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167화 (167/174)

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 (167)

“그러지.”

“역시, 당신 다운 현명한 판단입니다.”

크레온을 저지하는 데 협조해 주겠다.

진혁이 그 제안에 동의해 주자, 여왕은 주름진 얼굴로 밝게 미소지었다.

그 대가로 영국과 영연방 전체가 진혁의 에피로나 공략을 도와야 했지만, 그녀는 전혀 아쉬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죽지 않는 군대를 보유한 자와 손을 잡는다는 건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진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연방이라면…… 충분히 도움이 되겠지.’

그 인구만 20억이 넘는 거대한 국가연합.

대영제국이 해체된 지 60년이 넘었지만, 일품의 엽사인 여왕의 힘 아래 하나로 뭉친 영연방의 결속력은 과거 제국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았으니까.

여왕의 말 한마디만 내려진다면, 인도와 호주를 비롯한 옛 제국의 수많은 엽사들은 주저없이 에피로나로 향하게 되리라.

전 세계 엽사의 1/3을 지원군으로 얻었으니, 진혁에게도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그러면, 생각해 둔 계획이라도 있나?”

“진혁님께서 게이트를 폐쇄하려고 한다면, 크레온의 헌터들은 그걸 막기 위해 전력으로 공격해 올 겁니다.”

진혁의 물음에, 여왕은 미리 준비해 둔 대답을 읊었다.

“이미 게이트 폐쇄식을 거행하기로 한 장소에 기사단을 배치시켜 둔 상태니, 조금만 도와주신다면 놈들의 반역모의를 막기엔 충분할 겁니다.”

물론 진혁 혼자서도 크레온의 헌터들을 압살할 수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왕가의 체면을 생각하면 모든 걸 그에게 맡길 수는 없는 일.

크레온의 반역을 성공적으로 막아 낼 수 있다면, 국민들은 왕가와 그녀를 다시 한 번 지지하게 되리라.

하지만.

“게이트 폐쇄식이라면, 굳이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여왕의 대답을 들은 진혁의 반응은 어딘가 모르게 미적지근했다.

“네? 그게 무슨…….”

“영국의 게이트라면, 오는 길에 이미 모든 연결을 끊어 뒀으니까.”

그 말에, 여왕은 눈을 부릅떴다.

“아니,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라고요?”

“그래.”

담담하게 설명하는 진혁을, 그녀는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바라봤다.

게이트에서 쏟아져나온 괴수가 영국의 국민을 괴롭혀 온 것이 벌써 백여 년.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재산과 인명을 파괴한 저주받을 게이트가, 이토록 쉽게 사라지다니.

‘믿을 수 없어.’

S급 헌터의 몸으로도 해내지 못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진혁을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속은 불신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똑똑!

“여왕폐하.”

그녀의 생각은 밖에서 들려온 노크 소리와 함께 끊어졌다.

“무례를 범해 송구합니다만,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진혁 님. 잠시 다녀와야 할 것 같군요.”

“기다리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들이켜는 진혁을 향해, 여왕은 인사를 하고는 접견실을 나섰다.

“……흠.”

코끝으로 올라오는 밀크티의 고소한 향을 들이켜며, 진혁은 여왕이 되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정말이었군요. 게이트가, 게이트가…….”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접견실에 돌아온 것은, 그다음의 일이었다.

*    *    *

게이트가 닫혔다.

영국 전역에 이 사실이 알려지는 데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뭐야, 게이트가 다섯 시간 째 나타나지 않는다고?”

“정말…… 게이트가 닫혔어.”

“하하…….”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던 헌터들 역시, 새로운 괴수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때가 되어선 그 사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졸지에 실업자가 된 헌터들이었지만, 더 이상 목숨을 걸고 괴수들과 싸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그들의 긴장을 풀어놓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영국헌터협회에서 런던과 글래스고를 비롯한 대도시의 괴수들이 모두 토벌되었다고 밝혔습니다. 협회는 이 모든 공을 게이트 폐쇄에 성공한 한국의 서진혁에게 돌리면서, 대도시가 아닌 다른 지역의 괴수들도 빠른 속도로 토벌하고 있다며…….

아일랜드의 동쪽 해안 어딘가.

과거엔 더블린이라는 이름의 대도시가 있던 자리지만, 백 년의 세월과 괴수의 발톱에 의해 파괴된 도시.

폐허가 된 도시의 옛 광장에 모인 것은, 크레온의 회장인 스미스와 그를 호위하는 헌터들이었다.

천막과 모래주머니, 보구 따위로 만든 임시 진지 안에서, 스미스는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들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래, 아일랜드의 괴수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네, 현장의 보고에 의하면, 3시간 전부터 새로운 게이트가 열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쥐새끼처럼 몰래 진행하다니, 쯧.”

비서에게 보고를 받은 스미스는 혀를 차며 눈살을 찌푸렸다.

다음 날로 예정되어 있던 게이트 폐쇄식.

식이 열리는 순간을 노리기 위해 보내 두었던 자신의 비밀병기들이 아무런 쓸모도 없어졌으니까.

“본토에서 대기 중인 자들을 모두 불러들이도록 하게. 더 이상 본토에서 괴수를 잡을 일은 없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비서를 바라보던 스미스의 눈이 기대감으로 빛났다.

“준비는 어떻게 돼 가고 있지?”

“장치 설치는 이미 완료되었고, 시험가동을 위해서 테스트 중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네?”

“우리 회사의 미래를, 직접 내 눈으로 봐야겠어.”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스미스는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 임시기지로 사용 중이던 천막을 떠나 대 괴수용 장갑차에 탑승했다.

시끄러운 엔진소리와 함께 출발한 장갑차가 도착한 곳은 폐허가 된 더블린 바깥의 평원.

“저건가?”

인간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허리춤까지 자란 잡초로 가득 찬 초원 한가운데에 멈춰선 장갑차에서 내린 스미스는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흥미로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장갑차 한두 대는 거뜬히 지나갈 법한 크기의, 거대한 고리 모양의 구조물.

금속으로 만들어진 고리의 둘레에는, 보석처럼 반짝이는 푸른 마정석들이 각종 마법술식이 새겨진 채 일렬로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을 뛰어다니며 고리와 마정석의 상태를 체크하는 수십 명의 마법사들까지.

그 모두가, 하나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서진혁에 의해 완전히 폐쇄된 게이트를 강제로 여는 것.

원래는 아일랜드에 나타나는 괴수의 숫자를 안정적으로 조절하기 위해 크레온에서 수십 년 전부터 개발해 왔던 기술이었지만.

“이젠 저 인공 게이트에 회사의 운명이 걸려 있군……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하는 건지.”

그래도, 아직은 기회가 남아 있는 셈이었으니 운이 좋다고 하는 게 맞으리라.

이 기술이 없었다면 크레온은 손 써 볼 기회조차 없이 붕괴되었을 테니까.

이제 남은 건.

‘성공하느냐, 마느냐인가.’

시험가동이 성공한다면, 안정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괴수와 그 부산물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될 터.

크레온이 다시 부활하는 것은 물론이고, 폭락하던 주가 역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리라.

“시험가동 시작합니다!”

인공 게이트의 시험을 총괄하던 책임자는 희망 가득한 눈으로 게이트를 바라보던 스미스를 향해 외치고는 자신의 마력을 게이트에 불어넣었다.

그것을 신호로, 주변의 마법사들 역시 자신의 마력을 거대한 고리로 밀어넣었다.

우우웅!

마력을 집어삼킨 고리의 마정석들이 동시에 공명한다.

그와 함께 시계방향으로 회전을 시작하는 금속 고리.

점점 회전 속도를 높여 가는 고리의 내부로, 마정석에 흘러 들어간 거대한 마력이 술식에 따라 배열된다.

이내, 마력의 집중을 견디지 못한 차원이 조금씩 찢어지기 시작했다.

“차원균열 확인! 게이트 연결중!”

“드,드디어……!”

오롯이 마법과 과학의 힘만으로 여는 데 성공한 게이트.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위업 앞에서, 회장인 스미스를 비롯한 크레온의 사람들은 경이로운 눈빛으로 넓혀지는 차원의 틈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스으으으!

그 사이로, 짙은 흑색의 기운이 서서히 주변을 잠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한 채.

“차원 너머에서 미확인 존재가 넘어오고 있습니다! 괴수로 추정!”

“좋아, 성공이야!”

실험을 총괄하던 마법사의 외침에, 스미스는 주먹을 꽉 쥔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제, 회사가 무너질 일은 없다.

아니, 인공게이트와 그곳에서 쏟아지는 괴수를 바탕으로 크레온은 더욱 큰 성장을 이루게 되리라.

‘서진혁이 모든 게이트를 닫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괴수의 부산물을 생산할 수 있다면…… 부르는 게 값이 되겠지.’

말 그대로, 돈을 갈퀴로 쓸어 담을 수 있게 되리라.

아니, 돈뿐만 아니라 세계의 정세를 좌지우지할 수 있겠지.

괴수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 괴수의 부산물을 독점한다는 건 그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까.

눈앞에 아른거리는 장밋빛 미래 앞에서, 스미스의 미소가 점차 진해졌다.

게이트 너머에서 나타난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저건…….”

“괴수가 아니잖아?”

그 존재의 정체를 확인한 크레온의 마법사들은,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색의 갑옷으로 전신을 감싼 채, 등에는 자신의 키보다 큰 낫을 멘 여자.

“흐응…….”

자신의 갑옷만큼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면서, 여자는 콧소리를 내며 주변을 둘러봤다.

“분명히 난 주군과 함께 있었는데…… 너흰 뭐지?”

“그건 내가 할 말이오. 괴수는 아닌 것 같은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주변을 바라보던 여자는.

“뭐, 상관없지.”

척!

등에 멘 낫을 양손으로 쥐고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스으으으!

그와 함께 그녀의 주변으로 터져 나오는 사이한 기운.

“마, 마인이다!”

“공격해!”

그제야 상대가 적의를 가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크레온의 마법사와 헌터들은 부랴부랴 공격을 준비했지만.

이미 늦었다.

서걱!

“어, 어어어…….”

그녀가 휘두른 낫에 몸이 조각난 채 쓰러지는 헌터와 마법사들.

피와 시체가 나뒹구는 초원 한가운데에서 멍한 표정을 짓는 스미스를 향해, 여자는 입을 열었다.

“이봐, 물어볼 게 있는데.”

“네, 네…….”

“여기에도, 사령술사가 있어?”

말을 마친 그녀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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