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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8화 (8/1,007)

[8] 도깨비 컴퓨터 ==============================

#7

유재원이 먹튀 방지를 위해 마련한 방법은 맛배기였다. 전체 노래 중 딱 반만 담았다. 가사도 마찬가지.

편지봉투에 카세트테이프와 함께 들어갈 쪽지에는 노래가 마음에 들면 입금을 하라는 계좌 번호와 연락처가 담겨 있다. 입금을 하면 완곡이 담긴 테이프를 보내준다고 적었다.

계좌는 놀랍게도 유재원 본인의 명의였다.

운 좋게도 유재원이 다녔던 학교는 근처 우체국과 협력관계였다.

학교에 저축하는 습관을 기르게 한다고, 입학생들에게 일괄적으로 우체국 계좌를 만들어주고, 거기에 입금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영 내키지 않으면 문의해 보라고 전화번호도 적었다.

주부 판매 사원이라는 특별한 일을 하는 어머니 덕에 유재원의 집에는 이장 댁에도 없는 전화가 놓여 있었다.

전화요금은 한 통화에 30원 밖에 안 한다. 재미있는 건 3분을 통화 하든, 30분을 통화하든 30원이라는 무척이나 단순한 요금제였다.

“200만 원이면 좀 비싼가? 근데 100만 원은 좀 싼 느낌인데?”

아직 결정하지 못한 건 곡의 가격.

1988년 돈의 가치는 2010년대를 기준으로는 8배, 죽기 직전이었던 2040년대를 기준으로는 16배 정도로 계산할 수 있다.

200만 원이든, 100만 원이든 적잖은 가격이고, 그렇게 따질수록 300만 원도 넘는 286 컴퓨터를 냅다 사주신 부모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지르셨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딱 잘라 150만 원?”

절충점으로 150만 원에 타협한 유재원은 테이프와 쪽지를 넣은 편지봉투를 봉하기 시작했다.

봉투의 겉면엔 이미 대스타이거나, 대스타가 될 가수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성희에게 보낼 봉투에는 ‘한바탕 웃음으로’라는 노래가 담긴 테이프가 들어갔다. 변진석에게 갈 ‘희망 사항’도 있다.

이 밖에도 우정일 뿐이야, 바비 인형처럼, 보고 싶은 남자, 화장도 안 하는 여자도 열심히 녹음했다.

“전부 먹고 튀는 건 아니겠지? 뭐 나가리 되도 상관은 없지만”

불안한 듯 중얼거렸지만, 실제로도 전부 꽝이라도 상관없었다.

히트곡 매매 말고도 시드 머니를 벌어들일 방법은 몇 가지 더 남아 있었다. 더욱이 이번 거래에서 먹고 튄 가수나 소속사에는 절대 히트곡을 주지 않을 작정이니, 신용도가 높은 가수와 불량한 가수를 걸러낸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유재원은 잠시 멈췄던 일을 계속했다.

침을 발라서 우표도 붙이고, 편지 봉투도 깔끔하게 봉인했다. 가수의 집 주소가 맞는지 확인까지도 마친 유재원은 봉투를 봉지에 담아 교회를 나섰다.

목적지는 우체국이다.

다행히 우체국은 교회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덕진리는 내오 마을보다 사람이 훨씬 많이 산다. 무려 300여 가구가 모여 있었기에, 편의시설도 많이 있다.

여기 덕진 교회는 물론이고, 큰 길가로 나서면 유재원이 다니는 덕진 국민학교가 있고, 옆에 덕진 우체국이 있다.

우체국 앞 우체통 안에 6개의 봉투를 모두 넣은 유재원은 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이제 반응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건가?”

첫 번째 과제를 잘 넘겼다 생각한 유재원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결과적으로 느긋함을 즐길 시간은 이미 다 지났다.

내일이 개학인 줄 까먹고 있었다. 퇴근 후 돌아오신 부모님이 준비물 잘 챙겼는지 물어보자 기억이 났던 탓이다.

이것저것 챙기고, 가방도 미리 만들어 놓고 나서야 안심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예전보단 나았다. 이제까지 유재원에게 개학이란 벼락치기로 방학숙제를 한다고 밤새우는 것이 일상이었으니까.

“너는 숙제 다 했어?”

“아, 씨발. 그걸 누가 다해?”

“흐흐. 난 일기는 다 썼지롱. 우리 담임은 다른 건 몰라도 일기는 꼭 쓰라고 했잖냐?”

“엉? 진짜? 니가 배신할 줄 몰랐네.”

육체적으론 한 달만에, 정신적으로는 50여년만에 돌아온 학교는 기억 속 그 모습처럼 시끌벅적했다.

여름방학을 끝내고 한 반에 모인 남자아이들은 쉬지도 않고 반쯤은 욕설인 대화를 주고받았다.

생각해보면 전체 인생 중에 가장 많은 욕을 한 때가 바로 국민학교 고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인 것 같았다. 이 시기에 친구들과 나눈 대화 중에 욕이 없으면 이상할 정도였다. 이후엔 자연스럽게 욕은 떨어져 나가서, 싸우지 않는 한은 쓸 일이 없었다.

“야, 일기 좀 줘봐. 그거라도 해야겠다.”

“미친, 다른 건 다 보여줘도, 일기는 안 돼!”

“진짜 일기도 아니고 가라로 썼을 거 아녀? 얼른 줘봐!”

아침 자습 시간 1시간이면 30일치 일기는 날림으로 쓸 여력은 충분했다. 그래 그거라도 해야 덜 맞을 거다.

“재원이, 너는 왜 남의 일처럼 웃고 자빠졌어? 숙제 안 하냐?”

가상현실 안에 들어와 추억을 회상하는 것처럼 타인의 시선으로 구경하뎐 유재원에게도 기습 공격이 들어왔다.

“그럼, 이 몸은 방학숙제 같은 건 다 해치웠단다.”

현실로 돌아온 유재원은 넉살좋게 말했다.

이마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아이들이 노는 판에 다 큰 어른이 어울리는 건 어색한 일이었다. 겉모습은 5학년이지만, 영혼은 험한 세상에서 구르고 구른 어른이었다. 그래도 크게 어색하진 않은지, 주민이는 평소의 반응 그대로였다.

“잉? 뭐라고?”

놀기 좋아하고, 공부는 싫어하는 국민학생의 표본과도 같은 짝궁 주민이였다. 그리고 가장 믿었던 친구는 유재원이다.

생각지도 못한 배신을 당한 것처럼 입을 떡 벌렸다.

“허이고, 세상 별일 다 있네. 내일은 서쪽에서 해가 뜨는지 지켜봐야겠다.”

꿍시렁거리는 주민이가 마냥 귀엽게 보이는 유재원이었다.

“옛다. 이거 보고 써라. 대신 너무 똑같게 쓰진 말고.”

“그럼! 당연하지.”

주민이에게 유재원은 자신의 일기가 담긴 공책을 턱 내주었다.

유재원 역시 지어낸 일기였으니, 남이 봐도 무방했다. 대신 구원줄을 잡은 주민의 표정은 삽시간에 반전되었다.

이제는 믿을 건 친구밖에 없다는 공치사를 남발하며 바로 배끼기 작업에 들어갔다.

그런 주민이를 보면서 유재원은 생각이 많아졌다.

전생을 돌아보면 자신의 친구 중에는 크게 성공한 이들은 없었다. 국민학교 뿐만이 아니라, 고등학교까지 범위를 넓히고, 심지어 마을 사람들을 다 넣어도 개천에서 용이 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교회 목사님 아들 영준이는 인서울에 성공해서 한양대에 갔다는 데, 이후에는 뭘 하고 지내는지 연락이 끊겼다.

지금 옆자리에서 열심히 일기를 베끼고 있는 주민이네의 경우는 소를 키웠다. 50마리가 넘었으니, 제법 규모가 크다고 할 수 있었다. 농지도 제법 가지고 있다. 객관적으로 봐도 동네에서 손에 꼽을 부자다.

그런 주민이네도 대한민국 최초의 외환위기였던 IMF에 직격탄을 맞아버렸다.

소고기는 돼지고기보다 훨씬 비싼 고기였다. 게다가 사료는 수입산 곡물 사료를 먹여야 했다. 매출이 뚝 끊겼는데, 사룟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여기에 구제역이 터지면서 소가 죽어 나가기까지 했다.

변화가 없다면 원래의 흐름대로 흐를 것이지만, 이제는 다를 것이다. 혼자 잘 되기보다는 친구와 함께 잘 되는 게 좋지 않겠나. 더욱이 나중에 큰일을 벌이게 되면 혼자 다하기에 버거워질 거다.

무슨 일이든, 특히 돈이 걸린 일을 함께할 믿을만한 친구는 지금부터 만들어 놓는 게 중요했다. 이제까지는 사교성이 없어서 주민이 말고는 친하다고 할 친구는 없었지만, 앞으로 열심히 찾아봐야겠다.

수다를 떨거나, 다 하지 못한 여름 방학 숙제를 번개처럼 하는 같은 반 아이들을 바라보는 유재원의 눈빛이 강렬했다.

드드륵.

“조용! 여기가 시장통이야? 왜 이리 시끄러워.”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온 M자 탈모가 확연한 중년인이 소리쳤다. 5학년 5반, 유재원의 담임 선생 김경필이다.

자율학습 시간부터 담임이 들어와야 했는데, 개학 첫날이라 그런지 자리를 비우고 1교시에 들어왔다.

예전 같으면 면학 분위기 조성하지 않았다고, 드잡이질을 했을 터인데, 오늘은 개학 첫 날이라고 무난히 넘어갔다.

“반장, 인사.”

조용히 하라며 사나운 눈으로 아이들을 훑어본 김경필 선생은 교탁을 탕탕 두드리며 말했다.

담임의 말에 1분단 맨 뒤쪽에 앉아 있던 반장 수경이가 차렷, 경례를 외쳤다. 오늘부터 5학년 2학기가 드디어 시작되었다고 확인해주는 것 같았다.

“음, 우리 반에는 빠진 사람 있나? 없지. 여름방학을 잘 보내고 왔구나. 특히 사고나 사건 없이 모두 출석했다는 게 담임은 마음에 든다.”

김경필은 빈자리가 없는 게 마음에 드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덕진 국민학교는 학년마다 8개의 반이 있을 만큼 커다란 학교였다. 심지어 한 학급당 학생 수는 40명이 넘었으니 시골에서는 보기 힘든 대형 학교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 주변 12개 시골 마을의 아이들이 모두 덕진 국민학교로 모이는 형태였으니 숫자가 많을 수밖에.

이렇게 숫자가 많으니 사건, 사고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오늘도 그랬다.

담임들이 아침 자율학습 시간에도 교무회의를 한 것도 개학 하루 전 일어난 인명사고 때문이었다.

사고는 6학년 학생에게 일어난 것이었음에도, 교장 선생은 담임을 모두다 불러다 놓고 1시간이 넘게 질책한 것이다. 분노 게이지가 상당히 차올랐을 것이니, 숙제 검사를 앞둔 학생들에게 노란 경고등이 켜진 거나 다름이 없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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