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슈퍼 시너지 효과 ==============================
#33-2
동시에 유재원에겐 12월 10일이라는 데드라인을 확실히 지켜 달라는 압박이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일렉트로닉아츠는 보도자료를 통해서 ID 테크놀로지와 키보드 워리어의 유통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도 정확히 보도했다. 계약금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어도, 업계에서는 알음알음 알게 되어있다.
그냥 신문만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크게 전달된 이야기였다. 덕분에 미국에 있던 한국 특파원들이 ID 테크놀로지와 키보드 워리어를 알아보고 바로 본국으로 소식을 전했다.
며칠 동안 최강욱 변호사가 있는 서울 지사는 홍역을 치렀다.
사실 확인을 하려는 기자들부터, 자세한 인터뷰하려는 사람들까지 뒤섞이면서 장날처럼 난장판이 벌어졌다.
그들이 바라는 건 유재원과의 인터뷰였다.
하지만 최강욱 변호사와 로버트 하일이 전면에 나섰고, 유재원의 개인 정보는 극구 감춰지면서, 덕진리 내오마을까지 기자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사단은 다행히 벌어지지 않았다.
이처럼 밖에선 유재원이 터트린 대박으로 난리였다.
정작 사건의 주인공인 유재원은 학교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키보드 워리어 완전판 제작을 위해 쉬지 않고 일했다.
그렇지 않아도 빠른 제작 속도였는데, 집중에 집중을 더하니 더더욱 빨라졌다. 12월 10일까지 만들어야 하는데, 11월 중순이면 끝날 것 같다. 그렇다고 일이 끝나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키보드 워리어보다 더 중요한 불법복제 방지 기술을 완성하는 게 일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계획은 92년, 혹은 93년도에 출시할 아이템이었는데 출시를 훨씬 앞당기게 되었다.
물론 완벽한 복제방지 기법이라는 건 없다.
온라인이 필수인 멀티플레이 중심의 게임처럼 상시 인터넷 접속이 가능해야 하는 게임 말고는 21세기도 답이 없다. 하지만 해커의 공격을 몇 년 정도 막는 것만으로도 효과는 충분하다.
“음, 어떻게 할까?”
유재원은 키보드를 앞에 두고 몇 분은 고심 중이었다. 이후로도 몇 분은 더 고민한 끝에 결론이 나왔다.
“아무래도 이지스 쉴드 보다 나은 이름은 없는 거 같다.”
고민은 기술 구현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적당한 이름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원래 계획한 마스터 플랜에 따라 붙여줄 이름은 세큐어롬이었다.
93년도부터 컴퓨터 미디어로 디스켓이 도태되고 시디롬이 대중화되는데, 여기에 롬이란 단어를 따서 보안을 의미하는 세큐리티 뒤에 붙여 세큐어롬이란 단어를 만들었다.
그런데 예정보다 일정이 4년이나 앞당겨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 CD와 시디롬은 데이터용이 아니라 음악 감상용이 주력이었다. 그것도 카세트 테이프에 눌려 아직은 힘을 쓰지 못하는 신종 매체다. 시디롬 시대가 아니니 당연히 세큐어롬이란 이름을 그대로 쓰는 건 불가능하다.
반면 이지스라는 이름은 이미 널리 알려진 명사였다.
소련은 미 해군 항공모함 전단을 같은 수상함대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게 되자, 폭격기와 전투기를 동원해 초음속 대함 미사일 수백발을 한꺼번에 퍼부어 잡는 쪽으로 전술을 만들었다.
그러자 미국은 그 미사일을 모두 맞춰 잡겠다는 의지로 기술구현을 시작했고, 그것은 곧 함대 방공 시스템인 이지스 시스템의 탄생이다.
덕분에 그리스 신화에 잠들어 있던 신의 방패 이지스는 현대의 최첨단 이미지로 재탄생되었다.
유재원이 만들 복제방지 기술에 딱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이렇게 이름을 가지고 고민할 만큼, 기술 구현에 대한 고민이 없는 건 CD롬에 적용되는 원래를 디스켓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불법복제 방지의 핵심은 원본과 복사본의 구분을 확실히 해내는 것이다. 유재원은 이것을 하드웨어적인 특성과 첨단의 암호학을 결합해 구현해 낼 수 있다.
CD와 디스켓의 공통점은 바로 원래 정해진 용량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담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일명 오버라이트 기법이다.
CD의 표준 용량은 650MB였고 2D 디스켓은 360KB였다. 이처럼 매체의 용량 차이는 극심해도 오버라이트 기법을 이용하면 CD는 700MB까지, 2D 디크켓은 400KB가 넘는 용량을 담을 수 있다.
21세기에 사용한 플래시 메모리는 메모리 소자가 다 채워지면 더 넣을 수 없지만, 디스켓이나 CD는 여유 공간이 있다. 저장 기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오류도 많아서 넉넉한 여유 공간을 둔 것인데, 성숙 단계에 이른 지금에는 괜히 낭비되고 있는 영역이다.
유재원은 이 공간에 원본 특유의 표식을 남겨놓고, 실행할 때마다 읽어서 정품과 복제품을 확인하도록 할 예정이다.
특유의 표식을 남겨지는 이 영역이 바로 세큐어롬인 것이다.
“전용 포맷 파일을 짜야겠지?”
물론 어설프게 그 공간에 접근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현재 도스의 파일 시스템은 FAT인데 2D 디스켓은 무조건 360KB로 확정이 되어서 그 이상으로는 접근할 수 없다.
그러니 2D 디스켓의 오버라이트는 특수한 시스템에서나 가능했다. 게다가 이 기술은 90년대 후반에서나 나온다. 그러니 현재 시점에서 구동되기 위해선 도스의 FAT와 호환이 되면서 비밀 영역을 만드는 기술이 필요하다.
유재원에겐 문제없다.
운영체제가 지원을 못 하더라도 어셈블러를 통해 정교하게 장치를 조정하는 법은 전생에서 다 마스터했다.
도스나 유닉스 같은 기존의 운영체제가 접근할 수 없으니, 백날 디스크 복사를 해봐야 세큐어롬은 복사되지 않는다.
이렇게 확장된 공간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차별성이 생기지만, 세큐어롬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확장 공간 안에는 원본 파일의 해시 데이터를 모두 다 집어넣을 작정이다.
해시 데이터란 위변조를 막는데 특화된 기술이다.
원본이 유지되는 파일이라면 검사를 했을 때 항상 일정한 값이 나오는데, 만약 해커가 크랙을 시도해 파일을 위조하면 면 다른 값이 나온다.
해시값을 비교해서 원래의 파일인지 아니면, 해킹된 파일인지 판별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세큐어롬의 장점은 물리적 디스켓 하나로 정품과 복제품이 가려진다는 점이다.
그러니 정품 사용자를 불법복제 사용자보다 귀찮게 만드는 요소인 패스워드 같은 걸 넣을 필요도 없다.
현재 시점에선 이지스의 방패처럼 그 어떤 공격에도 뚫리지 않는 복제 방지 체계다.
“음, 단점이 없는 건이지.”
컴퓨터실과 같이 많은 컴퓨터가 모여 있는 곳이라면 원본 하나로 이리저리 돌려가며 프로그램을 실행시킬 수 있다. 그래도 불법복제물을 대량으로 유통하는 작자들에 비하면 이 정도면 애교다. 게다가 게임 실행 중에 원본 확인 겸해서 디스켓을 자주 엑세스 하도록 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또 다른 단점으로는 이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선 디스켓을 완전히 새로 포맷해야 한다.
유재원이 어셈블리어로 직접 완성한 특별한 포맷 기법이 담긴 파일로 포맷해줘야 한다. 포맷이 끝나면 키보드 워리어 전용 세큐어롬까지 자동으로 생성해주는 올인원 포맷 파일을 만들었으니 번거로운 일은 없을 거다.
이렇게 유재원이 키보드 워리어와 이지스 쉴드 제작에 공을 들이는 동안에도 ID 테크놀로지는 잘 굴러갔다.
레밍턴 팀은 유재원의 지시를 받아서 이드 소프트웨어에 대한 기술 지원과 투자를 완료했다. 1만 달러를 투자로 지분 50.1%를 획득했다.
헐값이다!
하지만 존 카멕을 비롯한 친구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소프트디스크에서 받은 주급을 갹출해 모은 3천 달러와 이들의 실력을 알아본 밀러라는 양반이 투자한 3천 달러가 자본금 전부였다.
여기에 1만 달러의 투자가 더해졌으니, 게임 개발에 필요한 장비를 모두 사고 주급도 넉넉히 받으면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더욱이 게임 개발에 있어 불간섭을 천명했고, 하드웨어 스크롤 같은 필요한 기술 지원을 전폭적으로 해준다는 계약서를 작성했다.
서울 지사의 최강욱도 열심히 일했다.
미국과 유럽에 리본 인터페이스의 특허 출원 진행사항을 체크했고, 주식투자도 시작했다. 사무실과 가까운 대신증권으로 가서 회사 이름으로 계좌를 개설했고, 주식도 매수했다. 물론 매수하는 주식은 유재원이 콕 찍어 준 종목인데, ‘대신증권’이다.
대신증권에 가서 대신증권 주식을 1억 원어치 샀다.
창구에서 손님을 상대하던 이가 덜컥 놀란 것도 당연했다.
1억 원이라는 돈은 창구 직원도 쉽게는 볼 수 없는 큰돈이었다. 게다가 예치한 1억으로 주식을 한 방에 사니, 12,000원대로 낙폭을 확대하던 주가가 덜컥 멈춰 설 정도였다.
더욱 놀랄 일은 ID 테크놀로지는 추가 매수할 의지와 능력이 충분했다는 점이다.
한국 대기업을 상대로 팔아치운 대금이 속속 입금 중이었고, 미국에서 달러 돈이 16만5천 달러나 들어와 있다. 원래는 17만5천 달러였는데, 이드 소프트웨어에 1만 달러를 투자하면서 좀 줄어들었다.
배당금 1억을 빼고, 세금으로 내야 할 돈 빼니, 현금으로 3억 원 남짓한 돈을 모두 주식투자에 투입하기로 한 것이다.
투자는 내년 늦은 봄인 5월까지 하기로 최강욱과 약속을 했다.
매수가 완료되었다는 창구 직원의 말에 거래 명세서를 확인한 최강욱은 과연 쪽박을 찰지 아니면 이번에도 대박이 날지 궁금해졌다.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나 11월 말이 되었을 때.
유재원은 완성된 미국판 키보드 워리어에 이지스 쉴드를 걸어놓은 디스켓을 국제특송의 항공기 서비스를 이용해 일렉트로닉아츠에 넘기고 한숨을 돌렸다.
일렉트로닉아츠에서 불법복제가 가능한지 테스트를 해보고, 이지스 시스템에 만족하면 키보드 워리어 원본 제작에 필요한 데이타와 파일을 인터넷으로 보내줄 계획이었다.
농한기에 접어들면서 평화로운 덕진리 내오마을의 일상도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내오마을 가로지르며 들어오는 멋진 자동차 한 대가 만든 변화였다.
미끄러지듯 들어온 자동차는 마을 중간 공터에 정차했고, 운전석에서 외지인이 내려섰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요즘 연참이 계속 성공 중인데 이건 모두 독자 님의 리플과 추천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