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143화 (143/1,007)

[143] 뉴 프런티어 =========================

#85-2

-ID 인베스트먼트, 미국 실리콘밸리에 50억 달러 투자!

삼보컴퓨터가 노련한 여론전을 시작할 때, 여기에 발맞춰 유재원도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ID 인베스트먼트가 석유 선물시장에서 큰돈을 벌었다는 건 월 스트리트에 쫙 퍼진 이야기였다. 월스트리트는 과연 이 수익으로 ID 인베스트먼트가 무엇을 할지 예의 주시하는 중이었다.

신참자의 행운이라고 깎아내리는 인사도 있었지만, 키워드 분석이라는 획기적인 분석 기법을 도입해서 엄청난 대박을 올린 것이기에, 유심히 보는 곳도 많았다.

-첫 타자는 마이크로소프트!

-이사회가 인수에 동의하면 배상금 감면, 거부 시 적대적 M&A도 가능!

마이크로소프트의 오너인 게이츠와 스티브에게 보내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유재원이 한국의 공중파 방송의 특별 프로그램에 등장해서 ID 인베스트먼트의 내년도 사업 계획을 말하면서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이다. 그 날짜가 12월 23일이었으니, 딱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다.

유재원은 이뿐만이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좋은 기술을 가진 벤처기업에도 수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언론이 부각한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인수 제안이었다.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의 상황은 매우 나빴다.

여름에 점유율 과반이 붕괴했고, 이제는 완벽한 2등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2등도 1등인 안드로이드 알파와 경쟁하는 2등이 아니라, 무섭게 따라오는 3등과 경쟁하는 신세였다. 어마어마한 할인으로 미리 팔아치운 물량이 아니었으면, 진작 3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차세대 그래픽 인터페이스 운영체제인 윈도 3.0을 발매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못했다.

이미 안드로이드 알파라는 선발 주자가 확고한 지분을 가지고 있었기에 윈도 3.0에 열광하는 소비자는 얼마 없었다. 게다가 윈도 매니저라는 형태의 그래픽 인터페이스는 리본 인터페이스보다 직관성과 편의성이 떨어지는 디자인이었다.

원래 마이크로소프트는 리본 인터페이스의 장점을 그대로 계승한 형태의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만들기로 작정했었다. 실제로 거의 비슷한 형태의 인터페이스를 완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재판에서 지면서 예전처럼 독점의 지위를 남용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ID 테크놀로지는 찍어 누른다고 누를 수 있는 회사가 아니었다. 1심에선 처참하게 깨졌고, 그 여파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1심에서 결정적 증거로 작동한 음성 파일의 위법성을 따지고 있지만, 뒤집긴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리본 인터페이스를 그대로 베껴 탑재하는 건 스스로 자폭하겠다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는 구식의 윈도 매니저를 탑재할 수밖에 없었다. 자폭 대신 서서히 죽는 걸 선택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러한 요인 때문에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는 처참하게 박살 난 상태였다.

상승을 위한 펀더멘털이 하나도 없었고, 내년도 전망은 더더욱 처참했다. 89년 11월까지는 한 주당 가격이 1달러가 넘었다. 일명 지폐 주식이다. 그런데 바로 다음 달 폭락을 시작하면서 1달러가 붕괴했다. 동전주로 전락한 것이다.

미국 동전에도 종류가 있다. 25센트짜리, 10센트짜리 5센트짜리와 1센트짜리다. 90년 중반까지는 25센트 동전 3개 혹은 2개 사이에서 왔다 갔다면, 지금은 10센트짜리 2, 3개 사이를 오가는 중이다.

윈도 3.0이 처참하게 실패하고, 항소심에서도 패배가 확실한 지금의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식 하나를 5센트 동전 2, 3개로 살 수 있을 만큼 떨어질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회사의 사정이 어려워졌다는 걸 바로 보여주는 것이 대량 해고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것저것 벌려 놓았던 사업들을 정리하는 것도 모자라서, 신제품 개발에 꼭 필요한 개발자까지도 대량 해고하면서 극도의 긴축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재원의 50억 달러 투자 소식, 그리고 첫 타자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지목했다는 것은 1년 내내 추락하고 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를 기적적으로 반등시킨 호재였다.

ID 인베스트먼트의 발표가 있었던 직후,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는 순식간에 30% 이상 폭등하면서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ID 인베스트먼트의 자금이 마이크로소프트에 흘러간 건 아니었다. 적대적 M&A가 이뤄질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개인과 투기적 자본이 몰리는 것이었다.

최소 일주일 정도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진 혹은 이사회의 반응을 기다려봤다가 행동에 나설 작정이었다. 게다가 유재원에겐 당장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도 산적한 상태라서 다른 사안은 좀 뒤로 미뤄졌다.

새해를 맞이하기 3일 전인 12월 28일.

ID 테크놀로지와 ID 인베스트먼트 등, 미국에서 근무 중이던 임원은 물론 일반직 직원까지 100명이 넘는 인원이 전세기 편으로 한국에 입국했다. 언론에서도 ID 테크놀로지의 임원들이 한국에 처음 입국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대한 관심을 표시했다.

보통 연말에는 유재원이 미국으로 출장을 갔는데, 얼마나 큰일이면 이들이 반대로 입국하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자동차 사고 이후 한동안 집에서 칩거했던 유재원도 오랜만에 서울행을 했으니 벌써 매스컴은 떠들썩했다.

“사장님, 아니 회장님 호텔 앞에 취재진이 잔뜩 몰려 있다고 합니다.”

예전엔 이런 반응이면 그러려니 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김대석이 운전하는 조수석 옆에 앉은 사람이 살짝 경직된 상태로 보고했다. 유재원의 근접경호를 담당하는 마태식이다.

무려 경호팀장이란 거창한 직책을 달고 있는데, 팀장이라는 이름에 맞게 마태식은 10명이나 되는 경호원을 이끌고 있다. 지금 움직이고 있는 유재원의 자동차 앞뒤를 경호팀 대원들이 탑승한 승합차가 호위 중이다.

직접 고용한 건 아니다. 청와대 대통령 경호실에서 나와서 유재원의 경호를 맡은 상태였다. 그러니 엄밀히 따지면 군인 신분이다. 심지어 착용 중인 장비 중에는 실탄이 장전된 총도 있다.

“알겠습니다. 오늘도 경호팀장님이 잘 처리해주세요.”

“예!”

군말 없이 바로 대답이 나오는 마태식 팀장이다.

당부의 말을 마친 유재원은 창밖으로 보이는 고속도로 풍경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집이 있는 여주는 아직도 몇 년 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는데, 서울에 가까워지면서 크고 작은 건물들이 올라가는 게 점점 많이 보였다.

세상이 바뀌는 것처럼 유재원도 많은 게 바뀌었다.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건, 지금 유재원이 타고 있는 자동차였다. 사고로 인해 폐차된 그랜저를 대신해서, 전명헌 회장이 미래 자동차의 이름으로 새로운 자동차를 선물해주었다.

그랜저 리무진 V 3.0 AMG라는 긴 이름을 가진 자동차였다.

그러니까 각 그랜저를 리무진으로 개조한 자동차였다. 1세대 그랜저는 리무진 형이 없었다. 92년에나 나올 뉴그랜저에 리무진 옵션이 나오는데, 유재원으로 인해서 1세대에도 리무진 모델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고 갑자기 얼렁뚱땅 차고만 쭉 늘려서 놓은 건 아니다.

그랜저는 사실 미래 자동차의 자체 기술로 만들어진 자동차는 아니었다. 일본의 미쓰비시 자동차의 기술을 들여와서 만든 것이다. 바로 미쓰비시 데보네어라는 차였다. 데보네어 2세대 모델이 바로 그랜저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런데 데보네어에는 리무진 모델이 있었고, AMG라는 튜닝 전문회사에서 고성능으로 세팅한 AMG 라인도 있었다.

전명헌 회장은 데보네어 리무진 AMG를 그대로 가져와서 그랜저 리무진 V 3.0 AMG라는 모델로 발표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속도였다. 덕분에 그 수량도 무척이나 적어서 딱 다섯 대가 풀렸다. 그중 한 대를 유재원에게 약속대로 보내왔다.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많은 유재원에겐 최고의 선물이었다. 뒷좌석에 앉아서 발을 쭉 뻗어도 될 만큼 널찍했으니, 한결 편안해졌다. 게다가 차 안에는 카폰은 물론, 여러 장의 CD를 넣을 수 있는 고급 오디오 시스템도 있다. 심지어 작은 냉장고도 들어 있었으니 이 시대의 자동차 기술로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편의성이 적용된 차량이었다.

차를 받았을 때, 역시 왕 회장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부드럽게 달린 그랜저 리무진은 잠시 후 행사장인 워커힐 호텔 별관에 도착했다.

그걸 보고 입구에서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이 우르르 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재원의 그랜저 앞뒤로 붙어서 경호하던 차량에서 10명이나 되는 건장한 이들이 내리더니 유재원을 향해 몰려오던 기자들을 밀어냈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부터 이놈 저놈 찾는 사람까지 기자들은 다양한 반응을 쏟아냈다. 독재로부터 저항했다는 이미지가 기자들에게 좀 남아 있던 시절이라서 상당히 강경한 반응이다. 그러나 경호원들은 위축되는 것 없이 힘으로 밀어냈다.

유재원을 위해 파견을 나오기 전에 대통령으로부터 당부를 직접 들었기에 사명감이 투철했다. 게다가 유재원은 파견 나온 경호원들을 반갑게 맞이해줬을 뿐만이 아니라,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주는 금일봉도 따로 챙겨주기 시작했다.

특히 지금처럼 힘쓰는 일이 있으면 꼭 챙겨주었으니, 경호원들은 청와대 소속이었음에도 ID 그룹 사람처럼 열심이었다.

“그러게 포토라인 문화 같은 걸 미리 만들어두면 좀 좋아.”

유재원은 창밖으로 기자들과 경호원들이 만드는 한바탕 소동을 보며 중얼거렸다.

취재하는 건 좋지만, 무질서는 절대 사양이다. 그렇지만 포토라인 문화가 한국에 바로 잡히는 거 95년도나 되어야 생긴다. 재미있는 건 포토라인이 생기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노 대통령의 검찰 출석이었다.

지금이야 하늘의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중이지만, 그 자리에서 내려온 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아서 죄수복 신세라는 거다.

정치권력의 무상함을 바로 느낄 수 있는 유재원이다.

그렇지만 경제 권력은 다르다. 마이크로소프트처럼 화를 자초하지 않는 이상 그 자리에서 끌려 내려올 일은 지극히 드물다. 특히 한국의 재벌은 세습이 가능한 귀족과도 같았다. 폭력적인 군사정권이 몰락한 다음에 민주적인 정권이 들어섰을 때, 나라를 좌지우지할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이제 내리셔도 됩니다.”

마태식 팀장의 말에 유재원은 옷의 맵시를 살펴본 다음 차에서 내렸다. 경호원들과 몸싸움을 하며 이놈 저놈 했던 기자들도 유재원이 나타나자 입은 다물고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오늘 행사가 뭔가요?”

“무슨 일로 미국의 임직원까지 다 부르신 겁니까?”

“어어! 잠깐 인터뷰 좀 해주시죠!”

“기자를 이렇게 무시해도 됩니까?”

힘으로 밀려난 기자들이지만 목소리는 컸다. 유재원이 나타나자마자 열심히 질문을 던졌다. 그 목소리에 유재원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기자단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다가 유재원과 눈이 맞은 몇몇 기자들이 보였다.

“음, 저도 해드리고 싶군요. 하지만 이 자리에 대한일보, 동하신문 등의 기자들이 보이는군요. 저는 저번 사고를 촉발한 두 언론사로부터 정식으로 사과를 받기 전까지는, 두 언론사 취재진이 있는 자리에서 어떠한 인터뷰는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사고를 낸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그들이 속한 신문사는 사과는커녕 부인하기에 바빴다. 그들은 자기 신문사 소속이 아니고, 프리랜서이니 유재원의 사고에서 자기들 책임은 없다는 것이다.

눈을 가리고 아웅 하는 짓이다. 프리랜서라면 다른 신문사에도 사진을 팔았을 텐데, 그들은 오직 두 신문사에만 사진을 주었고, 의뢰를 받았으니 말이다.

“거기 기자분들. 다른 언론사를 위해 자리를 피해 주실 수 있나요?”

기자들의 눈총이 두 신문사 취재진을 향해 쏟아졌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는 듯 두 발에 힘을 잔뜩 주었다. 재미있는 건, 그들을 향해 다른 기자들의 야유도 없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끈끈한 동료 의식이다.

“대답은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럼.”

유재원은 보이콧 이유를 짧게 말하고는 다시 몸을 돌렸다. 그리곤 마태식과 경호원들의 삼엄한 경호를 받으며 행사장으로 들어갔다.

뒤늦게 플래시가 터졌다. 마치 카메라 플래시로 스포트라이트를 보내는 것 같았다.

‘전생에 쌓인 복수도 하고, 그러면서 자신의 집 그리고 손에 잡히는, 눈에 밟히는 이들도 마음껏 도와줄 수 있는 든든한 반석 같은 기업을 만들 것이다. 오늘이 그 선언을 하는 날이다.’

취재진이 그렇게도 듣고 싶어 했던 답변을 속으로 생각하는 유재원이다.

얼떨결에 ID 테크놀로지를 시작했지만, 결과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여러 계열사도 만들었고, 석유 선물로 대박까지 이뤄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임시 체제로는 본격적이고 거대한 비즈니스를 이끌어가기엔 한계가 분명했다.

미진했던 조직을 정비하고, 시너지 효과와 잠재력을 폭발하기 위한 조직의 정비는 모두 끝났다.

오늘 행사는 개별 조직으로 운영되었던 유재원의 회사들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였음을 선포하는 ID 그룹 체제의 출범식이었다.

동시에 1991년, 그리고 앞으로 미래에 ID 그룹이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는 비전도 선포할 예정이다.

인터넷이다.

넥스트컴으로 살짝 맛을 보여줬음에도 아직 별다른 반응이 없다.

유재원의 ID 그룹은 인류가 탐험해야 할 미개척지가 정글이나 심해, 우주뿐만이 아니라 인터넷 세계도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줄 것이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드디어 ID 그룹의 출범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느낌을 독자님께 잘 전달해드렸는지 모르겠네요.

네! 그렇습니다! 크게 보자면 여기까지가 프롤로그였습니다~!

너무 길다고요? 대신 프롤로그가 이 정도 분량이니, 본편은 또 얼마나 길겠어요?

할 수만 있다면 제가 쓴 글 중에 제일 길게 써보고 싶네요~.

덤으로 거의 매일 연참을 하고 있는 이 페이스도 끝까지 유지 하면서 말이지요.

아참, 오늘도 춥다는 데 몸 조심하시길~!!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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