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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131화 (131/1,007)

[131] 사막의 폭풍 ==============================

#79-2

그렇기에 유재원이 생각한 방식은 모뎀의 임대였다.

비싼 모뎀을 사용자가 구매하는 게 아니라, 월 몇천 원 정도의 작은 금액의 임대료를 받고서 장기로 빌려주는 거다. 또한, 모뎀 제조사에 대량의 주문을 넣어서 생산 원가를 낮추는 것도 유용한 방법인데, 이미 1만 개를 주문해놓은 상태다.

여기에 ISDN 사용료도 액수도 흥행에 중요한 요소였다.

문제는 이 사용료라는 것도 데이콤이나 체신부에서 마음대로 정할 수 없고, 한국통신과 협의가 있어야 했다.

ISDN이 전화선을 사용했고, 중요한 장비도 한국통신 지사에 넣어서 운영해야 했던 탓이다.

한국통신은 회선의 사용 시간만큼 돈을 받는 종량제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었고, ID 테크놀로지는 얼마를 사용하든 정해진 요금만 내면 되는 정액제를 주장하고 있었다.

돈이 걸린 사안인지라 무척이나 첨예한 대립이 일어나고 있어서, 쉽게 결판이 날 것 같지 않았다.

이러한 요소를 다 고려해서 넥스트컴의 정식 서비스 일정을 계산해 보면 대략 4월 말, 아니면 5월 초가 유력해 보인다.

열심히 일하고 먹는 식사는 참 맛있다. 게다가 유재원은 한국까지 날아온 두 인재를 위해서 이탈리안 요리사가 쉐프로 있는 호텔 레스토랑으로 잡았기에, 더욱 꿀맛이었다.

“한국이 정말 부럽습니다.”

“저도요!”

차려진 음식을 반쯤 먹었을 때, 팀 버너스리와 머레이 캠벨이 한목소리로 말했다.

“풉!”

가만 듣고 있던 유재원은 순간 실소가 터져서 입에 든 물을 내뿜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이다. 스테이크 조각이라도 먹고 있었으면, 난장판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유재원은 급히 냅킨으로 흩어진 물방울을 닦았다. 그다지 많은 양은 아니어서 금방 수습할 수 있었다.

“정보고속도로 예산이 무려 350억 달러라니. 상상이 됩니까?”

“국가 차원에서 정보고속도로 사업도 직접 주도한다고 했죠? 게다가 그게 또 사장님의 칼럼을 통해 결정된 거고요.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사업자 의견을 경청하는 건 미국에선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하여튼 둘의 착각이 너무 심했다. 덕분에 실소가 터지지 않을 수가 없다.

크게 질러놓긴 했는데, 과연 그게 얼마나 투자될지, 어떤 방식으로 투자될지는 아직 확정된 게 하나도 없다.

무엇보다 유재원은 한국의 진짜 속사정이 그렇게 빨리 바뀌는 건 아니라는 걸 직접 체감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얼마 전 통신서비스업으로 넥스트컴에 대한 사업자 신고를 완료했을 때, 위에서 전화가 한 통 왔다.

안기부였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넥스트컴에서 무엇이든 열람할 수 있는 슈퍼 계정을 여러 개 요구하는 것이었다. 안보에 위해를 가하는 사람들을 잡아내기 위한 국내 방첩활동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통신망 검열을 자기들이 직접 하겠다는 것이다.

PC 통신 검열은 케텔 시절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90년대 말까지 이어지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활동이었다. 오죽하면 문민정부가 들어선 다음에도 정부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고 잡아가는 일이 있었을 정도다.

안기부만 슈퍼 계정을 요구한 것이었으면, 유재원의 불만이 폭발하진 않았을 거다. 안기부를 시작으로 경찰, 검찰도 요구했고 체신부의 통신유리위원회도 있었다. 당연히 기무사도 빠지지 않았다.

유재원이 케텔에 활동할 때, 채팅만 조금 하고 특별히 게시글을 올리지 않은 것도 이러한 사정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지만,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주기로 했다. 법이 그렇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기통신 사업법 제53조 불온통신의 단속 조항이나 동시 시행령 제16조가 현행 법령이었으니, PC 통신이나 인터넷처럼 전기통신을 사용하는 서비스는 거부할 권한이 없다.

이런 것들은 국민이 나서서 바꿔주지 않으면, 유재원 혼자 저항해도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국민의 의식 상승은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었으니, 유재원은 당장은 현실에 맞춰 사업하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여튼, 유재원은 두 사람의 착각을 수정하진 않았다. 이들이 한국과 자신에게 호감이 클수록 영입하는 데도 수월할 테니 말이다.

“미스터 유, 이걸 제가 발표해도 되겠습니까?”

팀 버너스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바로 WWW와 HTML의 발표를 팀 버너스리에게 전적으로 일임했기 때문이다. 26일 한국에 와서 며칠간 머릴 맞대고 깊이 있는 논의를 통해 WWW 서비스 시작을 위한 모든 기술적인 개념 설정을 다 끝냈다.

여기엔 팀 버너스리의 아이디어도 상당했지만, 유재원의 의견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특히 URL이라는 인터넷 주소 체계 구성에서 DNS, 도메인 네임 시스템이라는 걸 제안한 건 획기적인 것이었다.

8비트 숫자 4개로 이루어진 IP 어드레스는 오로지 숫자뿐이라서, 서비스를 제대로 구별할 수가 없다. 외우기도 힘들다. 그러니 영문으로 된 단어로 주소를 구성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 팀 버너스리의 생각이었다.

유재원은 인터넷의 영문 주소를 모두 외워놓고 요청이 오면 곧바로 IP로 변환해주는 서버를 고안해냈다.

DNS가 없으면 사용자가 최초의 접속 때는 URL과 IP를 수동으로 매칭을 시켜야 했는데, 그 작업을 자동으로 해주는 것이다.

이 밖에도 WWW용 브라우저인 ID 웹의 소스코드도 공개해주었고, 하이퍼텍스트용 언어인 HTML에도 큰 힘을 보탰다.

팀 버너스리는 이러한 공을 생각하면 유재원이 나서서 발표하는 게 좋을 것 같았는데, 유재원의 생각은 확고했다.

“넥스트컴을 비롯해 신규 사업 진행하는 게 많이 밀렸어요. 게다가 WWW의 아이디어는 작년부터 팀 씨가 주장했던 거잖아요. 원작자인 팀이 발표하는 게 정답입니다.”

애초에 WWW의 원작자는 팀 버너스리였다.

그의 업적에 이 정도로 숟가락을 얹은 거로 충분히 만족하는 유재원이었다. 게다가 본인이 했던 말처럼 당장 진행할 사업이 무척이나 많은 ID 테크놀로지였다.

넥스트컴도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열어야 했고,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항소심도 진행 중이었다. 돈을 내주기 싫은 마이크로소프트 측이 엄청난 지연 전술을 쓰고 있는데, 그대로 두면 몇 년은 끌릴 것 같다. 지연 전술을 무력화하고 재판을 최대한 빨리 끝내기 위해서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여름부터는 ID 인베스트먼트의 석유 선물 투자가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투자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라서, ID 인베스트먼트의 투자금을 곧 유치할 생각인데 회사에서 가장 큰 지명도와 유명세가 있는 인물은 유재원뿐이었다.

“예.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최선을 다해 WWW를 세상에 알려보겠습니다. 그래도 혹시 부족할지 모르니, 그때는 작은 도움이라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요. 당연하죠.”

팀 버너스리가 WWW를 발표하고 나서 대략 3, 4년은 지나야 웹이 활성화되었다. 유재원은 이보다 2년 정도 앞당기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면서도 IT 버블이 터지는 건 원래의 시점으로 늦추는 것이 유재원에겐 최고의 결과였다.

원래 역사보다 빠른 인터넷 보급을 위해서라면 뭐든 적극적으로 협력할 준비가 된 유재원이었다.

“IBM도 WWW 보급 사업을 지지하겠습니다!”

머레이 캠벨도 적극적이었다.

인터넷에는 이제껏 흥미를 보이지 않았던 머레이였다. 그런데 유재원과 팀 버너스리가 구현한 기술을 보고 나서 WWW에 엄청난 잠재력이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텍스트 파일로 만든 문서인데 ID 웹이라는 브라우저를 통해 보면 초보 사용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모습으로 탈바꿈되는 건 참 신기한 모습이었다. 더구나 시스템이 달라도 HTML이라는 언어를 읽을 수 있게 만든 브라우저를 쓰면 똑같은 결과가 출력된다.

통이 큰 유재원이 ID 웹의 소스코드를 공개해줬기에, IBM이 출시한 여러 컴퓨터에 맞춘 브라우저를 개발하는 것도 수월해졌다.

신기술에 대해 일찍 대응하는 건, IBM의 지위를 공고히 할 일이었으니, 회사의 경영진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거라고 기대하는 머레이 캠벨이었다.

“고맙습니다. ID 테크놀로지에 IBM까지 지원해주면 WWW는 훨씬 일찍 대중화가 될 것 같네요.”

“뭘요. 다 나 좋자고 하는 일이죠.”

머레이 캠벨은 인터넷의 기반이 되는 초고속 네트워크 기술이 병렬 처리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도 확인한 것이다.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은 ID 테크놀로지의 미래 먹거리 중 하나였기에, 머레이 캠벨에게 특별한 언급을 해준 적이 없었다. 하지만 IBM이 자랑하는 인재였기에 하나를 보면 열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기초적은 개념을 깨달은 모양이다.

그나마 머레이 캠벨의 현재 목표는 며칠 전 깨끗하게 완패한 체스 경기의 리벤지 매치였다. 이번에 살짝 맛을 본 네트워크를 이용한 분산처리 기술로 깊은 생각(Deep Thought)보다 강력한 컴퓨터를 만들어 챔피언 카스파로프에게 도전하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아, 아쉽네.’

유재원은 각자 다른 생각으로 가득한 팀 버너스리와 머레이 캠벨을 보고 입맛만 다셨다. 그림의 떡이라는 게 바로 지금의 경우를 말하는 거다.

둘은 세기에 남을 인재였다.

더구나 유재원과 ID 테크놀로지에도 큰 호감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은근한 말로 ID 테크놀로지로 올 생각은 없느냐는 제의를 해보기도 했다. 돌아온 대답은 정중한 거절이었다. 두 사람 모두 지금 하는 일이 너무도 좋았고, 해보고 싶은 것도 확실했던 탓이다. 그나마 여지가 있다는 게 아쉬움을 조금 줄여주었다.

즐거운 시간은 쏜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팀 버너스리와 머레이 캠벨은 푸짐한 선물을 안고 고국으로 돌아갔고, 유재원은 서울에 남아서 메인프레임의 성능을 넥스트컴 서비스와 회사 업무용 네트워크에 최적화하는 작업도 하고, 최강욱에게 관련된 보고를 받으면서 전술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3월 2일이 되었다.

중학교 입학식이 있는 날이다.

작은 깨달음 덕에 중학교에 열심히 다니겠다는 생각이 옅어진 유재원은 그다지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중학교로 등교했다.

학교에 갈 때, 그다지 밝은 얼굴은 아니었는데, 하교해서 집에 돌아오는 유재원의 얼굴은 더더욱 어두워졌다. 등교한 첫날 학교에서 뭔가 중대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 유재원의 얼굴에 예전에 없던 고민과 시름이 점점 짙어졌다.

입학식날부터 이어진 문제의 사건도 사건인데, 이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전생에 마스터플랜을 즐겁게 만들었던 때 상상했던 중학교 생활과는 너무도 달랐던 것이다.

아무래도 추억은 긍정적으로 기억되기 마련이었고, 여기에 덕진 국민학교에서 80년대 낭만을 품고 있던 은사까지 만난 덕에 현실과의 괴리감이 심해졌던 모양이다.

유재원은 나름 표정 관리를 한다고 했는데 부모님은 진작 알아보셨다. 하지만 아들을 깊이 믿고 있어서 일부러 물어보지 않았다. 역시나 인내심의 한계는 3월의 두 번째 주말까지였다.

“아버지, 중학교 이사장 해보시지 않을래요?”

주말, 부모님과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평소엔 잘 터트리지 않았던 뜬금포를 터트리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스토리 진행 방향을 쪽집개처럼 찍는 독자 님이 많아서 무섭네요~~!

그래도 어쩔 수 없죠! 일단 쭉 나가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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