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111화 (111/1,007)

[111] 디지털 혁명(Digital 革命) ==============================

#69-2

“하지만 비밀 엄수라는 건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진 특허나 신기술에 대한 것이지, 범죄 지시나 증거 자료의 폐기를 지시하는 명령까지 지켜줘야 하는 건 아니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건 기업의 영업 비밀 엄수를 위한 계약이 아닙니다. 제 양심을 막으려는 억압의 수단이고, 범죄에 동참하라는 강압에 불과합니다.”

“뭐라교요? 증인! 본인의 발언에 대해 책임질 수 있습니까? 증인의 발언은 사회적 명망이 높은 게이츠 회장과 스티브 사장의 명예를 크게 훼손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마땅히 져야 할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측 변호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제임스의 눈빛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저는 마이크로소프트에 처음 입사했을 때, 참 기뻤습니다.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가 제 능력을 알아줬다는 뿌듯함까지 있었습니다. 능력을 인정받아서 알파 랩 팀장이 되었을 땐, 마이크로소프트의 로고는 제 자부심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부심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위가 독점의 힘을 남용해 경쟁사를 무력화시키면서 만들어졌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저도 그 행위에 동참해야 했습니다. 윈도우가 DR-DOS에서는 불안정하게 작동하도록 만들어야 했고, ID 오피스도 DOS 4.0에선 불안정해야 했습니다.”

제임스의 양심 고백에 방청석은 차분해졌다.

방청석에는 IT업계에 일하는 사람들이 상당해서 제임스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측 변호사는 아니었다.

그래서 뭐? 어쨌다고?

제임스를 보는 표정이 딱 이 꼴이다.

“이런 저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고 해고해버린 게이츠 회장이나 스티브 사장에 대해 당연히 악감정도 있습니다.”

오히려 제임스가 감정적으로 나오는 것에 박수를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런 감정적인 증언은 재판에선 아무런 효력이 없다. 이번 심리는 본인들의 승리라고 자신하는 것이다.

“제 목소리엔 분명 감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증거에는 감정이 담겨있지 않지요.”

“존경하는 재판장님, 증거를 제출하겠습니다.”

제임스가 증거를 언급했다. 그러자 ID 테크놀로지의 엘런에 손을 번쩍 들면서 증거 제출을 신청했다.

제임스의 재킷 안에서 나온 건 3.5인치 디스켓 한 장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측 변호사들은 디스켓을 보고, 증거가 문서 파일이라고 유추했다. 그러면서 다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디지털 문서는 누구나 편집할 수 있는 것이라서 현재 법정 증거로 인정되는 건 극히 드물었다. 본인들의 실력이면 지방법원 판사 정도는 쉽게 구워삶아 증거로 채택되지 않게 할 거라고 자부했다.

“이 안에는 특수한 음성 파일과 이를 재생할 프로그램이 담겨 있습니다. PCM 사운드카드와 스피커가 장착된 컴퓨터로 재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임스는 마이크로소프트 측보다 한발 앞서 있었다.

컴퓨터는 ID 테크놀로지가 에그 PC를 준비했다. 손잡이를 잡고 옮길 수 있는 일체형이고 고성능 사운드를 탑재하고 있어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재판부는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컴퓨터를 자신들이 준비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준비된 컴퓨터를 재판부의 사무관이 직접 조작했다. 암호가 걸린 압축된 파일을 해체하는 방법은 제임스가 구두로 알려주었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재생하시오.”

사무관의 대답에 주심 판사가 무심히 말했다. 그건 마이크로소프트에 사형 선고를 내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회장님, DR-DOS의 점유율은 별 볼 일 없는 수준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이봐, 제임스. 잡초는 말이야 눈에 보이는 족족 뽑아줘야 하는 거야. 잠깐 한눈을 팔면 어느새 우리 아름다운 정원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지.

-그, 그래도 DR-DOS에서 윈도우가 동작하지 않도록 만들면 불법인 거 같은데요?

-불법? 그걸 누가 정의하나? 밝혀졌을 때나 문제지, 자네 실력이라면 은밀히 구현할 수 있잖아. 만에 하나 밝혀진다더라도, 걱정하지 말게 재판에 오르더라도 막강한 변호사 군단을 구성해서 이기면 그만이니까.

1분 안 되는 짧은 대회였지만, DR-DOS를 공정 경쟁에서 배제하라는 게이츠 회장의 목소리가 생생히 재판장에 울려 퍼졌다. 게다가 음성 파일은 하나가 아니었다.

-ID 오피스 분석은 끝났어?

-아직 완료는 못 했습니다.

-뭐야? 아직이라고? 도대체 언제까지 분석에만 시간을 낭비할 건가? ID 오피스가 매섭게 팔려나가고 있는 거 안 보여? 이러다 오피스 시장을 잃어버리면 자네가 책임질 건가?

-아 아닙니다. 그래도 ID 오피스가 자체적인 메모리 관리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건 확인했습니다.

-자체적인 메모리 관리? 흐음, 역시 그럴 줄 알았지. 혹시 그걸 바로 검출할 코드를 만들 수 있겠나?

-예. 만들 수는 있지만……. 설마 그걸 또 하시려고요?“

-그래, 잡초제거! 잘 기억하고 있네. 이건 DR-DOS보다 훨씬 위험한 물건이야. 정원 하나 망치는 게 아니라, 우리의 굳건한 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그러니 이번에도 잘 부탁해. 그리고 ID 오피스를 제대로 분석해봐. 비록 적이긴 해도 참고할만한 기술이 참 많으니까.

그걸로 음성 파일 재생이 끝났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측 변호인단은 아무런 반론을 제기할 수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음질이 너무도 좋았다. CD처럼 선명한 게이츠 사장의 목소리였고, 대화 상대는 제임스였다.

불법 녹취라고 주장하려면 3자가 몰래 녹음을 딴 것이어야 하는데, 이건 대화 당사자가 직접 녹음한 것이라 해당하지 않았다.

항상 지렁이처럼 밟히기만 했던 제임스가 오래전부터 준비한 한 방이었다.

불법적인 지시를 받을 때마다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았고, 최후의 수단으로 녹취를 땄다. 다만 알파 랩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디스켓은 물론 테이프까지 멋대로 반출할 수 없었고, 일반 전화는 중계 회선을 거친다.

불법적인 일을 하는 만큼 철저히 보안을 지키는 것이다.

오히려 이 점이 제임스에게 기회가 되었다. 게이츠 회장이 자신의 자리로 와서 이런저런 지시할 때, 컴퓨터에 연결한 마이크로 따서 웨이브 파일로 만들어 놓았다. 그렇게 쌓인 음성 파일이 수십 개다.

그러다가 결국 해고 사건이 터졌다.

해고된 이상 알파 랩에 남아 있을 시간이 얼마 없다. 자신의 책상을 정리하는 정도의 시간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저장된 음성 파일 중 중요한 것만 빼돌려야 한다. 문제는 알파 랩의 보안 규칙상, 사무실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있는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디스켓은 물론 볼펜 한 자루도 어림없다.

그때 생각난 것이 FTP였다. 그리고 ID 오피스의 AES-256 암호화 알고리즘이다.

알파 랩이 외부와 연결된 유일한 통로는 FTP뿐이었다. 물론 이 FTP도 마이크로소프트의 보안팀에서 관리했다.

제임스는 그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AES-256으로 암호화한 음성 파일 몇 개를 일반 파일로 숨겨서 전송했다. 무척이나 마음을 졸인 순간이었다. 다행히 AES-256으로 암호화된 파일은 평범한 바이너리 파일로 보였기에, 보안팀의 삼엄한 눈을 피할 수 있었다.

그래도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보안팀이 자신의 집에 쳐들어와서 파일을 지우는 악몽을 여러 번 꿀 정도였다.

그 악몽을 꾼 다음 날, 제임스는 여러 복사본을 만들어서 공개 FTP 사이트나 대학교 자료실 등에 올렸다. 개인 파일 백업용이라는 평범한 암호를 걸어놓은 상태로 말이다.

이렇게 깐깐히 관리한 덕에 이번 재판에서 결정적인 한 방이 되었다.

이걸로 12월 6일 심리는 끝이었다.

제임스의 묵직한 한 방이 몸값만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변호사 군단을 무찔렀다.

후폭풍이 대단했다.

“기자 여러분도 인터넷에서 그 파일을 내려받아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제임스는 혹시 몰라서 FTP에 올라온 파일을 여러 곳에 분산해서 업로드했던 파일은 아직도 그대로 있다. 즉, 누구나 자신이 접속할 수 있는 공개 FTP와 PC 통신의 사용자 자료실, 심지어 대학교 인터넷 등등에서 그 파일을 내려다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해제 암호는 ‘Justice!’입니다. 앞의 대문자와 느낌표에 유의해서 입력하십시오.”

심리 후, 재판장 앞에 만들어진 기자회견장에서 엘런이 확인 사살까지 했다.

게이츠와 제임스의 음성 파일은 그날로 다운로드 순위 최상단으로 직행했다. ‘게이츠 게이트’라며 언론들은 앞다퉈 보도했다. 어떤 곳에서는 이건 민사로만 끝나는 수준이 아니라 형사 재판에도 들어가야 한다면서 검사들을 압박하기도 했다.

가장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곳은 당연히 온라인이다.

ID 테크놀로지에 우호적인 사람들로 가득한 시큐리티 챌린지 BBS는 게이츠 게이트 관련한 게시물이 폭주했다.

하루에 3천 개씩 올라왔고 인기 글의 조회수는 1만을 훌쩍 넘어가는 것도 있었다. 다른 온라인 PC 통신이나 대학교 인터넷도 마찬가지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음험한 음모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유출된 건 처음이었기에, 반응은 뜨거웠다.

온라인에서의 열기는 그대로 오프라인까지 전해졌다.

가장 직접적인 지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매출액이었다. ID 테크놀로지의 등장 이후, 내림세를 면치 못했던 매출액이 절벽을 만난 것처럼 뚝 떨어졌다.

89년도는 마이크로소프트에 최악의 해로 기록될 해가 될 것이 확실해졌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침몰하는 것과 반대로 부상하는 회사도 있다. 당연히 그 회사는 유재원의 ID 테크놀로지였다.

신제품은 그저 저번 달 배포된 안드로이드 알파의 첫 번째 패치 하나뿐이지만, 전반적인 제품들이 상승 곡선을 그리면서 매출액을 늘려가고 있었다.

가장 잘 나가는 건 ID 오피스였다.

ID 오피스의 암호 체계인 AES-256를 제임스 어거스틴이 기가 막히게 사용하면서 다시 한 번 주가를 올렸다.

이미 ID 오피스 시큐리티 챌린지나, 미국 연방정부의 정식 채용으로 이름값이 높아진 ID 오피스였다. 여기에 악명 높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보안팀도 무력화했다는 소리에 ID 오피스를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키보드 워리어에서 시작해 울펜슈타인까지 고성능을 요구하는 게임의 대히트로 486의 보급 속도도 예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인텔의 486뿐만이 아니라 AMD나 사이릭스 같은 호환 CPU 업체도 발 빠르게 준비하면서 사용자들은 저렴한 가격에 고성능의 CPU를 맛볼 수 있었다.

486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내 주는 안드로이드 알파는 고성능 컴퓨터의 보급과 맞물려 빠르게 점유율을 넓혔다.

아직 배포금지 처분은 풀리지 않았지만, 방법은 다 있었다. 작은 커뮤니티를 구성한 사용자끼리 알음알음 주고받는 중이었고, 불법복제 업자들도 물 만난 고기처럼 열심히 활동하면서 안드로이드 알파의 점유율을 높이는 데 보탬이 되고 있다.

델이나 컴팩처럼 대규모 완제품 업체에서도 판매금지 처분만 풀리면 안드로이드 알파를 기본 탑재한 모델을 출시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에그 PC는 이미 예약이 다 끝나서, 삼보컴퓨터가 생산공장 증설을 완료할 때까지는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상태였다.

오죽하면 이제 인기가 확연히 시들해진 키보드 워리어까지 다시 팔렸다. 악의 제국 마이크로소프트와 싸우는 ID 테크놀로지를 응원해야 한다며 사주는 거다.

올해 연말 결산할 때, 얼마나 큰 수익이 나올지 기대가 되는 대목이었다.

이렇게 시끌벅적한 가운데, 아직 끝나지 않은 축제가 있었으니 ID 오피스 시큐리티 챌린지였다.

12월 초를 지나 중순에 접어들었지만, 그 누구도 AES-256의 취약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유재원이 도전을 받겠다고 배포했던 IDW 파일의 다운로드 횟수의 총합은 거의 1천만에 가까워졌음에도 그 견고함은 유지되었다. 미국과 캐나다는 물론 유럽과 동구권, 심지어 아시아의 보안 전문가들이 수많은 커뮤니티에 모여 집단지성을 이뤄냈음에도 견고했다.

해법을 찾지 못한 건 아니었다.

AES-256은 특정 명령어를 대량으로 사용하는데, 이를 전문적으로 수행할 가속 칩을 만들어서 풀어내면 된다는 결론을 낸 팀도 있었다.

정답이다.

대신 486이나 다음에 나올 펜티엄으로도 부족하다. 최소한 연산 전용 GPU를 수천 개씩 병렬로 연결한 슈퍼컴퓨터라면 도전해볼 만하다.

물론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양자컴퓨터지만, 그건 먼 미래의 일이다. 게다가 양자 컴퓨터가 나오면 양자 암호로 보호하면 그만이다.

이처럼 축제 분위기의 ID 테크놀로지에 마지막 화룡점정이 남았으니 올해의 마지막 날. 시큐리티 챌린지의 종료를 선언하는 자리였다.

시큐리티 챌린지가 어마어마한 규모로 커진 만큼, 종료 선언 역시 성대하게 꾸미기로 했다. 게다가 해가 바뀌는 해피 뉴 이어 축제와도 겹치게 되었기에, 그 규모는 웬만한 대도시가 꾸미는 새해 축제와 맞먹었다.

90년대의 시작과 함께 ID 테크놀로지의 이름을 세계인의 머릿속에 확실히 기억될 것이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드디어 작은 산 하나를 넘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나올 녀석 중 제일 약한 녀석이일 따름이죠~ㅎㅎ

곧 90년대로 진입하는데, ID의 폭발적인 성장을 재미있고, 호쾌하게 그려나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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