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133화 (133/1,007)

[133] 사막의 폭풍 ==============================

#80-2

3월의 마지막 주.

여주시 교육계를 뒤흔들고 있는 유재원은 느긋하게 출근했다. 중학교에 등교할 때는 늦어도 7시 40분에는 집에서 출발해야 정시에 등교할 수 있었다.

8시가 딱 되면 교문 앞에 선도부와 학생주임 선생이 나와서 늦게 온 아이들을 잡아다가 얼차려를 주고 운동장 풀 뽑기도 시키는 것이다.

학교가 낡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땅의 기력이 좋아서 그런 건지 몰라도 그놈의 풀은 뽑아도 뽑아도 또 자라났으니, 제초 작업은 끊이지 않는 무한루프였다.

그나마 유재원은 자동차에 전용 기사도 있어서 편하게 오고 갔는데, 다른 아이들은 만원 버스에 몸을 구겨 넣어서 등교해야 했다.

지금은 다 옛이야기가 되었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네, 오늘도 일찍 나오셨네요!”

아침 9시에 출근을 하니 강찬호 부장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우르르 몰려와 인사하는 걸 반기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다른 직원들은 이미 제 할 일을 시작한 상태다. 강찬호 부장과도 짧게 인사하고는 유재원은 2층의 사무실로 올라갔다.

1층은 주로 패키지 제작과 배송에 관한 일을 처리한다면, 2층은 유재원만의 놀이터였다.

에그 PC 여러 대를 가져다 놓고 깊이는 얕은 칸막이와 책상으로 파티션을 나눠 놓았다. 그렇지만 일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PC방 같은 분위기가 나는 디자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중학생이 된 친구들이 학교를 마치고 찾아오면 같이 일도 하고, 게임도 하려고 이런 식으로 설정했다.

간식은 기본이고, 최신의 컴퓨터를 마음껏 만질 수 있기에, 유재원의 친구들은 거의 빠지는 법이 없었다.

친구들이 오려면 한참 멀었으니, 유재원은 컴퓨터를 켜고 업무를 시작했다.

부팅이 끝나자 곧바로 ID 톡을 실행해서 밤새 미국에서 올라온 보고서나 결재 문서도 확인하고, 개발팀 대화방으로 들어가서 주요 프로그램의 개발 현황도 살피는 일이었다.

시대는 90년인데 업무 처리의 방식은 21세기의 모습으로,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있음에도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문제없는 관리가 가능했다. 실리콘밸리 개발팀과 이런 정도인데, 서울 로데오 개발팀을 관리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오? 이것도 잘 처리 됐네?”

지금 유재원이 보고 있는 건, 서울 지사에서 처리 중인 넥스트컴 관련 경과보고서였다.

넥스트컴은 최초의 포털 사이트이자 차세대 PC 통신이란 타이틀을 위해 전력으로 준비하는 서비스였다.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행정적인 절차는 모두 끝나서, 당장에라도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는 단계였다. 하지만 아직 준비되지 않는 것들이 많아서 대기 중인데, 그중 하나가 신문 기사의 게재였다.

포털 사이트의 기능 중에 제법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뉴스였다.

그렇다고 넥스트컴이 기자를 고용해서 기사를 올리는 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기사를 신문사나 통신사에서 사서 올려야 하는데, 이 부분에 있어 여러 가지 계약과 정리를 해야 할 것이 많았다.

미국에선 레밍턴이 맡았고, 한국에선 최강욱과 로버트 하일이 신문사와 방송, 통신사와의 계약을 총책임지고 있는 상태다.

“역시 레밍턴이시네.”

지금 유재원이 보고 있는 건, 한국시각으로 오늘 새벽 레밍턴이 올리고 퇴근한 보고서였다.

길게 작성되었지만, 중요한 대목만 뽑아보자면 이름도 높은 뉴욕타임스와의 계약이 거의 성사 단계에 이르렀다는 보고다. 그 대신 ID 테크놀로지는 기사를 받는 대가로 월 20만 달러의 요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고 한다.

20만 달러라면, 한국 돈으로 1억4천만 원이니 제법 큰 돈이라 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에서도 비싸게 불렀다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계약을 체결한다면 주 1회 무료로 ID 테크놀로지나 넥스트컴의 광고를 신문지면에 실어주겠다고 했다.

레밍턴은 20만 달러는 너무 비싼 것 같다고 하며, 가격을 좀 더 깎아 보겠다고 보고서에 적어 놨다. 하지만 유재원이 보기에 20만 달러는 거의 헐값이었다.

뉴욕타임스가 생산한 양질의 기사를 받아서 넥스트컴으로 띄우는 것만으로 전 세계에서 사용자들에게 어필할 포인트였다. 이를 통해 유료 회원을 1만 명만 받아도 남는 장사가 된다.

무엇보다 21세기에 들어서면 뉴스 편집권이란 건 정말 강력한 무기가 된다.

인터넷 사용자 중에 뉴스를 뉴스 회사가 운영하는 웹 사이트에 가서 보는 사람은 얼마 없다. 대다수는 포털사이트의 첫 화면의 기사에서 보고, 그나마 시사에 관심이 있으면 뉴스 페이지에 가서 읽는다.

여기서 페이지에 어떤 뉴스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여론의 방향이 확 달라진다.

뉴욕타임스의 경영진도 거기까지 생각은 못 해본 모양이다. 그러니 넥스트컴에서 게시판에 어떤 식으로 기사를 올릴지는 ID 테크놀로지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조항에 100% 동의해줬던 것이다.

그나마 뉴욕타임스가 기사 전재에 대해서 요구하는 건, 임의로 기사의 내용을 수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나, 오보가 발생해서 뉴욕타임스가 이를 인지하고 수정하면 그것을 즉각 반영하라는 정도가 그들이 요구한 것이다.

“이 정도 요구에, 이 정도 가격이면 충분하지.”

유재원은 무리하게 가격을 깎을 필요는 없으니, 최대한 빨리 계약하라는 내용의 지시를 보냈다. 지금은 돈 몇 푼을 아끼는 것보다 시간과의 싸움이 중요했다.

넥스트컴의 오픈 날짜를 앞당기기 위해서도 있지만, 미국에서는 일이 빠르게 진척되는 데 반해, 한국 언론과의 접촉은 아직 지지부진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뉴욕타임스라면 지렛대로도 쓸 수 있지.”

이런 상황에서 뉴욕타임스가 미래를 먼저 내다보고 넥스트컴에 기사를 제공한다는 보도를 뿌리면 국내의 언론사들도 더는 내빼지 못할 것이다.

국내 언론들이 계약을 미루는 건, 넥스트컴에 자사의 기사가 올라가는 게 싫은 게 아니라 단가를 좀 올려보려는 지연 전술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뉴욕타임스와 계약이 완료된다면 한국의 언론사들도 전향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띠링~!

ID 톡을 통해서 대화 요청이 왔다는 알림이다. 확인해 보니 빈센트 그린힐이 보낸 것이었다.

-3월 성적표를 이메일로 보냈습니다. 이번 달은 선물 만기일도 있어서 표가 복잡합니다. 확인 부탁합니다.

금융상품 시장에서 옵션은 매달 만기가 되고, 선물은 분기마다 한 번씩 만기가 된다. 3월엔 둘 다 만기일이 있는데, 이 때문에 보고서 분량이 좀 늘어났다는 말이었다. 선물과 옵션에 대한 투자금이 많아지면 만기일에 변동성이 심해지니 유가 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지도 한다.

현재 ID 인베스트먼트의 유일한 투자 매니저인 빈센트 그린힐은 2월 초쯤에 입금이 끝난 3천만 달러를 석유 선물에 투자하는 중이었다.

처음엔 매일 투자 결과에 대해 보고를 했는데, 결과를 뻔히 아는 유재원은 일주일에 한 번으로 바꾸었다.

“알겠어요. 그런데 거기 지금 한밤중 아니에요?"

-예, 지금 보니 밖이 어둡긴 하군요. 매일 보는 거라 익숙합니다.

"세상에, 계속 이렇게 일했던 거예요? 우리 회사엔 야근 수당 같은 거 없는데, 쉴 땐 쉬세요!”

유재원은 ID 테크놀로지의 임금 체계를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었다.

기본급 조금 주고, 여러 가지 수당을 붙여서 챙겨주는 게 한국의 관행이었다. 퇴직금 문제도 있었고, 수당을 통해 월급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서 기업이 큰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야근을 시켜놓고 수당을 적게 주거나, 아예 주지 않는 식으로 불법 이득을 취하기도 좋았다.

매일 현금 흐름을 챙겨야 하는 유재원에게 이런 식의 임금 계산은 좋지 않았다. 기본급이 곧 월급 전액이 되는 식으로 싹 다 바꾸었다. 보너스의 경우엔 진짜 큰 성과가 나올 때, 아니면 명절날에만 챙겨주는 식이다.

몸값이 높은 빈센트 같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예, 저는 괜찮습니다. 늙으면 잠도 없다잖아요. 게다가 복잡한 계산은 컴퓨터가 다 해주니 얼마나 좋습니까. 이번 달에는 좋은 결과가 나왔으니 한 번 봐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는 데 챙겨보지 않을 수 없는 유재원이다.

ID 톡과 연동되는 메일함을 열어서 빈센트 그린힐이 보내준 파일을 내려받았다. 그렇다고 바로 열어볼 수는 없었다. ID 오피스가 자랑하는 최강의 보안기법을 통해 암호화된 문서라서 암호를 넣어야 했다.

석유 선물에 대한 투자는 최고의 보안 사안이었기에, ID 톡으로 나누는 대화도 보안 채널이었고, 주고받는 파일도 이렇게 암호화된 상태다.

암호는 곧 풀렸고, 파일이 열렸다. 확장자는 IDS, ID 스프레드시트로 작성한 파일이라는 의미였다.

“어라?”

시트를 살피던 유재원은 어째서 빈센트 그린힐이 이번엔 꼭 확인해달라고 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날짜별로 투자한 상품의 가치 변동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놀랍게도 석유 선물에 투자했던 돈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유가는 계속 하락하는 중이었으니 석유 선물의 가격도 내려가는 중이었다. 그러니 석유 선물 계약을 대량으로 체결했던 ID 인베스트먼트는 손해를 보고 있어야 한다. 유재원이 굳이 빈센트의 주간 보고서를 확인하지 않았던 것도, 손해가 뻔히 날 걸 알고 있었던 탓이다.

D데이는 8월이다.

그때까진 석유 선물은 머릿속 구석에 박아놓고 잊어버리고 있는 게 상책이었다. 어떻게 돈이 늘어났나 봤더니, 석유 선물을 매입한 만큼 풋 옵션도 상당한 숫자를 매수했던 것이었다.

풋 옵션은 하락에 배팅하는 것이니, 석유 선물 가격이 내려가도 그 이상의 이익을 풋 옵션으로 챙길 수 있다.

월 스트리트의 기본적인 투자 전략이었다. 하지만 옵션을 이용한 위험 분산이 마냥 좋은 건 아니다. 옵션 상품의 생명은 딱 한 달이다. 그 사이에 시장의 변동성이 옵션의 가격을 크게 바꿀 만큼 격렬하지 않으면, 옵션값만 날리는 것이다.

“아! 위험 분산을 영리하게 하셨네요?”

그렇지만 이번엔 훌륭했다. 헷지 기법이 제대로 발휘해서 손해가 아니라 수익이 생겼다.

원금이었던 3천만 달러가, 지금은 3천300만 달러에 조금 모자라는 정도까지 불어났다.

-예! 현재 원유 시장은 수요보다 공급량이 많은 수준입니다. 중동의 소문에 정통한 친구가 말하길 쿠웨이트가 오펙의 할당량을 무시하고 석유 생산량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매수 전략을 조금 바꾸시면 더욱 큰 이익을 거둘 수 있습니다.

어쩐지, 빈센트가 이 시간에 ID 톡을 보낸다 싶었다. 석유 선물 시장이 완만한 하향선을 그리고 있으니 투자 전략을 바꾸자는 이야기였다.

“아닙니다. 전략은 바꾸지 않겠습니다.”

유재원은 빈센트 그린힐과의 대화로도 중동에서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 전 그가 전송했던 문장에 그 열기가 있다.

지금 유가가 하락하는 건 쿠웨이트가 오펙의 합의를 무시하고 원유 생산량 증산을 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쿠웨이트의 원유 증산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나라가 바로 이라크다. 물론 이것 하나가 전쟁 발발의 결정적 원인은 아니겠지만, 이라크를 강렬히 자극하는 건 분명했다.

임계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드디어 본격적인 대목이 시작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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