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도깨비 컴퓨터 ==============================
#12
끝나지 않을 잔치는 없다.
전국은 물론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88 올림픽 대회도 그 성대한 막을 내렸다.
여러모로 성공적이라 평가 내려지는 대회였다. 자체적인 진단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 언론에서 내리는 객관적인 성과였다.
80, 84 대회처럼 공산권, 서구권이 불참을 선언해버린 반쪽짜리 대회가 아니라 공산권과 서구권이 모두 참석한 대회였다. 대회의 진행도 대한민국의 국가적인 노력 덕에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대한민국의 성과도 훌륭했다.
한강의 기적을 전 세계에 알리며, 한국에 대한 세계인의 이미지를 전쟁의 폐허에서 찬란한 발전을 이룬 나라로 바꾸었다. 대회에서도 12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종합성적 4위에 올랐다. 복싱, 태권도에서의 편파 판정 문제가 있었지만, 21세기에도 달성하지 못할 쾌거였다.
또한, 625전쟁으로 인해 폐허로 변한 나라라고만 인식되었던 한국의 이미지를 단번에 반전시키기도 했던 대회였다.
동시에 유재원에게도 많은 것을 남겼다.
유재원이 고사리손을 놀려 만든 컴퓨터 예측 프로그램으로 도출해낸 결과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결과였다.
대회의 최종 결과가 나왔을 때, 부모님의 놀란 얼굴은 참 볼 만했다.
이제는 집에서 밤새 컴퓨터를 해도 그 어떤 잔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유재원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기에 가능했다.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것이 컴퓨터 경진대회 출전 소식이었다.
단지 집에서만 컴퓨터를 잘한다고 하는 게 아니라, 학교에서도 공인을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부모님은 뛸 듯 기뻐하셨다. 얼마나 격한 반응을 보였는지, 진짜로 혼자 나가는 게 맞는지 몇 번이나 되물으셨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자식에 대한 일은 자랑하기 좋아하는 부모님이었으니, 이걸 동네방네 자랑하셨다.
아버지의 직장, 어머니의 지인들과 단골, 교회나 주변에 거주하는 친척분들까지도 놀라워하시면서 격려와 선전을 기원해주었다. 여기에 덤으로 유재원이 컴퓨터를 잘 다룬다는 걸 인정해주었다.
심지어 어머니인 김말숙 여사에게 컴퓨터 구매에 대해 문의를 하거나, 구체적인 견적을 내보는 분들이 있을 정도였다.
부모님이나 주변의 반응에 유재원은 덤덤하면서도, 속으론 자책이 컸다.
이렇게나 좋아하시는데, 겨우 쪽팔린다고 귀한 기회를 날려버렸던 전생의 바보 같은 자신을 한탄했다.
자책은 짧았고, 대신 각오를 다졌다.
자신감으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던, 유재원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연습에 매진했다.
출전만으로 이런 반응이신데, 뭐라도 받아 오면 어떻게 될까? 자기에게도 도움이 될 테지만, 부모님에겐 분명 큰 기쁨이 될 테니, 더욱 열심히 노력했다.
1988년 10월 8일.
제3회 전국 컴퓨터 능력 경진대회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다.
오륜기나 리본 등등, 체육관 주변에는 아직 올림픽의 분위기가 남아 있어서 경진대회 분위기는 나지 않았다.
기껏해야 입구에 걸린 간단한 플래카드가 전부였다. 대신 유재원과 비슷한 나이대의 아이들과 콧수염이 막 나기 시작한 중, 고등학생들이 많아 보였다.
대회를 위해 전국에서 올라온 이들이다.
인솔자로 보이는 나이 든 사람도 제법 있었다. 아이들은 거의 교복 차림이었고, 인솔자들은 2:8 가르마 혹은 귀를 덮는 정도의 단정한 헤어스타일에 간간이 뿔테 안경도 썼다.
유재원과 정형웅 선생도 주변의 모습과 이질적이진 않았다.
바가지 머리에 베이지색 정장에 뿔테 안경, 80년대 헤어스타일의 정현웅 선생이었다.
“긴장하지 마라.”
긴장은 선생님이 하는 것 같다고 하려다 간단히 대답하는 유재원이다.
“와.”
체육관 안으로 들어가니 비로소 대회 분위기가 났다.
랜 파티를 하는 것처럼 컴퓨터 백여 대를 가져다 놓고 한 줄에 20대씩, 총 다섯 줄을 세워 놓았다. 심사위원 자리는 단상 위에 마련되어 있었고, 근처에 따로 놓인 컴퓨터 몇 대가 더 있다.
컴퓨터의 모습은 일관성이 없었다. 제일 후진 것은 흑백 모니터가 달린 XT 컴퓨터였고, 좋은 건 칼라 모니터의 286 AT 컴퓨터였다. 이렇게 각기 다 모델이 다른 걸 보니 아무래도 주변 학교에서 빌려온 모양이다.
다행히 심시위원석 근처에 있는 컴퓨터는 막 포장을 뜯은 것처럼 새것이었다. 옆에 있는 박스를 보니 이 시기엔 보기도 힘든 386 컴퓨터였다.
CPU는 최신인데 모니터는 또 흑백이었다. 사무용으로 필요 없는 그래픽 기능은 최소화하고 처리 능력만 강화한 모델이다. 그렇다고 싸지도 않아서 본체만 500만 원이 넘는 물건이었다.
체육관 안의 컴퓨터는 이처럼 극과 극의 모델이었지만, 공통점도 있었다.
모두 인텔 CPU라는 것이고, 제조사는 삼보 컴퓨터였다.
그러고 보니 체육관 입구에 거창하게 걸린 플래카드에서 후원이란 항목으로 삼보 컴퓨터가 있었다.
“기왕이면 좋은 자리로 나왔으면 좋겠다.”
접수대로 유재원을 데리고 가는 정현웅 선생은 작은 바람을 담아 중얼거렸다.
한참 전, 유재원의 실력에 대한 자체 검증이 끝났기에 입상에 실패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유재원이 준비한 프로그램은 XT 컴퓨터의 성능으로는 2% 부족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접수대라고 명패를 놓고 책상에 앉아 있던 사람은 기계적으로 물었다.
“경기도, 덕진 국민학교, 유재원입니다.”
정현웅의 말에 접수을 맡고 있던 사람이 명부를 뒤적였다.
“경기……, 덕진……. 유재원. 한 명입니까?”
“네.”
“기본 경진 대회는 20분 후에 시작이니 준비해주세요.”
“아, 우리는 기본이 아닙니다. 고등입니다.”
“예에?”
국민학교라는 소리에 기본 경진대회 접수증을 관성적으로 내주려 했던 접수대 직원이었다. 이제껏 접수했던 국민학교 학생들은 죄다 기본 경진대회 출전이었으니, 덕진 국민학교의 유재원도 같을 줄 알았다.
눈을 크게 뜨고 신청서 명부를 살펴보니, 덕진 국민학교는 달랐다. 지원 분야에 고등이라는 단어가 확실히 박혀 있었다.
“그러네요. 고등 경진 대회는 2시간 후에 시작입니다. 관람석에서 대기하시던, 밖에서 식사하고 오시든 상관없으니, 제시간에만 들어 오세요.”
“예. 그런데 자리는 몇 번입니까?
정현웅 선생의 물음에 접수처 직원이 수기로 작성 중인 배치표를 보며 말이 없어졌다.
어디에 넣을 지 고민이 있던 모양이다.
유재원은 운이 좋았다.
이 사람이 교육부에서 나온 사람이었다면, 대충 빈자리에 넣었을 테지만, 체신부 소속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나름의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목적 의식이 있었다.
12살 국민학생이 고등 경진대회에 출전했다는 건 나름 그림이 나오는 케이스였다. 결과는 상관없이 앞자리의 좋은 컴퓨터에 앉혀 놓고 사진을 찍으면 윗 사람들 보기에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다.
“아, 음. 8번입니다.”
직원은 그렇게 말하며 접수증에도 8번이라 써넣었다.
유재원과 정현웅 선생도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기본 경진 대회는 역시나 시시하게 흘렀다.
제한 시간 내에 제시된 지문을 다 입력하지 못한 아이들도 상당수였다. 게다가 입력은 했다지만, 오타가 나온 이들도 많았다.
심사위원 석에 앉아 있는 관계자들 얼굴이 잔뜩 굳었다. 기대만큼 아이들의 컴퓨터 사용 능력의 향상이 없었던 거다. 오히려 작년보다 줄어들었다. 아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대로라면 전국 컴퓨터 보급 사업이란 큼지막한 고깃덩이를 교육부에 빼앗길 가능성이 너무도 크다.
-고등 경진대회 참가자 자리에 착석해 준비하세요. 20분 후에 시작합니다.
그러는 사이 자리가 정리되었고, 안내 방송이 나왔다.
“접수증 잘 챙겼지? 다녀오너라.”
“예! 짜장면값은 확실히 하고 오겠습니다.”
두 사제지간은 간덩이가 컸나 보다.
다른 고등 경진대회 참가자들처럼 체육관 객석에서 얌전히 기다리는 대신, 밖으로 나와 짜장면에 탕수육을 먹고 돌아왔다.
그렇게 배까지 든든히 채운 유재원은 자신감 넘치는 걸음으로 본인에게 지정된 8번 자리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