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102화 (102/1,007)

[102] 디지털 혁명(Digital 革命) ==============================

#65-1

10월은 수확의 계절.

유재원의 직업이 농부는 아니었지만, 그 느낌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ID 테크놀로지의 이름으로 뿌려놓은 씨앗이 많아서, 들어오는 항목도 다양했기 때문이다.

수확의 시작은 일렉트로닉아츠였다.

-우리의 파트너쉽은 이제 무적이오!

10월 중순 분기마다 정산하는 날, 호킨스 사장이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일렉트로닉아츠를 통해 유통했던 울펜슈타인은 예정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변은 없었던 거다. 꾸준한 광고를 통해서 바람을 잡아놓았고, 출시일에 연기되는 것도 없이 대량의 패키지가 투하되었다.

유재원의 검수를 통해 게임의 완성도는 더 높아질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픽부터 시작해서 스테이지 구성도 완벽했고, 마지막 화룡점정은 네트워크를 이용한 멀티플레이에 있었다. 드넓은 맵 크기를 자랑하는 오픈월드 게임도 혼자 하면 싫증이 금방 일어나지만, 사람과 사람이 싸우는 건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계속 일어나니 질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키보드워리어에선 최대 4인만 가능했던 네트워크 플레이가 울펜슈타인에서는 기본 8명으로 늘어났다. 이건 사용자의 컴퓨터 하나를 서버로 잡고 돌렸을 때의 이야기였다.

만약 고성능 컴퓨터에 울펜슈타인 전용 서버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최대 16인이 접속해서 8 vs 8로 난투를 벌일 수도 있었다.

당연히 이지스 쉴드도 적용된 타이틀이다.

네트워크 플레이를 하려면 정품이 있어야 하니, 정품이 팔리는 속도도 한층 가속도가 붙었다. 덕분에 출시 한 달 만에 준비한 1백만 장이 죄다 팔려나갔다. 키보드 워리어보다 한 달은 더 빠르다.

호킨스 사장은 초판이 다 팔릴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았다. 재고가 빠지는 속도를 보고 있다가 바로 2회차 물량을 만들어서 풀었다.

정산금도 바로 입금되었다.

울펜슈타인의 공급가는 40달러. 분배율은 5:5이고 지금까지 120만 장이 팔렸단다.

그러면 ID 테크놀로지의 몫은 2,400만 달러인데, 여기서 원천징수되는 매출세 8.6%가 빠진다. 그러니 실제 입금되는 건 2,193만 6천 달러였다.

호킨스 사장은 더블 밀리언 타이틀 한 번 달아보자고 기세를 올린 후,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유재원의 일은 아직 남았다.

울펜슈타인을 ID 테크놀로지가 다 만들었다면, 이게 다 유재원의 몫이지만, ID 소프트웨어 작품이다. 이 중에 반만 유재원의 몫이고, 나머지 반은 ID 소프트웨어의 몫이었다. 그러니 유재원도 정산을 해줘야 한다.

여기서 조금 갑질을 하면, 정산일을 늦춰서 이자 수익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ID 테크놀로지가 약간의 이자 수익에 목을 매야 할 정도로 작은 회사는 아니었으니 그러진 않을 거다.

유재원은 곧장 실리콘밸리의 레밍턴과 메신저를 연결했다.

최강욱의 조언에 따라 돈 관리는 서울에서 하고 있는 중이다. 일렉트로닉아츠의 정산금 역시 실리콘밸리 사무실을 거치지 않고, 직접 입금되기에 여기서 알려주기 전에는 레밍턴도 정확한 수익금을 모른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메가히트로군요. 보스의 실력은 알아줘야 합니다.

레밍턴은 제 일처럼 기뻐했다. 동시에 유재원을 띄우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흐흐. 이런 건 기본이죠!”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유재원이지만, 레밍턴은 그대로 수긍했다. 한 번도 아니고 벌써 3번째 히트작이 나왔으니, 실력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울펜슈타인의 정산금은 2,193만 달러입니다”

-와우, 예상은 했지만 직접 들으니 엄청나군요. 존이 들으면 놀라서 죽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레밍턴도 ID 소프트웨어의 책임 프로듀서인 존 카멕과 무척이나 친한 티를 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울펜슈타인 출시 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메신저로 연락해서 판매량을 물어봤던 탓이다.

판매 현황에 대해 일렉트로닉아츠는 정기적으로는 일주일마다, 비정기적으로 특이한 판매량이 찍히면 보내주곤 했는데, 존 카멕은 매일같이 물어보니 순간 귀찮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같이 울펜슈타인으로 네트워크 게임도 즐기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사실 존 카멕은 유재원과 더 친해지고 싶었다. 그런데 유재원이 메신저에 계속 로그인한 것도 아니었고, 텍사스와 한국의 시차는 샌프란시스코와 좀 더 커서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었다.

-제가 이 소식을 전할까요?

“괜찮아요. 지금 메신저 접속자를 보니 존도 있네요. 대신 레밍턴은 할 일이 있어요.”

-예, 무슨 일입니까?

“BMW M3 8대를 구매하는 거예요.”

-휘유~! ID 소프트웨어 친구들의 포상이로군요.

정답!

유재원은 ID 소프트웨어에 울펜슈타인의 판매량이 100만 장을 넘으면 좋은 자동차 한 대씩 안겨주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만들 게임에 대해 판매량이 얼마나 나올지 걱정이었지만, 결과를 알고 있는 유재원에겐 그냥 차를 사주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ID 소프트웨어 친구들이 가진 자동차 중에 제일 좋은 게 구형 임팔라를 모는 존 카멕이었다. 다 낡은 자동차라서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도 잦았다.

BMW의 인지도는 21세기에 들어와 폭등했지만, 지금도 낮은 수준은 아니었다. 게다가 보통 모델도 아니고 퍼포먼스 튜닝이 된 M 시리즈니까 분명 다들 좋아할 거다.

물론 지금의 성과로 따지면 BMW가 아니라 페라리를 사줘도 아깝지 않다. 하지만 페라리는 다음 작품의 포상을 위해 남겨둘 생각이다.

울펜슈타인을 뛰어넘는 초대박 작품이 ID 소프트웨어에는 많이 있으니 말이다.

레밍턴과 짧은 통신을 마치고, 유재원은 존 카멕과의 대화를 수락했다. 유재원이 메신저에 들어 왔을 때부터 존 카멕의 대화 신청이 있었기에 대화는 즉각 연결되었다.

“1,096만.”

유재원은 대화가 연결되자마자 숫자 하나만 딱 입력했다.

-하이! 보스, 요즘 뭐가 이리 바쁜……. 우아아아악!

존은 직관력이 좋은 사람이었다.

인사말을 치던 존은 숫자 하나만 딱 보고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자기들의 몫으로 무려 1천96만 달러가 들어올 거라는 소리에 키보드가 하늘을 날았다.

ID 소프트웨어의 사장도 유재원이지만, 운영은 존 카멕에게 위임된 상태였다. ID 소프트웨어의 지분을 인수 때 자유로운 개발 환경을 보장해 준다는 약속을 했고, 그것은 지금도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

이번에 입금될 정산금의 분배 역시 존 카멕의 몫이다. 동료와의 의리로 1/n으로 나눌지, 아니면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할지는 존 카멕의 마음이다.

두 번째 수확은 ID 오피스였다.

일렉트로닉아츠의 유통망을 조금 빌리긴 했지만, ID 테크놀로지가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유통망이 대부분이다.

성과를 보자면 무척이나 고무적이다. 미국 전역에 대략 300개 정도의 소매상과 직접 계약을 맺었다. 수천 개를 가진 일렉트로닉아츠와 비교하면 초라한 숫자지만, 게임이 아니라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파는 전문 매장이고, 규모도 제법 크다.

이러한 전문 매장의 경우 분배비율은 보통 7:3가 보통이었다. 120달러짜리 오피스 하나를 팔면 ID 테크놀로지에 90달러, 소매상이 30달러를 먹는 거다.

여기에 미국에서 전문 소프트웨어를 유통하는 총판 여럿과도 유통 계약을 했는데, 이런 곳의 분배 비율은 6:4였다.

총판마다 성과의 차이가 컸다. 서부나 동부의 주들은 인구도 많고, 소득도 높아서 ID 오피스가 잘 나가는 데 반해, 중부에 있는 주들은 인구도 적은데, 흩어져 있기까지 해서 판매가 순조롭지 못했다.

그나마 ID 테크놀로지가 시큐리티 챌린지 행사를 시작하고부터 고무적인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386 이상의 고성능 PC 사용자에게 딱 맞는 오피스 프로그램이고, 특히 보안에 강력하다는 게 알려지면서 기업인들의 수요가 폭증하는 중이다.

미국의 주 정부에서도 대량 구매 시 할인이 되는지 물어보는 문의가 오기도 했고, 실제 수백 카피씩 구매하는 일로 이어지기도 했다.

대량 구매할 때는 ID 테크놀로지에 전화해서 직접 구매하는 게 제일 싸다. 단품 구매는 소매점에서 하는 게 쉽다.

플래그쉽 스토어도 오픈 첫날에는 천 단위 패키지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열기가 좀 식긴 했지만, 지금도 하루에 100개 이상은 꾸준히 팔리고 있다.

이렇게 유통망이 다양하고 복잡해서 정산되기까지 좀 복잡했다.

플래그쉽 스토어의 경우 하루 마감을 하면서 즉각 매출이 발생한다. 반면 총판으로 유통된 제품들은 최소 한 달 정도의 기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8월 15일 출시를 시작한 후에 10월 중순이 된 지금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판매량이 나왔다.

37만5천 장.

120만 장을 넘긴 울펜슈타인과 비교하면 1/3밖에 되지 않는 숫자였다. 하지만 ID 오피스라는 전문용 프로그램이라는 걸 고려하면 엄청나게 팔린 것이었다. 특히 패키지 가격이 120달러로 고가라는 걸 고려하면 엄청난 수익이었다.

패키지 생산비용, 유통사 마진, 광고비, 프로모션비 등을 빼고 난 순 수익금은 조금 많이 줄어들었다.

23,083,200달러!

온갖 비용에 매출세 같은 원천징수되는 세금을 다 빼고 나온 순 수익금이 2천3백만 달러였다. 무엇보다 무서운 점은 ID 오피스의 매출은 이제 시작이라는 거다. 유럽 진출도 본격적인 신호탄이 올랐다.

더군다나 게임은 한 번 사면 끝이지만, 오피스는 아니라는 거다.

아직 월 정액제를 시행하는 온라인 게임이 없으니, 패키지를 사서 끝판까지 깨고 나면 플레이할 의욕이 사라진다. 그래서 울펜슈타인에 네트워크 플레이라는 걸 넣었지만, 이것도 주야장천 하다 보면 질리기 마련이다.

ID 오피스는 다르다.

생업과 직접 연관된 프로그램이었고,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ID 오피스로 생성된 파일도 폭증한다. IDW나 IDS, IDP, IDD 같은 오피스 프로그램 파일을 열어보기 위해서는 ID 오피스가 필요하고, 자연스럽게 정품 구매로 이어진다.

오피스 프로그램이 무서운 건, 버전 업이다.

비즈니스 환경은 항상 무섭게 변하고, 이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신기술도 계속 요구된다. 이러한 신기술은 패치로도 배포될 테지만, 강력한 기능은 차기 버전에 담을 수도 있다. 유지 보수를 위해서 사람들은 새로운 버전을 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정책에 이전 버전을 구매한 이들이 불만이 나올 수도 있다. 대신 업그레이드판이라고 약간의 할인을 해주는 패키지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논란은 쉽게 피할 수 있다.

이게 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닦아놓은 길이다.

“그나저나 실리콘밸리 팀에게는 얼마를 줘야 하지?”

ID 오피스의 개발은 유재원이 주도했다. 프로그램의 디자인부터, 주요 기능의 알고리즘도 거의 다 혼자 했다. 실리콘밸리에서 데이브 로저스가 이끄는 개발팀은 유재원이 설계한 뼈대에 살을 붙여서 ID 오피스를 완성한 것이다.

“이거 고민이네.”

성과에 대한 적절한 보상은 기업이라는 조직을 이끄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너무 과하게 보상을 주면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나중에 문제가 될 공산이 크다.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할 수도 있고, 성과가 나빠졌을 때 줄어든 보상에 불만이 나올 가능성도 크다. 그렇다고 너무 적게 주면, 불만이 쌓이게 되고 일의 능률도 떨어진다. 외부의 충격에도 팀워크가 쉽게 깨진다.

저번에 마이크로소프트가 데이브 로저스나, 팀에서 제법 능력이 좋다고 판명된 개발자 몇몇 사람에게 헤드헌터를 붙였지만,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오우~! 오랜만에 연참 성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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