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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170화 (170/174)

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 (170)

히드로 공항.

이미 대피령이 내려져 버려진 비행기들만이 남은 영국 최대의 공항 위에선, 이제까지 없었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스으으!

세 기의 고렘이 쥔 검과 주먹을 덮은 것은, 고도로 응축되어 유형화한 흑마력.

마치 칼날처럼 날카롭게 벼려진 주먹과 검이 상대를 향해 찔러 들어갔다.

그 안에 담긴 것은, 을 급의 괴수조차 일격에 분쇄시킬 수 있는 파괴력.

그러나.

콰아앙!

셋의 공격이 목표에 도달했을 때.

―……강하군요.

―와…… 엄청난데?

―대단……해.

성준과 자이츠, 무명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고렘? 이라기엔 너무 복잡하게 생겼는데…… 이곳의 물건인가?”

에블린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과 검을 오른손에 쥔 낫만으로 손쉽게 막아 내고는 흥미로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내.

그녀가 오른손에 쥔 낫에 힘을 줬을 때.

콰앙!

―크으윽!

세 고렘은 그녀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튕겨 나갔다.

―불태워라, 화룡.

―질주하라, 뇌룡!

콰아아아!

그 틈에 생긴 빈 공간을, 번개와 불로 이루어진 두 마리의 용이 파고들었다.

“흐응…… 마법?”

하지만, 에블린의 표정은 딱히 변하지 않았다.

당황하는 대신, 그녀는 쥐고 있던 낫을 두 마리의 용을 향해 내민 다음, 힘껏 돌렸다.

우우웅!

회전하는 낫에서 흘러나온 흑마력이 그녀의 앞에서 검은 방벽을 이루었다.

곧.

카가각!

두 마리 용과 부딪친 방벽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효과는 확실했다.

회전하는 낫과 맞닿은 마법 용의 기운이, 마치 그라인더로 갈아 버리듯 갈린 채 흩어졌으니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상대로군. 이번 전투…… 데이터를 쌓기 딱 좋겠어.

―좋기는 개뿔이 좋아? 저거 완전 미친 년이잖아!

순식간에 불과 번개의 기운을 흩어 버린 그녀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민호와 질린 표정을 짓는 멜리나.

―그래도, 합공하면 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빨리 처리하고 들어가서 쉬자고!

―네.

콰아아아!

의견 교환을 마친 세 기의 고렘이 각자의 무기를 든 채 부스터를 가동한다.

우우웅!

그와 함께, 전갈사자와 용의 육체를 지닌 망자들이 마법의 술식을 쌓는다.

쾅! 콰광!

무기와 무기, 마법과 무기가 쉴 새 없이 하늘 위에서 부딪치고 있을 때.

‘제법 오래 걸리겠어.’

공항의 관제탑에서 에블린과 망자들의 전투를 지켜보던 진혁은 생각에 잠겼다.

‘문제는…… 흑마력이다.’

뱀파이어 로드인 그녀의 육체로 끝없이 공급되는 동력.

‘아마도…… 게이트 너머에서 공급되는 거겠지.’

망자들의 세계인 명계에서 공급되는 흑마력은 거의 무한정에 가까울 터.

명계와 연결된 게이트를 파괴하기 전까지는, 그녀를 막을 수 없으리라.

‘우선은, 게이트를 파괴한다.’

하지만, 진혁의 망자들을 보낼 수는 없었다.

쾅! 콰광!

그의 심복들은 이미 에블린을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었으니까.

저들보다 약한 망자들도 존재했지만, 게이트를 파괴하는 데엔 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물론.

진혁의 카드는 망자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부팀장.”

―네, 팀장님.

그가 통신구슬을 꺼내 마력을 불어넣자, 구슬 위로 주연의 얼굴이 떠올랐다.

기계장치 안에 탑승한 그녀를 향해, 진혁은 짧게 명령했다.

“지금이다.”

*    *    *

―지금이다.

“알겠습니다.”

통신구슬 너머로 들려온 진혁의 명령에, 미리 잉글랜드의 해안 도시 리버풀에서 대기하고 있던 주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좌석 앞에 장치된 두 개의 푸른 구슬로 손을 가져갔다.

곧, 그녀가 구슬에 순도 높은 마력을 불어넣었을 때.

기이잉!

거대한 기계를 움직이는 심장, 마력 엔진이 거세게 울부짖었다.

콰아아아!

그와 동시에 푸른 불꽃을 뿜어내는 등 뒤의 부스터.

이가와 주가가 신주연을 위해 만들어 낸 두정갑, 북두(北斗)에 탑승한 그녀와 두정갑의 주변을 구름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게이트를 파괴해라.’

‘오랜만에, 팀장님을 도울 수 있는 기회야.’

진혁의 명령을 떠올린 주연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삼 품의 엽사는 분명 흔치 않은 존재였지만, 어지간한 일 품 엽사보다 강력한 망자들을 주변에 두고 있는 진혁에게 도움이 될 일은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

그러나, 그 망자들이 모두 한 곳에 묶여 있는 지금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진혁의 말 대로라면, 공항의 적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은 다름 아닌 게이트.

게이트를 파괴해야만, 적에게 들어가는 에너지를 끊어 낼 수 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그 짐을 짊어진 것은 오직 그녀 혼자뿐.

‘반드시 성공한다.’

점점 가까워져 가는 육지.

그리고, 그 위에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무언가를 확인한 주연은 표정을 굳혔다.

‘괴수?’

조금 달랐다.

괴수라면 당연히 품고 있어야 할 마기.

하지만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잠자리 형태의 괴수들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마기가 아니었다.

좀 더 차가우면서도 끈적한, 죽음과도 같은 기운.

그녀는 이 기운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흑마력.’

그녀의 상사, 진혁이 다루는 망자의 힘.

다시 말해.

눈앞에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존재들은 괴수가 아닌, 망자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그 사실이 주연의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베어 버리면 그만이야.’

스릉!

신주연 전용의 두정갑, 북두에 장비된 무기들은 모두가 칠성무를 펼치는 그녀에게 맞춰진 것들.

우우웅!

금속 거인이 뽑아 든 거검 위로, 푸른 빛을 뿜어내는 마력의 덩어리가 자라난다.

순식간에 본래 검의 두 배 길이로 자라난 마력의 칼날.

오러를 담뿍 머금은 그녀의 검이, 가로로 베어졌다.

칠성무(七星武)

일섬(一閃)

파앗!

한 줄기의 푸른 선이 공간을 수평으로 나누었다.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던, 거대한 잠자리 형태의 망자들까지도.

서걱!

오러를 담은 그녀의 공격에 적중당한 망자들이 둘로 쪼개져 흩어졌다.

콰아아아!

그 틈을 타, 주연은 흩어지는 망자들 사이를 빠르게 가로질렀다.

‘분명, 이게 끝은 아닐 거야.’

그녀는 지금까지 봐 왔던 진혁의 권속들을 떠올렸다.

죽어도 죽지 않고 되살아나는, 이미 죽어 더 이상 죽을 수 없는 존재들.

분명, 저 망자들 역시 고작 칼질 한 번으로 끝낼 수는 없으리라.

‘빠르게 돌파한다.’

부스터의 출력을 최대로 올린 그녀는 뒤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의 생각대로.

왜애애앵!

놈들은 죽지 않았다.

언제 두 동강 났냐는 듯, 멀쩡한 모습으로 떠오른 망자들이 두 쌍의 날개를 퍼덕이며 그녀를 추격했다.

‘시간을 끌어야 해.’

몇 번을 베어도 다시 되살아나는 존재라면, 다른 방법을 택해야 한다.

판단을 내린 그녀는 양손의 수정구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기잉!

강철 거인의 허벅지 부분이 열리며 튀어나온 여섯 자루의 단검.

우우웅!

들고 있던 거검을 등의 검집에 집어넣은 거인은 허벅지의 단검들을 손가락 사이사이에 끼운 다음, 마력을 불어넣어 던졌다.

칠성무(七星武)

어검(馭劍)

쐐애애액!

오러를 잔뜩 머금은, 어지간한 장검보다 거대한 여섯 자루의 단검이 잠자리들을 향해 날아갔다.

망자들의 속력이 느리지는 않았지만, 마치 살아 있는 듯 불규칙한 궤도를 그리며 날아가는 단검을 그 거대한 덩치로 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푸푸푹!

—……!

쉴 새 없이 자신들의 몸을 관통하는 단검들에 망자들이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주연은 빠르게 해변을 넘어 파괴된 도시를 향해 날아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저건가?’

곧, 그녀의 눈앞에 목표가 나타났다.

도시의 폐허 사이로 눈에 띄게 드러나 있는 거대한 검은 고리.

고리의 내부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기운과 차원의 틈 특유의 일렁이는 허공은, 녀석이 흑마력을 공급하는 원천이란 사실을 알려 주고 있었다.

허나 그것들이 전부는 아니었다.

—……!

게이트를 지키고 있던 수많은 망자들.

조금 전 잠자리의 모습을 한 녀석부터, 마치 대공포처럼 하늘 방향으로 검은 기운을 끌어모으는 녀석까지.

스릉!

자신을 표적으로 정한 망자들, 그리고 게이트를 향해.

그녀는 등의 검을 뽑아 들었다.

‘단숨에 끝낸다.’

우우웅!

거검 가득 오러를 불어넣으며, 주연의 눈이 결의로 빛났다.

*    *    *

히드로 공항.

게이트 너머에서 온 망자, 에블린과 진혁이 이끄는 망자군단 사이의 싸움은 한 시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었다.

쾅! 콰광!

날붙이와 날붙이가 부딪힐 때마다 공항과 주변의 공기를 울리는 폭음이 터져 나온다.

냉병기의 충돌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소리 사이로, 에블린은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게 전부야? 약해, 약해!”

카가가각!

한껏 비웃음을 날린 그녀의 낫이 빈틈을 보인 자이츠의 강철몸뚱이를 베었다.

―이런!

순간 두 동강 난 자이츠의 몸은 다시 수복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생긴 빈틈을 메우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콰앙!

―조금 전보다 더 강해졌습니다!

―만만치…… 않아.

에블린의 낫에 튕겨 나간 둘이 놀라면서 다시 달려들었다.

하지만, 셋이 함께 공격해도 비슷할까 말까 한 상황에 둘 만으론 한계가 있었다.

쾅! 콰광!

자이츠가 잠시 물러날 동안 꺠진 흐름은 어느새 에블린의 편이 되었다.

뒤늦게 자이츠가 합류했지만,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그녀의 낫 앞에서 세 사람은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

콰지지직!

뒤에서 멜리나와 민호가 마법으로 지원하고는 있었지만, 한 번 뒤집힌 흐름은 쉽게 되찾을 수 없었다.

‘슬슬, 다음을 생각해야겠군.’

공중에서의 전투를 바라보며, 진혁은 오른손에 문신처럼 새겨진 검은 문자를 바라봤다.

명계의 파편을 흡수하면서 생긴 권능의 증거.

잠시 손 위의 문자를 바라보던 그는, 권능의 증거가 새겨진 오른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스으으으!

검은 문자를 향해 모여드는 흑마력이 명계의 권능에 의해 전혀 다른 형태로 재조립된다.

그와 동시에, 문자의 검은 색이 마치 블랙홀처럼 짙어진다.

곧.

‘준비해라.’

촤라라락!

명령을 내린 진혁의 손으로부터, 시커먼 쇠사슬들이 하늘로 쏘아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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