
텅 빈 고속도로를 달리던 트레일러들은 곧 네바다주와 유타주의 경계에 멈춰 섰다.
그곳엔, 진혁을 비롯한 일행들이 자리해 있었다.
그리고, 사막 한가운데 생긴 작은 동산도.
“이쪽입니다!”
통역 마법기를 켠 주연이 유창한 영어로 트레일러를 동산 쪽으로 인도했다.
동산의 정체는 다름 아닌 수많은 괴수의 시체들.
기이잉!
곧, 자리에 도착한 트레일러들은 옆문을 열고 담고 있던 괴수의 시체를 쏟아낸 다음 왔던 길로 사라졌다.
“팀장님, 현재까지 총 2,982구의 괴수 시체가 모였습니다.”
사체의 숫자를 점검한 주연은 진혁에게 다가와 보고했다.
“협회 측 말로는 미국 전체 물량의 10% 정도를 보냈다고 합니다. 이후로도 계속 보내 올 예정입니다.”
“과연, 미국이로군.”
그 말을 들은 진혁은 휘파람을 불었다.
한국이었다면 반도 전체를 긁어모아도 어려웠을 터.
국토가 넓은 만큼 괴수도 많은 미국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정도라면…… 부족하나마 쓸 수 있겠어.”
괴수의 시체로 이루어진 동산을 바라보던 진혁은 옆에 선 두 용, 청명과 아피루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희는 어쩔 셈이지?”
“진혁님을 지원하겠습니다. 직접 마왕과 대적할 수는 없어도, 원거리에서 마법 공격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니까요.”
“나 역시 마찬가지다.”
마법의 원류인 용이 직접 나서는 마법 지원이라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진혁은 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청명을 바라봤다.
“네 육체는 망자의 것이나 다름없으니, 원한다면 침식된 대지 안에 들어가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참고하도록 하지.”
말을 마친 진혁은 다시 고개를 돌려 동산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미 솔트레이크가 위치한 유타주의 대부분과 그 주변의 네바다, 콜로라도, 와이오밍, 아이다호 일부까지 침식된 상태.
더 이상의 침식은 막아야 했다.
스으으!
동산을 향해 뻗은 진혁의 손바닥으로부터 흑마력으로 이루어진 검은 안개가 뿜어져 나갔다.
“망령이여.”
순식간에 동산 전체를 집어삼킨 흑마력 덩어리들을 향해, 진혁은 주문을 외웠다.
“명계의 율법에 따라, 새로운 육체에 깃들라.”
그와 함께.
스으으!
그의 왼손에 든 영혼 구슬이 회오리치며 내부의 망령들을 쏟아냈다.
일본, 중원, 시베리아.
낙성당에서 계약을 맺은 서가의 엽사들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진혁이 활동했던 곳에서 모아 뒀던 망령들 전부가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밖으로 뛰쳐나왔다.
―육체, 육체!
―다시 살아난다!
오랜만의 나들이에 신난 영혼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흑마력에 잠식된 괴수의 시체 속으로 돌진했다.
곧.
“크으으으.”
“키이이이이!”
하나둘, 새롭게 육신을 얻은 망자들이 동산을 이루는 괴수들의 시체 사이로 빠져나왔다.
여기저기 상처를 입거나 신체 일부가 잘려 나간 괴수들.
―괴수의 냄새가 나…….
―복수, 복수를…….
그러나, 그들의 눈구멍에선 괴수와 마인에게 죽임을 당한 원한이 푸른색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채 오 분도 지나지 않아, 쓰레기처럼 쌓여 있던 삼천여 괴수들의 시체는 어느새 군단을 이루었다.
지치지도, 죽지도 않는 불사의 군단.
‘나머진 너희에게 맡기지.’
사막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불사의 군단과 그들의 앞에 선 성준, 자이츠, 멜리나, 민호, 무명.
―맡겨 주십시오.
―이번 일만 끝나면 푹 쉴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주인.
―운이 좋으면 마왕과도 검을 나눌 수 있겠어. 크흐흐.
―멍청하긴, 그게 운이 좋다고 생각하나?
―어서 갑시다.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으니.
“키이이이이!”
“크아아아!”
각기 한마디씩을 남긴 다섯의 망자들은 군단을 나눠 이끌고 침식된 대지 안으로 돌진했다.
괴수의 육체를 걸친 망령들의 귀곡성이 사막을 울렸다.
그리고.
그들이 사라진 지 삼십 분 뒤.
“침식이…… 멈췄습니다.”
놀란 주연의 더듬거리는 말에, 진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 * *
“귀찮은 녀석들이 왔군.”
마왕.
검은 사막 위에 선 남자의 시선이 지평선 너머의 괴수들로 향했다.
그와 다른 갑 급 괴수의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저 정체불명의 괴수들이 다른 마인과 괴수들을 찢어발기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뿐만이 아니다.
콰아아앙!
지평선 너머에서 강력한 마법이 날아올 때마다, 침식된 대지 위로 일어난 거대한 폭발이 괴수들을 집어삼켰다.
“서진혁, 그놈이다.”
옆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외눈박이가 입을 열었다.
―그놈은 괴수의 시체를 움직일 수 있어. 생전과 거의 비슷한, 아니 그 이상의 수준으로.
“……영혼에 간섭하는 종류의 능력인가? 그런 희귀한 능력을 인간이 사용할 수 있다니.”
외눈박이의 설명을 들은 마왕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마인으로 만들 수 있다면, 굉장한 전력이 되겠어.”
이미 죽어 죽을 수 없는 군대를 부리는 존재.
설명을 듣자마자, 그는 서진혁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외눈박이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글쎄, 놈이 과연, 마인이 된다 해서 순순히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줄까? 제거하는 게 낫다.
설사 억지로 마인으로 만들어 낸다 한들, 놈이 마왕의 정신지배를 이겨낼 만큼 강력한 의지가 있다면 무용지물.
그의 말대로, 차라리 제거해 버리는 것이 더욱 안전하고 확실한 길이리라.
허나.
“아니.”
마왕은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난, 저 녀석을 얻어야겠어.”
마법 지원 아래 일방적인 살육을 벌이고 있는 불사의 군단.
그리고, 영혼을 다루는 능력으로 그들을 이끄는 한 사람.
그 둘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지구를 마인의 것으로 만드는 것 이상의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신과 대적할 수 있을지도.”
―신이라고?
마왕의 중얼거림을 들은 외눈박이는 깜짝 놀랐지만, 마왕은 아랑곳하지 않고 외눈박이와 다른 갑 급 괴수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군단의 주인을 산 채로 잡아 올 수만 있다면, 큰 보상을 하지. 반드시. 가령…….”
지구를 공격하기 위해 모였지만, 마왕과 그들은 주종관계가 아닌 임시적 동맹, 혹은 경쟁 관계.
그들을 움직이기 위해선, 마왕 역시 무언가를 걸어야 했다.
“지구의 영역 일부…… 라든가.”
―내가 가지.
마왕의 말에 대답한 것은 한 괴수였다.
용의 형태를 하고 있으나, 마기로 덧칠된 검은 비늘이 전신을 감싸고 있는 흑룡.
―보아하니 저쪽에도 용이 있는 모양인데, 좋은 승부가 되겠어.
“크롸롸롸!”
마룡 게오르크.
지평선 너머에 있을 인간과 용을 향해, 그는 기쁘게 포효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자신의 권속들, 수많은 비룡과 함께.
* * *
“마룡이다.”
“마룡?”
“이쪽으로 올 모양이군.”
거대한 마기를 감지한 청명의 말에, 진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 역시 마룡이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이 마기에 침식당해 마인이 되듯, 용이 마기에 침식당해 변질되어 버린 존재.
지난 대전쟁 때 전부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살아남은 존재가 있었다니.
“성룡과 에인션트급 사이야. 우리 둘로 막는 건 어려워.”
“장로님을 모셔와야겠어요. 장로님과 다른 일족들이 있다면 막을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여기선 공간이동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아마 중원과 오가는 건 아무리 용이라 해도…… 힘들 겁니다.”
주연의 말 대로다.
대서양 근처까지 공간이동을 한 다음 날아온다 해도 족히 20분 이상은 걸릴 터.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놈에게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렇다면.
“청명.”
“무슨 일이지?”
“날 데리고 저곳으로 가라.”
진혁은 그 말과 함께 침식된 대지 너머, 혈전을 벌이고 있는 망자들을 가리켰다.
“……산 자의 몸으로 저길 들어가겠다고? 그건 자살행위야.”
당연히, 청명은 그를 미친놈 보듯 바라봤지만.
“저곳이, 내겐 가장 안전한 곳이다.”
그녀와 마주친 진혁의 눈에선, 한 점의 의심도 찾아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