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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117화 (117/1,007)

[117] 정보고속도로(Information Super-Highway) ==============================

#72-2

방문한 지, 10분쯤 후.

1층짜리 매장이라서 오래 둘러볼 이유가 없었다. 재고의 관리나 그날의 마감은 레밍턴이 잘 관리하고 있었기에 유재원이 나서서 창고를 뒤져볼 이유도 없었다.

대신, 오늘은 점심시간엔 완전히 문을 닫고 다들 스테이크 하우스로 가서 한턱 쏘기로 했다. 이러다가 사장이 방문하면 스테이크 파티가 벌어진다는 전통이 생길 것 같다.

"잘 부탁해요."

그렇지만 유재원까지 스테이크 하우스로 가진 않았다.

"예, 다들 배부른 고양이처럼 만들어주고 오겠습니다."

스테이크를 쏘는 건 레밍턴에게 맡기고, 유재원과 김대식은 맨해튼 플래그쉽 스토어 2층의 사무실로 올라갔다.

이곳에는 아는 사람만 아는 지극히 비밀스러운 사무실이 있다. 바로 ID 인베스트먼트의 맨해튼 사무실이다.

말은 거창해도 실상은 플래그쉽 스토어 사무실에 딸린 작은 방 하나가 전부였다.

땅값은 물론 사무실 임대료도 비싼 맨해튼이었기에, 별다른 조직 구성이 되지 않은 ID 인베스트먼트는 플래그쉽 스토어에 얹혀 있는 게 여러모로 효율적이었다.

그렇지만 플래그쉽 스토어와 ID 인베스트먼트는 오너만 같지, 업무적으로는 완전히 분리된 회사였다.

“안녕하세요? 그린힐 씨. 직접 보는 건 처음이죠?”

“예. 역시나 상상 이상으로 젊으시군요. 하지만 텔레비전으로 많이 봐서 그런지 저는 사장님의 모습이 매우 익숙하기도 합니다.”

유재원이 악수하는 백발의 노신사가 바로 ID 인베스트먼트 맨해튼 사무실의 유일한 직원인 빈센트 그린힐이었다. 레밍턴을 통해 수색된 3명의 중개인 중에, 유일하게 ID 인베스트먼트와 계약한 인물이다.

“칭찬으로 알겠습니다.”

“당연히 칭찬이지요. 어디 사장님만 한 나이에 이렇게 전국적으로……, 아니 전 세계적으로 파문을 일으킨 위인이 또 있습니까?”

직접 보는 건 지금이 처음이지만, 그전에 전화 통화도 몇 번 해서 그런지 이야기가 잘 통했다.

친근하게 악수한 후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투자 결과가 궁금하시지요?”

자리에 앉자마자 빈센트 그린힐은 본론부터 꺼냈다.

물론이다. 지당한 소리였기에 유재원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러자 빈센트는 책상에 있던 에그 PC를 한 손으로 들고, 다른 한손엔 키보드와 마우스를 잡아 위치를 옮겼다.

전원이 켜진 상태였고, 당연히 안드로이드 알파의 바탕화면이 띄워져 있었다.

"이 녀석이 오고부터 일하기가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그린힐은 능숙하게 마우스를 조작해서 바탕화면의 ID 오피스 스프레드시트 아이콘을 더블클릭했다. 그러자 일자별로 깔끔하게 정리된 투자결과 보고서가 나타났다.

무척이나 꼼꼼한 자료였다.

석유 선물에 투자하라고 보내준 10만 달러가 7만9천 달러까지 내려온 과정도 세세했고, 이후 유재원이 또 10만 달러를 추가로 보태준 것까지 기록되어 있었다.

워낙 양이 많아서 스크롤을 몇 번 해야했다. 그러자 17만9천 달러의 잔고가 점차 불어나는게 보였다.

5페이지 정도를 더 내리자, 드디어 마지막 숫자가 나왔다.

“32만5천 달러입니다.”

90년 1월 2일자, 현재 잔고를 자랑스럽게 말하는 빈센트 그린힐이다.

변동성이 큰 석유 선물에서 2배 가까운 수익을 올린 것에 대해 충분히 자랑할 일이었다.

“와, 기대 이상이네요.”

유재원도 진심으로 기뻐했다.

연말까지 유가가 상승할 거라는 언질을 주긴 했다.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얼마까지 오를 거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막연히 오를 거라는 정보 하나만 가지고 두 배에 가까운 수익을 낸 건 실력이 탄탄하다는 방증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유가가 상승한다는 쪽으로 투자를 집중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주관이 확실한 사람이라면 설득에 애를 먹을 텐데, 이 점에 있어 그린힐의 성향은 유재권에게 딱 맞았다.

“투자 원금이 20만 달러였으니 12만5천 달러가 수익이군요?”

“그렇습니다. 사장님의 언질 덕분이죠.”

“실제 운영한 분은 그린힐 씨니까. 공은 반반이라고 하죠. 그러니 반으로 뚝 잘라서 6만2천5백 달러를 그린힐 씨의 보너스로 드리겠습니다.”

“예에?”

미국은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다. 그렇기에 1990년도 1인당 GDP는 3만5천 달러라는 엄청난 액수를 자랑한다.

이는 인구 평균이니, 상위 10%의 고소득자라면 평균의 2, 3배에 이르는 소득을 올린다는 이야기다. 그린힐의 경우도 ID 인베스트먼트의 선물투자 매니저라는 명목으로 상당한 연봉을 받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6만2천5백 달러라는 보너스를 또 받을 줄은 몰랐다.

이렇게 따지면 투자 원금 빼고 나머지를 다 그린힐이 받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자신이 하는 일에 비해 너무도 큰 소득을 올리는 것 같았다. 설마 뭔가 특이한 금융 범죄에 연루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대신 앞으로 그린힐 씨께 좀 무겁고도 막중한 임무를 드리려고 합니다.”

“막중한 임무?”

빈센트 그린힐은 막중한 임무라는 말에 다시 차분해졌다.

선물거래의 경험이 많은 그였다. 앞으로 나올 유재원의 말을 어느 정도 예상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ID 테크놀로지의 레밍턴에 헤드헌팅 되어 ID 인베스트먼트의 소속이 되었고, 10만 달러의 운용자금을 주고 석유 선물에 투자해보라고 했다. 물론 돈을 받기 전에 여러 엄포가 담긴 계약서에도 사인하고, 자신의 개인 정보를 회사에 제출해야 했다.

합법적인 절차였고, 고용 계약서도 확실했다.

돈 많은 누군가의 변덕에 의해, 아니면 뒷골목 범죄조직의 뭔가 이상한 행동에 연루된 것은 분명 아니었다.

“혹시 이번에도 석유 선물 투자입니까? 그러면 지금보다 굴리는 돈이 좀 더 많아지겠군요.”

유재원은 빈센트 그린힐의 물음에 조금 놀라면서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정답입니다!”

그린힐의 추리는 간단했다.

ID 인베스트먼트의 주인은 작년 겨울부터 새해 벽두까지 미국 전역을 한 손에 쥐고 흔든 유재원이라는 젊은 천재 사업가였다. 무엇보다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소송에서 2억 달러의 배상금을 받아내지 않았던가.

2억 달러!

이 액수는 이제까지의 기업 간 손해배상 소송의 배상금 기록을 모두 갈아치우는 신기록이었다. 그만큼 돈이 많은 사람이, 석유 선물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다.

그렇다면 답은 딱 나온다.

“저는 올해의 석유 선물 시장에 매우 급격한 시세 변동이 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어요.”

“상승으로 말이지요?”

“네! 하지만 일시적으로 크게 뛴 가격이 계속 유지되진 않을 거예요. 개구리가 팔딱 뛰었다가 내려오는 것처럼 정점을 찍은 후, 이전의 수준으로 급격히 돌아오는 거죠.”

일시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선물시장에서는 급격한 가격의 변화는 엄청난 변수를 일으킨다. 빈센트 그린힐만큼 그걸 잘 아는 사람은 이 자리에 또 없다.

유재원의 말이 맞는다면 정말, 엄청난 이익을 한 방에 거둘 수 있다. 물론 선물 시장은 완벽한 제로섬게임 시장이니 누군가는 막대한 손해를 볼 거다. 하지만 원래 선물 시장이란 그런 것이다.

누군가의 손해는 누군가의 이익이다.

“그래서 여름이 지나기 전까지 총 1억 달러를 석유선물 시장에 투자하려고 합니다.”

“헉!”

그린힐은 예상은 했지만, 예상을 뛰어 넘는 숫자를 듣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뉴욕증권선물 거래소에서 수십 년의 경력을 쌓았던 빈센트 그린힐이었다. 그런 그가 중개했던 거래 대금은 억 단위는 쉽게 넘어간다. 하지만 그건 모두 대형투자회사들의 거래를 중개했던 것이지, 직접 자신이 선택한 포지션이나 상품에 직접 투자하는 건 아니었다.

물론 빈센트 그린힐도 자신의 개인 자금으로 사적인 판단으로 투자를 해봤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게 좋진 않았다. 뼈저린 손실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능력을 확인한 그는 상품을 파는 것 대신 중개에만 집중했다.

“물론 한 방에 1억 달러를 다 투자하는 건 아닙니다. 처음엔 3천만 달러를 넣고, 여름쯤 나머지 7천만 달러를 넣을 예정입니다.”

89년까지는 약간의 상승 분위기였던 유가는 90년대 초에는 하락을 시작한다. 현재 유가는 1배럴당 22달러를 조금 넘는 가격인데, 여름까지는 18달러를 밑돌 정도로 꾸준히 내려온다. 그러다가 전쟁이 터지면서 급격히 상승하는 것이다.

그 전쟁은 바로 미국식 현대 전쟁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전 세계에 보여준 걸프 전쟁이다. 특히 연합군의 가장 큰 공세였던 사막의 폭풍 작전은 국민학생도 다 알만큼 유명한 군사 작전이었다.

동시에 전쟁을 현장에서 중계했던 CNN도 급부상했다. CNN이 현장에서 직접 전하는 화면은 그대로 안방에 전해졌기에, 참혹한 전쟁이 스포츠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판단하신 근거를 물어도 될까요?”

반면 빈센트 그린힐은 유재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질문을 던졌다.

블룸버그 통신을 통해서 유료로 받는 석유 선물 차트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석유 가격이 그렇게 뛸 것이란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헤헤, 설명을 해드려도 쉽게 이해하실 수 없을 거예요. 시장 외적인 요소 때문에 나온 결론이거든요. 그러니 차트를 아무리 봐도 징조는 찾을 수 없는 거예요.”

“예? 시장 외적 요소라니요?”

“미국의 경기는 언제나 탄탄하죠. 세계의 경제도 완만한 우상향을 그리면서 성장하고요. 당연히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는 대부분 석유에서 나오고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원유 공급에 이상이 생긴다면 어떨까요? 찾는 사람이 많으면 물건값은 당연히 상승하지 않겠어요?”

“원유 공급에 이상이라니. 설마 오펙이 생산량을 감산한다는 말인가요?”

그건 1차 2차 오일 쇼크 때의 이야기다. 3차 오일 쇼크는 미래에도 없다.

오펙에 크게 당한 미국이나 유럽이 오일 쇼크로 크게 당한 이후로, 오펙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중동을 벗어나 세계 각지에서 해상 유전이나, 셰일 가스 등등 개발을 활발히 했다. 동시에 중동에 친미, 친서방 국가를 만들기 위해 온갖 지원을 다 기울였다.

“에이, 그건 아니에요. 지금은 말해드릴 수 없지만, 유가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사건이 벌어질 거예요.”

속 시원하게 걸프 전쟁이 벌어질 거라고 말해주고 싶은 유재원이다. 하지만 지금도 상상 못 할 일을 하고 있는데, 미래까지 정확히 예견하는 걸 보여주는 건 무리였다.

그저 두루뭉술하게 설명하고, 결과로 보여주는 게 최선이다.

“그린힐 씨는 석유 선물과 콜옵션을 가지고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게, 레버리지를 최대로 이용한 포지션을 만들어주세요. 그리고 대박이 터지면 세금도 많아질 테니, 최대한 절세하는 방법도 필요해요. 혹시 사람이 더 필요하면 미리 레밍턴에게 말해 놓으세요. 신원 조회 때문에 바로 채용되지 않으니 미리미리 말해놓는 게 좋을 거예요.”

“예? 아, 네! 알겠습니다.”

1억 달러도 막대한 돈이었지만, 그걸 선물과 콜옵션에 모조리 투자한다는 것도 상상 못 할 일이었기에, 빈센트 그린힐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게다가 세금 운운하는 걸 보니 수익을 낼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는 게 딱 보였다.

그렇지만 이번 임무가 그린힐에게 어려운 건 아니었다. 상승 포지션 하나로 이렇게 많은 돈을 투입하는 건 처음이지만, 석유 선물이나 옵션을 사는 건 많이 해봤던 일이었다.

다만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심지어 투자가 성공하더라도 얼마나 수익이 생길지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시장 상황에 따라 이익금의 규모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반면 투자가 실패했을 때는 바로 답이 나온다. 0달러다.

극단적인 포지션이니 1억 달러를 투자해 사들인 콜옵션은 휴짓조각이 될 거고, 석유 선물은 마진콜이 들어와서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손에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준비가 끝나면 서울지사로 연락 주세요. 서류 확인 후에 1차분 3천만 달러가 입금될 테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빈센트 그린힐은 이런 자신의 모습이 신기했다.

상식적으로 뜯어말려야 할 투자였다. 하지만 상대는 평범한 이도 아니고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유재원이다.

“아, 그리고 이번 투자는 보안에 최대한 신경을 써주세요. 1억 달러가 투입되는 시점에는 시장에서도 모를 수 없게 되겠지만, 그전까지는 유출되면 안 돼요.”

“물론입니다.”

당부의 말에 빈센트 그린힐도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거대한 작전을 함께하는 기분이다. 동시에 1억 달러나 되는 큰돈을 자신의 손으로 움직여 본다는 설렘이 그의 심장을 더욱 힘차게 뛰게 하였다.

유재원과의 대화는 1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마무리되었지만, 빈센트 그린힐은 10년은 젊어진 느낌이다.

빈센트 그린힐과의 은밀한 대화로 뉴욕에서의 일정은 다 끝났다.

맨해튼 플래그쉽 스토어도 잘 돌아가고 있었고, 빈센트 그린힐의 신뢰도 확인했고, 중대한 과제도 순조롭게 맡길 수있었다. 그린힐이 거부했다면 복잡해질 일이었는데, 참 다행이다.

이제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하루 정도 속 편히 쉬면서 쇼핑도 즐긴 다음, JFK 국제공항에서 서울로 가는 직항을 타고 귀국하는 것만 남았다.

뭔가 곤란한 표정의 레밍턴이 나타나기 전까지의 유재원의 계획이었다.

“보스, 아무래도 내일의 일정 중 몇 가지를 좀 조절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데요?”

“헤리티지 재단의 에드윈 풀러 이사장이 보스와 꼭 만나보고 싶다고 합니다.”

응? 헤리티지 재단?

미국 정치경제 분야 최고의 싱크탱크가 헤리티지 재단이다.

매우 보수적인 성향이고, 그렇기에 미국 공화당과 밀착된 관계다. 특히 로널드 레이건 때가 절정이었다.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규정하게 했고, 말 많은 스타워즈 계획도 이들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워낙 상식적인 사항이라서 기억의 궁전까지 들어갈 필요도 없이 바로 헤리티지 재단에 대한 정보들이 떠올랐다.

에드윈 풀러는 1977년부터 2013년까지 이사장을 역임했던 헤리티지 재단의 최장기 이사장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한국에도 재벌과 정치인과도 제법 친분이 깊은 사람이다.

부시 정권과도 매우 끈끈한 관계이니, 한창 바쁠 텐데, 뜬금없이 미팅 신청이라니.

‘설마?’

짐작이 가는 사안이 있긴 한데, 강한 확신이 드는 건 아니다.  아, 그런데 왜 이런 고민을 하지라는 생각이 드는 유재원이다. 그냥 레밍턴에게 물어보면 되는 거잖아!

명색이 전직 탐정이신 레밍턴인데, 용무도 안 물어보고 보고하진 않을 거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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