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안드로이드 비긴즈 ==============================
#55-2
다음 날.
“세상에.”
호킨스 사장은 ID 테크놀로지의 일 처리 속도에 놀랄 지경이다.
긍정적인 내용을 담은 팩스를 보낸 게 어제였다. 그런데 아침에 출근해 보니 ID 테크놀로지에서 FTP 서버에 안드로이드 알파를 업로드했다는 연락이 온 게 아닌가.
“수석 엔지니어 제임스 웹을 불러 주게.”
-네, 사장님.
호킨스 사장은 비서와 연결된 인터폰을 눌러서 제일 신뢰하는 엔지니어인 제임스 웹을 바로 호출했다. 직접 설치해보고 싶긴 한데, 이런 제품은 전문가의 의견을 꼭 들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호킨스였다.
“사장님, 부르셨습니까?”
제임스는 5분도 지나지 않아서 모습을 드러냈다.
“안드로이드 알파가 우리 FTP 서버에 올라왔다네. 한 번 이 컴퓨터에 설치를 해보고 감상을 말해주게.”
“우와~ 벌써요? 거기 한국은 태어날 때부터 코딩한답니까? 뭐 이리 빠르죠?”
확실히 유재원의 프로그래밍 속도는 이 사람들이 보기엔 경이적이었다. 아무리 유사 도스라고 해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코드와 겹치지 않게 하면서 새로 만드는 건 너무도 빨랐으니 말이다.
“후후, ID 테크놀로지의 젊은 천재를 믿지 못하는 건가?”
“그건 아니죠.”
안드로이드 알파에 대한 이야기는 며칠 전부터 일렉트로닉아츠에 화제였다.
유재원이라는 이름 하나로 그렇게 되었다. 일렉트로닉아츠의 직원들은 연말부터 분기마다 두둑한 보너스를 받는 중이다. 모두 유재원의 키보드 워리어 때문이다. 덕분에 제임스 웹도 평소 눈으로만 여겨 보던 컴팩의 고성능 PC인 시스템프로 모델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당연히 486CPU가 채용된 최상급 제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텔이 486을 발표한 다음 시시하기 그지없는 MS-DOS를 대체할 차세대 운영체제에 대한 화두가 컴퓨터 전문가들 사이에 돌기 시작했다.
486이 막 풀리고 있는 시점인데도 도스 같은 구식 운영체제로 컴퓨터를 운영하는 건 엄청난 성능의 낭비라는 게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DOS에서 탈피하는 차기 운영체제에 대한 관심도 당연히 지대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칼을 갈고 있다는 윈도우 3.0도 관심의 대상이었고, 거대 컴퓨터 기업인 IBM에서 만든다는 OS/2라는 운영체제도 흥미로웠다. 이런 시점에서 안드로이드 알파의 등장은 시기적절했다.
비록 도스 기반이지만, 최신 시스템을 지원하는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채택했다고 하니, 제임스의 궁금증도 커졌다.
“그럼 다운로드를 받아서 설치해보겠습니다.”
“그래, 얼른 해보게.”
일렉트로닉아츠 내부에서는 이더넷으로 연결된 FTP 서버라서 다운로드는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났다.
호킨스 사장의 부름에 공 디스켓을 준비하고 들어갔던 제임스였기에, 바로 압축을 풀어서 설치용 디스켓을 만들었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디스켓으로 부팅을 시작했다. 속도가 느린 디스켓 드라이브라서 한참을 읽어야 했다. 대신 로딩이 끝나자 곧바로 인스톨 화면이 나왔다.
“세밀한 옵션이 많군요.”
하드디스크를 포맷하고 바로 설치하는 것, 기존의 도스를 지우고 안드로이드 알파를 설치하는 것, 도스를 백업하고 복구 시점을 만든 후 안드로이드 알파를 설치하는 옵션이 제공되었다.
지금은 호환성을 보려는 게 아니고, 안드로이드 알파 그 자체를 보려는 목적이었기에 제임스는 제일 위에 있는 포맷 후 바로 설치를 선택했다.
선택하자마자 포맷이 끝났다.
“헐? 이렇게 빨라?”
포맷은 보통 하드디스크 섹터 하나하나 일일이 지우는 방식이었다. 유재원은 부트섹터와 파일 시스템만 지우는 방식으로 포맷하도록 설계했다. 이른바 빠른 포맷이다. 기업의 중요한 데이터를 저장하는 하드디스크라면 섹터를 일일이 지우는 게 좋지만, 개인이 사용하는 컴퓨터는 파일 시스템만 지워도 충분하다.
이후 디스켓에 있는 시스템 파일의 압축이 풀리면서 하드디스크로 복사되었다. 모든 작업이 끝나자 디스켓을 제거하라는 안내 문구가 떴다. 제거한 후에 엔터키를 누르자 자동으로 재부팅이 이뤄졌다.
이후엔 일사천리였다.
ID 테크놀로지의 제품을 설치할 때 보는 셋업 화면이 나타나서 CPU, VGA, 사운드카드, 이더넷 카드 등의 하드웨어 설정을 자동으로 맞춰 주었다. 그렇게 설정이 끝나자 부팅이 완료되었다.
“이거 귀엽네요.”
짜리몽땅한 깡통 로봇이 나와서 로딩이라는 글자를 만드는 애니메이션은 인상적인 로딩화면이었다.
빠밤~!
부팅이 끝나자 상쾌한 팡파르 소리가 났다. 그리고 오른쪽 아래에 큼지막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우리 로고입니다!”
일렉트로닉아츠의 로고였다. 약 10초 정도 표시되던 로고는 스르륵 사라졌다.
“광고를 다시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기능은 없는 것 같은데요?”
“그럼 다시 부트해보게.”
제임스는 다시 리부팅을 해봤다. 그러자 이번엔 가을 출시를 예정한 ID 소프트웨어의 울펜슈타인 타이틀 화면이 나타났다. 16색 모드라서 화려하진 않아도 게임의 성격이나 느낌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흠, 생각 이상으로 느낌이 좋구먼.”
호킨스 사장은 빼꼼히 올라왔다가 사라지는 광고 이미지가 마음에 쏙 들었다. 게이머들에게 이런 식으로 로고와 제품을 계속 노출하면 분명 좋은 반응이 올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놈, 생각 이상으로 기능이 좋은데요?”
제임스 웹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안드로이드 알파에 대한 감상을 말했다.
키보드 워리어 같은 것도 문제없이 돌아간다. 일렉트로닉아츠가 출시한 최근 출시한 매든 89라는 미식축구 게임도 별 탈 없었다. 키보드 워리어와 달리 설치 후에 바탕화면에 바로 가기 아이콘을 만들어줘야 하는 게 좀 귀찮긴 해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옛날에 출시한 게임도 문제가 없었다.
도스의 기본 기능도 바탕화면 상태에서 거의 다 할 수 있었다. 디스켓을 넣고 포맷하고, 특정 파일을 복사하거나 삭제하는 것도 다 되었다. 심지어 미디어 플레이어라는 것으로 WAV 파일 재생이 가능하다.
다만 이렇게 컴퓨터 기능을 사용하는 중에는 다른 일은 할 수 없었다. 맥 PC라면 간단한 멀티테스킹이 가능했지만, 안드로이드 알파는 그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디스켓을 포맷하는 중에 게임 아이콘을 실행하면 포맷을 취소하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도스를 기반으로 했기에 멀티테스킹은 매우 제한적인 경우에서만 가능한가 봅니다.”
아쉽다는 듯 말하는 제임스 웹이지만, 그것 말고는 딱히 단점을 찾을 수는 없었다.
도스처럼 복잡한 메모리 관리도 필요 없었고, 컴퓨터가 초보인 사람들도 기본적인 기능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해주니 분명 도스보다는 월등히 나은 차세대 운영체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고해상도 바탕화면을 지원하는 안드로이드 알파 전용 응용 프로그램이 생긴다면 일의 효율이 몇 배로 상승할 것임을 바로 알아보았다.
“고해상도라?”
“바로 보시죠.”
사장이 사용하는 테스트용 PC였다. 커스텀 주문 전문인 PC 제조업체인 델에서 고급형 부품만을 조합해서 만든 컴퓨터였다. CPU는 486이고 VGA 카드는 시러스로직의 최상급 모델이다. 비디오 램이 2MB나 돼서 1024*768에 256색을 지원한다. 게다가 글라이드 X 라이브러리도 완벽지원이라 속도도 빨랐다.
세팅에 들어가서 모니터 해상도와 색을 바꿔보는 제임스였다. 그러자 바탕화면이 훨씬 세밀해지면서 디테일이 확 올라갔다.
기본 응용 프로그램인 메모장을 띄워 보니 광활한 백색의 공간이 나타났다. 사무 업무의 기본인 A4용지가 한 화면에 다 들어갈 것 같았다.
어떠한 서식을 지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단순히 텍스트 파일을 열고, 수정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 메모장 프로그램이지만, 호킨스 사장에겐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고맙네. 덕분에 잘 보았어. ”
제임스가 해야 할 일은 끝이었다.
안드로이드 알파 설치 디스켓을 가진 제임스는 재미있는 장난감을 얻은 아이처럼 희희낙락거리면서 사장실을 나갔다.
호킨스 사장은 짧게 고민했다. 그리고 답은 쉽게 나왔다.
-광고 단가는 얼만가? 대량으로 넣으면 할인이 되나?
“그럼요. 대량구매에 할인은 기본이죠.”
오랜만에 유재원은 새벽 시간에 호킨스 사장과 직통으로 통화하는 중이었다.
보는 바와 같이 안드로이드 알파의 매력에 흠뻑 빠진 호킨스 사장이었기에, 이야기는 급진전 되었다.
“일단 이것부터 확인하셔야 해요.”
유재원은 안드로이드 알파의 광고 정책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광고를 넣었다고,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주야장천 나오는 식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무슨 말인고 하니, 텔레비전 광고처럼 노출되는 기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기본은 100일이다. 100일이 지나면 같은 광고는 더는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 조치는 사용자와 광고 회사 둘을 동시에 위하는 것이었다.
똑같은 광고를 계속 보면 사용자는 피곤해진다. 광고를 내건 기업은 소비자의 호감을 사기 위함인데, 오히려 나쁜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다. 그래서 똑같은 광고가 연속적으로 올라오는 것도 막고, 기간도 한정했다.
-알겠네. 확실히 무한정 나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효과가 반감되기도 하고 말이야.
유재원은 호킨스 사장이 자신의 광고 정책에 동의하자 본론으로 들어갔다.
“100일에 1만 달러입니다.”
한국 돈으로 680만 원이다.
텔레비전 광고보단 훨씬 저렴하게, 신문 전면광고보다 더 낮은 금액으로 책정한 것이다. 국민 소득이 한국보다 높은 미국이었으니, 훨씬 저렴하게 느껴질 거다. 게다가 요즘 컴퓨터는 시도 때도 없이 재부팅을 하는 게 예사였다. 프로그램이 좀 불안정하다거나, 속도가 좀 느려졌다 생각하면 리부팅이 답이다.
도스의 치명적인 단점인데, 이건 도스 기반인 안드로이드 알파도 마찬가지다. 알파의 시스템은 멀쩡한데, 실행했던 응용 프로그램에서 문제가 나면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다. 그럴 땐 리부팅이 답이다. 자연스럽게 광고의 노출빈도도 높아질 거다.
-호, 생각보다 저렴하군. 그런데 100일이 지나면 어떻게 되는 건가?
“새로운 광고를 수주해야죠. 광고 슬롯은 20개까지만 운영할 겁니다. 20개가 꽉 찬 다음에 광고를 넣고 싶으면 2회차 패치에 예약해야 합니다. 물론 경합이 붙게 되면 그만큼 단가도 상승합니다.”
-당연히 그래야겠지. 보석을 뒤늦게 알아본 사람들은 그만큼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법이야. 그런데 내 말은 이미 알파가 설치된 유저에게 무슨 수로 새로운 광고를 넣어주느냐는 말일세.
호킨스 사장이 중요한 걸 잘 짚었다.
89년도에 애드웨어를 운영하는 데 가장 큰 난관은 오프라인 시스템이었다. 미국의 컴퓨터 사용자 중에 PC 통신까지 사용하는 이들의 비중은 10%도 되지 않는다. 그냥 컴퓨터를 켜서 오프라인 상태로 줄곧 쓰는 거다.
“메이저 패치를 배포할 때 광고 데이터도 넣을 생각입니다.”
-패치 말인가?
“알파를 사용해보셔서 아시겠지만, 아직 미완의 부분이 많습니다.”
이제 막 만들어진 운영체계라서 부족한 점이 수도 없이 많았다. 네트워크 지원도 허술하고, 멀티미디어 능력도 약하다. 흔한 그림 파일 뷰어도 없는 상태다.
“100일에 한 번씩 메이저 패치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사용자의 피드백도 반영하고, 허술한 응용 프로그램도 채워 넣고, 성능도 강화하고요. 덤으로 수주받은 광고도 갱신하면 됩니다.”
-아아, 무슨 말인지 이해했네.
호킨스 사장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역시 같은 업계라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이해력이 좋았다.
-문제는 어떻게 패치를 신속히 배포할 건가? PC 통신이라도 모든 사용자를 책임지진 못하네.
“일렉트로닉아츠와 협력관계가 잘 이뤄지는 소매상이 몇 개나 있습니까?”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유재원이다. 하지만 호킨스에겐 충분한 대답이었다.
-직접 관리하는 곳은 1천 개 정도 되지. 여기에 우리가 따로 관리하는 꽤 큰 딜러들이 있는데, 이것도 40여 개 된다네. 딜러마다 관리하는 소매상들이 수십에서 백개는 되니 다 더한다면 수천 개 정도는 쉽게 넘을 걸세.
“상당하군요. 제 생각은 이러한 소매상을 다운로드센터로 바꾸면 됩니다.”
한국의 세운상가나 용산전자상가를 떠올리면 된다. 여기 컴퓨터 가게들은 정품도 파는데, 불법 복제물도 판다. 아예 불법복제를 할 수 있는 리스트와 콘텐츠를 보유한 다음, 찾아오는 사람에게 복사해준다.
이들에게 패치용 디스켓을 보내준 다음, 찾아오는 유저들에게 무료로 복사를 해주도록 하면 된다. 통신망으로 연결하면 번거롭게 디스켓을 보내줄 필요도 없다.
-매력적인 이야기로군. 수십만 장의 디스켓을 공짜로 뿌릴 필요도 없겠어.
물론 우리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해주는 것이니만큼, 이들에게 인센티브를 줘야 하겠지만, 일일이 패치 디스켓을 배포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고 효율적일 것이다.
안드로이드 알파의 초판 배포도 마찬가지다.
상징성이 있으니, 크고 유명한 스토어에는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 간단한 패키지를 내긴 할 거다. 대신 수량은 적게 잡아도 문제없다.
컴퓨서브를 비롯한 미국의 여러 PC 통신 자료실에도 올려서 자유롭게 받을 수 있게 하고, 소매점에서도 복사해 갈 수 있도록 하는 거다.
“마케팅 포인트는 차세대 게이밍 운영체제입니다. 글라이드 X 라이브러리가 적용된 게임이라면 복잡하고 미묘한 메모리 설정과 수동의 하드웨어 세팅 없이도, 완벽하게 구동하는 스마트한 그래픽 인터페이스 운영체제입니다. 거기에 소비자는 무료라는 거죠.”
-좋군. 완벽해.
호킨스 사장도 알파의 포지션과 애드웨어라는 유료화 모델에 대해 완벽히 이해했다. 더불어 일렉트로닉아츠가 가진 유통망을 통해 배포한다는 것도 혁신적이었다. 이번 기회를 잘 이용한다면 일렉트로닉아츠도 게임만 파는 회사가 아니라, 전문적인 PC 유틸리티도 파는 회사로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까지 나왔다.
호킨스 사장과 궁합이 잘 맞는 유재원은 이번 통화에서 안드로이드 알파의 디데이도 확정했다.
ID 오피스보다 10일 이른 8월 5일이다.
시작부터 창대(昌大)했고, 그 끝은 더욱 창대할 안드로이드의 역사가 곧 시작한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오오, 즐거운 금요일이군요, 오늘만 잘 버티면 내일은 주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