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디지털 혁명(Digital 革命) ==============================
#65-2
이유는 간단했다.
8월 15일, ID 오피스 1.0 완성 기념으로 1인당 1~2만 달러 상당의 보너스가 나왔고, 이후 판매량에 따라 추가적인 런닝 게런티를 지급할 거라고 했기 때문이다.
다들 목이 빠지라 기다리고 있을 테고, 유재원도 기꺼이 지갑을 열 생각이다. 다만 어느 정도로 열어줘야 할지 균형을 맟주기가 어려워 머리가 아픈 거다.
“10% 정도 챙겨주면 되려나?”
2,300만 달러의 1/10인 230만 달러를 성과급으로 책정해서 실리콘밸리 지사들 모두에게 나눠주는 거다. 프로그래머뿐만이 아니라 레밍턴이나 엘런, 그리고 일반 사무직까지도 말이다.
“아, 플래그쉽 스토어 직원들도 있지.”
ID 오피스의 성공은 개발팀의 공뿐만이 아니라, 직원 모두가 한마음으로 뛰었기에 나온 성과였으니, 포상의 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숫자를 다 더해보니 대략 50에서 조금 모자란다.
230만 달러를 50으로 나눠보면 4만6천 달러다. 21세기 기준을 가진 유재원에겐 언뜻 작아 보이는 액수였지만, 89년도 미국의 경제 상황을 보면 번듯한 직장을 가진 직장인의 연봉과 비슷한 금액이다.
여기서 이제 막 일을 시작한 플래그쉽 스토어 크루의 비중은 조금 줄이고, 처음부터 함께한 레밍턴과 엘런 등의 몫은 약간 키운다. 그리고 개발팀 소속 프로그래머들 역시 성과에 따라 약간의 차등을 두면 될 거 같다.
“이렇게 하면 적절한 거 같은데?”
유재원은 확정된 분배 비율에 따라 ID 오피스의 스프레드시트를 이용해 직원들의 성과급을 계산했다.
가장 많은 보너스를 받는 건 레밍턴으로 10만 달러 정도이고, 가장 적은 보너스를 받는 건 플래그쉽 스토어의 직원들이고, 일반직인 크루들은 3천 달러, 스토어 매니저는 5천 달러로 책정되었다. 프로그래머들은 대략 4~6만 달러를 받는다.
적게 챙겨준 거 같아서 미안했는데, 미국 지사에서는 환호성이 터졌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플래그쉽 스토어에서 가장 낮은 직급의 직원은 매주 임금을 받는 주급 체계인데, 이게 300달러 수준이다. 주급의 10배니 정말 큰 보너스였다. 프로그래머들에게도 자기 연봉 만큼 보너스가 나왔으니 떡벌어진 입이 쉽게 다물어지지 않았다.
미국 언론에 ID 테크놀로지의 230만 달러의 보너스 잔치라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화제였다. ID 오피스 시큐리티 챌린지로 한 번,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재판으로 북미 전역에서 인지도를 한껏 올린 ID 테크놀로지의 이름이 다시 한 번 높아졌다.
적어도 실리콘밸리에서는 ID 테크놀로지의 이름값은 마이크로소프트나 인텔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이름값이 높아지면 그만큼 견제도 많이 받지만, 좋은 점도 많았다.
소매점을 뚫을 때, 예전 같으면 인센티브를 많이 약속해야 했다면 지금은 먼저 와서 파트너쉽을 맺자고 찾아오는 곳이 많았다. 작은 소매점이 아니라, 미국 전역에 커다란 매장을 수십 개 가진 서킷시티 같은 전자제품 유통센터 같은 곳에서 찾아올 정도다.
인재를 구하기도 쉬워졌다.
데이브 로저스 같은 경력 좋은 리드 프로그래머를 데려오기 위해 레밍턴은 삼고초려도 마다치 않았는데, 지금은 헤드헌터만 보내면 거의 OK가 나온단다.
안드로이드 알파의 패치와 유닉스 커널을 채용한 정식 1.0 버전에 투입할 인재를 모집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척이나 고무적인 보고였다.
세 번째 추수는 돈이 아니 사람이었다.
“그동안 연락을 하지 못해서 미안했다…. 아, 아니,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반말을 하다가 아치 싶어서 바로 높임말로 바꾸는 이는 이찬수였다. 여름 동안 열심히 아래아 한글을 팔았지만, 결국 한계를 인정하고 이제야 유재원을 찾아온 것이다.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이제라도 찾아 주셔서 제가 더 고맙습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는 이찬수는 파란만장한 여름을 보냈다.
막 출시되었던 아래아 한글의 반응은 괜찮았다. XT에서도 구동되는 가벼운 프로그램이었고, 저렴한 9핀 프린터에서도 한글이 잘 출력된다는 장점도 있었기에 찾은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ID 오피스라는 강적이 존재했고, 286에서도 잘 구동되는 ID 워드프로세서 라이트라는 게 나오면서 아래아 한글의 입지는 크게 좁아졌다.
결정타는 불법복제였다.
시판을 시작한 그 날 정품이 하나 팔릴 때, 불법복사는 10번이 넘게 일어났다. 나중에는 정품이 하나도 팔리지 않았다. 대신 디스켓 한 장에 1천 원씩 받고 복사해주는 불법 복제가 성행했다.
개인을 대상으로 한 판매는 결국 포기했고, 기업과 학교, 관공서를 뚫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곳은 대부분 ID 오피스가 선점한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최우선 무역국은 미국이었다. 미국과 문서를 주고받게 될 경우 팩스를 사용하는 게 보통이지만, 분량이 많으면 FTP를 이용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런데 FTP에 올라와 있는 문서가 IDW 파일이니 그걸 보려면 ID 오피스를 써야 했다. 오죽하면 ID 테크놀로지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일성 그룹에서도 해외 거래처와 잦은 문서 작업이 있는 수출 부서를 중심으로 ID 오피스를 도입할 정도였다.
유재원은 여주의 사무실까지 찾아온 이찬수를 환대했다.
서울 사무실에서 볼 수도 있었지만, 결단이 늦었다고 판단한 이찬수는 스스로 여주의 사무실까지 내려온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슬슬 ID 오피스 2.0에 대해 준비를 하려고 했어요.”
유재원의 말에 이찬수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ID 오피스 1.0가 발표된 지 이제 2달 조금 지났다. 상승세는 계속 이어나가고 있는데, 벌써 차기 버전을 준비한다니 말이다.
“ID 오피스는 1년 마다 버전업을 할 생각이거든요. 그러니 내년 8월에 신제품을 내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늦지 않을 거예요. 이찬수 님에겐 ID 오피스 중에 워드프로세서의 리드 프로듀서를 맡기겠습니다.”
때마침 이찬수가 찾아왔으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리드 프로듀서라고요?”
반면 이찬수는 변변찮은 경력도 없는 자신에게 큰 직책을 안겨준 유재원의 배포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유재원에게 이찬수는 이미 검증이 끝난 인재였다. 사업가의 면모는 그다지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지만, 아래아 한글을 만들고 발전시킨 프로듀서 능력은 높은 점수가 당연한 사람이었다.
유재원은 이찬수의 마음이 바뀔까 봐 곧장 준비한 노동 계약서를 내밀었다.
리드 프로듀서라서 기본급이 150만 원부터 시작했다. 여기에 각종 수당과 상여금, 인센티브까지 포함되면 웬만한 대기업 부럽지 않은 월급이 나온다.
안타까운 점은 올해의 고과에서 이찬수의 고과는 0이라는 거다.
수확 철이라서 엄청난 돈 잔치가 벌어지는 중인데, 이찬수는 이제 막 들어와서 성과가 없으니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할 거다. 하지만 공이 없는데 억지로 돈을 안겨줄 이유는 하나도 없다. ID 오피스 2.0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면, 내년엔 상당히 큰 보너스를 받을 수 있을 거다.
노동 계약서는 물론 온갖 무서운 말들이 가득한 비밀엄수 계약서도 꼼꼼히 읽어본 이찬수는 도장을 찍었다.
“그, 그럼 매일 여기로 출근하면 됩니까?”
홀가분한 표정이 된 이찬수는 여주의 사무실을 둘러보며 물어보았다.
강찬호가 쓰던 광고 가게를 그대로 인수해서 사무실로 만들어 놓은 탓에,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특히 ID 오피스 패키지를 매일 만들고 있어서 상당히 번잡하기도 했다.
“아뇨.”
ID 테크놀로지의 한국 본사의 개발팀은 유재원 혼자였다. 그런데도 그 역량이 엄청나서 실리콘밸리 개발팀의 성과를 가뿐히 능가할 정도다. 덕분에 유재원은 마음이 편한 집에서 주로 작업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앞으로 이런 식의 운영은 무리다.
안드로이드 알파용 패치, 1.0 버전을 위한 유닉스 커널, ID 오피스 2.0 등등. 만들어야 할 프로그램이 다양해진 만큼, 한국의 개발팀도 제대로 꾸려야 할 상황이다.
“일단 서울 지사에 자리를 만들어 드릴게요. 당연히 최신 컴퓨터도 지급할 거고요. 일단 그곳에서 소스코드와 설계도를 보면서 ID 테크놀로지의 코딩 스타일을 잘 보시고, 개발 철학도 잘 숙지하세요. 그걸 다 하셨다면 2.0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면 됩니다. 물론 그 사무실 자리도 임시에요. 앞으로 한국의 개발팀도 인원이 부쩍 늘어날 거라서 새로 개발실을 만들고 있거든요. 분명 마음에 들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개발팀을 위한 작업실은 바로 강남 로데오거리에 만들 플래그쉽 스토어 건물 2층에 만들 작정이다.
높이는 낮아도 건물 안의 넓이는 넓었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 그 건물에는 미래건설의 협력업체 사무실이 입주해 있던 상태였다. 1층은 스토어로 삼고 2층을 프로그램 개발 공간으로 삼으면 적절하다.
당장은 개발팀에 유재원 본인과 이찬수 이렇게 단둘이지만, 앞으로 그 공간을 가득 메울 만큼 개발팀의 숫자도 빠르게 늘어날 거다.
마지막 수확은 부동산이다.
10월 25일 토지개발공사로부터 보상비가 입금되었다. 정확히 494억6천만 원이다. 원래는 500억 원이 조금 넘는 돈이었는데, 세금이 5억 원 정도 나왔다.
‘겨우, 5억이요?’
토지개발공사로 토지를 넘기는 것도 양도는 양도였고, 엄청난 시세 차익이 생겼다. 그런데 세금은 겨우 5억 원 남짓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대에는 초과 이익에 대한 과세 표준이 없었다. 그냥 일률적으로 세금이 매겨지고 있다. 심지어 그 일률적인 세금도 아파트나 주택은 높았지만, 땅에 대한 매매는 매우 작았다.
10배의 매도 차익을 거두고도 세금은 5억 원 조금이다. 땅을 가진 사람들은 목에 힘 좀 주고 사는 사람들이고, 이들의 입김을 통해 세금이 높아지고 있는 걸 막고 있기 때문이다.
뒤늦게 재무부에서 양도세를 50%나 올리겠다고 결정을 했다는데, 일산과 분당 등의 신도시는 예외였고, 빠져나갈 구멍도 많았다.
하여튼, 이런 분들 덕분에 유재원의 주머니 사정도 매우 건전해졌다.
미국에서 이제껏 열심히 벌었던 돈보다 몇 배는 큰돈이 한 방에 은행 계좌로 들어왔으니 당연한 이야기다.
돈이 들어오자, 미래 건설과의 약속된 토지 거래도 이행되었다. 이미 유재원과 전명헌 회장이 다 합의를 해버린 상태라서, 대리인을 통해 거래가 이루어졌다.
ID 테크놀로지에서는 최강욱 비서실장이 나왔고, 미래 그룹에서도 왕회장을 대신할 사람이 나왔다.
전명헌 회장의 차남 전재구다. 직함은 미래건설 회장이었다. 이제껏 공석이었던 미래건설의 주인이 차남 전재구로 낙점된 것이다. 이를 통해 차기 미래 그룹 회장 자리를 쟁취했다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사인을 할 때, 무척이나 너그러운 태도를 보였다고 했다.
ID 테크놀로지는 건물과 땅을 인수하자마자 플래그쉽 스토어 오픈을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수확의 기쁨을 배가시켜주는 덤도 있다.
삼보 컴퓨터가 유재원의 디자인을 현실로 꺼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초록색으로 투명한 플라스틱 케이스의 일체형 컴퓨터 에그(Egg) PC 프로토타입 4대가 유재원 앞으로 배달되었다. 성능은 두말할 것도 없이 최고였고, 디자인도 완벽했다.
“흐음, 마치 결전을 앞두고 전열을 가다듬는 거 같네?”
10월 말, 결산을 하던 유재원의 감상이었다.
일부러 이렇게 유도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울펜슈타인과 ID 오피스의 정산 그리고 분당 땅값 등등. 각종 정산금이 10월에 맞춰 차근차근 은행 계좌로 들어왔다. 신무기인 에그 PC도 아슬아슬한 시점에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다.
말은 프로토타입이지만, 완성도가 높아서 이대로 시판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디자인을 멋대로 변경한 것도 없이, 설계했던 그대로 뽑혔다. 컴퓨터를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호감이 절로 생길 만큼 매력적인 모습이다. 프로토타입이라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핸드메이드로 제작한 덕에 마감도 완벽해서 흠이 잡을 만한 것이 없었다.
마치 전쟁을 준비하며 내부를 단속하고, 비장의 무기를 만드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실제로도 전쟁은 임박했다.
그것도 2개나 말이다.
하나는 세계 최대의 컴퓨터 쇼인 컴덱스였고, 다른 하나는 미국 연방지방법원에서의 정식 재판이다.
재미있는 점은 두 전장 모두 대전 상대가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거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반론서 제출이 10월 말이었고, 이로 인해서 정식 재판이 11월 초에 열리게 되었다. 게다가 마이크로소프트는 평소엔 참가하지 않았던 컴덱스에 참가도 선언했다. 10월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갑작스럽게 발표된 사안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측이 ID 테크놀로지를 너무도 의식하고 있다는 게 뻔히 보인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유재원은 마이크로소프트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ID 테크놀로지의 목표는 컴덱스, 그 자체를 석권하는 것이었다.
IT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컴덱스 관계자에게 89년 컴덱스 하면 가장 먼저 ID 테크놀로지가 떠오르게 하는 것이 유재원의 목표였다.
만반의 준비는 이미 끝났다.
어서 빨리 11월이 왔으면 좋겠다. 이를 가는 유재원은 손을 꼽으며 그날을 기다렸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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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오랜만에 연참을 했더니 머리가 핑 도네요~. 이럴 땐 피로회복제가 딱인데, 추천만한 회복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