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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159화 (159/174)

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 (159)

한국의 엽사들과 시민들은,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점 하나를 눈치챘다.

“게이트가 사흘 째 나타나지 않고 있어.”

“뭐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괴수가 쏟아져 나오던 게이트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근 백 년 동안 한반도에 게이트가 열리지 않았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으니, 이는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뭔가…… 큰일이라도 나는 거 아냐?”

“갑자기 게이트가 하나도 나타나지 않는다니…….”

“다른 나라 상황은 어때?”

“똑같아. 한국만 일어나는 상황이라고.”

“젠장,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분명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그 원인을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이것이 또 다른 재앙의 전조는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람들은 더욱 불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 원인이 공개된 것은, 한국에 돌아온 서진혁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였다.

“한국의 엽사들이 에피로나 공략에 참가하는 대가로, 한국의 던전게이트를 차단했다.”

뉴스에 나타나 짤막한 한마디만 던지고 사라진 것이 대답의 전부.

그러나, 뒤이어 대한엽사회와 다섯 엽사가문의 가주들이 진혁의 말을 공증해 주자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서진혁, 괴수시대의 막을 내리다.]

[한반도는 오늘부터 괴수 안전지대!]

[서진혁이 게이트를 닫은 방법에 관하여: 마도학적 분석]

[대한엽사회, 괴수의 땅 제주도와 울릉도를 수복하겠다 선언!]

수많은 신문과 방송, 인터넷이 서진혁이 행한 기적으로 도배됐다.

던전을 공략해 게이트를 닫는 것이 아닌, 게이트의 연결을 원천적으로 막아 버린다.

지난 백여 년간 한 번도 성공해 본 적 없는 일.

하루아침에 괴수로부터 자유를 찾은 사람들은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서, 서진혁이다!”

“서진혁 만세! 만세!”

“구원자이시여…….”

엽사들이 에피로나 공략을 의논하기 위해 나타난 서진혁을 향해 찬사를 보내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서진혁은 마왕이다!”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환호성을 지르던 사람들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게이트를 열고 닫을 수 있는 건 마왕과 마인, 괴수들뿐이었어! 우린 지금 저 녀석에게 속고 있는 거야!”

괴수 사냥용 장비를 두른 엽사.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진혁이 새로운 마왕이라 말하고는, 손에 쥔 검을 들어 올렸다.

“이런 미친놈을 봤나?”

“술 먹었으면 곱게 가서 잠이나 자라고!”

“저리 안 꺼져?”

물론, 그는 진혁을 향해 몇 걸음 다가오기도 전에 다른 엽사들에게 붙잡혀 끌려 나갔다.

“팀장님, 행사를 취소할까요?”

“아니, 진행하지.”

걱정스런 표정을 지은 주연의 말에 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엽사들이 그를 공격한다 하더라도 상처 하나 입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에겐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그의 시선은 조금 전 자신을 마왕이라 칭한 엽사가 끌려간 자리로 향해 있었다.

‘이대로면…… 곤란할지도 모르겠군.’

진혁은 자신이 이뤄 낸 것이 어떤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백 년 동안, 마기를 다루는 괴수나 마인 외에는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

그렇기에,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자신을 마왕이나 마인으로 모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지만, 마지막도 아니리라.

한국 이후에 게이트를 차단한 다른 나라에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는 일이었으니, 에피로나 침략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선 필요한 일이었다.

문제는 하나.

걸림돌을 치우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수고하셨습니다, 팀장님. 다음 일정은…….”

연설을 마치고 내려온 진혁에게 고개를 숙인 주연은 미리 준비해 둔 스케줄표를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잠깐.”

진혁은 그녀가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손을 뻗어 멈춰 세웠다.

“이 다음 일정은 전부 취소하겠다.”

“……팀장님, 무슨 일이라도?”

“갈 데가 있다.”

“갈 데라면…….”

“세한의료원.”

말을 마친 진혁의 입가엔, 묘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    *    *

베리엘.

무명교의 주교와 대주교가 모두 괴수가 되어 토벌당한 이후, 새롭게 뽑힌 주교들 중 한 사람.

하지만.

“후우.”

모든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는 그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이상했다.

피부 곳곳에 작게 솟아있는 검은 뿔과 여러 번 접혀 있는 날개.

그리고, 결정적으로 루비처럼 빛나는 붉은색의 눈동자.

마기에 오염된 인간, 마인임을 증명하는 특징들이었다.

“주교 노릇도 슬슬 지겹군. 신성력도 거슬리고.”

평범한 마인이었다면, 신성력으로 범벅된 무명교의 교단에 들어오는 것만으로 큰 타격을 입고 쓰러졌으리라.

그러나 그는 평범한 마인이 아니다.

마인들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가진, 신성력에 저항할 수 있는 특수한 권능을 지닌 자.

그렇기에, 조금만 조심한다면 무명교의 주교로 행세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그나마, 베르넬이 평범한 사제라 다행이지.”

마인은 이미 죽어 지하에 파묻힌 불행한 주교를 떠올리며 웃음을 짓고는 다시 밖으로 나와 차를 몰고 도시 밖으로 향했다.

끼이익!

십오 분쯤 차를 운전해 온 그가 도착한 곳은, 무명교의 대성당과 제법 떨어져 있는 자갈 투성이의 공터.

“좋아.”

차에서 내려 주변을 휘휘 둘러본 남자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 자신의 진정한 힘을 끌어냈다.

스으으으!

마기.

마인과 괴수들이 다루는 에너지가 허공에 모이더니, 전신거울처럼 생긴 타원형의 문을 이루었다.

곧, 검게 칠해진 거울이 투명해지고, 어떤 형체가 나타났다.

이마 가운데에 눈 하나가 달린 거인.

―그래…… 상황은 어떻지?

갑 급 괴수, 외눈박이였다.

“서진혁이 한국에서 일을 저질렀던데요.”

―일?

“한국으로 향하는 모든 던전게이트를 차단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게이트가 사흘째 열리지 않고 있기도 하고요.”

―……게이트의 일부가 기능을 잃었다더니, 놈의 짓이었나.

남자의 설명을 들은 외눈박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나 남은 괴수의 팔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그래도, 그 덕분에 계획은 조금 더 쉽게 진행될 것 같으니 다행이죠.”

―계획?

하지만, 남자의 입가엔 여전히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괴수가 쏟아져 나오는 게이트를 마음대로 열고, 닫을 수 있는 인간만큼 마왕에 어울리는 사람도 없으니까요.”

―……놈을 마왕으로 몰겠단 거군.

“전 세계가 놈을 사냥한다면, 제아무리 수만의 괴수를 부리는 놈이라도 쉽게 당해내진 못할걸요. 제아무리 강한 사람이래 봐야, 결국 인간일 뿐이죠.”

인간은 타인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다.

그것은 아무리 강한 헌터라도 마찬가지.

전 세계를 움직여 놈을 고립시킨다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재미있군. 마인이 인간을 움직여서 헌터를 처리한다라, 마왕이나 할 법한 생각이야.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마인이라면, 마왕이라 불리기에 충분할 테니까요. 물론 그 전에.”

그 말에, 남자는 씨익 웃었다.

“가짜 마왕부터 이 세상에서 지워 버려야겠지만.”

서진혁.

곧 마왕이 되어 죽어갈 상대를 떠올린 남자의 눈에서, 소름 끼치는 빛이 터져 나왔다.

*    *    *

세한의료원.

한국의 수많은 엽사들이 진찰이라도 받아보기 위해 몇 개월을 대기하는 한국 최고의 의료시설.

하지만.

그만큼 뛰어난 의술을 가진 병원이라 할지라도 죽음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삐.

죽음을 알리는 바이탈 사인과 숨을 멎은 병상의 남자.

“여보, 여보!”

“아빠, 죽지 마아!”

남자가 숨을 거뒀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임종을 지켜보던 가족들이 울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이렇게 말도 없이 가 버리면 나는 어떡하라고……!”

병상 옆에서 남편의 시신을 끌어안으며 우는 아내.

한 달 전 괴수에게 치명상을 입은 뒤로 쭉 혼수상태였으니, 유언은커녕 제대로 된 인사조차 남길 수 없었다.

“조금만, 조금만 버텼으면 평생 행복할 수 있었는데…….”

사흘 전부터 한국의 게이트는 열리지 않았으니, 한 달 전의 사고만 아니었더라면 괴수에게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으리라.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

괴수에게 당한 남편은 이미 죽었고, 죽음을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럴 줄 알았으면…….”

밀려오는 후회 속에서 아내는 오열을 멈추지 않았다.

“되돌리고 싶나?”

누군가가, 그녀에게 말을 건 것은 그때였다.

“……당신은.”

눈물로 망가진 얼굴을 돌린 아내의 눈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서진혁……씨?”

상대를 알아본 그녀는 슬픔 속에서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상대는 한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엽사.

남편과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닐 그가, 어째서 이곳에 와 있는 것일까.

의문 섞인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녀를 향해, 진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되돌리고 싶다면, 도와줄 수 있다.”

“그게…… 무슨…….”

“죽은 자를 되살릴 수는 없지만, 대화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원하는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의 연속.

사고가 정지해 버린 듯,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네, 원해요!”

진혁의 말에 대답한 것은 그녀가 아니었다.

“저희 아빠, 살려 주세요! 네?”

진혁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그녀의 어린 아들.

“알겠다.”

꼬마의 간절한 말에 진혁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죽은 엽사를 향해 오른손을 뻗고는 입을 열었다.

“망령이여, 명계의 율법에 따라 육신에 깃들라.”

현계에 떠돌아다니는 영혼을 다시 육신에 집어넣는 기초적인 사령술.

영안을 발동해 푸르게 빛나는 진혁의 눈은, 조금 전 몸 밖으로 빠져나온 엽사의 영혼을 바라보고 있었다.

곧.

스으으으!

그의 명령과 함께 쏟아져 나간 흑마력이 허공에 부유하던 엽사의 영혼을 다시 육체에 붙들고는 몸으로 끌어들였다.

이내.

“……여보.”

언제 죽었냐는 듯 엽사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여, 여보?”

“아빠!”

“30분 정도는 유지될 거다. 마지막 인사라도 나누도록.”

말을 마친 진혁은 병실을 떠났다.

“신이라도 흉내 낼 셈인 게냐?”

그 모습을 밖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던 청명이 신기하다는 듯 진혁을 바라봤다.

진혁의 답은 짧았다.

“필요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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