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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174화 (174/1,007)

[174] 아메리칸 드림 =========================

#101

유재원도 처음 보는 거부 반응이라서 설명을 하는 동안 빨갱이 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전생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유재원에게 세대 차이, 아니 시대 차이를 느끼게 해준 건 여러 가지 있다. 투박하고 단순하고 성능도 기초적인 전자제품들도 그렇지만, 가장 큰 체감은 문화였다.

그중에서도 레드 컴플렉스는 간혹 느낄 때마다 신기할 정도였다.

레드 컴플렉스가 생생히 살아 있는 곳은 한국이었다. 요즘은 그나마 노 대통령이 북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좀 유연화된 상황이었다. 남북단일팀으로 세계탁구대회에 출전해서 우승도 하고 최근 7월에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요즘은 남북 UN의 동시 가입으로 떠들썩했다.

심지어 12월이 되면 남북 기본 합의서까지 만들어진다.

이처럼 북한과 한껏 가까워지면서 통일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헛물만 켠 것이지만, 남북대결국면은 상당히 완화되었다.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 대학가에 NLPDR 세력, 일명 운동권이 강해지면서 온갖 흑역사들이 쏟아지게 된다.

하여튼 한국은 남북 분단 상황이고, 수백만이 죽었던 내전까지 치렀으니 레드 컴플랙스는 디폴트값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미국 사람까지도 거부 반응이 있을 줄은 몰랐다.

미국에서 반공 광풍이 불었던 시대는 1950년 초반이었다. 이름만 들으면 딱 아는 그 사람이 시작했는데, 조지프 매카시라는 상원의원이다. 매카시가 시작했다고 해서 매카시즘이라고 했다.

40대 초반인 레밍턴이나 앨런은 매카시즘을 제대로 겪어 본 적도 없을 텐데, 이런 반응이라니.

“소련 전문가라…….”

그래도 유재원의 지시라서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 보는 레밍턴이다. 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이름은 없었다.

레밍턴이 활동했던 지역은 캘리포니아 지역이었고, 이곳에서 소련과 사업을 하는 사람을 찾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이는 앨런도 마찬가지였다. 법조인으로 캘리포니아에 활동했기에 소련과의 접점은 없었다.

“정보팀장이라면 알지 않을까요?”

유재원의 이어진 물음이다.

레밍턴이 경찰이나 탐정 생활할 때 생긴 넓은 인맥을 통해 미국 전역의 소식을 취합할 수 있는 정보팀이 출범한 지 꽤 시간이 지났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소식도 제일 먼저 잡아다 줄 만큼 유능한 조직인데, 정보팀 중에 정직원은 팀장과 몇몇 중간 관리자 해서 5명도 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실질적인 정보를 물어다 주는 이들은 점조직으로 활동 중인 탓이다. 무척이나 슬림한 조직이긴 해도, 연간 운영비가 100만 달러가 넘는다.

“모를 겁니다. 그 친구도 저와 활동반경이 비슷해서 말입니다.”

레밍턴이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역시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사업체라서 그런가 뭔가 새롭게 시작하려면 아예 맨땅에 헤딩해야 하나 보다.

아예 대놓고 러시아 전문가를 뽑는다는 공고를 걸어야 하나 유재원이 생각할 때, 뭔가 고심 중이었던 앨런이 입을 열었다.

“케빈 존슨 씨라면 아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요?”

케빈 존슨?

앨런의 말에 유재원의 뇌리에 작은 불이 하나 켜졌다. 케빈 존슨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고용을 승계한 소수의 임원 중 하나였다. 글로벌한 조직을 가지고 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마케팅과 서비스 담당 이사였다.

유재원은 곧장 컴퓨터를 열어서 조직도를 확인했다.

빙고!

역시 마이크로소프트였다. 직접 진출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모스크바에 대리점 형식으로 진출한 상태였다.

“오, 러시아 대리점이 살아 있었네요.”

안타깝게도 ID 플래그쉽 스토어로 전환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안드로이드 1.0 키릴문자 버전을 열심히 공급 중에 있었다.

“아! 러시아 대리점이 있었군요.”

레밍턴도 그제야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ID 테크놀로지의 규모를 실리콘밸리와 레드먼드 그리고 한국 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둘은 아차 싶었다. 하긴 마이크로소프트가 원체 큰 조직이었어야 말이다.

제 돈 주고 인수했던 유재원도 깜빡하고 있었다.

ID 톡에는 며칠 전 업로드된 러시아의 현황 보고서도 하나 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는 정치적으론 좀 혼란한 상태이지만, 안드로이드 1.0은 최고의 성적을 올리는 중이라고 한다. 286 이상의 고성능 컴퓨터 사용자들은 꽤 숫자가 되어서 1일 100카피 정도는 나가고 있다는 보고서였다.

물론 돈을 주고 팔았다는 건 아니고, 복사를 통해 배포 중이라는 이야기다. 러시아에도 완제품 컴퓨터 회사가 있긴 한데, 정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식 자체는 없었다. 완제품 컴퓨터에도 개인 배포용 애드웨어를 넣어서 팔고 있다는 내용이 보고서에 담겨 있었다.

당장은 어쩌지 못하는 문제였다.

소련의 해체와 쿠데타 그리고 경기침체. 러시아의 화폐인 루블은 현재 끝없이 추락 중에 있었다. 마치 IMF 시절 원화의 가치가 뚝뚝 떨어졌던 것과 같았다. 지금 러시아에서 일반 노동자의 월 평균 수입은 250루블이라는데, 지금 스웨터 한 벌만 125루블이란다.

러시아의 경제 상황은 날이 갈수록 추락할 것이다. 그러니 정품 매출은 2000년대 들어서나 나올 것이다.

보고서를 읽으니 러시아 인재 습득에 더욱 조바심이 나는 유재원이다.

러시아의 이런 상황을 유재원만 알고 있겠는가. 분명 다른 기업, 다른 나라들도 유심히 보고 있을 것이다.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러시아에서 유출된 A급 인재 숫자만 50만 명이라고 한다. 이후 러시아의 기초, 응용 연구 능력은 완전 박살이 나서 원래의 능력을 회복하기까지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러시아의 조직이 살아 있으니 케빈 존슨이라면 유재원이 원하는 답을 바로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유재원의 엉덩이가 들썩거렸지만, 당장 불러올 수는 없다. 케빈 존슨은 안드로이드 1.0 런칭 행사를 마친 후에 레드먼드로 돌아간 상태였기 때문이다. 대신 유재원은 ID 톡을 켰다.

“아, 응답이 없네요.”

아쉽게도 케빈 존슨의 접속 상태는 부재 중이었다.

유재원은 곧장 러시아 문제로 상의할 게 있으니, 이 글을 보면 바로 연락해달라는 쪽지를 보냈다.

근무시간은 한참 남았으니,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러시아 문제의 공은 케빈 존슨에게 넘어가자 레밍턴과 앨런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일이 끝난 건 아니었다.

ID 하이테크라는 새로운 사업체를 조직하겠다고 한 것도 큰일이었다. 사전에 논의된 것이 거의 없는 사안이라서 구체적인 지침을 받아야 했다.

“음, 그러니까 ID 하이테크는 연구소 같은 조직이군요.”

유재원의 구상을 모두 들은 레밍턴 사장의 감상이었다.

정답이다.

ID 하이테크가 돈을 벌어올 조직은 아니다. 오히려 각종 기초기술 연구도 하고 시제품도 만들어 보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을 테니, 유재원이 밖에서 벌어온 돈을 신나게 쓰는 조직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하이테크는 꼭 필요한 조직이었다.

유재원이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주도할 수는 없는 법이다. 또한, 본인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도 ID 그룹이 영속성을 계속 유지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자신이 품고 있는 생각과 기술을 그대로 이어받아 아바타처럼 활동할 조직을 만들겠다고 생각을 ID 하이테크라는 조직으로 실현할 작정이었다.

“어려운 일은 아니군요.”

앨런이 가볍게 말했다.

ID 그룹이라는 거대한 체계는 이미 잡혀 있으니, 소규모 조직을 출범하는 건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니다. 연구 인력도 사내에서 차출할 예정이었다. 당연히 마이크로소프트 출신이 대부분일 거다.

당장 할 일이 없는 마이크로소프트 하드웨어 사업부 사람들, 알파 랩 출신들 등등. 상당수가 ID 하이테크로 배치될 거다. 그렇기에 하이테크 사업부가 자리할 위치도 실리콘밸리가 아니라 레드먼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밖에도 ID 인베스트먼트가 경영권까지 사들인 기업 중에 원하는 회사들이 있다면 ID 하이테크 소속으로 바꾸기로 했다. 따로따로 떨어져서 각자의 기술을 개발 중이지만, 서로 모였을 때 연구 능력도 올라가고, 생각지도 못했던 신제품도 만들 수 있으니 한데 모아두는 게 훨씬 이로운 일이었다.

“보스, SAT 만점을 찍으셨다면서요. 축하합니다!”

ID 하이테크 설립에 관한 뼈대를 세우고 나서 잠깐 쉬는 타임이 되었을 때, 레밍턴이 어제 봤던 시험을 이야기했다.

“어라? 그 이야기는 회사 사람에게 한 적은 없는 것 같았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레밍턴에겐 그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어, 음. 비밀이었습니까? 보스의 어머님께서 말씀해주셔 알았습니다만.”

범인은 무척이나 가까운 곳에 있었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레밍턴에게도 만점을 맞았다는 이야기를 했다면, 한국의 친척들에게도 그 소식은 다 전달되었을 거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았다.

“당연히 그 정도 비밀은 아닙니다. 하여튼, 축하 고마워요. 두 분 덕분에 마음 놓고 시험을 치를 수 있어서 좋은 점수가 나온 거 같네요.”

미국이라면 응당 본인의 잘난 점을 어필하는 게 맞지만, 이젠 깊은 친분이 만들어진 레밍턴이나 앨런에게까지 그러고 싶진 않았다.

전생부터 열심히 준비했던 시험이긴 해도, 두 사람의 도움도 분명히 있었다.

“보스라면 당연히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원하실 학부를 정하셨습니까?”

학부?

당연히 정했다. 며칠 전에 정한 게 아니라, 전생에 정해놓았다.

“네. 공과대학이죠.”

“그건 당연한 거고, 대학에는 학부가 또 있지 않습니까. 컴퓨터공학이시겠지요?”

질문이 구체적이다. 뭔가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덕분에 순순히 답을 해줄 수도 있었던 유재원이지만 장난기가 살짝 들었다.

“뭘까요? 혹시 두 분이 사이에 내기라도 하셨어요?”

유재원의 질문에 헉하는 소리가 났다.

“저는 컴퓨터공학부로 간다는 것에 걸었습니다. 이 친구는 아니다에 걸었죠.

역시 레밍턴이 실토했다.

그런데 이거 어쩌나. 내기의 승자는 앨런이다.

“전자공학에 가보려고요.”

“으, 갑자기 무슨 변덕이 부신 겁니까?”

“변덕이라니요.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전자공학이라고 하니 일견 뜬금없게 들리긴 하겠다. 하지만 전기를 구동력으로 이용하는 장치를 전부 다루는 학문이다. 기계공학, 원격통신학, 반도체 회로디자인 등등,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재원이 하는 일과도 매우 밀접하다.

IT라는 분야를 놓고 본다면 컴퓨터공학이 소프트웨어 쪽을 담당했고, 전자공학은 하드웨어의 개발을 주도하는 것이다.

전자공학에 지원하는 건 전생에 결정한 일이었다. 유재원의 객관적 능력을 보자면 소프트웨어 개발, 특히 인공지능 알고리즘 개발에 있어서 정점을 찍은 상태였다. 여기는 공부를 더 한다고 해서 능력이 더 올라가진 않는 수준이다.

컴퓨터공학 관련자가 유재원의 속마음을 들었다면 오만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을 테지만, 사실인 걸 어떻게 하나.

본인이 직접 전공한 인공지능 분야는 이 시대의 저명한 명사들을 놓고 강의를 하더라도 모자라지 않는 수준이다. 다른 분야 역시나 마찬가지다. 웬만한 소프트웨어들의 핵심 알고리즘은 다 알고 있다.

반면 전자공학은 아직 배울 게 많았다. 물론 전생에서 가져온 것도 많았다. 특히 현재의 반도체 제품 수준은 한숨이 나올 만큼 낮은 상태라서, 유재원이 원하는 성능을 내기엔 한참이나 부족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말처럼, 유재원은 직접 전자공학을 전공한 후에, 고성능 반도체 제조 기술도 연구할 작정이다.

이를 통해 1㎓ CPU도 원래 역사보다 일찍 나오게 할 거다. 이뿐만이 아니라 GPU 개발에도 도움을 줘서 개인이 다룰 수 있는 컴퓨터 그래픽의 수준도 한껏 올릴 작정이다.

궁극적으로는 인공지능 구성에 필수적인 TPU를 ID 그룹이 자체적으로 설계하고 만드는 것까지 유재원의 계획에 담겨 있었다.

“역시 모험가 기질이 풍부한 보스는 우리와 다른 선택을 할 줄 알았습니다.”

레밍턴이 떨리는 손으로 꺼내준 100달러짜리 지폐를 가볍게 받아든 앨런이 승자의 미소를 띠며 말했다.

“뭐, 저는 잘 이해가 안 되지만 보스가 어련히 알아서 선택하셨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내년부터 대학교에 가시면 자가용도 하나 장만하셔야겠군요?”

“자가용이요?”

“대학생의 로망이 바로 자동차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스탠퍼드 대학교는 미국에서 가장 넓은 캠퍼스를 자랑합니다. 학부별로 주로 강의하는 건물이 있다곤 해도, 가끔 뚝 떨어진 건물에 강의가 잡히는 때도 있죠. 여기에 특이한 교양 과목이나 스포츠 서클이라도 가입하면 자동차는 필수입니다.”

앨런의 설명이다.

앨런 역시 스탠퍼드 출신은 아니지만, 실리콘밸리 바로 옆에 있다 보니 졸업생처럼 대학교 생활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앨런이 간과한 게 있다.

“미국은 제 나이에 면허증도 나오나요?”

유재원의 나이다.

지금은 중학교 2학년. 내년이 되어야 중학교 3학년이다. 미국이라도 중학생에게 면허증을 주진 않는다. 만으로 16세가 넘어야 운전면허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헉. 회장님이 대학생이 된다고만 생각하다 보니 정작 나이를 잊고 말았네요.”

소송 문제에 있어 듬직했던 앨런이 이런 허술한 모습이라니. 유재원은 그냥 웃고 말았다. 하긴 지금 자신이 타고 있는 루트는 엘리트 코스 중에서도 특급이었다.

“아, 그리고 저는 제가 스스로 운전하는 건 별로예요.”

학교까지 갈 때는 지금처럼 김대석이나 경호원이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학교에서는 전동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될 것 같다. 리튬폴리머 배터리가 나올 때는 아니라서, 충전도 길고 방전도 빠를 테지만, 캠퍼스 안에서만 탄다면 적당할 거다.

“예? 자동차에는 취미가 없으시단 말입니까?”

이번엔 레밍턴이 놀랐다.

미국인에게 자동차는 필수 도구였다. 당연히 자동차 애호가들도 많았고, 레밍턴도 그중 하나였다.

레밍턴은 막대한 보너스를 받자 처음 한 일이 새집을 사는 것이었다. 저택이라고 해도 될 만큼 커다란 집이었는데, 특이점이 있다면 차고가 많다는 것이다. 다음 보너스를 받았을 때부터 그 차고에 넣을 자동차를 샀다.

예전에 보여줬던 링컨 자동차에 이어서 포드의 머스탱, 닷지 챌린저, 폰티액 파이어버드를 사들였다고 한다. 이걸 사면서 섀넌의 눈치를 엄청나게 봤던 레밍턴이지만, 사고 나서는 너무도 만족해했다.

이런 레밍턴이었으니 자동차는 별로라는 유재원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순발력도 별로고, 공간지각능력도 그다지 좋지 않거든요. 제가 직접 차를 모는 건 위험해요.”

순발력, 공간지각능력이 꽝이라는 건 전생 때의 이야기다.

이번 생은 좀 달라진 것 같긴 했다. 저번에 그랜저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났을 때, 날카로운 감각이 있긴 했다. 하지만 하나짜리 목숨으로 모험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목숨도 목숨이지만, 어떻게 얻은 회귀인데 까딱 잘못해서 골로가긴 싫다.

“뭐, 나중에 자동으로 움직이는 차가 아니면 흥미가 돌지 않네요.”

“자동으로 움직이는 차? 그 데이빗 하셀호프가 나와서 몰았던 키트 말씀이십니까?”

미국 드라마 키트가 나오니 반색하는 레밍턴이다.

최근에 레밍턴이 샀던 자동차가 폰티액 파이어버드였고, 이게 미국 드라마 키트에 등장하는 메인 차량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색상도 검은색으로 키트와 완전히 흡사했다.

“네! 바로 그런 자동차요.”

“회장님, 텔레비전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입니다. 키트 같이 사람과 대화도 하고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차는 텔레비전 안에서만 존재하는 거지요.”

키트를 즐겨보는 레밍턴이지만 현실관은 뚜렷했다. 그런 자동차는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유재원은 그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레밍턴과 앨런에게 새로운 일을 맡긴 유재원은 구석에 있는 본인의 자리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으면서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평소 쓰던 컴퓨터는 아니었다. 안드로이드 1.0 런칭과 함께 발표된 뉴 에그를 새롭게 설치했다. 그렇다고 원래 있던 에그 PC를 버린 건 아니었고, 집으로 옮겨다 놨다. 여기서 집은 덕진리 내오마을이 아니라, 올드 팔로알토에 구한 집이었다.

유재원이 쓴다고 최고의 부품을 동원해 만든 컴퓨터였기에, 전원을 켜고 몇 초 지나지 않아서 부팅은 곧 끝났다. 아이디와 암호를 넣으니 곧바로 안드로이드 1.0의 바탕화면이 나왔고, 자동으로 시작하도록 설정한 프로그램도 속속 띄워졌다.

특히 ID 톡은 ID 그룹 사람들에게 있어 필수적인 프로그램이었기에 가장 먼저 완료되었다.

물론 ID 그룹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ID 톡을 기본 메신저로 사용 중이었다. 점유율 같은 걸 따질 필요도 없다. 현재 메신저라는 프로그램은 ID 톡이 유일했고, 가장 강력했다.

그나마 인터넷 웹페이지를 통해 단순한 채팅을 서비스하는 곳이 생기긴 했지만, 말 그대로 문자만 주고받는 수준이었다. ID 톡의 경우 지금까진 유재원이 직접 기능을 추가하고 최적화를 했다. 이제는 마이크로소프트 개발 인력을 바탕으로 전담 개발팀을 꾸렸다. 지금은 유재원이 만들어 놓은 소스코드를 보며 열심히 분석 중이었다.

ID 톡이 실행되었고, 로그인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자 유재원에게 곧장 쪽지가 하나 날아왔다.

-회장님, 찾으셨습니까?

케빈 존슨이었다.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빨랐다. 아마도 유재원이 보낸 쪽지를 보고서는 줄곧 대기 중이었던 모양이다. 유재원은 곧바로 1:1 대화를 신청했고, 케빈 존슨이 수락하면서 곧바로 채팅창이 생성되었다.

“다름이 아니라, 러시아 전문가를 찾고 있어요.”

유재원은 채팅창이 열리자마자 글을 올렸다.

-어떤 전문가 말씀이신지요?

오오!

역시나 케빈 존슨의 반응은 레밍턴과 달랐다.

레밍턴은 러시아라는 단어 자체에서 딱 막혔다면, 케빈 존슨은 구체적인 내용을 물었다.

“가장 급한건 헤드헌터입니다. 러시아의 경제 사정이 매우 나쁘다는 보고서를 봤습니다. 그러면 국책 연구기관이나 기업 연구소에 근무하던 핵심 인재들의 사정도 열악할 것 아니겠습니까. 이럴 때 만나보기 힘든 분들을 모셔와야죠.”

-아, 그런 일이라면……. 떠오르는 인물 몇몇이 있습니다. 모스크바 대리점을 선정할 때 접촉한 이들이 있거든요. 지금 연락해보겠습니다.

케빈 존슨의 응답에 유재원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플랜 B가 있긴 했지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땡스 빌!’

게이츠 향해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전생에는 악명높은 블루 스크린이 작렬할 때마다 터진 욕설과 같은 말이었지만, 지금은 순수하게 고마운 감정 그 자체다.

유재원은 얼마나 고마웠으면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좋은 보약은 다신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어제 올린 편을 다시 읽어 보니 설명조가 좀 많았네요.

아무래도 연참을 해야겠다고 억지로 짜내기도 했고, 설 연휴를 보내면서 텐션이 살짝 풀린 모양입니다.

앞으로 자연스럽게 연참 분량도 채우고, 긴장감도 유지하면서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살짝 무리했으면 연참 성공이었지만, 그러면 더 나빠질 것 같아서 잘라내었습니다.

며칠간 연참을 못하더라도 너그러운 이해 바랍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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