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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179화 (179/1,007)

[179] 열혈 추종자들(Esquires) =========================

유재원의 고민이 끝난 건 3일 후였다.

그동안 고민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고, 회사의 업무나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열심히 참여했었다. 그리고 전명헌 회장님의 조언에 따라 아이비리그의 학교들에 지원할 준비도 시작했다. 입학원서는 1월 말까지만 보내면 되는 것이라서 천천히 진행해도 되는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 빈센트 그린힐이 유재원의 지시에 따라 닛케이 지수와 연동된 선물과 옵션에 막대한 투자를 시작했다.

무지막지한 풋 포지션으로 설정 중이라서 일본의 증권사나 투자자들이 보기에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ID 인베스트먼트는 일본의 경제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보고서도 내고, 풋 포지션도 날이 갈수록 확대했다.

주식시장에서는 하락에 배팅하는 걸 반기는 투자자는 거의 없다. 주식 투자는 당연히 주식을 사는 것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주가가 폭락할 거라고 돈을 거는데, 누가 좋아하겠나.

대다수 투자회사는 ID 인베스트먼트의 움직임을 관망 중이었다. 그렇지만 일부는 소액이지만 풋 포지션을 만드는 회사도 있었다.

ID 인베스트먼트의 투자 상황과 닛케이 지수의 움직임을 살펴본 유재원은 프로그램들을 모두 닫고 IDW 파일을 열었다.

파일의 이름은 ‘김&정 프로젝트’였다.

한국의 판검사 축출 사건에 대해 3일 동안 유재원이 열심히 고민한 결과물이 담겨 있는 파일이었다.

“이거면 되려나?”

문서의 내용은 간단했다.

정병우 검사와 김창완 판사가 정의의 아이콘으로 만드는 것과 함께 이들이 떵떵거리고 살도록 만들어주겠다는 것이었다.

둘 다 사법고시를 통과한 사람이니 사직서를 쓰고 나오면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있다. 1년 동안은 전관예우를 통해 어느 정도 먹고살 수 있겠지만, 1년이 지난 후부터는 차가운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재벌들에게 찍힌 상태였으니, 큰 건수의 사건은 절대 맡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자잘한 민사 사건만 맡아야 할 것이고 수입도 당연히 적어질 거다. 사법부 출신이 제일 선망하는 국회의원을 노려보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유재원은 이러한 두 사람의 처지를 180도 달라지게 만들 작정이다.

재벌들이 개가 주인이 물면 저렇게 된다고 보여주기 위한 표본이 아니라, 판검사들이 누구나 선망하는 그런 사람으로 만들 거다.

유재원은 곧장 ID 톡을 실행했다. 그리고 즐겨찾기 된 사람 중에 가장 위에 있는 ‘최강욱 비서실장’이란 이름을 클릭했다.

대화는 곧 연결되었다.

-네, 회장님!

“일단 파일을 하나 보내드릴 테니, 먼저 읽어보세요.”

유재원은 곧장 파일 전송기능을 이용해 김&정 프로젝트가 담긴 IDW 파일을 전송했다. 30KB 되는 매우 작은 크기라서 몇 초 걸리지 않았다.

-다 읽었습니다.

최강욱이 문서를 다 읽어볼 때까지 1분 정도 걸렸다.

A4용지로 10장 분량이라서 보통 사람은 그렇게 빨리 읽을 수 없을 것이다. 최강욱의 전직은 변호사였기에 문서를 읽는 데 특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유재원도 제대로 다시 읽으라고 타박하지 않았다.

-김판, 정검 두 사람을 반면교사가 아니라 우상으로 만드실 생각이군요.

역시 최강욱이다.

바로 핵심을 꿰뚫었다.

재벌들의 의도는 김창환과 정병우 같은 꼴이 되기 싫으면 협조하라는 협박이었다. 반대로 협조하면 든든한 스폰서가 되어서 떵떵거리고 살게 해주겠다는 회유의 표시이기도 했다.

유재원은 이걸 간단히 뒤집을 생각이다.

정의로운 판결을 내리고 축출돼도 뒷일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만들어 줄 거다.

-김&정 법무법인이라.

그걸 실행하는 조직이 김&정 법무법인이다.

ID 그룹의 이름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해줄 거다. 일단 시작은 ID 그룹 산하의 법률사무소다. 법무법인을 설립할 근거가 될 변호사법이 아직은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선진국에선 이미 시행하고 있는 체계라서 최강욱도 법무법인에 대해선 상세히 알고 있었다.

“일단 소속은 ID 파운데이션으로 하면 될 거 같아요. 최 비서실장님이 가셔서 스카우트해주세요.”

-예. 그러면 대우는 어느 정도로 할까요?

“연봉으로 김 판사님은 2억, 정 검사님은 1억5천이요.”

-헉! 그렇게나 많이 줍니까?

지금은 91년이다. 물가 수준을 참작한다면 21세기 초에 연봉 10억 수준과 비슷한 막대한 액수였다. 하지만 추가로 고려해야 할 게 있다.

둘 다 전관예우 변호사라는 것이다.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의 강력함은 웬만한 로펌의 에이스들 못지 않는다. 전관의 약발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상대방으로부터 명백한 증거가 쏟아지는 재판이 아니라면 90% 이상의 승률을 장담할 수 있다.

“판검사들의 정의로운 우상이 되려면 이 정도 대우는 받아야죠.”

연봉뿐만이 아니다.

자동차와 함께 기사도 줄 거고, 화려한 사무실도 마련해줄 거다. 또한, 품위유지비와 접대비도 넉넉히 챙겨줄 작정이다.

-그럴 필요까지 있나 싶습니다만. 사실, 사법부 내에서 평판이 회장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좋은 사람은 아니거든요.

“아니에요. 꼭 필요해요.”

둘의 정치적 성향이 무엇인지, 이전엔 올바르게 행동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유재원이 이들을 우대하는 이유는 단 하나.

수사하거나 재판할 때 다른 재벌들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다. 이번 부산그룹 수사나 재판처럼 법과 원칙에 따라 재판하면, 조직에선 배척을 받아도 사회에 나오면 유재원이 든든한 바람막이를 해주겠다는 강력한 신호를 주는 거다.

“우리가 사업할 때, 불법을 저지른 적이 있던가요?”

-없지요.

“세금을 낼 때도 그래요. 우리는 투명한 회계를 통해 내야 할 세금에서 1원도 훔치지 않잖아요.”

올해도 거의 다 지나서 조만간 세금을 내야 한다.

91년은 작년과 같이 급격한 투자 시장의 변동은 없었기에, 세금의 전체적인 규모는 많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ID 인베스트먼트의 수익만 줄었다는 것이지, ID 테크놀로지와 자회사들의 수익은 꾸준히 늘어나는 중이었다.

이렇게 벌어들인 수익은 한 푼도 빠짐없이 계산해서 세금을 낼 거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노 대통령 앞에서도 바른 소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이고, 노 대통령도 무겁게 받아들였다.

“반면 다른 기업은 어떻죠?”

-후후, 그거야 입에 담기도 싫을 만큼 지저분하지요.

“네. 그런 게 다 반칙이잖아요. 그런 반칙을 검찰에서 잡아내고 법원에서 죗값을 받게 하면 만큼 우리의 경쟁력은 강화되는 겁니다. 법무법인 운영비로 몇백억을 쓰더라도 커다란 재판에서 이기면 우리의 이익이죠. 게다가 그만큼 우리의 사회도 이전보다 건강해지는 거죠.”

일성과 대한민국 사법계의 충돌은 이미 충분히 예견되어 있다.

일성의 회장 최현희의 상속도 완전히 봉합되지 못한 상태였는데, 그의 나이도 제법 된다. 3대 세습을 위해서는 본인이 치렀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렇기에 법률적인 다툼은 필연적이었다.

전생에선 죄다 일성의 승리였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다를 거다.

-이해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축출된 두 사람을 우리가 꼭 살려야 해요.”

-예. 기필코 해내겠습니다. 그들도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 준 회장님을 구원자처럼 여길 겁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을 그냥 놀고먹게 둘 마음은 조금도 없어요. 일단 검찰청과 대법원에도 올바른 정신을 갖고 외롭게 싸우시는 분들이 많을 거 아니에요? 두 사람을 통해 그분들을 지원하는 거예요.”

전생에는 일성 돈은 받아도 탈이 나지 않을 돈이라고 했다. 돈을 퍼주고서도 뭘 해달라는 요구가 없었기에 생겨난 이야기였다. 하지만 3대 세습을 해야 할 때가 되자 이제껏 받은 돈에 대한 값을 사법부가 치르게 되었다.

ID 그룹과 유재원은 다르다.

유재원의 이익은 법과 원칙에 따른 정의로운 판결과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일반적인 도덕률에도 완전히 일치하니 양심의 가책을 느낄 일도 없다. ID 그룹만의 차별화된 강점이다. 이러한 바탕으로 일성이 했던 것 이상으로 완벽한 관리를 보여줄 거다.

“아참, 최근 기사를 보니 일본 대사관 앞에서 할머니들이 항의 집회를 시작했다는 기사를 봤어요.”

-네, 저는 차를 타고 지나다가 보기도 했습니다. 일제가 막장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는데, 정신대에 성노예까지 운영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그분들이 나서도 일본 정부가 눈이나 깜짝하겠습니까? 일단 국내에 들어온 일본 기업들 상대로 소송을 걸어서 착취했다는 걸 인정도 받고, 배상도 받아야죠. 그 일을 김&정 법무법인의 첫 번째 과제가 될 겁니다. 또한, 우리 사회에 법률 지원을 받지 못해 피해를 본 이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분들의 구제도 열심히 하는 거고요.”

-아! 그래서 김&정 법무법인이 ID 파운데이션에 넣으신 거군요.

최강욱의 감탄이다.

ID 그룹 안에는 이미 막강한 법무팀이 조직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소송처럼 거대한 사건이라면 외부의 법무법인과 함께 일하면 된다. 그렇기에 최강욱이 김&정 프로젝트를 봤을 때, 쓸데없는 곳에 돈을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야 유재원의 큰 그림을 읽은 최강욱은 그저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변호사 영입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만약 김 판사님과 정 검사님처럼 정의로운 일을 했는데 축출된 사람이 또 있다고 한다면 김&정으로 영입하는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김창완 판사부터 만나보겠습니다.

김&정 프로젝트의 취지를 완벽히 이해한 최강욱은 적극적인 자세로 바뀌었다. 잘 부탁한다는 말로 통신을 종료한 유재원은 김&정 프로젝트 파일을 암호화해서 중요 문서 디렉터리로 이동시켰다.

“이제 최 회장님 턴인가?”

김 판사와 정 검사가 유재원의 지원으로 김&정 법무법인을 만들고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면, 분명 저쪽에서도 반응이 올 것이다.

그들이 어떤 수를 쓸지 보는 건 유재원에게 즐거운 일이다. 기왕이면 참신하고 정성스러운 수법이었으면 좋겠다.

남들이 열심히 준비한 걸 산산이 박살 내는 것만큼 짜릿하고 즐거운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 완전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컬링 재방 보느라 7분이나 늦었네요!

다들 뜨거운 주말 보내고 계시죠? 이렇게나 재미있던 올림픽도 이젠 끝나가네요. 화려한 피날레 한껏 즐기시고, 다음 주에 다시 봐요!!

아, 그리고 올림픽 이벤트 당첨자도 주말 동안 제가 집계를 해서 월요일 발표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당첨되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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