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아메리칸 드림 =========================
#96-2
게이츠 회장과 이사회가 가치가 있는 현금성 자산을 인수가 확정되기 며칠 전에 청산하기로 결의하고 다 팔아버린 것이다.
현금 계좌나, 보유하고 있던 주식과 같이 현금화를 빠르게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처분해버린 것이다.
확인해보니 보유 지분 별로 나눠 가진 터라 유재원의 몫이 없던 건 아니다. 적대적 인수를 선언하면서 주식을 상당히 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덩어리는 게이츠 회장이나 이사회에 속한 개인들에게로 넘어갔다.
따지기도 애매했다. 인수가 확정되기 전에 일어난 사건인 탓이다. 그나마 이렇게 현금성 자산이 빠져 나간 상태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자산 크기는 15억 달러를 넘었다, 빠른 처분이 힘들었던 부동산과 건물 등등이 남아 있던 덕이었다.
자산이 15억 달러나 되는 데, 12억5천 만 달러를 주고 샀으니 큰 이익 아니냐는 생각도 할 수 있겠지만, 거대한 회사라면 당연히 있는 부채가 마이크로소프트에도 있었다.
부채의 크기는 3억 달러 조금 넘는 크기였는데, 마이크로소프트의 규모를 생각해 봤을 때 상당히 작은 크기라고 할 수 있다.
자산에서 부채를 빼면 12억 달러 조금 안 되는 크기였으니, 살짝 비싸게 주고 샀다는 빈센트 그린힐의 보고는 정확했다.
유재원은 이 정도 결과에 만족했다.
애초에 유재원이 마이크로소프트를 인수한 건 부동산 따위가 탐이 나서가 아니었다.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은 전 세계 지사를 통해 구축된 마이크로소프트의 탄탄한 영업망이었다. 이제 그 영업망은 ID라는 간판으로 바뀌었다.
이것들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보급에 선봉장으로 삼으면, PC 운영체제는 완전히 유재원의 손에 들어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여기에 특이한 자산을 정리해 놨습니다.”
이제 다 된 건가 싶었는데, 빈센트 그린힐의 보고서는 또 있었다.
특이하다고 해서 뭔가 봤더니 사치품들이었다.
롤스로이스를 비롯한 고급 자동차 10여 대, 골프장 회원권, 리조트 지분 등등. 마이크로소프트 법인 명의로 보유하고 있던 값비싼 물건들의 목록이다. 부동산과 마찬가지로 현금화가 쉽지 않은 품목이라서 팔아치우지 못하고 남았던 모양이다.
개인회사로 전환되었으니, 이러한 사치품도 이제는 유재원의 것이 되었다. 당장 돈이 궁한
것도 아니고, 놔두면 쓸모가 있을 것 같아서 급히 처분하진 않기로 했다.
“이상입니다.”
그렇게 보고를 마친 빈센트 그린힐에게 유재원은 박수를 쳐주었다.
예정보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방대한 자산을 꼼꼼하게 정리해줬다. 보고서만 봐도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넘겨받은 것들이 어느 정도 되는지 자연스럽게 그려질 정도였다.
“적성검사와 능력 평가 끝났나요?”
유재원의 물음에 레밍턴 사장이 일어났다.
“예, 승계를 거부하고 퇴사한 이들을 제외한 총 652명의 개발자를 대상으로 능력과 적성 그리고 희망하는 부서에 대한 조사를 시행했습니다.”
ID 테크놀로지에 속한 개발자들의 12배나 되는 숫자였다. 어마어마한 개발인력이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성장 방식이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자본력으로 좋은 소프트웨어 회사가 있으면 거침없는 인수전을 펼쳤다.
MS-DOS에 각종 유틸리티를 전담으로 만드는 부서도 수십 명 규모였고, 윈도우를 개발하던 인력은 100명이 넘었다. 여기에 오피스를 개발하는 부서도 있고, 알파 랩처럼 제품개발과는 상관없는 연구 개발 부서도 있었다.
“다행히 개발 능력이 모자란 이는 없었습니다.”
다행이다. 프로그래머가 프로그래밍을 못 하면 가차 없이 잘라버릴 작정이었다. IT 붐이 터졌을 때, 수많은 대학교에서는 기본도 떼지 못한 프로그래머를 양산했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신참 교육까지 해야 했다.
유재원도 전생에 인공지능 사업을 막 시작했을 때, 정부에서는 4차산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라면서 의욕적으로 지원했다. 그리고 대학교에서도 관련 학과가 만들어졌고, 졸업생들도 배출되었다.
정부의 지원을 믿고 고용해봤는데, 실력이 영 아니었다. 전문 교육을 받았다던 그들은 미국 저널을 뒤져보고, 인터넷 강의로 독학했던 유재원보다 실력이 떨어졌다.
이번에 승계한 개발진 중에 그런 사람이 없다는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근무 희망 지역을 보자면 레드먼드가 58% 실리콘밸리가 42%입니다.”
이어진 보고에 유재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적어도 레드먼드에 희망할 사람이 70%는 될 것 같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본사와 연구소가 있는 지역은 레드먼드였다. 경력자들은 거기에서 오래 근무했을 테니, 당연히 생활 기반도 레드먼드에 다 마련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기꺼이 실리콘밸리로 옮기겠다는 사람의 42%나 되는 것이다.
“그렇게나 많아요?”
“실리콘밸리니까요. 임금이 더 높기도 하고, IT 기업들이 많으니 이직을 하기도 쉽지요. 집값이 좀 비싼 게 문제지만, 우리 ID 그룹은 거주비를 지원해주지 않습니까.”
레밍턴의 말에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단 거주비뿐만이 아니라, 집을 사겠다고 하는 직원에게는 은행보다 저렴한 이율로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빚이 생기면 개인에겐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닌데, 회사의 입장에서는 쉽게 이직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족쇄를 채운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게다가 이렇게 직원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만큼 세금도 낮아지니 대출금 지원을 장려했다.
“그런데 어쩌죠? 여기에 오고 싶다고 해도 근무할 자리가 없잖아요. 혹시 매물 나온 게 있어요?”
실리콘밸리에 수많은 기업과 창업자들이 모여드는 만큼 사무실을 구하는 게 점점 어려워졌다. 특히 ID 그룹처럼 대규모 조직으로 확장한 기업의 경우 빌딩이 필요한데, 매물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런 게 있었으면 진작 보고 드렸을 겁니다.”
역시 아직도 빌딩 매물은 없는 모양이다. 차라리 실리콘밸리 플래그쉽 스토어 자리에 빌딩을 올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원래는 21세기에 접어들면 하려던 것이었는데, 마이크로소프트까지 먹을 만큼 큰 변수가 생겼으니, 더 빨리 결심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이 많은 개발진을 앞으로도 유지하실 겁니까?"
“왜요?”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너무 욕심을 내시는 것 같습니다. ID 테크놀로지에서 개발 중인 소프트웨어의 규모를 보면 200명 수준에서 충분하다고 합니다. 게다가 물리적으로 이원화된 상태라서 협력 작업을 하는 데 문제도 많이 있고요.”
레밍턴의 말에 가까이 앉은 마리오 로저스 프로젝트 매니저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네요. 당장은 그렇지요. 안드로이드 1.0도 저와 실리콘밸리 팀이 다 만들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개인용 운영체제는 물론이고 워크스테이션이나 서버용, 더 나아가서 슈퍼컴퓨터용 운영체제도 넘볼 작정입니다. 그러니 대단위 개발진이 있어야 해요.”
“슈, 슈퍼컴퓨터요?”
유재원의 비전에 레밍턴이 깜짝 놀랐다.
IT의 최전선에 근무하던 레밍턴은 자연스럽게 인터넷 관련 산업이 꿈틀거리고 있는 걸 느끼곤 있었다. 그러니 인터넷 서버용 운영체제도 개발할 거라는 정도는 예상했다. 그런데 슈퍼컴퓨터라니.
지금껏 ID 테크놀로지를 이끌고 있었지만, 슈퍼컴퓨터 같은 게 필요한 일은 하나도 없었다.
“당장은 아닙니다. 하지만 슈퍼컴퓨터용 운영체제도 확실히 개발할 작정입니다.”
레밍턴은 슈퍼컴퓨터를 어디에 쓰고 싶은지 물어보고 싶은지 입술이 달싹거렸다. 하지만 곧바로 반문하기엔 이 자리는 부적합했다.
미래 비전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아니라 미국 사업장의 현황에 대한 보고를 위해 만들어진 자리였던 탓이다. 레밍턴도 조바심을 내진 않았다. 유재원이 미국에서 가을까지는 지낼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 물어볼 시간은 얼마든지 많다.
“회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전 마이크로소프트의 월드와이드 마케팅과 서비스 담당 책임자 케빈 존슨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직원 승계는 일반직 대상이었다. 계약직 임원들의 경우엔 기본이 계약 파기 통보였다. 계약의 주체였던 마이크로소프트가 사라졌으니 파기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대신 재판을 통해 확인된 불법과 연관성이 없고, 능력이 확인된 이는 다시 계약했다.
직원들만 가지고 조직을 꾸려갈 수가 없기에, 경영자와 직원을 이어주는 중간 관리자가 필수였던 탓이다.
케빈 존슨도 그렇게 재계약된 사람이었다.
아직 정확한 직책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빈센트 그린힐이 담당했던 자산 실사 작업과 레밍턴이 개발진의 능력과 선호 근무지를 파악하는 일을 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미국과 아시아, 유럽의 직영 지사를 ID 플래그쉽 스토어로 전환하는 작업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습니다. 미국 주요 도시와 일본 도쿄,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은 당장 열어도 무리가 없는 상태이고 다른 나라들도 7월 중으로 모두 마무리될 것입니다.”
한 달 전부터 케빈 존슨이 맡은 일은 마이크로소프트의 해외 지사를 ID 플래그쉽 스토어로 전환하는 일이었다.
유재원이 가장 눈독을 들였던 것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촘촘한 영업망이었다. 게이츠 회장이 열심히 조직했던 역량을 그대로 살려서 안드로이드 1.0의 런칭과 함께 전 지구에 마케팅 폭풍을 일으킬 준비 중이다.
보고는 계속 이어졌다.
“Q&A 센터의 상담사들도 엔지니어들로부터 안드로이드 1.0을 배우면서 발매 초기에 발생하는 대량의 문의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Q&A 부서는 외주를 주는 게 보통이었다. 일은 단순한데, 고용해야 할 사람은 많으니 인건비가 저렴한 인도나 중국에 만들었다. 지금은 Q&A도 상당히 전문적인 일이라서 별도의 인력으로 구성하고 있다.
오히려 유재원은 게이츠 회장 때보다 Q&A 부서를 2배 정도 더 키웠다. 상담사마다 컴퓨터를 제공했고, 라이브러리도 만들어서 고객이 이미 해결책이 나온 문제를 문의할 경우 즉각 답을 줄 수 있도록 했다.
“회장님께서 지시하신 분야에 인력 배치를 다 끝냈지만, 대기 중인 직원이 1,000명이 넘습니다.”
1,000이라는 숫자에는 임무가 없는 개발진 그리고 행정직 직원들이 포함된 숫자였다.
“일이 없다고 인건비가 안 나가는 건 아니니, 시급히 업무를 지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회에서 놀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은 지극히 드물다.
회사에서 직원에게 일을 주지 않으면 곧 잘린다는 신호였다. 그러니 당장 할 일을 받지 못한 이들은 불안감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네, 그분들은 할 일이 있습니다. 아니, 그분들뿐만이 아니라, 실리콘밸리 팀도 같이해야 할 일입니다.”
실리콘밸리 팀을 언급하자 마리오 로저스까지 바로 반응을 보였다.
“총공격이죠.”
“공격? 무얼 공격하시겠단 말씀이십니까?”
“안드로이드 1.0에 대한 총공격입니다. 유휴 인력 1천 명을 레드먼드 팀이라고 명명하겠습니다. 레드먼드 팀은 안드로이드 1.0을 전방위적으로 공격하세요. 버그, 보안 취약점, 오타 등등. 뭐든 찾아내면 됩니다. 실리콘밸리 팀은 레드먼드 팀이 찾아낸 것들을 검토하고 고치면 됩니다.”
유재원은 출시 직전까지도 안드로이드 1.0의 완성도를 끌어올릴 작정이다.
반면교사로 삼은 건 이제는 흑역사가 된 마이크로소프트의 차세대 윈도우였다. 95번을 설치해야 통달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오류가 많았다. 하도 오류가 많이 나오다 보니 응용 소프트웨어의 오류로 다운된 것인데도, 운영체제의 오류라고 생각하고 게이츠를 욕하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았다.
유재원은 이와 반대되는 현상을 만들고 싶었다. 안드로이드 1.0의 안정성이 너무도 뛰어나서, 만에 하나 오류가 나와도 응용 프로그램 탓으로 생각하도록 말이다.
“사소한 것이라도 발견하면 인사고과에 반영하고 보너스도 드리겠습니다.”
유재원의 씀씀이는 말을 하지 않아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다 알 정도로 스케일이 컸다.
안드로이드 1.0 마감이 끝났다고 작업을 다 했다고 풀어졌던 이들에게 긴장감이 확 올라갔다. 특히 레밍턴과 케빈 존슨 사이의 공기가 달라질 정도였다. 직급으로는 레밍턴이 위였지만, 머리 숫자나 역사에서 케빈 존슨은 분명 자부심이 남달랐다.
유재원이 직접 판을 깔아준 이번 기회를 통해 레드먼드의 자존심을 세울 거라는 각오가 얼굴에 바로 떠올랐다. 레밍턴 사장이나 마리오 로저스 등의 실리콘밸리 사람들 역시 절대 지지 않겠단 결의를 뿜어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치열하게 전개된 ID 테크놀로지의 내전이 끝난 날은 1991년 8월 15일이 되어서야 마침표가 찍혔다.
8월 15일.
컴퓨터 역사에 거대한 변곡점이 될 안드로이드 1.0이 전 세계에 출시되었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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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개막식 잘 보셨나요?
약간 모자란 부분도 있었지만, 작은 예산에서 최대한의 감동을 뽑아낸 성공적인 공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개막식도 잘 마쳤으니 오늘부터는 겨울 스포츠의 폭풍이 시작되겠네요.
주말, 올림픽 즐기면서 잘 보내시고, 다음 주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