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145화 (145/1,007)

[145] 룰 브레이커 =========================

#86-2

1991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첫 뉴스는 역시나 대통령의 신년사였다.

아마도 유재원을 통해 자신감 펌프질을 한참이나 받은 듯한 노 대통령의 모습은 그야말로 위풍당당했다. 그러면서 올해 있는 지방선거는 민주발전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지방의 균등한 발전을 위해 정부가 노력하겠다는 첨언도 했다. 마치 여당을 찍어줘야 지역 사업도 팍팍 밀어주겠다는 투였다.

그런데 텔레비전에는 노 대통령만 나온 게 아니었다.

무려 북한의 김일성 신년사도 등장했다. 김일성은 직접 발표한 신년사에서 남북한 대표와 각 정당, 사회단체가 참가하는 ‘민족통일 정치협상회의’를 열자고 제안했다.

일단 경쟁 국면에서 한 박자 쉬어가는 대화를 먼저 제안한 것이다. 유재원은 타이밍 괜찮네 하고 생각했다.

이유는 1월 16일 전 세계 사람들이 두 눈으로 생생히 볼 수 있었다.

-걸프만까지 들어온 미국 항공모함 인디펜던스호에서 수십 대의 전폭기가 날아오르고 있습니다. 또한, 항공모함을 호위하는 미사일 구축함은 30분 전부터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을 계속 발사 중입니다.

CNN의 마크가 선명한 마이크를 든 종군기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 뒤로 푸른색 불꽃을 뿜으며 날아오르고 있는 전투기의 모습도 보였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미사일 구축함에서는 노란 불꽃의 미사일들이 수직으로 솟아오른 뒤, 90도로 꺾으면서 이라크로 날아가는 모습도 계속 비쳤다.

1월 16일 새벽.

이라크가 국제연합이 통보한 쿠웨이트에서 물러나라는 최후통첩을 끝까지 무시하고 버티자, 16일 새벽, 그 유명한 사막의 폭풍 작전이 시작된 것이었다.

앞으로 며칠 동안은 최첨단 기종으로 무장한 공군이 현대전에서 얼마나 무서운지 확실히 보여준다.

최첨단 스텔스 비행기의 바그다드 폭격을 시작으로,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 세례와 B-52의 폭격이 2주 동안 쉬지 않고 공격을 하는 것이다.

이라크는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미사일에 두려움을 떨면서 열심히 방공포를 하늘 높이 쏘아 올리고 있지만, 제대로 요격하는 건 얼마 되지도 않았다.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바그다드의 방공망을 모스크바, 평양, 바르샤바에 비견되는 철통 방어를 자랑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서방의 평가도 비슷했다. 그러나 사막의 폭풍 작전이 시작되자마자 쏟아지는 수백 발의 크루즈 미사일과 스텔스 전폭기의 폭격에 방공망은 구멍이 숭숭 뚫리며 그 믿음을 배신했다.

밤낮으로 이어지는 폭격에 대한 이라크의 대응은 기껏해야 스커드 미사일이었다.

스커드미사일 수십 기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등에 보복 공격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스커드 미사일은 큰 효과가 없었다.

발사했던 대다수는 미리 배치된 패트리엇 미사일에 요격되었고, 일부는 목표까지 날아오긴 했지만, 공산오차가 커서 유의미한 피해를 주진 못했다. 오히려 제공권이 박탈당한 상황에서 미사일을 꺼낸 탓에 발사 위치가 노출돼버렸다. 위치가 포착된 스커드 미사일 부대는 특수부대와 미국 공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아직 지상 병력이 투입되기 전인데도, 이라크군이 속절없이 쓸려 내려가는 걸 본 중국이나 북한, 그리고 반미 성향의 나라들이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어마어마한 미사일 세례를 통해 병력 손실이 많이 발생하는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아도 한 나라를 작살내기에 충분하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지도부는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이라크 꼴이 될 거라는 공포에, 인민해방군의 현대화 사업을 진행함과 동시에, 죽의 장막 안에 꽁꽁 싸매고 있던 경제체제를 개방으로 전면 전환하기에 이른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중국보다 훨씬 심각한 독재 국가인 북한은 지도자의 체면이 국민의 안위보다 위에 있는 나라였다. 김일성이 계속 대결 국면을 유지했다면, 동해에 미국 항공모함이 뜨는 상황이 되어서야 고개를 숙였을 텐데, 91년 신년사에 대화를 주장하면서 쉽게 태도를 바꿀 수 있었다.

덕분에 소련과의 수교를 시작으로 북방 정책을 추진 중이었던 노 대통령의 외교는 순풍을 받은 것처럼 나아갔다.

중국과의 수교를 위한 물밑 접촉이 시작되었고, 북한과의 고위급 회담을 통해 스포츠 분야에서의 교류와 협력 방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ID 그룹도 걸프전쟁의 시작인 사막의 폭풍 작전에 대해 실시간으로 대응 중이었다.

-회장님 말씀대로 유가가 치솟고 있습니다.

걸프전쟁의 시작과 함께 압도적인 화력전을 보여주고 있는데, 유가는 오히려 상승을 시작했다.

이라크가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으면서 전쟁이 일찍 마무리된다면, 중동 정세도 안정되어 유가가 내리는 게 올바른 흐름이었을 것이다. 사막의 폭풍 작전이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유가는 횡보 중이었다.

그런 유가가 다시 치솟기 시작한 것은 미사일과 폭격기 세례를 견디다 못한 이라크가 폭주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공세를 견디지 못한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에서 철군을 시작하긴 했다. 그런데 철군하는 와중에 쿠웨이트의 유정을 모조리 파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막에 붉은 화염과 새카만 매연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는 게 종군 기자들의 카메라에 잡혔다. 유전의 압력이 어찌나 거센지 불기둥의 크기만 100m가 넘었다. 이라크를 몰아내고 쿠웨이트를 수복한다더라도, 유전이 모조리 박살이 났으니 유가가 안정될 일은 사라진 것이다.

-이제라도 상승에 배팅합니까?

유가가 오른다. 쿠웨이트 유전의 파괴를 막지 못했으니, 전쟁이 조기 종결되더라도 몇 개월 동안 유가를 안정시킬 방법은 없다. 쿠웨이트와 이라크의 원유 수출이 전쟁으로 인해 막히면서 오펙 회원국은 원유 증산량을 최대로 늘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선물이나 콜옵션을 사야 한다. 보수적인 성격의 빈센트 그린힐의 판단이었다.

“아뇨. 34달러 이상 오르면 매도 포지션을 설정하세요. 금액은……, 이번에 일반 투자자에게 모집한 금액만 넣으세요”

유재원은 여기서 상식에 반하는 주문을 했다.

-그러면 4억 달러 조금 넘는 금액이군요. 알겠습니다.

빈센트 그린힐은 당연히 판단의 근거를 묻고 싶었다. 하지만 겨우 4억 달러만 투자하겠다고 하니 그냥 수긍하고 말았다.

ID 인베스트먼트의 계좌에는 세금을 내고 남은 돈이 67억 달러나 있다. 여기에 올해 1월 3일부터 개인투자자들로부터 투자금을 모집했는데, 그 금액이 무려 한국 돈으로 3천억 원, 미국 달러로는 4억 달러나 된다.

억 단위 투자금도 수두룩하게 들어왔고, 십억 단위 이상도 많았다. 물론 백만 원 이하의 소액 참여자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이러한 열기 덕분에 투자 모집 계좌를 연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유치 받은 금액이 3천억 원을 넘었다.

치열한 인수전 끝에 ID 그룹의 주거래 은행이 된 홍콩상하이은행은 계약하자마자 대박이 터지니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공모된 금융상품의 투자 기간은 1년이고, 중간에 해지할 수는 없다. 1년 후에 결과를 보고 청산할지, 아니면 재투자를 할지는 가입자들 마음이다.

유재원은 아무런 생각 없이 하락에 배팅하라고 명령한 건 아니다.

미국이 걸프전쟁을 시작한 이유는 쿠웨이트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석유의 안정적인 공급 하나 때문이다. 원유가 안정적으로 공급된다는 건, 유가도 안정적이라는 의미였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뭐든 할 준비가 되었다.

조만간 투입될 다국적군 지상군은 병력만 수십 만이고 전비도 수천억 달러를 집행했다. 유가 따위가 전쟁수행능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백악관은 유가가 특정한 선을 넘으면 특단의 대책을 발표한다.

91년 1월 19일에 미국은 유가 안정을 위해 전략 석유비축물량을 3천3백만 배럴을 방출하겠다고 했다. 게다가 이것으로 유가가 안정되지 않을 시, 추가적인 물량을 더 풀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석유비축물량은 5억8천만 배럴에 달할 정도였으니,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준 것이었다. 여기에 일본이나 독일, 프랑스 등도 미국과 같이 비축된 물량을 풀겠다고 발표했다.

그날 유가는 11달러가 폭락했다.

이번에도 유재원의 예측이 맞았다.

빈센트 그린힐을 비롯한 ID 인베스트먼트의 직원들 사이에 유재원은 신망이 더더욱 두터워졌음은 당연했다. 정작 유재원은 남의 돈 굴리고 수수료를 챙기는 정도라서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대신 자신이 알고 있는 커다란 흐름이 어긋나진 않았다는 것이 좀 안심이 되었다.

그렇다고 긴장감이 풀린 건 아니다.

사실 전략 석유비축물량 방출은 17일에 있어야 할 이벤트였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2일이 늦춰졌기 때문이다. 전엔 선물 가격이 변하더니, 이젠 날짜까지 변했다.

만약 이 기억을 믿고 ID 인베스트먼트의 가용자금을 다 투자했다면, 큰 손실을 봤을 수도 있었다.

앞으로는 선물이나 옵션처럼 시간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투자는 웬만해선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유재원이다.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건 기술뿐이다!

그러니 ID 그룹의 운영 방안 역시 금융 상품 투자는 축소하는 대신, 벤처 기업이나 최신 기술에 대한 집중 투자다.

“지금 전송하는 기술의 특허나 시장 선도적인 위치의 기업들을 조사해주세요. 큰 돈이 투자될 수도 있으니 확실히 해주세요.”

네트워크 장비, CMOS와 CCD 센서, 비휘발성 메모리 기술, 소형 GPS, 터치스크린, LED, LCD, 즉석 포토 프린팅, 저전력 CPU 등등.

개수도 많고, 종류도 다양한 기술이 줄줄이 언급되었다. 빈센트 그린힐이 보기엔 도저히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을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빈센트의 상식에서는 유재원의 저의를 도저히 파악할 수 없었다. 그래도 IT라는 카테고리 안에 있는 기술이라서 이상하다고 느끼진 않았다.

더욱이 ID 인베스트먼트에는 IT지식이 부족한 자신을 대신할 전문가를 대거 고용했다. 회장님 지시이니 자신이 이번 조사 업무를 총괄하더라도 실무는 IT 전문가가 할 것이기에 부담이 없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에선 아직 연락이 없죠?”

-네, 회장님. 묵묵부답입니다.

크리스마스이브 전날, 유재원은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 제안이라는 큰 선물을 보내주었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는 무슨 생각인지 아직 묵묵부답이었다.

“충분히 기다린 것 같습니다. 이제 적대적 M&A를 선언하고 주식거래소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식을 무한 매입하세요.”

유재원이 마이크로소프트를 원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개발진, 수많은 컴퓨터 관련 특허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뻗어나 있는 영업망 등등.

잡아 먹으면 ID 테크놀로지의 능력치를 쑥쑥 키워줄 영양소를 잔뜩 품고 있다.

인수에 성공한다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가치는 지금보다 10배, 어쩌면 100배 이상으로 뛸 것이다.

-예, 회장님!

드디어 자신이 수행할만한 임무를 받은 빈센트 그린힐이 시원스럽게 대답하면서 통신은 마무리되었다.

따르릉!

공교롭게도 ID 톡을 마친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어라?”

신기하게도 유재원은 지금 자신에게 전화를 한 상대가 누구인지 알 것만 같다. 전화기에는 발신자표시 서비스 같은 건 없지만 느낌이 확실히 왔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틀림없다.

호랑이가 제 말 하면 찾아 온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확신이 딱 서는 유재원이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무한 감사합니다~!!!

아이고, 이 추위가 언제 끝날까요?

겨울이 추운 건 당연하지만, 요즘은 추워도 너무 춥네요!

그나마 주말이 지나면 좀 풀린다니 다행입니다. 북극 추위 무사히 넘기시고, 다음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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