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도깨비 컴퓨터 ==============================
#6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엄마 김말숙이 상기된 목소리로 앞서 가던 유재원을 불렀다.
“아들!”
“네?”
“피아노 언제 배운 거야?”
언제부터였더라? 전생에 신과의 거래를 끝낸 다음, 몇 달 후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큰 의미를 두고 시작했던 건 아니었다.
막 회귀 준비를 시작했던 그때에는 진로를 확실히 결정하진 못했다. 스포츠 스타도 좋고, 연예인이나 가수도 좋았다. 그만큼 회귀자에게 주어지는 잠재력은 무궁무진했으니 말이다.
당시만 해도 준비 초기인지라 아무리 고민해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방향을 바꾸었다. 일단 준비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것이다. 회귀 후 꼭 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능력이나 준비가 부족해서 눈물로 포기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피아노였는데, 의외로 재미있었다.
피아노는 입문하긴 쉬워도 최고가 되기엔 너무도 어려운 악기였다.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는 악기였지만, 노력한 결과가 나올 때마다 즐거웠다.
처음엔 집 주변 학원에서 일반부에 들어가 일주일에 3번의 개인지도를 받았다. 나중에는 음대 교수님에게 직접 과외를 받았다. 교수님은 재능이 있다면서 취미가 아닌, 제대로 배워 보라고 권유하였을 정도다.
유재원이 본 실력을 뽐낸다면 파헬벨의 카논이 아니라 프레데리크 쇼팽이나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연주해도 문제없다. 12살이기에 손가락 길이가 짧아진 걸 감수해야겠지만, 같은 나잇대에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할 거다.
다만 이런 내력은 지금 부모님께는 감히 말씀드릴 수 없는 유재원만의 비밀이었다. 그렇기에 부모님도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필요했다.
“컴퓨터로요!”
“응? 커, 컴퓨터?”
생각지도 못했던 아들의 대답에 김말숙은 말까지 더듬었다.
교회에서 아들이 펼친 연주는 피아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김말숙이 들어도 엄청나게 좋았다. 어디 잘하나 보자며 고고했던 표정을 지었던 사모님의 얼굴이 아들의 연주가 끝날 때 와르르 무너진 건 정말 짜릿한 쾌감을 안겨 줄 정도였다.
얼마나 대단했으면, 목사님이 앞으로 방과 후나 교회에서 시간이 날 때 피아노를 연습해도 좋다고 허락을 해줬을 정도다.
동시에 김말숙에게 아들 피아노를 잘 가르쳤다며, 앞으로도 쭉 교육하면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될 거라고 칭찬까지 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들이 언제 피아노를 배웠나 했던 거다. 가난한 살림에 피아노 학원을 보낼 돈도 없었거니와, 시골인 내오 마을에서 피아노를 배우려면, 차를 타고 30분은 나가야 하는 시내에 가야 했던 탓이다.
“진짜? 컴퓨터에서 배운 거야?”
그런데 온갖 상상을 깡그리 물리치고 컴퓨터가 나왔다.
“네! 컴퓨터에 악기 학습 프로그램이 있더라고요. 그거 보고 배웠어요.”
유재원은 천연덕스럽게 허풍을 늘어놓았다.
그렇지만,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 시기에 개인용 컴퓨터 최고의 세일즈 포인트는 교육이었다. MSX부터 AT 컴퓨터까지, 사무용이라는 말이 있긴 했지만, 가장 큰 건 교육이었다. 심지어 정부가 주관하는 컴퓨터 보급 사업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것은 채신부가 주관하는 교육용 컴퓨터 보급 사업이었다.
덕분에 컴퓨터 안에는 학습용 프로그램도 많이 들어 있었다.
국어, 영어, 산수는 당연했다. 심지어 유재원이 말한 악기 학습 프로그램까지도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학습 프로그램의 질은 그다지 좋은 건 아니었다. 학습 프로그램은 모니터 화면에 글자와 그림, 조악한 애니메이션이 뜬다는 특이할 뿐, 가장 중요한 문제의 질은 종이책의 것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했다.
더구나 컴퓨터와 사용자 사이에 양방향 소통이 되는 장점도 살리지 못하고, 그저 채점할 때, 자동으로 해주는 게 장점의 전부였다.
그렇지만 이는 21세기 프로그램을 접해본 유재원의 눈높이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88년도를 기준으로 한다면, 눈이 확 돌아갈 만큼 놀라운 것이었다.
그래도 엄마는 엄마였다.
컴퓨터로 피아노를 배웠다는 걸 그대로 믿지 못했다. 그래서 유재원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피아노 1, 2, 3이라는 프로그램을 켜서 직접 보여드려야 했다.
모니터 화면엔 악보와 사용법 등이 떠올라 있었고, 컴퓨터 키보드와 피아노의 건반을 1:1로 매칭해서 키보드를 누를 때 컴퓨터에서 소리가 났다. 사운드 처리를 위한 애드립 카드가 장착된 덕에 피아노 소리와 비슷하긴 했다.
그런데 이게 다다. 컴퓨터 키보드를 이용한 연주는 반짝반짝 작은 별이나 젓가락 행진곡 정도는 연주할 수 있는 기본적인 수준이었다. 하지만 교회에서 멋들어진 연주를 뽐낸 유재원 덕에 엄청난 수준의 학습 프로그램이 되었다.
“오늘처럼 우리 아들이 자랑스러운 날이 없네.”
그제야 김말숙 여사님도 이해하며 감동했다.
동시에 컴퓨터를 사준 효과가 이렇게나 빨리 나올지 꿈에도 몰랐다.
어머니의 표정에 유재원은 일을 좀 크게 벌인 거 아닌가 싶었다. 이상한(?) 일이 생기면 뭐든 컴퓨터 탓으로 돌리는 게 바로 고블린의 컴퓨터 계획이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표정과 눈빛을 보아하니 컴퓨터를 자신과 동급으로 보는 게 아닌가.
일요일에도 출근하셨다가 오후 즈음에 퇴근하신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교회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는 어머니의 말을 믿지 못하는 아버지 앞에서 컴퓨터로 몇 가지 곡을 연주해야 했다.
어머니의 성격을 보면 친구분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컴퓨터를 사주고 나서 아들이 피아노 마스터가 됐다고 자랑할 기세였다.
‘괜찮겠지.’
아들이 보여준 작은 재능에 흥분한 부모님이 잠깐 우려가 되기도 했다. 동네방내 자랑하고 다니시면 연주 실력을 보자는 사람이 수도 없이 나올 수도 있었다. 그래도 본인의 피아노 실력은 어디 도망가는 게 아니었으니 검증에 문제가 될 건 없었다.
다음 날, 오후.
개학을 하루 앞둔 유재원은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교회로 갔다.
비닐봉지 안에는 공 카세트테이프 6개, 규격봉투 6장에 우표 6개와 메모지 한 장이 전부였고 아이들이 들고다닐 과자 따위는 하나도 없었다.
어제 교회 사람들에게 피아노 실력을 뽐냈던 또 하나의 이유가 봉투 안에 있다.
준비물만 딱 보면, 공 카세트테이프에 뭔가를 담아 우편봉투로 붙일 거라는 게 딱 읽혔다.
이걸 사기 위해서 유재원은 어렵사리 모은 돼지 저금통을 다 뜯어야 했다. 그래도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이것으로 벌어들일 기댓값은 몇백 배는 되었으니 말이다.
“몇 명이나 응답을 해오려나?”
유재원은 앰프에 마이크를 연결하고, 앰프의 출력 단자와 녹음기를 연결하며 기대감을 품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피아노 가까이 옮긴 마이크에 대고 시험까지 해보는 유재원이다.
앰프와 연결해놓은 덕에 간소화된 카세트테이프였지만 녹음된 음질은 깨끗했다. 게다가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도 외출 중이셨고, 마을 안쪽인지라 자동차 하나, 사람 하나 다니지 않아서 적막했다.
“좋아. 그러면 첫 곡으로는 ‘한바탕 웃음으로’를 해볼까?”
지금 하려는 작업은 시드 머니 마련을 위한 첫걸음이다.
1989, 1990년 최고의 히트곡들을 모아서 원래의 가수들에게 보낼 생각이었다.
지금이 88년이었으니 1년 혹은 2년 정도 빠른 것이었지만, 앨범을 준비한다면 그렇게 막연하게 먼 미래는 아니었다.
한 곡당 녹음은 3번 했다.
처음엔 그냥 멜로디 라인만, 다음에는 화음 코드를 넣어서 풍성하게. 마지막은 가사까지 넣어 제대로 된 노래를 불렀다.
“장비만 제대로면 더욱 그럴 듯 할텐데.”
2시간 약간 모자라는 시간 동안 집중해서 작업하고, 결과물이 담긴 테이프를 챙긴 유재원은 푸념을 놓았다.
6곡을 3번씩 녹음했으니 최소한으로 했다고 해도 18번을 연주해야 했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이 건반을 놀려야 했다.
음이 틀리고, 가사가 틀려서가 아니라,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시 해야 했다.
상상으로 했을 땐, 문제없었는데 어려진 목소리가 문제였다. 사랑을 노래하기엔 목소리가 너무 앳되어서 노래 본래의 맛이 살지 않았다. 게다가 악기는 피아노 하나뿐이라서 단조롭기도 했다.
준비의 부족은 목소리나 악기뿐만이 아니었다.
“나이가 문제라니깐.”
가수에게 곡을 들려줄 때, 가장 중요한 건 곡의 소유권을 명확히 하는 것임을 잘 아는 유재원이다.
저작권협회에 가입해서 곡을 등록한 후에 들려주는 거다. 어린 유재원이 하기엔 어려운 일이었다.
12살은 계약을 맺거나 책임을 지는 등의 법적인 행위를 할 수 없었고, 이를 대신할 사람을 구하는 건 돈이 드는 일이었다.
즉, 테이프에 담긴 노래만 날름 먹고 튈 가능성은 스스로 생각해 봐도 무척이나 높다. 그래서 나름대로 대비책을 세워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