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24화 (24/1,007)

[24] 돈이 열리는 나무 ==============================

#22-2

//알림//

원래 한 방에 올렸었는데 가독성이 떨어지신다는 의견이 있어서 두 편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퇴고를 하며 살짝 손을 보긴 했지만, 크게 달라진 내용은 없습니다! 자정쯤 하나짜리로 올라온 글을 본 독자님은 그냥 넘기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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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세운 전자상가에서는 원하는 걸 다 얻을 수 있었다.

대신 부품의 가격은 최 변호사의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비쌌다. VGA 카드만 해도 100만 원이 훌쩍 넘었다.

비디오 전용 램으로 1메가짜리가 달린 고급형이긴 해도, 대기업 직장인 2달 치 월급 가격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디오 인터페이스와 미디 모듈도 비슷한 가격이었고, 태블릿도 비쌌다. 마이크는 그나마 저렴해서 10만 원이었다.

심지어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게 있었다. C언어였다.

C언어 패키지 중에 가장 큰 히트작은 볼랜드 사의 터보 C였고 유재원이 찾는 것도 이거다. 컴파일러는 물론 디버그, 코딩 심지어 배포용 설치파일을 만드는 기능을 한 방에 지원하는 올인원 패키지다.

최신판은 1.5 버전인데, 가지고 있다고 해서 가보면 정품이 아니라 복사품이었다.

명색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파는 회사를 운영 중인데 불법복제판을 사용할 수 있겠는가. 나중에 문제의 소지가 없게 하려면 무조건 정품이어야 한다.

각 가게의 창고는 물론 총판까지 다 뒤진 끝에 먼지가 소복이 쌓인 1.0버전을 찾을 수 있었다.

득의만만해진 주인장은 배짱으로도 30만 원을 불렀다.

원래 볼랜드 사의 제품은 적당한 성능에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는 게 특징이었다. 이 가격이면 더 완성도 있는, 더 높은 등급의 제품을 사고도 남는다.

그런데 물건이 이곳밖에 없으니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그 가격에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옷값이나 음식값은 모두 사비로 냈던 것과 달리,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구매한 돈은 모두 회사 공금으로 처리했다.

공적인 업무였으니 당연했다. 그래서 영수증도 꼬박꼬박 받아냈다.

영수증을 써달라고 했을 때, 반응이 재미있었다.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고, 돈을 더 올려 받으려는 사람도 있었다. 유재원을 어수룩하게 보고 간이영수증으로 땡 치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 최강욱 변호사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세운상가에의 마지막 일정은 SKC 총판이었다.

SKC는 선경의 자회사인데 원래는 이름은 선경 화학이다. 이름 그대로 각종 석유에서 추출한 화학 원료를 생산하는 회사였다. 그러다가 자기가 취급하는 플라스틱과 비닐 필름으로 비디오테이프, 카세트테이프를 만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디스켓까지 취급했다.

유재원이 SKC를 찾은 건 삼보 컴퓨터에 공급해줄 키보드 워리어 1.0이 담긴 원본 디스켓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름값을 따지면 3M 디스켓이 훨씬 높지만, SKC를 찾은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SKC에서 내놓은 디스켓은 미리 포맷된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3M 딱지가 붙어 있는 게 보기엔 든든해도 일단 구매 후에 포맷한 다음 사용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 반면 SKC는 미리 포맷되어 나오기에 포장만 뜯으면 바로 사용한다. 게다가 값도 몇백 원 더 저렴했다. 둘 다 사소한 차이였지만, 이로 인해 후발주자였던 SKC는 빠르게 지분을 넓혔다.

“히익, 5.25인치를 3천 장이나요?”

“앞으로 더 주문할 수도 있습니다. 해주시겠습니까?”

총판 담당이 살짝 고심했다.

그야말로 대량 구매였다. 그런데 그냥 디스켓만 사가는 게 아니라, 요구 사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변호사라는 사람이 아이와 같이 찾아와서 하는 말이, 주문하는 디스켓 모두에 특정한 프로그램을 복사해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총판 담당의 걱정은 그런 요구는 처음이었던 탓이다. 게다가 만약 그 디스켓에 게임 같은 불법 복제물을 담게 되면 자신도 범죄에 일조하는 것이니 선뜻 수락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디스켓을 복제하는 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SKC 디스켓이 미리 포맷되는 건 일일이 수작업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찍어낼 때 포맷까지 동시에 하는 건 불가능했다. 디스크 드라이브가 주렁주렁 달린 수십 대의 컴퓨터를 놓고 수작업으로 하는 일이었다.

포맷 작업을 디스크 카피 작업으로 바꾸면 빠르게 처리할 수 있을 거다.

“불법적인 건 아닙니다. 이 친구가 만든 타자 연습기를 양산하는 작업이니까요. 이미 삼보 컴퓨터에 납품계약도 맺은 상태입니다.”

총판이 미적거리는 원인을 한눈에 알아본 최 변호사가 보충 설명을 해줬다. 그러면서 유재원의 사진이 떡하니 박힌 신문 스크랩까지 가방에서 꺼내 보여주기까지 했다. 나이의 한계를 넘기 위해 준비한 물품 중 하나였다.

“아아, 그렇군요! 장관상! 인제 보니 기억나네요.”

SKC 총판 담당이 바로 아는 척을 했다. 비슷한 업계에 있다 보니 유재원의 기사를 봤던 모양이다.

이야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2D 디스켓 한 장 가격은 1,600원이었는데, 대량 구매로 1,200원으로 할인을 받았다. 대신 주문한 디스켓에 프로그램을 복사해 넣어주는 비용에 대해 합의하는 건 시간이 좀 걸렸다. 원래 있던 작업도 아니었고,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닌 탓이다.

작은 흥정이 벌어진 끝에 복사 작업은 장당 100원에 해주기로 했다. 그래서 3천 장 주문에 대한 총비용은 390만 원이 나왔다.

작업이 끝난 디스켓의 인수는 유재원이 다시 이곳으로 와서 직접 가져가기로 했다. 배달받으면 편하지만, 확인해야 할 게 있었던 탓이다.

“제가 원하는 건 단 한 장의 불량도 나오지 않는 겁니다. 인수하러 오는 날 제가 임의로 30장을 뽑아 불량 검사를 하겠습니다. 그 검사에서 한 장의 불량도 나오지 않으면 총판 주임님께 추가로 10만 원을 보너스로 드리겠습니다.”

일종의 표본 뽑기 검사법이다.

30개 임의 검사를 통과할 정도라면, 품질에 대해 충분히 장담할 수 있다. 정품을 구매한 소중한 구매자에게 신뢰를 붕괴시키고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불편을 주는 것 대신 10만 원을 미리 써서 예방하는 건 충분히 남는 장사다.

“맡겨 주십시오!”

10만 원의 개인적인 보너스라는 소리에 총판 주임의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계약서는 바로 만들어졌다.

기존에 합의한 내용뿐만이 아니라, 유재원이 추가한 보너스 관련 내용도 들어갔고, 최 변호사가 유재원이 깜빡했던 보안 관련 조항을 챙겼다. 강력한 위약금을 통해 키보드 워리어 프로그램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다짐을 받는 것이었다.

유재원이 프로그램 내적으로 작은 안전장치를 해놓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 적시하는 게 훨씬 나았다.

그렇게 유재원의 첫 번째 서울행 일정은 모두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여기까지 와주실 것까지 없었는데요.”

최강욱 변호사는 덕진리까지 함께 했다. 서울에서 여주시까지 함께 시외버스틀 타고 내려왔고, 여주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덕진리까지 온 것이다.

“내가 받은 하루 일당이 얼만데. 이 정도는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원래 유재원은 서울 터미널에서 헤어지려고 했다. 그런데 최강욱 변호사가 끝까지 함께 해준 것이었다.

“좀 무서운 세상이냐. 백주대낮에 유괴가 일어나고 있는데, 너처럼 잘 차려입은 애가 혼자 비싼 물건 들고 돌아다니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다.”

듣고 보니 그렇다.

지금껏 유재원은 치안에 대해 조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88년의 한국은 폭력조직의 최대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시대였고, 강력범죄도 자주 일어나던 때였다.

커다란 유괴 사건이 일어나서 텔레비전과 신문을 장식한 것도 여러 번이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덤으로 최강욱 변호사가 짐을 나눠 들어주신 덕에 유재원은 집에 시내 정육점에서 고기를 샀다. 한우 갈비를 비롯해 평소엔 먹기 힘들었던 등심, 채끝과 같은 특수부위도 한 근씩 샀다.

ID 테크놀로지의 마수걸이를 성공리에 끝냈다는 자축을 위한 고기파티다.

“재원아!”

“아이구, 변호사 님도 수고가 많습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전화를 넣어드렸더니, 부모님이 동네 밖까지 나와계셨던 거다.

변호사 한 명이 같이 간다고 했지만,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 분들이 부모님이었다. 그런데 비즈니스도 성공적으로 하고 왔다니 기쁘지 않을 수가 있나.

폭풍과 같은 분위기에 최 변호사도 휩쓸렸다. 원래는 집까지 짐만 들어주려고 했는데, 떠들썩한 고기 잔치에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큰집의 큰아버지와 딱 타이밍 좋게 근처에 계셨던 친척분들도 함께 모였다.

그렇게 모인 자리에서 한국 전통의 불고기에 약주가 곁들어지니 최 변호사도 금방 녹아들었다.

특히 삼보 컴퓨터 회장님과의 담판을 술술 풀어내는 솜씨가 가히 일품이었다. 아들 녀석이 앞뒤 다 자르고 대충 5천만 원어치 매출을 올렸다는 이야기보다, 변호사 특유의 담담하지만 세밀하게 전해지는 이야기는 훨씬 더 큰 상상력을 자아냈다.

그런데 최강욱 변호사의 이야기를 가만 듣다 보니, 자신은 어느 사이에 무협지의 주인공처럼 되어 버렸다.

독점 제안에 5억원 매출을 내건 삼보 회장님의 제안을 단박에 거절하고 대한민국 전 체 시장을 노리겠다는 더 큰 포부를 밝히는 것이나, 이에 회장님이 감탄해서 미련을 남겼다는 설명은, 주인공이 크게 칼 휘둘러 적을 무찔렀다는 식으로 들렸다. 게다가 부모님과 친척분들은 그걸 또 잘했다고 칭찬했다.

최 변호사에게만 살짝 보여준 미래 전략을 모른다면, 5억짜리 거래를 무르고 5천만 원짜리만 가져온 소박한 결과였다. 만약 호의적이지 않은 주주가 있었다면 사서 구구절절이 설명을 해줘야할 판인데 이런 반응이다.

유재원은 뭐가 되었든 좋았다.

혼자만의 성공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건 좋았다. 더불어 인내하고 참으며 준비했던 회귀의 보람과 기쁨이 되기에도 충분했다.

이러한 기쁨을 좀 더 퍼트리기 위해서 유재원은 오늘 이뤄낸 업무 성과에 대한 간략한 보고서를 만들어 ID 테크놀로지의 주주들께 보냈다.

다음날.

유재원은 졸린 눈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평소 일어나던 아침 7시쯤에 눈을 떴지만, 잠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무척이나 늦게 잠이 들었던 탓이다.

잠을 늦게 잔 건, 고기 잔치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운상가에서 사 왔던 VGA 카드, 오디오 인터페이스와 미디 모듈, 태블릿을 컴퓨터에 설치한다고 자정을 넘겼다.

메인보드 슬롯에 카드를 제대로 설치했는데, 작동이 되지 않았던 거다. 슬롯 할당 순서부터 시작해서 하드웨워적, 소프트웨어적인 호환성이 발목을 잡았다.

매뉴얼을 열심히 읽어 봤더니 확장카드별로 IRQ니 DMA가 중복되지 않도록 맞춰줘야 했던 거다. 이를 위해 점퍼를 적절히 꼽아 줘야 했는데, 처음 해보는 거라 엄청나게 어려웠다. 플러그 앤드 플레이라는 기능이 그렇게 간절할 수가 없었다.

근성으로 잠을 쫓아내며 고생한 끝에 모두 장착했고, 지금은 완벽하게 작동한다.

원가의 3배나 주고 사온 볼랜드 터보 C도 잘 설치되었다.

바가지를 좀 쓰긴 했지만, 성능은 확실한 S급 유료 아이템으로 완전 무장한 것이다.

이제는 한국보다 더 큰 시장, 아니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구매력을 가진 궁극의 시장, 미국에 도전할 무기를 만들어야 할 때다.

"한 방으로 접수해버리자!"

각오를 다진 유재원은 터보 C를 실행해 신들린 듯한 속도로 코딩을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가독성이 떨어지신다는 의견이 있어서 편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퇴고를 하며 살짝 손을 보긴 했는데, 크게 달라진 내용은 없습니다! 자정쯤 한 방에 올라오신 글을 본 독자님은 그냥 넘기셔도 됩니다.

다음엔 미리 분량 조절을 잘해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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