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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132화 (132/1,007)

[132] 사막의 폭풍 ==============================

#80-1

유재원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 없었던 제3자들이 자신을 어떻게 봤는지 잘 몰랐다.

그저 젊은 컴퓨터 천재나 미국에서 성공한 사업가라고 생각하겠지 했다. 실제 대다수는 그랬다. 매스컴에서 한국이나 미국에 큰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집중 조명을 한 덕에 막연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는 걸 중학교에서 알게 되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호구다.

그러니까 노름판에서 타짜들에게 속절없이 털리는 그런 호구라고 중학교 선생들이 생각했다는 것이다.

입학식을 했던 날, 정규 식순을 잘 마치고 교실로 돌아가는 중에 유재원은 중학교 교장 선생의 부름을 받았다.

가보니 테이블에 과자와 콜라 등, 먹을거리가 세팅되어 있었다. 교장 선생은 아주 사람 좋은 미소로 유재원을 반기면서 간식을 내밀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말이, 학교의 건물이 너무 낡아서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체육관이 낡아서 아직 바람이 찬데 운동장에서 입학식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여긴 급식도 되지 않으니 부모님이 불편하실 거라는 둥, 이상한 이야기를 꺼냈다.

교장 선생이란 사람의 말에서 미사여구와 정중함을 빼면 그 의도는 너무도 뻔히 드러났다. 딱 잘라서 유재원보고 체육관과 급식소를 지어달라는 요청이었다.

뭐, 급식시설 정도는 유재원도 생각해 보고 있었다.

급식을 시행하면 부모님도 편하고, 유재원도 믿을 수 있는 재료를 통해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좋았다. 배를 굶은 아이들도 그들에게 마음의 부담을 주지 않고 도와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체육관은 아니었다.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하고 교실로 돌아왔는데, 학창 시절 역시 유재원의 상상과는 좀 달랐다. 시간만이 유일한 약인 중2병은 무서운 질병인데, 그 초기인 중1병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었다.

어디서 굴러들어온 녀석이 패거리를 이루더니 유재원을 향해 시비를 거는 게 아닌가.

유재원이 선생님들에게 시종일관 특별 대우를 받는 게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방과 후에 학교 뒤편으로 오라고 해서 유재원은 알았다고 했다. 설마 하고 가봤더니 주먹부터 날아왔다.

선수필승은 국민학교 시절에나 통용되던 방식이라는 걸 그 녀석들이 몰랐던 모양이다. 가볍게 막고 카운터를 날려줬다. 동시에 유재원을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경호원 두 분이 투입되어서 잘근잘근 밟아주었다.

교장 선생도 문제고, 질 나쁜 녀석들도 문제였는데, 학교 선생들이 정상이길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유재원에 대한 선생들의 편애는 지독할 정도였다.

선생님 한 분이 모든 걸 다 가르쳐주는 국민학교와 달리, 중학교부터는 과목마다 선생님이 있었다. 선생님마다 수업 방식이나 학생을 대하는 태도는 다 달랐다. 하지만 유재원에 대한 극진한 태도는 공통이었다.

매타작할 때, 단체 얼차려를 받을 때 유재원은 무조건 빠졌다. 물론 유재원은 입학생 중에 성적이 제일 좋았고, 선생님이 수업 중 물어보는 어려운 문제도 무리 없이 풀었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학생은 아니었다.

회사 일이 많아서 숙제를 안 해오는 일도 많았는데, 그래도 열외였다. 체육 시간에 구기 운동 대신 풀 뽑기를 시키는데 거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호의는 당연히 대가가 있었다. 선생들이 바라는 건 하얀 돈 봉투였다. 그런데 몇만 원 들어 있는 것으론 만족하지 않았다.

하도 이상해서 강찬호 부장을 시켜서 은밀히 알아보니, 유재원이 덕진 국민학교 선생님께 수천만, 수억 원씩 뿌렸다고, 자신들도 그 정도는 받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는 기가 찬 보고를 해왔다.

알고 봤더니 ID 테크놀로지의 배당금과 투자 환급금을 촌지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친구들이 매일 매타작을 당하는 꼴도 보기 싫었고, 본인을 호구처럼 생각하는 학교 교직원들도 싫어졌다. 입학식 날 자신에게 호되게 당해놓고도 정신 못 차린 불량한 녀석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정규 교육과정에 대한 욕구가 뚝 떨어진 상태였는데, 중학교에서 직접 겪은 환상의 쓰리 컴보 덕에 그 결단이 더욱 빨라졌다.

이딴 학교는 때려치우고 검정고시를 통해 빠른 진격 루트를 타겠다는 마음이 확고해졌다. 일찍 때려치우면 올해 8월에 있는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응하기로 했다. 아, 이때는 중졸 검정고시가 아니라 고입 검정고시라는 이름이었다. 말 그대로 고등학교 입학 자격이 있는지 검사하는 시험이라는 거다.

동시에 중학교의 이와 같은 행태를 더 보고 싶지 않았다.

유재원이 이번 생에 정한 삶의 방침 중 하나가 ‘모든 것에 관여할 순 없다. 대신 눈앞에 보이는 건 최선을 다하자’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덕진 국민학교에 급식도 했던 것이고, 수경이네 아버지도 도와줬던 거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비록 자신은 검정고시라는 빠른 루트를 탈 수 있지만, 남겨진 친구들이나 다른 반의 선량한 학생들이 학교의 횡포에 그대로 당해야 한다.

여기에 아버지의 푸념이 더해져서 학교 법인의 인수라는 결과가 도출된 것이다.

유봉만은 활동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작년에는 ID 인베스트먼트가 차려지고 아들의 일을 돕는다고 여기저기 정신없이 다녔다. 만나는 사람도 매번 바뀌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면서 인맥을 다지는 건 유봉만의 성격에 어울리는 활동은 아니었다.

작년엔 그나마 집안 사정이 확 달라져서 정신없이 스케줄을 치렀는데, 올해는 좀 부담이었다. 그렇다고 아들인 유재원에게 직접 말은 못하고 있었는데, 황재홍이 잘 포착해서 보고해준 것이다.

그나마 어머니인 김말숙은 활동적인 성격이었고,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셔서 ID 인베스트먼트의 활동에 부담을 느끼시진 않았다.

“그래서 나보고 학교를 경영하라는 거냐? 너 이 녀석, 아비가 국민학교만 나왔다는 거 까먹은 거지?”

분명 유봉만은 이사장 소리에 혹했다. 하지만 최종 학력이 국민학교라는 게 문제다.

중학교 이사장 자리가 혹하기는 하는데, 국민학교 졸업장만 가진 자신이 그걸 맡기엔 무리라고 생각했다.

“아버지, 이사장에 학력 제한은 없어요. 학교 운영은 교장과 교감 그리고 교직원들이 알아서 하는 거잖아요. 대신 이사장은 그들이 일을 잘할 수 있게 금전적, 인적 지원을 해주면 끝나요. 돈이 아버지 주머니에서 나오는데, 무시할 사람 하나도 없을 겁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일은 교직원들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단호히 처벌해서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지요.”

유재원의 설명에 유봉만의 얼굴에 혹하는 표정이 올라왔다.

“그런데 어느 학교 이사장을 하라는 거니? 설마 아들이 다니는 학교 말하는 건 아니겠지?”

이어진 어머니의 날카로운 물임이다.

덕분에 유재원은 자신이 학교에서 몇 주 동안 겪은 일에 대해 소상히 설명했다.

말이 이어질 때마다, 부모님은 크게 분노하셨다. 중학교생활이라는 게 국민학교 때처럼 마냥 편하진 않겠지만, 여긴 정도가 너무 심했다.

“세상에. 사실 네게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 예비소집하는 날에도 일이 있었단다.”

무슨 말인고 하니, 교문 앞에서 유재원과 부모님을 맞이했던 권 선생이 있었다. 그때는 자신을 임시 교사라고 했는데, 정작 입학식이 끝나고 1학년 1반을 맡은 담임 선생님은 또 달랐다. 그렇다고 인연이 뚝 끊어진 건 아니었다. 권 선생은 도덕 선생님이라서 일주일에 한 번은 본다.

“무슨 일인데요?”

설마 하고 물어보는 유재원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권 선생은 부모님께 학교 시설을 안내해드린다고 앞장섰는데, 이유가 다 있었다. 은근한 분위기를 잡으면서 촌지를 요구하려고 폼을 잡은 것이다. 부모님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따로 준비한 게 없었던 탓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주진 못하고, 자동차로 돌아가서 돈봉투를 만들어 줬다는 이야기다.

“세상에. 그래서 네가 여주중학교를 인수할 수 있는 거야?”

덕분에 부모님도 중학교에 대한 인상이 매우 나쁜 상태였기에, 유재원의 계획에 경청해주셨다.

“여주중학교는 사립이잖아요. 얼마든지 재단을 인수할 수 있더라고요. 게다가 재단을 소유한 이들은 목돈이 주어지면 바로 넘길 태세였어요.”

학교의 학풍은 교직원과 학생이 만드는 것이기도 했지만, 학교를 가진 사학재단의 입김도 받을 수밖에 없다.

여주중학교를 소유한 재단의 규모가 그렇게 크진 않았다. 학교용지와 학교 건물이 재단 재산의 전부였다. 거대한 사학재단처럼 엄청난 재산을 축적해놓은 곳과는 너무 달랐다.

사학재단의 꽃놀이패이자 돈줄은 대학교였다.

등록금은 물론 학비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싸고, 교육부가 지원하는 돈의 크기도 달랐다. 그런데 여주중학교 재단은 대학교는커녕 고등학교도 가지지 못하고 있었기에 다른 사학재단처럼 축재하지 못한 상태다.

유재원은 이미 강찬호와 최강욱을 움직여서 재단 이사장과 접촉을 해본 상태다.

최강욱 비서실장은 유재원의 사정을 알고는 무척이나 분개했다. 동시에 유재원의 취지에 공감했고, 재단 매입이라는 통 큰 해결책을 실현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그렇다고 무조건 값을 높이 부르는 식은 아니었다.

구매하려고 조바심을 보이면 파는 사람들은 가격을 높이 부르는 게 당연했으니 말이다. 유재원도 자신이 애써 벌어들인 돈을 쓰레기 같은 학교를 만든 재단에 퍼주는 건 절대 사양이었기에 최강욱에게 일임한 상태다.

수완이 좋은 최강욱이 선택한 방식은 저울질이었다. 여주에는 여주중학교 말고도 영세한 사학재단이 더 있었다. 그중에 덕진 고등학교가 돋보였다. 유재원이 나온 덕진 국민학교와는 상관없는 학교였다. 오히려 여주 중학교의 상태와 매우 흡사한 학교다.

최강욱은 비슷한 상태의 재단 두 개를 놓고 하나를 선택할 상황을 만들어 놓고 경쟁을 붙인 것이다.

사정을 모두 들은 유봉만은 잠깐 고민했다.

“알겠다. 해보마.”

고민은 오래 걸리지 않았고, 허락이 떨어졌다.

“그러면 내가 이사장이 되면, 썩은 선생들을 다 갈아치워도 되는 거지?”

유재원이 물려받은 성격은 아버지인 유봉만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고민은 최대한 짧게, 그렇게 내린 결정은 최선을 다해 이루는 뚝심은 유봉만이 원조였다.

“예! 바로 그게 제가 바라는 거예요! 제가 당했던 일을 다른 아이들이 또 당해선 안 돼잖아요. 청소가 잘 끝나면 장학사업에도 열심히 지원해드릴게요.”

아버지의 화통한 대답에 유재원의 얼굴에 서렸던 시름은 말끔히 날아갔다.

-유재원 자퇴!

-중학교에서 배울 게 없다!

-정규 교육과정, 천재의 뛰어남 감당하지 못해!

-올 8월, 고입 검정고시 응시 고려 중!

유재원 자퇴 소식은 신문을 통해 전국에 알려졌다. 회사나 개인 차원에서 보도자료를 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 같다.

유재원과 ID 테크놀로지가 워낙 화제이니 뒤를 밟고 있는 기자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여주중학교 인사가 기자에게 알렸을 수도 있다.

덕분에 여러 곳에서 전화가 많이 왔다. 국민학교 친구들은 기본이고, 덕진 국민학교의 은사님들도 계셨다.

친구들은 섭섭해 하기도 했고, 이해해주기도 했다. 섭섭하다는 녀석은 여주 중학교에 남겨진 주민이나 영식이었고, 그럴 줄 알았다고 하는 녀석들은 다른 학교에 진학한 아이들이었다. 덕진 국민학교 은사님들, 특히 교장 선생님은 정규 교육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유재원에게 큰 우려를 하셨다.

그렇지만 유재원이 충분히 고민하고 선택했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라고 강권하진 않았다.

여주중학교 재단의 인수도 급물살을 탔다.

가격은 대략 3억 원 선에서 맞춰지고 있다. 여주의 땅값이 아직은 바닥인 상태였고, 학교 건물도 연식이 오래되어서 비싼 값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도 중학교 재단을 통째로 인수하는 건데 3억은 너무 싸다는 말이 나올 거다. 그런데 여기에 유재원이 승계하는 재단의 빚이 3억이 있다.

재미있는 건 3억이란 큰 빚을 내준 곳이 이사장의 집안 어른이라는 거다.

일부러 부채를 만들어 놓고 학교로부터 고액의 이자를 받아가는 식으로 재산을 불렸다.

깔끔하게 인수하는 게 좋은 유재원은 빚도 단번에 갚기로 해서, 총 가격은 6억 원이다.

인수 절차는 교육청에 신고하는 것으로 빠르게 마무리될 것 같은데, 4월 중에 작업이 다 끝날 것 같다.

유재원의 아버지 유봉만은 점령군처럼 학교로 가서 각종 비리 자료를 수집 중이었다. 이사장 취임과 함께 비리로 얼룩진 교사들과 직원들의 퇴출과 고소를 즉각 진행하기 위해 사전 작업 중이었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자신들의 처지에 교사들은 어쩔 줄 몰랐다. 그중에 일부는 유재원의 집으로 찾아와서 무릎이라도 꿇고 싹싹 빌려고 했는데, 경호원들에게 막혀 유봉만은 물론 유재원과도 만나보지도 못했다.

========== 작품 후기 ==========

다음 편으로 가기 전에 강력한 추천 한 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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